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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죽음 “어떤 묘비도 세우지 말라” (존 칼빈)

Sola. 2024. 6. 15. 06:00

 

평온한 죽음 “어떤 묘비도 세우지 말라” (존 칼빈)

 

유언장에 검소한 일생·가족 향한 애틋한 사랑담아

“주의 일 하다 분노한 적 있다면 용서하길” 권면도

 

조준영 기자 / 기독신문 (2009.6.4)

 

 

1564년 5월 28일 제네바 성문 밖 플랭 팔레 공원묘지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좀체 입을 열지 않았다. 한 마디라도 입을 열면, 그 말은 들불처럼 번져 온 군중의 눈물샘으로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그것은 마치 세마포에 싸여 나무관에 누운 제네바의 위대한 지도자를 향한 무언의 다짐처럼 보였다. 온갖 위협과 조롱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키고, 깨우치고, 가르쳐왔던 사람. 지방 행정 장관들, 시의회 의원들, 목사와 교사들, 학생들, 각계각층 남녀들의 비통한 발걸음 사이로 간간히 애절한 흐느낌만이 주일 오후의 적막을 깨뜨렸다.

 

▲ 칼빈의 유언시 풍경. 이때 그는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돌보고 계십니다”라고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말했다.

 

1564년이 시작될 무렵, 칼빈의 건강은 심하게 나빠졌다. 평생을 두통, 천식, 소화불량, 열병, 담석증 등에 시달려왔지만, 칼빈은 육신의 고통을 임무에 충실하려는 강한 의지로 충분히 극복해 왔었다. 그러나 그즈음에는 악화된 신장염으로 도저히 서있을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칼빈은 그 후로 담담히 떠날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이까”라고 담담히 기도하던 칼빈은 2월 2일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고, 나흘 후에는 성베드로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했다.

 

4월 25일에는 유언장을 구술했다. 칼빈은 유언장의 첫 부분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죄악의 심연에서 건져 복음의 빛으로 이끄셨고, 자신을 통해 복음의 진리를 알리도록 하신 것에 대한 감사로 시작했다. 유언장에는 또 얼마 되지 않는 현세의 물건과 재물을 가족에게 유산으로 남기라고 기록했다. 동생 앙투안에게는 친구에게 받은 은잔을 남겼고, 앙투안의 아들과 딸들에게 각각 40크라운과 30크라운씩을 남겼다. 또 제네바대학에 10크라운, 가난한 외국인들을 위한 기금으로 10크라운을 남겼다. 칼빈의 극히 검소한 일생과 가족을 향한 자상함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유언을 마친 칼빈은 숨을 거두기 전에 의회에서 한 번 더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사정은 여의치 못해, 4월 27일 네 사람의 행정장관과 소의회 의원들이 칼빈의 집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칼빈은 그동안의 친절에 감사하고, 주의 일을 위하여 자신이 노를 분출한 적이 있었다면 용서하라고 간구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순전한 교리와 치리를 보전하라고 권면했다.

 

4월 28일에는 제네바의 목회자들이 칼빈의 집에 모였다. 이때 칼빈은 너무 약해져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또렷했다. 칼빈은 그들에게 자신이 죽은 후에도 자신들의 사역을 충실히 수행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권면했다. 또 아무리 위협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제네바와 교회를 지켜주실 것이므로 그들 사이에 불화가 있어서는 안 되며, 서로를 사랑으로 포용할 것을 강조했다.

 

“저는 이 사역을 진행해 나가면서 주님께서 제 수고를 참으로 복되게 하셨다는 것을 마침내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또한 이 소명을 견지하여 확립된 질서를 유지시키고,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날의 만남은 칼빈이 동료들과 가진 마지막 순간이요, 동시에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마지막 순간이기도 했다. 칼빈은 고별사를 한 뒤 목회자들 모두와 일일이 악수했다. 칼빈의 제자 데오도레 베자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 모두는 슬픔에 젖은 눈으로 칼빈과 작별했다.

 

5월 2일에는 뇌샤텔에서 사역을 하고 있던 친구 윌리엄 파렐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서 칼빈은 자신의 죽음으로 낙담하지 말 것과 하늘에 상급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며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그로부터 채 1개월도 되지 않아, 5월 27일 저녁 8시 무렵 칼빈은 평화롭게 주님의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갔다. 그의 나이 56세 되는 해였다. 베자의 기록에 따르면, 칼빈은 너무나도 평온하고 손발에 아무런 경련도 없었으며, 심지어 깊은 숨도 내쉬지 않았다. 칼빈은 마지막까지 정신을 잃지 않았으며, 얼마간 말도 할 수 있었다. 마치 죽었다기보다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네바 전체는 그날 밤은 물론 다음 날까지도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비탄으로 가득했다. 공화국으로서는 가장 지혜로운 시민을 잃었고, 교회는 신실한 목자를 잃었으며, 아카데미는 견줄 수 없는 스승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다수의 시민들이 칼빈의 침실로 몰려들었고, 좀처럼 그들을 떼어놓을 수조차 없었다.

 

칼빈의 장례는 교회법에 따라 간소하게 치러졌고, 무덤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다. 어떤 묘비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칼빈의 무덤에는 아무런 비도 세워지지 않았다. 때문에 얼마 안 있어 칼빈이 묻힌 자리는 아무도 찾을 수 없었고, 오늘날에도 칼빈의 무덤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생애 마지막까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을 실천한 사람. 묘비는 없지만, 그러나 지금도 칼빈을 찾는 사람들은 공원묘지 가득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는 한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원했을 유일한 묘비명 한 구절.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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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제자 애절한 헌사

 

한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개혁을 위해 살다간 칼빈의 죽음 앞에 동료와 제자들은 애절한 헌사를 남겼다. 제자 데오도레 베자는 스승의 죽음 앞에 애도의 송가 ‘팔렌탈리아’(Paren talia)를 써서 헌사했다. “존경하는 칼빈이 먼지로 돌아가나니 그에게서 덕을 배울지라. 퇴락하는 로마가 가장 두려워 할 그가 이제 선인들의 통곡 속에 숨졌도다. 비열한 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그가 너무나도 초라하고 조그만 무덤 속에 누워있구나, 이름도 쓰이지 않은 채로. 겸손이 항상 칼빈과 함께 있어,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와 동행하였고, 그가 죽은 지금도 그와 함께 묻혔구나. 이처럼 은혜로운 자가 묻힌 무덤이여, 행복하여라. 그 유해 위에 덮고 있는 대리석이 부럽도다!”

 

칼빈이 임종하기 전 제네바를 방문해 칼빈을 만나고 돌아온 친구 윌리엄 파렐은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칼빈 대신에 죽을 수만 있다면! 그는 얼마나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따라 우리도 이처럼 우리의 생을 끝마칠 수 있도록 해주시길 바라오.”

 

칼빈의 생애는 대적자들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당시 교황 피우스 4세는 칼빈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이단자의 장점은 물욕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만약 내게도 그와 같은 봉사자가 있다면, 나의 지배력이 바다에서 바다 끝까지 미칠 것이다”는 헌사를 남겼다.

 

“죽음도 겸손하게 맞아야”

 

▲ 칼빈의 가묘

 

칼빈은 묘비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사후 불과 몇 달 만에 외국학생들이 그곳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그의 무덤을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칼빈 자신이 원했던 바였다. 칼빈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오래 전 창세기 11장 4절을 주석하면서 남긴 칼빈의 말은 오직 그의 생애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오직 죽음만이 인간 육체의 덧없음을 알고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죽음조차도 우리의 교만을 바로잡지는 못하며, 우리 자신이 처한 비참한 상황을 솔직히 인정하게 할 만큼 우리를 긴장시킬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교만은 화려한 결혼식에서보다 오히려 장례식에서 더욱 더 기세를 높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런 사례를 골똘히 생각해봄으로써, 우리가 겸손하게 살고 겸손하게 죽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어울리는 것인지 배울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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