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죄는 모순되지 않는다
부제: 하나님의 의지, 작정, 섭리 등이 인간의 도덕적 자유와 죄에 대하여 갖는 관계
(창 50:19, 20; 출 7:3, 9:12, 10:20, 27, 14:4, 8; 사 6:8-10, 마 13:9-16, 요 12:37-41, 행 2:23; 4:27, 28과 연결)
Sola (2021.6.9)
하나님의 작정은 동일한 하나다.
하나님의 의지와 작정과 섭리는 인간의 자유와 죄와 모순되지 않는다. 벌콥에 의하면 하나님의 의지와 작정은 하나님의 단일한 행동으로서 인간과 달리 완전하시며 즉각적이고 동시적이다. 또한 하나님의 이해는 완전한데 이 지식 또한 단일적이고 포괄적이며 동시적인 행동이다 이 작정은 영원하고도 불변적이므로 다르게 될 수 없다.
이것은 소요리 문답에서 밝히는 하나님의 속성과도 같다. 하나님의 속성 7가지중 작정과 가장 유사한 속성인 지혜와 능력을 봤을 때 이 지혜와 능력은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시다. 즉, 하나님의 작정은 동일한 하나다.
하나님의 작정은 소망과 위안을 준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작정은 사람의 도덕적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작정을 1원인이라고 부른다면 사람의 의지의 자유는 2원인으로 말할 수 있다. 즉 빌립보서 2:13에서 말씀하듯이 하나님은 소원하는 마음을 인간에게 주셔서 그 분의 영원 전의 작정을 섭리 가운데에 이뤄가신다. 대표적인 예들이 성경에 많이 등장한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고 해하려 했으나 하나님이 그것을 섭리 가운데에 이루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의지는 요셉의 형들의 도덕적 자유인 2원인을 침해하지 않으신다.
선을 행할 능력이 있었던 죄 짓기 전의 아담과 달리 루터의 표현처럼 선을 행할 수 없는 노예의지만 갖고 있는 인간은 죄를 짓고자 하는 의지에 있어서 자유롭고 필연적이다. 물론 중생한 신자들은 불완전한 의지의 자유(자유의지)로 격상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에 요셉의 형들은 자기 자신들이 기뻐하는 의지의 자유를 가지고 스스로 죄를 지었다. 이것은 1원인인 작정을 이뤄가시는 데에 있어서 2원인인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즉, 요셉의 형들이 죄를 짓는 작정과 1원인은 하나님께 있지만 죄에 대한 책임은 죄를 지은 요셉의 형들에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창조하지 않으셨으며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는 모순처럼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대로 우리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믿어야 하며 하나님 보다 지혜로워져서는 안 된다.
요셉의 고통과 고난을 선으로 바꾸사 그 분의 택하신 백성들을 보존하시고 일반은총 가운데에 만민의 생명을 건지신 하나님의 일반섭리와 특별섭리는 하나님의 의지와 작정을 이루어가실 때에 인간의 자유와 죄를 선한 것으로 바꾸셔서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것은 현재 우리에게 큰 소망과 위안을 주며 우리에게 닥친 모든 상황들에 있어서 그 분의 뜻을 신뢰하며 은혜를 구할 수 있게 되는 힘이 된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작정하심 안에 있고 섭리하심 가운데에 이루신다.
출애굽 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관계들은 계속 이어진다. 출애굽기 7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는 바로의 죄는 바로 스스로의 기뻐하는 의지로 보내지 않은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1원인인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에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시기로 이미 작정하신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우리는 그것을 지나고 나서 즉, 출애굽 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작정하셨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물론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경우들도 많지만 진실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신뢰할 수 있다.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지만 죄의 책임은 하나님께 있지 않고 바로에게 있다. 하나님은 죄를 창시하지 않으시며 거룩하신 속성을 갖고 계심을, 성경 곳곳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스스로의 의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음으로 인해, 그리고 그 분의 강퍅케 하시는 1원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애굽의 10가지 재앙을 통해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의 섭리가 드러난다. 그리고 출애굽기 14장 4절에서 말씀하듯이 바로를 강퍅케 하시고 그로 인한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후부터 홍해에서의 많은 군대가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는 1원인인 작정하심과 섭리하심이 드러난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작정하심 안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가시는 데에 사람의 도덕적 자유 등을 사용하시며 섭리하심을 통해 이루신다.
하나님의 작정과 운명론의 차이점은 사랑과 섭리의 작용이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데까지에는 참새를 날아가게 하시는 것과 그 시점에 사냥을 하고자 하는 인간의 도덕적 자유, 그리고 참새 두 마리를 맞춰서 죽게 하고 그것을 한 앗사리온에 팔기까지 하나님의 뜻 없이는 어떠한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말씀과 교리들은 운명론이 아닌데 운명론과의 다른 점은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감사와 평안을 준다.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작정이 예지보다 우선된다. 작정하셨기 때문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아시는 것이다. 이 순서가 바뀌면 알미니안주의, 세미펠라기안주의 등의 이단들의 오류에 빠진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5장 섭리에서 말하고 있듯이 하나님은 피조물들과 사람의 행동들과 모든 일들을 그 분의 지혜롭고 거룩하신 섭리에 의하여 유지하시고 지도하시며 처리하시고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섭리에는 오류가 없는 미리 아심이 있고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하나님의 자의적이고 자유로운 계획대로 그것을 작정하셨고 섭리해 가신다. 그것은 결국 출애굽 사건의 목적과 같이 그 분의 지혜와 능력과 공의와 선과 긍휼을 찬송케 하려는 것에 목적이 있으시다.
사람의 2원인에 의해 우연적으로 보여지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 1원인의 변동됨 없이 되어지는데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에 2원인을 또는 다른 방편들과 수단들을 사용하셔서 자유롭게, 그 분의 기쁘신 뜻대로 행하신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단지 허락만으로 끝내지 않으시면서도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천사들과 인류의 모든 죄까지 그 분의 섭리가운데에 두시는데,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음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셨고 정하셨기에 미리 아셨다라고 사도행전 2장 23절은 말씀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거스려서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작정하시고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그 성에 모였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는 그들이 1원인 가운데에 있었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기뻐하는 뜻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이러한 이들의 죄들은 모두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하심 안에 있다. 죄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섭리는 단지 허락만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지극하신 지혜와 능력으로 그것들을 하나님 뜻대로 제한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못박히심을 예정하셨듯이 (이 예정 또한 성부 하나님의 단독적 사역이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정이자 예정이다.) 본디오 빌라도와 헤롯과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의 부패성을 내버려 두시는 여러 방법들을 통하여 섭리 가운데 이루어 가신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그 분의 지혜롭고 거룩하신 목적이 이루어진다.
이사야 6장과 마태복음 13장, 요한복음 1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케 하셨고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눈을 감기우셨으며 완악하게 하신 무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5장 6항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정리하면 악하고 경건치 않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벌하시는 의미에서 그들을 어두워지게 하시고 완악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죄에 대해 단순한 허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의 죄 짓는 것 또한 영원 전에 작정하셔서 이루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죄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조성자도 아니시며 죄의 승인자도 아니심을 로마서의 토기장이의 비유 등 성경 곳곳에서 말씀하시며 우리는 아멘으로 받아야 한다.
이어서 말하면,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불신자로 죽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밝히 깨달아 그들의 심령이 새로워지도록 되는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가졌던 은사들을 빼앗는 방법으로 그 분의 작정을 이루어가시는 것으로 섭리하시기도 하시며 그들의 부패성을 그대로 내버려 두심으로 예수님을 못박고 예수님을 거절했듯이 그들이 범죄하도록 두신다. 그와 동시에 그들을 그들의 정욕과 사단의 능력에 내어주시기도 한다. 더불어서 하나님께서 택자들 가령 요셉을 성화시켜 가시는 과정에서 형들과 보디발의 아내를 사용하셨듯이 악한 자들을 완악하게 하고 강퍅케 하는 그대로 내버려두심으로 하나님의 작정을 섭리 가운데에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죄는 모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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