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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의 정통성

Sola. 2023. 6. 16. 07:01

 

개혁신학의 정통성

김향주 교수

 

서언

 

사적 교회는 하나밖에 없는 자신들의 생명을 분토처럼 버리고 불신앙의 세력과 싸운 순교자들의 피를 씨앗으로 하여 신앙고백을 양산해 왔다. 그 신앙고백이 올바로 보수될 때에는 정통적 진리라는 이름표를 달고 지금까지 내려왔다. 순교의 피를 요구할 만큼 그토록 중요한 신앙고백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 고백은 시대와 사람이 변할지라도 2천년 교회사가 변치 않고 주장해온 “주 예수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아주 단순한 고백에서 시작되는 문제였다. 그 내용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의 질문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단순하게 보이는 문제는 2천년동안 교회 자체의 역사뿐 아니라 이 신앙고백을 가진 교회가 세워지는 곳에는 국가의 역사까지 바꾸어 놓은 격변을 겪어왔다. 이 단순한 신앙 고백은 모든 철학과 일반 사상까지 가름하는 잣대가 되었으며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사상이 등장할 때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었다.

 

 

역사교회의 교리는 이 신앙고백을 기준으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교리를 전개해 왔다. 그리고 많은 신앙고백서를 생산하게 되었다. 왜 신앙고백서가 반드시 있어야 되는가? 신약시대이후 지상교회에서 악마는 교묘한 속임수를 매개로 이단 사상을 침투 시키려고 혈안이 되어왔다. 초대교회 신성만을 주장하여 육체로 오신 예수를 부정하는 그노시스(Gnostic)주의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주저 없이 적그리스도라고 정죄하고 교제하지 말 것을 경고하였다. 고대신조는 6회에 걸쳐 벌어진 피나는 기독론 논쟁을 통하여 아리우스(Arius)설, 아폴리나리우스(Apolinarius)설, 네스토리우스(Nestorius), 유타케스(Eutyches)등을 배격하고 사도신경을 중심한 나케야 신조, 콘스탄티노풀 신조, 칼케돈 신조 등을 만들어 낸 것이다.

중세의 타락한 교회는 교리의 순수성을 짓밟아 교회의 의식을 물론 신앙생활이 극도로 타락에 이르자 16세기 종교개혁시대는 교리개혁부터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수없는 신앙고백이 쏟아져 나왔고 17세기에는 전 세계 교회 신앙 고백의 총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교리적 개념이 신앙생활에 접목이 되지 못할 때 다시 타락한 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기에서 17세기 생활을 강조한 경건주의가 나타나게 되었고, 이 경건주의는 로마 가톨릭의 수평주의적 생활과는 다른 수직주의적 생활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 운동은 일시적 부흥 운동에 그치게 되고 교리 없는 생활 운동은 다시 기독교를 타락의 늪으로 밀어 넣게 되었다. 즉 교리 없는 영적 운동은 인간을 공허한 맹목주의자로 만들어 헤매게 만들었다.

결국 경건주의 운동의 반동으로 할레(Halle)대학을 이성주의 운동의 거점으로 만들었고, 데카르트(Descartes), 파스칼(Pascal), 라이프니쯔, (Leibniz), 스피노자(Spinoza) 등의 이성주의 철학자들의 여파로 18세기 계몽주의가 파생되고 말았다. 이 계몽주의는 인간이성을 극도로 찬양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이성이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권위에 도전장을 보낸 결과 19세기 자연주의를 낳았다. 19세기 자연주의는 초자연주의를 빼버린 시공간의 예수님만을 강조한 결과 20세기의 난장판 신학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유주의 신학의 온상을 만든 자는 누구인가? 주관주의 신학을 강조한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이다. 여기서 헤겔(Hegel)의 역사주의가 첨가되어 예수에 대한 초자연적 역사성은 완전 무시를 당하고 예수에 대한 시공간의 전기를 그려내는 신학이 온통 세계를 휩쓸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전통의 노선을 이어온 개혁신학은 질식 상태 직전까지 와 있었다. 심지어는 1885년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간을 하나의 하등동물의 자손으로 몰아갔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설은 먼 옛날 신화 정도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비교종교학이 성경연구를 넓게 하는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고 기독교는 이성에 의해 평가를 받아야 할 문화적 파생물로 여겨졌다. 당시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경제적 안정과 문명의 발달은 인간을 이성의 바벨탑으로 올려놓은 결과가 되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인간의 영혼을 채워줄 줄기가 파열됨으로 인간의 마음은 허무로 꽉 차기 시작하였고 과거를 생각하라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강권이 미국을 중심으로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성령 운동을 중심한 신유의 은사주의 운동이 그중에 하나요, 다른 하나는 복음적 교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근본주의 운동이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숫자적으로 상당히 위축되었을 뿐 그 노선과 교리는 변함없이 역사교회가 지켜온 정통을 화란의 프리(Free)대학과 캄펜(Campen)대학에서 그리고 미국에서는 프린스톤(Princeton)신학교를 중심으로 유지해 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언급되어온 보수, 정통, 자유, 근본, 개혁 등등의 신학적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근본주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세대주의에 대하여 확실한 규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 대신교단의 헌법 “본교단의 노선”이란 제목의 “교리”에 나타나 있는 정통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근본주의, 세대주의, 개혁주의 등의 차이점과 그 원리를 정립하고 60년에 이른 대신의 역사에 있어서 신학적 입장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기본으로 하여 기독교 변증학적으로 정의해 보려고 한다.

 

 

I. 제 신학들의 개념

 

보수주의 하면 복음주의도, 정통주의도, 근본주의도 그리고 개혁주의도 다 같은 의미로 생각하는 경향이 한국교회에 존재하는데 그 의미하는 바가 서구에서는 다르다. 한국교회에서는 그 의미들이 애매하면서도 포괄적인 내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어떤 경우 다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또한 신학적 개념이나 역사적 개념을 전혀 무시하고 주관적 개념으로 스스로를 보수주의 또는 개혁주의라는 말을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말하는 신학의 내용을 보면 자유주의 사상으로 물들어 있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그것은 신학의 무지를 말하는 경우이거나 또는 자신의 신학을 2중으로 포장하기 위한 술책을 드러내는 경우로 볼 수 있다. 더욱더 가관인 것은 미국이나 유럽의 신학을 아무 전제도 없이 받아들이거나 마구잡이로 비평하고 나서 자신의 신학이 가장 좋은 내용의 것인 줄 알고 스스로 착각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신의 신학이 복음주의 아니면 근본주의 등으로 확실한 노선이 정해지지 못한 가운데 정통주의를 정통주의로 알지 못하고 비평을 하거나 개혁주의를 개혁주의로 바로 알지 못하고 비평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스스로는 아주 성경을 바로 해석하는 보수주의라고 말한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한국교회 신학적인 현상을 보고 우선 개념정리부터 바로 해야 될 줄로 안다.

 

 

1-1. 자유주의

자유주의라는 개념은 근대주의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이 근대주의적 개념이란 말은 독일신학계에서 계몽시대 이후의 개념을 포함한다는 뜻이다. 이 개념은 극단의 합리주의를 앞세워 교리적 정통주의에 대한 반발운동이다. 이는 교리적 객관주의의 반발운동이므로 슐리이에르마허(Schleiermacher, 1768-1834)의 철학적 개념이 그 근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종교는 철학이나 도덕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목적하는 독자적인 것이다. <종교는 단순히 교리나 신조를 이해하여 신에 대한 사색의 활동이 아니다.> 스스로 활동하는 심적 활동이다. 그러므로 경건은 직관과 감정이며 절대의존감정이다”고 말했다.

 

그의 신학은 신학이 될 수 없는데도 신학이란 말을 사용하였는데, 그 신학의 중심은 기독론적이다. 물론 기독론적이란 말은 루터주의의 고백론적 기독론주의와는 또 다른 개념을 말한다. 슐라이에르마허의 기독론주의란 그리스도가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식을 강조하게 되었는데, 그는 종교를 감정의 문제로 보고 정서의 작용으로 종교가 가지는 주관적인 면을 분석하였으며, 내적 체험을 일으키는 객관적인 측면에 관해서는 다만 내적 체험의 분석을 위한 토대가 되는 유추를 조작하는데 불과하다고 말했다.

 

자유주의 신학은 정통주의에 대항하여 표현되는 말로 성경과 교리의 객관적인 전제를 강제 또는 억압의 개념으로 해석하여 인간의 주관적인 활동의 의의와 입지를 세우려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성경의 이해를 비판적 정신과, 과학적인 연구와, 역사적 사건과, 종교적 체험과, 신앙의 실존적 파악 등을 통하여 인식하는 신학이다.

 

여기에 속한 신학자들은 근대 신학자들로 불리는데, Schleiermacher이후에 자유주의 신학을 영국 및 미국에 소개하는데 많은 역할을 한 크르릿지(Coleridge,1790-1876), 신학의 형이상학적 개념을 배제하고 조교의 실천적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적 계시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념주의 개념을 강조한 뤼출(Albrecht Ritchl, 1822-1889), 복음서의 초자연적 요소를 합리적으로 해석한 하제(Karl Augst Von Hase, 1800-1890), 형 이상학적으로는 Hegel의 사상을 심리적으로는 Schleiermacher의 사상을 성경에 적용시키려는 스위스의 신학자 비데르만(Alois Emanuel Biederman, 1819-1885), 그리스도와 역사성에 있어서 Ritchl의 노선을 따르는 헤르만(Johann Wilhelm Hermann, 1846-1922)과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 그리스도를 역사 속으로 끌어내린 슈바이처(Alberto Schweitzer, 1875-1965)와 봐이스(Weiss Johannes, 1863-1914), 셩경의 종교사적 연구에만 치우친 군켈(Juhann Friedrich Gunkel, 1862-1932)과 부셋트(Wilhelm Bousset, 1865-1920)와 토레르치(Ernst T개딧ㄴ초,1865-1923)등이었다.

 

후에 신정통주의가 나오면서 신학의 양상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Karl Barth 이후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강조하는 변증법적 신학에 의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는 사상으로 방향키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역사적 신앙고백을 신학의 기본으로 주장하는 기독교 신학으로 볼 때 근본적으로 다른 신학이며 사실상 자유주의 신학 사상이었다. 그러한 사상은 에밀 브르너, 고갈텐 신학에서 자유주의의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하였으며 불트만의 비신화론에서 더욱 선명하게 자유주의 색깔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성경의 역사연구에 있어서 실존론적 해석이 채용된 새로운 양태의 자유주의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신학의 교리적 관점을 요약해 보아야 한다.

 

1)이는 성경과 교리를 객관적인 기준으로 삼아 정통성을 강조하는 개혁신학을 거절하고 상대성을 주장하는 주관적 합리주의 내지 실존적 경험을 강조하는 신학이다.

2)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는 인간론 중심의 신학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복음서의 자료주의에 근거한 신학으로 예수님을 신앙의 대상과 구분하려고 하였다. 시공간의 예수님을 강조하여 동정녀 탄생과 부활과 승천을 거부하였다. 이는 후에 교회가 부과한 비역사적 요소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를 도덕적 모범이나 신 의식을 특별히 소유한 분으로 생각했다.

3)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거절한다. 역사의 주관자로서의 하나님이 아니고 역사의 과정속의 하나님을 주장한다. 개혁신학이 아주 귀중하게 생각하는 하나님의 우주에 대한 작정과 예정과 섭리와 경륜을 거절하는 신학이다.

 

변증학적 입장 : 자유주의 신학은 신학이라고 말하는 자체가 틀렸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신학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이는 악마의 학문이지 신학이 아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악마의 앞잡이가 아닌가? 철학을 사용하여 교묘한 말장난으로 성경을 파괴하는 무리들이 아닌가? 기독교 복음을 방해 하면서 왜 기독교 안에 있는 것처럼 행세를 하는가? 묻고 싶지 아니할 수가 없다. 기독교인이 아니면서 기독교인 행세를 하는 거짓 행위를 버리고 “나는 사실 기독교인이 아니다.” 라는 선언을 공개적으로 하고 불신세계와 함께 행동해야 바른 길이 아닌가? 2천년 교회사는 한결 같이 신앙고백을 쏟아 놓았는데 그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오직 구원의 길은 예수 안에만 존재한다.” 라는 전제 아래 이에서 벗어날 경우 이단으로 간주하고 나아가 이 신앙고백을 받지 아니할 때 저주를 받게 된다는 저주문까지 일부 신앙 고백에서는 포함시켰던 것이다.

기독교 신학을 변증학적 입장에서 역사적으로 탐구하여 보면 기독교 안에서 비기독교의 교리를 감추고 기독교의 탈을 쓰고 기독교를 파괴하는 행위가 가장 큰 타격을 주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1-2. 근본주의 신학

 

근본주의 신학의 태동은 사실상 자유주의 신학의 반동에 그 원인이 있다. C.T.McIntire교수의 논설에 의하면 그 증거가 확실하다. 그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과 독일의 고등비평주의와 다원주의와 그리고 미국 교회를 파괴하는 악한 신학사상에 대항하여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바로 세우고 방어하기 위하여 세계 제1차 대전을 전후하여 미국에서 일어난 신학운동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더 깊은 뿌리를 찾으려면 1830년대 세대주의의 기둥과 같은 교리를 형성하고 있는 천년왕국설에서 발생했다는 내용이 상당한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평화의 천년왕국을 기대하는 심리가 팽배한 미국교회에서 나이에가라 대규모 집회를 통해 부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대회는 뉴욕 침례교 목사인 제임스 잉글리스(James Inglis)에 의해 1872년 창설되었으며 장로교 목사이며 The Truth의 편집자인 제임스 브룩스(James Brookes 1830-1897)에 의해 지속되었다.

 

근본주의(Fundamentalism)란 말은 1920년 미국 침례교 기관지 The Watchman Examiner의 편집자인 Curtis Kee Laws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후로 불신자들에게까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고 우파인 보수주의자들은 모두 근본주의자들이라는 통속적인 용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보수신학자들 중의 개혁파 교회에 속한 개혁신학자들은 근본주의자라는 말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Westminster 신학교 Gresham Machen 박사는 Fundamentalist라는 말에 대해 근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보수주의적인 면은 인정하면서도 그 용어를 좋게 여기지는 아니했다. 그 이유는 용어 자체가 역사적인 기독교의 신앙고백의 노선보다 시대적으로 나타난 단편적인 신학운동에 그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Machen 박사의 견해가 옳았던 것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반동으로 이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는 교리사적 신학운동이라기 보다는 싸워야 할 상대가 급변한 상태였고 미국의 문화의 추이에 따라 신학의 개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 운동에 관해 시기를 나누어 생각해보자.

 

 

1) 20세기 초기

 

미국교회를 떠받들고 있는 신학은 청교도들의 신학이었다. 이 신학은 칼빈주의를 기초로 한 개혁신학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에 미국신학의 판도가 혼미를 가져왔던 원인은 Charles Darwin의 진화론의 도입과, Unitarian주의의 3위1체론을 거부한 사건과, 지질학의 연대설은 James Ussher감독의 창조연대설을 파괴하였고, 독일에서 유입된 고등비평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게 된데 그 원인이 있다. 한마디로 성경은 합리주의에 의해 난도질당하는 도미 위에서 칼을 기다리는 생선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악마적인 요소를 깨어 부수려는 운동이 Dwight Moody의 전도운동과 Niagara Conference 운동이었다. Moody 운동은 외적으로 성경을 거리에 들고 나간 대중집회 운동이라면, Niagara운동은 내적 운동으로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모아 사경회를 인도하는 운동이었다.

이 두 운동은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고 자유주의 여파로 타격을 입은 교회를 다시 건설하여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다시 세우자는 초 교파적인 보수주의 운동이었다. 1895년 Niagara에 모인 사경회에서 보수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근본적인 교리를 5가지 뽑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⑴ 성경의 무오성

⑵ 예수의 동정녀 탄생

⑶ 예수의 대속적 죽음

⑷ 예수의 육체적 부활

⑸ 예수의 육체적 재림 이었다.

 

위의 5가지 성경의 근본교리를 중심으로 하여 모인 자들을 지칭하여 근본주의자들이라는 말을 붙이게 되었는데 20세기에 접어들어 문서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서도 “The Fundamentals:A Testimony to the Truth"라는 12권의 신학 논문집은 당시 보수주의 신학을 변호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집필자들은 당시의 권위 있는 미국과 영국의 보수주의 신학자들로 구성되었다.

그 논문집은 300만권 이상 보급되었는데 당시의 집필자들은 Benjamin B.Warfield, John C.Ryle, M.G.Kyle, Charles Edman 등이었다. 20세기 초 당시에는 전천년설 등의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의 글은 없었고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선교와 전도에 대한 글도 포함되었다. 이 논문지들의 여파로 미국의 각 신학교에서 자유 대 보수의 신학적 대결이 파장을 몰교와 그룹별로 분리를 일으키게 되고 그 결과 각처에서 보수주의 계통의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이 설립되게 되었다.

 

당시의 신학대학이나 신학대학원은 R.A. Torrey가 세운 Los Angels 신학대학, C:I Scofield가 세운 필라델피아 신학대학, D.R.Moody가 세운 시카고 Moody신학대학, L.S.Chafes와 H.G.Thomas가 세운 Dallas 신학대학원 등이다. 이 신학교들은 보수적 신학연맹을 결성하였는데 당시 가입한 신학교 수는 무려 100학교가 넘을 정도였다. 이러한 신학교들은 대부분 독립 체제를 운영하였는데 졸업한 후 자신이 속한 교단에서 보수주의 운동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2) 1930년대 이후 신 근본주의 운동

 

1920년대까지 Princeton 신학교는 당시 세계에서 자랑하는 보수신학의 보루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Princeton 신학교 마저도 19세기 신학의 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하였다. Machen박사는 당시 신약과 변증학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신학교에 자유주의의 유입이 있을 수 없다고 Princeton을 공격하기 시작 하였다. 그때 Stevenson과 Macartney는 신학교 행정체제와 교단의 정치라는 명분을 가지고 Machen박사를 교수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교단에서 제명하기에 이르렀다. Machen 박사는 1929년 독립적으로 Westminster신학교를 세우게 되었고 정통장로교회(Orthodox Presbyterian Church)라는 이름으로 그의 동조자들 몇 사람과 교단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Westminster신학교 교수들 대다수가 무천년주의자들이었다. 그런데 당시 Carl McIntire를 중심으로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이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 치우치는 경향성을 가지고 Westminster를 공격한 후 성경장로교회(Bible Presbyterian Church)교단을 설립함과 동시에 Faith 신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이러한 근본주의 운동은 주관적이며 지협적 성격을 짙게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문자주의 내지 아집주의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 결과 분리주의적 성향이 짙어가고 있었다. 장로교회 경우보다 침례교회가 더 강한 분리적 성격을 띠게 되었는데 교리적 주관주의적 경향성에다 교회의 정치적 독립주의가 교회의 분리를 재촉한 결과가 되었다. 그 여파로 The General Association of Regular Baptist Church교단과 The Conservative Baptist Association of America등의 교단은 1930년대 이후에 세워진 교단이다. 싸움과 분리가 미덕이 되어버린 그들은 C.McIntire주도아래 W.C.C를 대항하기 위하여 I.C.C.C를 1948년 조직하게 되었다. 그들은 항상 분리적인 일에만 피켓을 들고 나섰다. 자기들하고 다르면 모든 것을 틀리게 보는 습관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3) 1960년대 이후의 근본주의 운동

 

1960년대와는 달리 정치 참여에 적극성을 띄게 되었다. 그들의 선교 전략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의 생각을 사회에 주입시키는 입장으로 전환하였다. 너무나 타락한 미국 사회는 이제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그토록 자랑하던 청교도의 삶은 형체조차도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미국사회를 공격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기독교의 정신을 다시 찬자는 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미국을 휩쓸었던 사회악인 마약, 이혼, 도색문화, 동성애, 낙태 등을 죄의식 없이 수용하는 자유주의의 파도를 부셔버리는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이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주로 미국 공화당을 공공연하게 지지하고 나섰는데 TV방송을 통한 Jerry Fallwell, Pat Robertson 등이다. 다시 미국의 타락은 극에 달해 사회의 도덕은 부서지기 직전의 극도로 매마른 썩은 나무와 같은 상태였다.

 

변증학적 입장 : 더욱 이 운동이 힘을 얻은 것은 컴퓨터 학문과 유전공학의 발달로 과거에 자유주의자들이 인용한 진화론과 지질학의 연대기 하나의 가설(Hypothesis)에 불과하다는 점이 점차 사실로 증명되었기 때문이었다. DNA의 연구는 생물속에 진화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반대로 종족 보존의 유전 인자를 더욱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지질학의 연대계산은 컴퓨터 지질학적으로 볼때 일반 지질학의 연구가 전혀 맞지 아니한 사실을 밝혀냈다. 인류의 연대도 1만년이 넘지 아니한 사실을 밝혀냄으로 성경의 연대가 오히려 과학적이라는 점을 알게 되자 미국 사회에 만연된 이성주의를 바탕으로 형성된 과학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과학은 신뢰의 학문이 아니다. 과학은 하나의 과정의 학문이다. 과학은 진리를 증명하는 학문이 아니고 역사 속에 나타난 과정을 일부 밝혀낼 뿐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사회는 과학이 완전한 진리를 밝혀내는 일 하고는 전혀 거리가 멀다고 믿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학문의 변화를 거치면서 미국 대학들은 어느덧 논리적 학문을 무시하기 시작하였고 통계학이나 실험주의나 증거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과학은 과거 또는 현재에 대한 재 변형이지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내는 학문이 아니다. 과학은 전제의 학문이다. 나무를 연구할 때 나무가 없는데도 가설로 나무를 연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바로 기독교가 주장하는 성경의 전제론과 같은 이론이다. 기독교가 성경의 전제 없이 성립될 수 없는 것과 같이 과학의 모든 학문은 전제를 성립시켜야 가능한 것이다. 전기를 만들었을 때 전기의 원리가 지구상에 없는데도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과학의 전제론이다. 그러므로 이성주의적 지질학의 연구나 진화론은 과학의 원리가 되는 전제를 무시한 가설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이 350만년 전에 존재했다는 이전의 과학적 이론이 여지없이 부셔졌는데 그것은 DNA를 연구할 때 마이토칸드리아 이브(Mitocondria Eve)라는 유전인자를 발견하고 나서부터다. 1980년대 이후 진화론을 일부에서는 정신병자의 잠꼬대 정도로 생각했다. Mitocondria Eve에 대해 유전과 시간의 관계를 연구하게 되었다. Mitocondria Eve라는 유전인자는 여성에게만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인간세계에서도 어떤 경우에든지 남자에게는 존재가 불가능한데 자연생육볍을 통해서만 인간이 존재함을 증명하게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여성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Mitocondria Eve의 성장속도와 늙어 사망하기까지의 속도를 재어봄으로 인간의 존재의 역사를 추적해 낼 수가 있다. Mitocondria Eve를 유전자 시계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류의 역사는 1만년이 넘지 아니한다는 것을 유전자 시계가 밝혀낸 것이다. 그것은 성경에 나타나지 아니한 인물까지 계산하면 인류의 역사는 과학적으로도 1만년이 넘지 아니한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 인간의 이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1950년대로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청바지를 입고 통키타를 들고 맥주를 마시며 나체촌을 형성하여 바다로 산으로 헤매는 반문화 운동(Counter cultural movement)이 온 유럽과 미국을 휩쓸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허무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반반 문화운동(Neo counter cultural movement)을 일으켜 반문화 운동을 도시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대중적인 노래는 비틀즈에서 해비 메터(Heavy Meter)를 거쳐 렙(Rap)송으로 이어졌고 여름에 열리는 노래의 축제에서는 마약과 술에 취하여 자신의 몸을 유리조각으로 난도질하는 젊은이들이 늘어갔고 심지어는 횟수가 거듭할수록 사망자게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결국 이 축제는 보수주의 물결 속으로 잠수 되었고 교회의 복고주의는 생기를 얻게 되었다.

보수주의 운동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각처에서 도덕 복고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Reagan 대통령 당선에 이어 Bush 대통령 당선에까지 크게 기여하게 되고 미국의 보수주의 교회가 힘을 얻어가기 시작하였다. 이 영향으로 미국의 사회는 청소년을 강하게 다루는 법을 새로 제정하게 되었고 사형제도가 각 주마다 부활하게 되었다.

 

이제 개혁신학과 근본주의와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 되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가 주시할 것이 있는데 근본주의 운동은 개혁파 교회가 강조하는 역사적 전통에 기인하여 교리적, 윤리적, 제도적 개혁을 시도하기 보다는 시대적 상황에 따른 보수주의 운동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적 상황을 강조하는 세대주의가 교리적 배경이 된 것이다. 그리고 객관서이 결여된 주관주의가 강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사고가 습관화 되어버렸고 세대주의 교리를 강조하되 같은 세대주의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주장과 약간 다른 교리를 주장하면 타인을 정죄하기에 이르렀고 이 반동으로 1970년대 이후에는 근본주의를 떠난 신복음주의가 더욱 힘을 얻어가는 형극에 이르렀다. 이는 자시반성의 결핍으로 극도의 비판주의만 성숙해가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개혁신학은 시대적으로 교리의 도전을 받을 때 항상 성경으로 돌아가는 신학운동의 문이 열려 있다. 그러나 근본주의는 제한적 요소를 가진 신학이므로 교회의 역사적 의미를 뒤로하여 시대적 제한성을 소유한 신학이었다. 물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구원관이나 내세를 바라보는 교리는 다 같은 입장이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일관서 있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역사적으로 신앙 고백에 기초한 신학을 주장하는 개혁신학에 비하면 너무나 부분적인 신학에 해당하는 것이다. 미국의 개혁신학의 역사를 보면 ‘유럽의 자유주의가 판을 칠 때도 근본주의가 북미 대륙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킬 때도 시대의 조류에 전혀 흔들리지 아니하고 숫자에 여념하지 않고 변함없이 자신의 신학을 유지해 왔던 역사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를 깨닫게 한다.

근본주의가 처음에는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큰 힘을 얻었는데 20세기 초에 2원론적인 신학운동으로 말미암아 세속에 대한 배척, 과학에 대한 혐오, 일반 문화와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을 거절하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신 복음주의를 낳았고 후에 다시 문화와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돌아가기는 했으나 하나님의 주권적 입장에서의 일반은총을 강조하기 보다는 비평주의적 관점으로 회귀한 것이다. 비평주의적 관점으로 회귀한 것이다. 비평주의적 관점으로 회귀할 대 그들의 신학적 주장은 세대주의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제 세대주의를 연구해 보자.

 

 

1-3. 세대주의

 

개혁신학에서는 언약의 교리를 신적작정에 기초를 둔 시공간에서의 섭리적인 사역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세대주의는 언약의 개념을 사대적 분리에 따라 언약의 내용이 변하는 과정에다 초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종말론에 있어서는 전천년주의를 지지한다.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신학의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여기에서 다룰 수 있는 내용은 주로 스코필드(Scofield)의 사상에 기초를 두고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세대주의자(Dispensationalist)들

 

세대주의의 발흥은 근본주의 운동과 같은 궤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세대주의의 교리를 구체화 하는 시기와 학자들에 관한 문제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근본주의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같은 근본주의자들이라도 다른 근본주의자들과 세대주의적 근본주의자들과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근본주의냐에 따라 세대주의적 근본주의자와 다른 근본주의로 말하게 된다.

연대로 볼 때는 과격한 정통주의, 즉 극우적인 조직신학의 개념이 성경에 대한 역사적 진행과정을 확실하게 제시하지 못할 때인 19세기에 등장하였다. 교리적 혼돈시대에는 항상 독특한 교리가 발생하는 것이 교회사의 전철이었다. 19세기 극단적인 자유주의로 인해 인간의 마음속에는 허무가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마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이 자신도 모르게 발생하게 되자 교회 안에서는 종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그 여파로 세대주의 사상을 통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갈망이 뜨겁게 등장하였다.

 

요한 달비(John Darby, 1800-1882)가 세대주의 사상을 설립한자로 여겨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의 사상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의 뒤를 이어 세대주의를 정립한 사람은 스코필드(Cyrus I.Scofield, 1843-1921)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세대주의에 속한 신학자들은 레이스 샤퍼(Lewis Sperry Chafer), 찰스 파인버그(Charles L.Feinberg), 아르노 가베라인(Amo C.Gaebelein), 찰스 뤼리(Charles, C. Ryrie), 존 왈보르드(John Walvoord)등이다. 이들은 세대주의를 주장하는 세대주의 신학자들(DTheologians)이라고 불리어지는데 이들은 세대주의자들(Dispensationalist)이라고 한다.

 

세대주의에서 보편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이 천년주의이다. 이들은 천년 기간을 일반 역사와는 구별된 획기적인 시대로 인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볼때 타락전과 타락후의 시대, 구약과 신약의 시대, 일반 역사와 천년의 시대 등의 차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모든 전천년주의 자들은 특별한 구속적 시대 즉 세대적 구속의 분류를 강조한다. 당시 세대주의는 두가지의 강조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은혜에 의한 순수한 구원의 주장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뜨거운 기대감이었다. 이 두가지 주장은 처음 요한 달비(John Nelson Darby)에 의하여 제시되었던 교리이다.

 

 

2) 달비와 스코필드(Darby and Scofield)

 

요한 달비는 은혜에 의한 구원과 재림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강조하여 다음과 같은 교리를 주장하였다.

(1) 율법과 은혜의 현저한 차이를 강조함.

(2) 하나님이 “지상백성”과 “하늘의 백성” 즉 “이스라엘 백성”과 “교회”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함.

(3) 유대인을 통해 성취되려는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원리를 강조함.

(4) 이 성취의 때를 고대하는 전천년을 강조함.

(5) 기존 교회와 일반 문화의 분리를 주장하여 2원론을 강조하였다. 이 강조점들로 인하여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가 강하게 등장하였다.

 

스코필드의 세대주의는 성경해석에서 그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주로 4가지의 요점을 말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성경 해석이 있어서 교리적 또는 역사적 개념을 무시하고 문자적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2) 하나님의 두 백성을 예민하게 분리하는데 하나는 지상에 관한 내용이고 하나는 하늘에 관한 내용이다.

(3) 인류의 역사를 시대적으로 구분하여 계약의 분리를 주장한다. 그는 창1:28울 근거로 하여 7세대로 나눈다. 무흠시대(에덴, 창1:28),양심시대(타락에서 홍수, 창3:23), 인간통치시대(노아에서 바벨탐, 창 8:21), 약속시대(아브라함에서 애굽, 창12:1), 율법시대(모세에서 세례요한, 출19:8), 은혜시대(교회시대, 요1:17), 왕국시대(천년왕국,엡1:10)로 나눈다.

(4) 전천년을 강조하되 7년 대 환란전 휴거의 교리를 주장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두 단계로 보고 처음 휴거때 예수님이 지상에서 교회를 들어올리기 위해 오시는 공중재림이다. 이때는 사람들에게 재림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으신다. 이후 곧이어 7년 대 환란이 도래한다. 7년 대 환란 후 가시적 재림이 이루어진다.

 

 

3) 세대주의의 다양성

 

세대주의자들의 신학에서 나타난 내용이 다 같은 통일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즉 구약의 율법과 예언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모두가 같은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1) 구약을 사용하여 현재에 대해 시한적 작용을 시도한다. 구약을 그들 자신들에게 직접 말하는 책으로 생각한다. 구약의 예언적 약속을 현재 시한적 적용으로 받아들이고 현재 자신에게 적용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인다(사65:24,렘31:12-13,겔34:24-31,;욜2:23,미4:9-10).<그러나 이런 적용법을 거절하는 세대주의자들도 많다.> 일부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이 천년기에 일어날 일들이라고 해석하는 반면 일부에서는 반대하는 부류도 있다. 또한 일부에서는 스코필드의 해석을 발전시켜 다양한 해석방법을 내어 놓기도 했다. 즉 창15:18절의 땅을 주리라는 약속을 마 5:5절과 연관시켜 해석하였으나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나아가 스코필드의 7세대를 변경시켜 무죄시대, 양심시대(타락이후 바벨탑),족장시대(아브라함에서 애굽), 율법시대(모세에서 이스라엘 건국),선지시대(이스라엘에서 말라기),은혜시대(복음시대 및 성령시대),왕국시대(천년시대)로 나누는 자들도 있다. 나아가 천년의 해석에 대한 견해도 다양하여 세대주의적 천년을 말할 대도 7년 대 환란을 보는 견해도 다양하여 심지어는 대 환란을 무시하는 견해도 있으며 7년전의 불가시적 재림과 7년후의 가시적 재림을 동일시하게 보는 자들도 있다.

 

(2) 언약신학을 변형시킨 교리이다. 언약신학과 세대주의와의 신학적 비교를 시도할 때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는 분야가 있다. 그것은 언약신학에서 주장하는 아담의 언약과 아브라함의 언약 모세의 언약과 백성의 언약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언약이 모두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약신학과 세대주의와의 차이점은 언약에 대한 시대적 분할이냐 아니면 일관성이냐 하는 내용이다. 즉 언약신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나 일관성 있는 언약을 말하고 있으며 세대주의는 언약의 내용에 대한 일관성 보다는 시대적 변경에 대한 언약의 내용이 다르다는 데 강조점을 두고 있다. 언약 신학은 사실 종교개혁자들에게 그 뿌리를 두고 있다. Herman Witsius와 Johannes Cocceius에 의해서 체계화 되었으며 Westminster신앙 고백에는 은혜언약의 집행은 언제나 다양하면서도 일관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구원의 길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3)구속적 시대 즉 세대에 관한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시대주의적인 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정하신 특별한 세대가 있다. 세대 사이에는 연속성과 단절성의 두 가지가 있는데 세대주의자들은 시대적 단절성에다 강조점을 두고 있다. 세대를 거처올지라도 구원계획의 유기성을 강조하는 상징성과 모형성의 개녀믈 멀리하려고 한다.

둘째, 그리스도가 역사속에 나타나기 이전에는 구속은 부분적이고 그림자적인 요소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즉 놔의 구원은 한정적이지만 또한 우주적 버뮈를 가지고 있다(벧후3:5-7).그런데도 세대주의자들은 사건의 단절을 말하므로 언약의 단절을 의미하게 되어 하나님의 사역을 실패적 사건으로 간접시사하고 있다.

셋째, 아담의 행위언약의 머리와 그리스도의 구원(교회)의 머리는 통일된 연관성을 가진 언약의 대표자들이다. 그러나 세대주의자들은 행위언약과 구속언약과 은혜언약의 관계를 서로 연관성 있게 생각하기보다 종말적 개념 즉 오늘 우리가 지금 은혜 받을 시기에 강조점을 두어 천년에 대한 기대에다 연관시킨다.

넷째, 천년시대와 종말에 관하여 천년을 무슨 뜻으로 받아들이는가? 이 문제에 있어서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은 무천년주의자들이나 후천년주의자들과 견해를 다르게 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천년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 역사의 마지막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될 때 세대주의자들은 지상에서의 천년을 강조하지만 언약신학자들은 그것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과정과 완성으로 본다. 거기에는 개혁신학 계통의 무천년주의나 후천년주의 사상은 천년이란 개념을 교회 시대로 보는 경우와 상징적 의미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다음 항에서부터 개혁신학의 입장과 세대주의의 개념을 비교대조하여 변증학적 입장에서 설명해 보려고 한다.

 

 

4) 마지막 나팔에 대한 해석

 

고전 15:51-53절에 나오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리라”는 내용을 해석할 때 세대주의적인 입장에서 전천년설을 어떻게 적용하느냐? 가 중요한 주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세대주의자들은 이 구절을 전환난휴거(Pretribulational Rapture)에 해당된다는 해석을 내어 놓는다. 마 24:31절에 의거 나팔소리는 재림 때에 들린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고전 15:52의 나팔소리는 분명 마지막 나팔이 아니다. 여기서 세대주의자들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세대주의자들은 문자적 해석에 치우치고 있다. 우리가 고전 15:51의 문장을 문자적으로 보면 이 나팔은 마지막 나팔이라는 것이다. 이제 마 24:31을 참고하여 마 24:30을 보면 분명 이 구절은 가시적인 재림이다. 가시적인 재림은 신자들의 몸의 변화를 동반한다. 그러므로 고전 15:51절 이하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볼 때 이는 휴거와 재림사이의 7년간의 구별을 믿을 수가 없다.

 

 

5) 모형론을 무시한 해석

 

구약에 나타난 여러 가지의 제도와 땅과 숫자와 풍속과 정치와 의식과 제사와 절기와 먹는 것 마시는 것 등은 다가올 예수그리스도와 교회와 천국의 모형을 예표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예표가 될 수 있는 경우도 해당되며 또 한편으로는 안되는 경우가 있다. 예로 욥은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하는 예표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한편으로 보면 해당이 되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세대주의자들의 문제점을 살펴 볼 것은 모형론에 관한 확실한 내용을 무시하고 성경의 문장이 가지고 있는 내용을 직설로만 해석하는 것이다.

 

 

(1) 모형론에 대한 접근 방법

 

세대주의자들 대부분은 구약이 신약의 모형을 말하고 있는 문법적 역사적 근거를 거의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서로 분리해서 해석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시한 성막, 제사, 족장의 생애, 왕권 등등에 관한 사징적인 의미가 당시의 역사적 배경으로 봐서 이해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와 연관시켜 볼 때 그 의미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만약 그러한 의미를 세대주의자들처럼 문자적으로 해석해 볼 때 문제가 일어나는 논쟁거리가 된다.

 

 

(2)문법적 역사적 해석의 한계

 

모형의 의미는 성취될 때까지는 다시의 역사적 배경으로 봐서 사실을 구별하기가 약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다시의 역사와 문장이 가지고 있는 모형적 의미를 무시하고 문법적 역사적 해석에만 치우치고 있다. 모형론에 있어서 문장과 역사는 신구약을 비교 대조 해야 한다. 그리고 모형을 해석할 때의 주의점은 일부의 개념으로는 해석이 부족한 점이 많다. 역사적으로 신구약의 내용이 완전한 일치를 확실하게 나타내야 한다. 모형의 해서기 어렵다고 해서 문자적으로만 역사적으로만 해석이 불가능하게 된다.

 

성경해석학을 연구할 때 해석의 방법론 적용에 있어서 문장과 역사와 원문과 교리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원리대로 적용해야 한다. 만약 교리로 되어 있는 요 3:16절을 역사적으로 해석한다면 본문과는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오게 된다. 나아가 문장을 보류할 때 역사와 교리와 시와 비유와 대화의 용법에 따라 해야 한다. 또한 낱말의 용법에 따라 그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나아가 관련된 단어의 뜻과 동의적 사용법을 바로 알아야 본문이 의미하고 있는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상징적 비유를 말할 때도 은유법(Metaphor)과 환유법(Metonymies)과 제유법(Synecdoche)등의 내용을 바로 적용해서 해석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가 문장을 이해하는데 본문에서 말하는 언어의 방식이 무엇인가? 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그것은 직유법(Simile) 우의법(Allegory),생략법(Ellipsis),약어법(Brachylogy), 함의 구문법(The constructio praegnans),액식구법(Zeugma),미화법(Euphemism),반어법(Irony),첩어법(Epizeuxis), 과장법(Hyperbole)등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 20장 4-6절까지의 해석은 문자적으로 보기 보다는 상징적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문장의 이해를 바로 하기 위해 언어의 방식을 어떻게 택하는가? 에 있어서는 은유법을 적용해야 이해가 가능하다.

 

 

(3) 계시록 20:4-6절까지의 해석의 문제

 

본문에 나타난 천년기간을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처럼 문자적으로 볼 때 성경의 문장을 보는 문제에 있어서 모순이 일어난다. 요한 계시록은 상징ㅇ적 은유로 문장이 기록돼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천년이란 단어를 “천년”이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다. 계시록 7:4-8과 14:1-3까지의 14만 4천이랑 숫자와 또한 자주 나오는 12라는 숫자와 그리고 7이라는 숫자는 상징적 의미를 말하고 있다. 성경 문장학을 연구할 대 상징적 문장을 일부는 상징 그대로 받으면서 일부는 역사적 사건으로 받으면 자체 모순이 생긴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문장은 다 같이 상징적 은유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숫자를 상징적 은유로 해석할 때 그 의미가 있다. 1은 절대를 의미하고, 2는 증인을 의미하고, 3은 하늘의 수를 의미하고, 4는 땅의 수를 의미하고, 6은 사람의 수를 의미하고, 7은 완전수를 의미하고, 10은 인간이 다스리는 긴 수를 의미하고 12는 완전수를 의미하는데 7보다 강한 의미를 말한다.

 

그렇다면 14만 4천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12X12=144이다. 144는 완전하고 완전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3자리 수만큼 0을 더하고 보니 144,000이 된다. 이는 또 완전하고 또 완전하고 또 완전하다는 의미이다. 계시록 7장과 14장의 천국에 들어가는 수는 14만 4천이라는 말인가? 아니다. 아무리 수가 많아도 완전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실수가 없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수는 아무리 많아도 한명도 실수 없이 선택된 백성만이 들어가는 수가 완전하다는 의미이다.

 

계시록 21장의 천년의 개념은 무슨 뜻인가? 10이란 숫자는 인간이 다스리는 긴 시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두 자리 숫자만큼 0을 더하고 보니 1,000이 된다. 그러니까 인간이 다스리는 길고 긴 시간을 의미한다. 천년이란 기간을 상징적 은유로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계시록 문장 전체를 상징적 은유로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계시록 문장 전체를 상징적 은유로 보기 때문이다. 만약 이 문장을 직설적으로 본다면 천국에 들어가는 숫자가 144,000명만 된다는 말이다. 어느 것은 상징으로 보고 어느 것은 직설적으로 보게 되면 자가 모순이 생기게 된다. 1,000년이란 기간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의 능력을 주권적으로 행사하시는 어느 한 시대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천년주의자들이 말하는 교회시대의 어느 한 때를 지칭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역사적 전천년주의에서는 천년의 기간을 문자적으로만 보아야 한다는 견해에는 완전한 동의를 하지 아니한다. 즉 천년기간을 상징으로 보고 어느 때를 천년기간을 보느냐의 관점에 들어가면 서로가 다른 견해를 말하고 있다. 또한 7년 대 환란에 관한 문제도 서로 다른 많은 견해가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가 주장하는 교리에서는 천년이라는 기간을 시한부적으로 못박아 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리는 예수님의 공중 재림을 기다리는 이단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종말론에 대한 일시적 적응으로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맞추기 위하여 숫자계산을 하여 재림날짜를 억지로 짜깁기하여 금방 재림할 것 같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순진한 성도들의 재산을 탈취하는 경우도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미혹의 영들은 항상 우리 주위에 적게 보이지만 잘못된 신학이 그 배경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항상 역사적 신앙고백에다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1-4. 정통주의

 

정통이란 개념은 성경을 바로 고백하는 신조주의를 바로 고수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경은 딛1:9,딤전1:3,딤후1:13 등에서 정통이란 개념에 대해 기반을 제공해 주고 있다. 교회역사를 통해 신조의 노선을 어떻게 정립하느냐?가 바로 정통의 개념을 결정하는 원리이다. 신조의 역사에 있어서 비성경적인 신조가 나타날 때 선지자와 사도적 신앙고백에서 벗어난 경우 정통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정통이라는 말은 교회 역사에서 선지자와 사도들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말이 된다.

 

 

1) 역사적 배경

 

정통에 대해 사도시대 이후 교회사를 보면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신조의 발달을 역사적으로 규명하면서 그 노선을 유지해 왔다. 초대교회 3세기동안은 교부들의 변증신학을 통하여 기독교 신학을 기반을 형성하였다. 그 내용이 바로 고대 신조를 낳게 하였다. 그러나 중세기를 통해 기독교역사는 교리적 정통을 올바로 전승해 오지 못했다. 로마 교조주의는 제도적으로 교회의 정통을 말할지라도 사도적 신조의 입장에서는 정통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스스로 정통이라고 말하지만 17세기 프랑스 로마 카톨릭의 정통은 구체적으로 말할 때 예수회주의와 얀센주의의 격전을 통해 그들만의 정통을 주장하여 독재권을 쟁취 하려고 하였으므로 사도적 신앙 고백을 외면한 정통은 참된 정통이 아니다.

 

16세기에 들어와 종교개혁을 통해 다시 정통의 노선을 찾은 셈이다. 17세기의 경건주의의 반작용으로 파생된 이성주의로 말미암아 18세기 계몽주의가 판을 치던 시대에 이단들이 홍수처럼 몰려와 교회에서 신조의 사상이 초토화되기까지 했다. 나아가 계몽주의 여파로 파생된 19세기 자연주의적 자유주의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서의 신조주의는 정통이라는 명분조차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도적 역사성을 무시한 일시적 사상의 발흥은 아무리 강할지라도 정통적인 신조에 의해 평가받아야 하며 또한 사도신조에 어긋난 사상은 사실상 역사 속에서 일시적으로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정도에 끝나고 말았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정통주의는 어느 시대적 이슈에 의한 제도적 또는 사상적 개념에서 그 의미를 찾을 것이 아니고 교회사를 통해 내려온 전통에 의한 사도적 신조주의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2) 정통주의의 노선과 사도 신조(변증학적 입장)

 

역사교회는 사도신조에서 어긋난 교리를 주장하는 무리들을 단호하게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17세기 이후 역사교회는 교회와 국가론에서 정교분리형이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16세기 이전보다 더 사악한 교리를 마음대로 지껄여대도 어떤 외적인 힘을 가할 수 있는 제도 정치가 없어졌다. 물론 16세기 이전에는 로마 교회와 정치가 밀접하게 결탁되어 있어 하나님이란 이름으로 그토록 많은 신실한 신앙인들의 생명이 희생을 당한 일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아니해도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주시할 점은 근대를 거쳐 현대 교회사를 보면 한마디로 이단논쟁이 자유주의 논쟁으로 변천된 교리역사이다. 오늘날의 자유주의 신학은 16세기 이전의 이단들보다 더욱더 사악한 교리를 마음대로 떠들어 대면서 신학이라 말한다. 그리고 더욱더 가관인 것은 과거 이단보다 더 사악한 교리를 집단적으로 주장하는 신학교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악마의 단체인데 신학교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면서 이단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이상하고도 묘한 교회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구체적 사례를 들어보자. 오늘날 무종교 신학을 형성하는 급진주의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나아가 근래 미국의 New Age운동은 그 뿌리가 어디인가? 종교 혼합주의(Syncretism)이다. 종교 혼합주의의 원조는 무엇인가? 그것은 19세기 자유주의가 낳은 종교사학파(Religionsgeschichtiche schule)이다. 신학이라 말할 수조차도 없는 이러한 신학은 기독교를 아예 전면 부인하는 이론들이다. 16세기 이전의 성경의 일부만을 주장하거나 수정하여 받아들이려는 이단들 보다 더 사악하고 무지한 종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의 뿌리까지 흔드는 일들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다. 20세기 신학의 이름을 붙인 악마의 신학들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정치신학, 구조신학, 여성신학, 해방신학, 흑인신학, 한국에서의 민중신학, 놀기신학, 축제의 신학 등등 말로 다할 수 없는 이상한 이름들이다. 정통주의는 무엇인가? 그 뿌리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그것은 역사성을 말할 때만이 가능하다. 일시적 인기에 편승하는 시대적 이슈가 신학의 역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힘이 없고 보잘 것이 없어도 교회는 모세와 선지자와 사도들의 신앙 고백을 역사적으로 지켜온 교회가 정통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1-5. 보수주의

 

보수주의라는 말은 신학계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윤리에 관해서도 사용되는 이념이다. 이는 자유주의나 진보적 이념에 상반되는 사상이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이념이나 사상이나 관습을 유지하기 위하여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경향성을 말한다. 보수주의라는 말이 때로는 신학계에서 포괄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정확한 교리적 또는 역사적 배경의 정의를 한마디로 내린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러나 사전에 의한 단어를 음미하여 교회의 역사를 통해 정의를 내릴 수는 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역사적 기독교의 본질과 교리를 지키려는 사상을 말한다.

보수주의라는 말을 할 때 지역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즉 유럽과 북미에서의 개념이 한국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복음주의를 사실상 보수주의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복음주의는 물론 개혁신학과 근본주의까지 포함하여 보수주의로 지칭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의 이식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로 미국의 생각과 거의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1) 한국에 있어서의 보수주의

 

한국에서 보수주의라는 말은 신학적 개념을 기본으로 하여 이념을 정립하기보다 자유주의가 아닌 경우 모두 보수주의라는 개념이 통상적으로 흐르고 있다. 즉 신학적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보수주의를 정의하기보다는 예수를 믿는 경우 모두 보수주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근본주의적인지, 복음주의적인지 개혁주의적인지 구분없이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건주의나 신비주의나 세대주의까지 포함하여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경우 모두 보수주의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특히 개혁신학을 주장하는 장로교단에서는 보수주의라는 개념을 역사적 개혁주의에 의한 신학의 이념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초대 한국교회 장로교가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이 들어올 때 청교도적 칼빈주의 사상을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Westminster 신학교 Harvie Conn교수에 의하면 일본과는 전혀 다르게 한국에 찾아온 선교사들을 강열한 칼빈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이었다고 신학지남 42권 3집에서 밝히고 있다. 1907년 조직된 네비어스(Nevius)성경연구반은 하나의 실증이다. 성경을 그리스도인의 전 생활의 기초로 삼는 성경 생활적용 연구반이었다. 당시 클라크(Charles A.Clark)목사가 한국 선교 방법으로 보수주의 신학과 성경 생활적용을 연관 시킨것은 아주 흥미있는 일이 아닌가?

 

한국에서는 개혁주의 개념이 미국과 약간 다른 것은 일명“칼빈주의”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개혁주의를 별칭하여 부루기를 칼빈주의라고도 한다. 미국에서는 개혁주의와 칼빈주의라는 개념을 약간 다르게 생각한다. 개혁주의(개혁신학)는 교리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칼빈주의는 칼빈 한 사람의 신학사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2) 구미에서의 보수주의

 

유럽과 미국에서의 보수주의 개념은 사실상 그 뿌리가 같으면서 지역적으로 약간의 이념의 차이가 있다. 그 뿌리는 종교개혁 사상으로 올라간다. 보수주의라는 개념은 16세기 종교개혁에 의한 시낭고백에서부터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신학사조로 볼 때는 개혁신학이 보수주의의 사상을 가장 많이 그리고 깊이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칼빈을 시초로 하여 많은 학자들과 교회의 전통이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개혁신학이 시대의 변천과 함께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나서 언어적 장난을 시도한 적이 많았다. 17세기에 나타난 경건주의는 복음의 옷을 입고 나타났으나 개혁신학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복음주의라고 말할 때 미국의 경우 기독론 주심의 구원론을 말하면 모두 복음주의로 명명하고 보수주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독론 중심의 신학은 19세기 자유주의에 뿌리를 둔 기독론 중심의 신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루터주의의 개인 구원과 인간론 중심에다 기초를 둔 기독론 중심의 신학을 말하는 것이다.

 

복음주의라는 말은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면서 현세에서 그 재림에 대한 갈망을 가조하는 교리에 우위성을 두고 있다. 복음주의라는 말은 로마 카톨릭하고는 전혀 반대의 입장이다. 그러나 복음주의라는 말은 알미니안주의나 칼빈주의에 다 같이 해당되는 사상으로 비춰지고 있다. 유럽의 복음주의는 미국과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유럽에 복음주의는 로마 카톨릭이 아니면 개신교를 모두 복음주의로 본다. 빨트 신학도 복음주의로 본다. 그러나 영국과 화란은 상당히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화란에서는 칼빈주의적이면 복음주의로 본다.

 

영국에서는 칼빈주의적 청교도 사상을 복음주의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영국에서는 한때 웨슬리의 사상을 복음주의로 봤으나 지금은 그 사상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니까 교회의 존속성은 개혁신학을 바로 전수 할때 만이 지속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미국의 복음주의는 주로 칼빈주의적 사상이 거의 지배적이다. 그러나 기독론적 입장에서 보면 신 복음주의도 복음주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 미국에는 웨슬리안적 복음주의 알미니안적 복음주의 등등의 복음주의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을 보수주의라는 한 범주 안에 넣어 생각하고 있다.

 

변증학적 입장 : 보수주의가 개혁주의인가? 라는 질문을 받을 때 우리는 개혁신학의 입장을 먼저 정의해야 한다. 개혁신학은 한마디로 교회역사가 고백한 신조주의 신학이다. 그렇다면 개혁신학과 보수주의를 비교하면 그 차이점이 나온다. 즉 개혁신학은 보수주의다. 그러나 보수주의는 개혁신학이 아니다. 라는 말이 정답이 될 수가 있다. 또한 개혁신학은 보수주의의 가장 근본이 되는 신학이다. 그러나 보수주의는 개혁신학을 포함하고 있다. 보수주의라는 말을 교리적으로 표현한다면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그 내용과 역사를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보수주의 하면 일반적으로 전통적 의미가 생각나지만 개혁신학하면 신조와 교회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교회역사를 통한 신조의 개념도 그 노선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총체적 신앙 고백은 한마디로 Westminster신앙고백이다. Westminster신앙고백은 17세기까지 전세계 신조들을 총 망라해서 집대성하여 만든 신조이기 때문에 그 명확성과 깊이와 넓이는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가 없다.

 

 

II. 개혁신학과 다른 신학들과의 비교

 

대신 교단의 교리적 입장은 무엇인가? Westminster 신앙고백이 우리가 믿는 교리라고 간단하게 정의를 내리기 까지는 약간의 역사적 규명과 그에 따르는 선언적 의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과거 역사적 과정에서 근본주의 사상이 교단 교리의 근간을 이루었던 때가 있었고 극심한 분열의 한국교회사를 통과하면서 교리의 소용돌이를 경험하게 된 원인이 교단 교리를 확실하게 정하지 못한 이유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대신교단의 교리적 선언을 1970년대에 들어와 최순직 교수에 의해 세계교회 역사를 통한 신조주의적 입장에서 정립하게 된 것이다.

그 교리적 선언의 결론은 한마디로 개혁주의 신앙고백의 총 집합체인 Westminster 신앙고백을 우리 신조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내용이다. 이 교리를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삼는데까지 대신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여러 가지 신학적 여과 과정이 있었기에 제 신학적 교리들을 비교 대조하고 점검하여 최순직 교수를 통하여 우리의 입장을 확고부동하게 정립한 것이다. 나아가 조석만 교수를 통하여 그 문장을 다시 수정하고 다듬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확고한 교단의 교리적 노선을 정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본 교단의 노선의 교리적 입장에서 (1)항부터 (3)항까지 기록된 여러 가지 복잡하게 보이지만 간결하고 명확한 신학적 입장을 결론지을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각 신학을 비교대조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2-1. 자유주의와 개혁신학

 

개혁신학이란 말에 대해 “개혁”이라는 단어에 매력을 느끼는 부류들이 있다. 어떤 형태를 바꾸면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무리들이다. 그러나 형태라는 형식주의에 빠지면 하나의 형태적 고정주의에 빠지게 된다. 자유주의자들은 개혁이라는 개념을 시대상황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개념으로 개혁주의를 이해하고 있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신학의 역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형태만 바꾸면 개혁주의로 오해하는 무지한 자들이나 형태만 부여잡고 있는 무지한 보수주의자들이나 형태주의는 다 같은 사악한 인간주의에 빠지고 만다.

교리 선언문의 성경 원리 면에서 자유주의는 항상 성경의 본문에 대해 메스를 가하여 왔다. 이에 대해 근본주의는 제 일 원리가 성경의 무오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의 자유주의나 로마 카톨릭의 사상은 성경의 무오설을 거역하고 있다. 그들이 주중하는 성경에 대한 교리는 언제나 Contextualism 내지 동력적 영감설 또는 부분영감설이다. 심지어 급진주의적 개념은 성경을 전혀 무 영감설로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교조주의와 교리적 동질성을 고수하는 자유주의는 언제나 성경의 권위를 짓밟아 저급한 이야기 거리고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근본주의가 주장하는 성경의 권위로 되돌아가 개혁주의가 주장하는 성경의 권위에 대해 그 본질을 다시 찾자는 것이다.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는 근본주의가 주장하는 교리와 개혁주의가 주장하는 교리와 같은 입장이기 때문이다.

 

 

2-2. 근본주의와 개혁주의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교리는 근본주읜 개혁주의나 다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근본주의와 개혁주의의 교리적 차이점은 성경에 대한 강조점을 부분적으로 보느냐, 아니면 전체적으로 보느냐의 차이점이다. 근본주의는 성경의 무오설을 강조하면서 예수의 처녀 탄생, 예수의 대속적 죽음, 예수의 육체 부활, 예수의 육체적 재림이 그 중요한 교리이다. 이는 Westminster 신앙고백이 포함하는 성경 전체를 성경론부터 종말론까지 총 망라하여 신학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내용에 비하면 아주 협소한 일부만을 고백하는 교리에 불과하다. 또 나아가 근본주의의 5대 교리는 기독론적이다. 그 이유는 19세기 자연주의가 기독론적 신학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유주의 기독론 신학에 대항하는 보수주의 기독론의 신학이다. 그러므로 근본주의는 종교개혁시대 일어났던 기독론주의 신학으로 다시 돌아가는 보수주의적 기독론주의 신학운동이다. <종교 개혁 이후 기독론 주의 신학은 주로 루터주의와 경건주의 신학이 이에 속한다. > 나아가 신앙 고백을 보면 기독론 중심의 신조는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이 이에 속한다.

 

그러므로 근본주의는 교리의 일부만을 강조하는 경향성으로 그 반작용이 또 다른 자유주의 내지 스스로만 옳다고 주장하는 아집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여기서 파생한 신학이 신복음주의 운동이었다. 신학은 항상 교회 역사를 통해 객관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또 한번 증명해 주는 좋은 예가 된 것이다. 이 객관적인 교의 신학이 바로 개혁신학이라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아집주의는 성도의 생활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어 문화를 보는 눈을 2원론주의로 빠지게 만들었다. 창조질서에 나타난 모든 기묘한 사건들이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교리는 어떤 의미에서 일부의 교리만을 주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정치, 문화, 예술, 과학, 경제, 사회 등의 모든 분야에서 주도해야 할 임무를 저버리게 된다. 그러한 여파가 실제로 근본주의 자들에게서 나타났다. 학문이나 기타 해야 할 일들을 게을리 하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자신과 뜻이 다를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차없이 상대를 비방하는 일을 서슴치 아니했다.

 

개혁신학의 구원관은 가히 우주론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 말은 자유주의가 말하는 사회적 전체 구원이 아니다. 또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만인 구원설을 주장하는 알미니안 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구원은 예정에 의해 선택된 자들을 성령의 작용으로 각 개인에게 적용되며 또한 성도는 교회 밖의 사역까지도 하나님의 소명을 수행하여야 하며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 할때는 모든 우주의 전체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그의 나라가 건설 된다는 것이다.

 

 

2-3. 세대주의와 개혁주의

 

세대주의 신학은 근본주의와 뿌리를 같이 가지고 있으면서 시한부적 종말론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신학이다. 세대주의 사상을 시대가 불안하고 생활이 안정되지 못할 때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사상이다. 그것은 “언제 메시아가 오느냐”의 문제에 집착되어 사람들을 현혹해 온 사상이다. 심지어는 외경들의 주제도 메시아의 오심이었고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메시아의 오심에 대해 시한부적 종말론이 수없이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이 시한부적 종말론을 이끌어내는 원리를 제공하는 교리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세대주의 신학이다. 같은근본주의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세대주의를 주장하고 나오면 개혁주의 신학과 공통점이 희박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개혁주의를 말할 때 자유주의를 대항하는 근본주의를 우리는 지지하지만 세대주의를 주장하는 입장에 대해서는 우리가 주장하는 개혁주의 교리를 우리의 신학으로 한다는 말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개혁주의 개념에 대해 각자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유럽에서는 주로 화란에서 개혁신학이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칼빈의 사상을 잘 받아들이고 있으나 청교도적인 신학이라는 말이 많이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유럽 대륙에서는 개혁신학이라는 교리를 이해하기 보다는 16세기 종교개혁을 지지하면 개혁교회로 지칭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것도 동구권과 유럽 대륙의 개념이 약간 다르다. 동구권에서는 교회의 혁신의 개념을 개혁주의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럽 대륙에서는 16세기 제도적으로 로마 교회에 대항한 종교 개혁을 지지하면 교리에 별 상관없이 개혁주의라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유럽 대륙에서는 개혁신학이라는 말이 미국과 같이 통용되는 신학적 입장을 의미하는 말은 아니다. 일반적인 단어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사실 “개혁주의”하면 한국적 의미를 가진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이는 박형룡 교수가 처음 한국에서 개혁주의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개혁주의”라는 대명사가 된 모양이다. 종교개혁 이후에 루터파가 일어나고 또 칼빈주의적인 개혁파가 일어나게 됨에 따라 교회와 신학을 포함하여 전체적 의미를 말할 때 통용되는 이름이 개혁파이다. 미국에선 주로 교리적 입장을 의미하는 이름이 개혁 신학(Reformed Theology or Reformed Doctrine)으로 지칭되고 있다. 이 개혁신학이 주장하는 교리는 종말론에 있어서 세대주의를 거절한 무천년주의가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또한 두드러진 개혁신학의 교리는 예정론을 포함한 신적 작정의 교리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있어서 정교 분리형을 강조하지만 철저한 서로의 협력과 보완과 견제의 역할을 균형있게 유지하며 신조에 있어서는 Westminster 신앙고백을 실제로 가르치며 생활에 적용하는 신조에 강한 교회관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자유주의냐 근본주의냐 선택을 해야 할 때 자유주의를 대항하는 근본주의의 입장을 우리가 지지하지만 세대주의를 우리의 교리로 택할 수 없다는 신학적 입장을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대주의와 비교할 때 개혁주의 신학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다음으로 정통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한 개혁주의의 이념을 설명해야 할 때가 됐다.

 

 

2-4. 정통주의와 개혁주의

 

교회사적인 역사를 전통적으로 말할 때 개혁주의는 정통주의이다. 즉 개혁주의는 정통주의가 된다는 것이다. 단지 역사적이냐 아니면 교리적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교리적으로 볼 때 개혁주의라고 지칭하지만 역사적으로 교리를 다듬어 왔기 때문에 역사적 개혁주의라고 말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역사적으로 볼 때 정통주의라고 지칭하지만 사도신조의 교리를 전통적으로 전승하여 왔기 때문에 정통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제도적으로 교회의 전통에 매여 있다고 해서 정통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교리적 전통을 따라 지금이라도 과거의 교리보다 성경에 더 가까운 교리를 받아들이는 개혁자들의 자세가 돼야 정통주의라고 말 할 수 있다. 역사교회는 교리적 전통을 이어오기 위해 순교자들의 신앙고백을 수호하며 발전시켜 온 입장이 바로 정통주의요 개혁주의이다.

 

 

2-5. 보수주의와 개혁주의

 

보수주의를 개혁주의라고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보수주의다’라고 말할 때 별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보수주의라는 개념은 주관주의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신학적 내용이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객관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신학적 내용이다. 또한 보수주의라는 개념은 교회 역사적 신조주의라기 보다 주관주의적이면서 역사적 전통을 수호하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주의도 보수주의이다. 그러나 신조주의 입자에서 보면 보수주의는 모두 개혁주의라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이나 구라파의 경우 보수주의는 의미가 상당히 넓게 사용되고 있다. 전통을 수호하는 입장이면 거의 보수주의로 간주하고 있다. 즉 주관적 입장에서 생각하면 웨슬리안적 보수주의, 칼빈주의적 보수주의 또는 로마 카톨릭적 보수주의가 있다고 봐야 한다. 고로 우리의 입장에서 보수주의를 말하려면 교회 역사를 통해 고백한 신조의 전통을 따라 보수주의를 주장함이 옳은 것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신조의 전통을 바로 지키는 정통주의를 주장할 때 우리의 입장에서의 보수주의가 된다. 그냥 보수주의가 아니고 역사적 개혁주의를 말하면서 교회사가 고백한 신조를 전통적으로 지키는 정통주의적 보수주의가 돼야 우리의 입장에서의 보수주의이다. 보수주의라는 의미가 한국에서도 구미와 같이 넓게 쓰이지는 않으나 어느 정도 교파를 초월하여 전통을 수호하는 입장이면 보수주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상당히 주관주의적 보수주의를 말하는 경우이다. 객관주의적 개혁주의 신학을 기준으로 전통을 수호하는 정통주의가 바로 우리의 보수주의이다.

 

 

결론

 

본 교단의 선언문을 각 제목에 따라 신학적 입장을 정리한 후 세계 교회사의 입장을 비교 대조 하면서 대신 교단의 입장을 변호하여 보았다. 교단의 교리적 선언의 의미는 교인의 수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사적 신앙고백에 따라 그 노선이 결정되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이 교인 수의 우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역사적 신앙고백에서 빗나간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신조의 입장에서 볼 때 교회의 대열에서 제거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신학적인 열병을 앓고 이미 중증상태를 넘어 교리적 수술대위로 올라가야 할 형편에 처해 있다. 그 이유는 교회 성장이란 이름아래 자손만대에 물려줄 교회의 의미는 전혀 성도들에게 가르치지 아니했다. 그 증명은 어디에 있는가? 묻는 다면 한마디로 지금 한국교회에서 신앙고백을 가르치고 사용하고 있는 교회가 얼마나 되는가? 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가 믿는 신앙 고백의 내용이 무엇인가? 무조건 하나님을 믿는단 말인가? 그 고백의 내용은 문서적 근거를 기본으로 한 객관적인 신앙고백이다. 그것이 제1기준인 성경이며 제2기준인 Westminster신앙 고백이다. 이 신앙 고백은 전 세계 교회가 고백한 문서드를 총 망라해서 성경을 바로 알게 하기 위해 그리고 쉽게 알게 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문서적 작업을 완성한 것이다. 초신자들은 소요리 문답을 공부하면 성경의 뼈대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성도의 교리적 입장 뿐만 아니라 성도의 생활과 예배와 국가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지침서가 신앙고백이다. 이 문서는 성경전체를 바로 이해하고 그 계명에 따라 바로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을 돌릴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신앙 고백의 교리는 일방적으로 그리고 소수가 지협적으로 형성한 내용이 아니다. 세계 교회사를 통해 교회의 전통에 따라 그 교리를 정통적으로 수호해 온 것이다. 역사적 개혁주의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사도적 전승을 말한다. 이 말은 사도신조에 의한 신앙고백의 발전사를 말하는 것이다. 이 내용이 바로 역사적 개혁주의이다. 이 역사적 개혁주의는 교회 역사속세서 어떤 하나의 뜨거운 이슈에 의해 일방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고 사도신조를 전승한 전통적 정통주의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장하는 부수주의는 객관성에 의한 정통주의적 보수주의를 강조하는 것이지 주관주의적 보수주의가 아니다.

 

성경의 원리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자유주의는 언제나 상황에 따라 Context를 중심하여 해석한다. 이는 한마디로 신앙고백을 부셔버리는 악마의 작당주의자들의 음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성경의 원리를 주장하는 이념위에 서서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근본주의 입장을 수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근본주의자들은 세계교회가 고백한 개혁주의 신앙고백을 도외시하고 지엽적인 신앙 고백 위주로 자신들의 교리적 아성을 만들고 있다. 그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를지라도 객관적인 신앙고백을 무시할 경우 주관주의로 빠져든다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관주의적 성령의 사역과 주관주의적 신앙 고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그 성령의 사역과 신앙고백이 객관성 있는 성경과 신앙고백에 의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관성에 기초한 세대주의적 개념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Westminster 신앙고백 32장을 보면 “죽는 즉시 인간의 영혼은 거룩함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마지막 날에 몸으로 부활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32장 신앙 고백의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역사적 종말보다 개인적 종말을 더 강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의 경우 역사적 종말을 시대적 계산법에 맞추어 시한부적 종말론을 강조함으로 역사가 고백한 신앙의 기존에 손상을 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세대주의와 비교해 볼때 역사적 개혁주의가 고백한 신앙에 의해 주님을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 분야의 종말론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였다. 전체적으로 교리를 말할 때 언약의 시대적 분할은 하나님을 언약의 실패자로 만드는 경우에 해당한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개혁주의 신앙 고백은 세계 교회사를 통해 피를 흘리고 싸워 온 신앙 선조들의 순교의 열매이다. 그들은 한 마디의 신앙 고백을 지키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을 분토같이 버렸다. 그리고 그 한 마디 한마디 신앙 고백이 오늘날 우리가 금보다도 더 귀한 이 고백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타락해 가는 한국 교회를 어떻게 신앙을 회복하겠는가? 라고 누가 묻는다면 거침없이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2천년 교회사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 순교자들의 신앙으로 돌아가라고... 그 순교자들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길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거침없이 개혁주의 신앙의 기본인 Westminster신앙고백을 생명을 걸고 가르치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것밖에 할 말이 없다. 이 말은 2천년 동안 우리에게 신앙 고백을 남겨준 순교자들의 대답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