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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 전, 타락 후 선택설은 모두 창조 이전

Sola. 2023. 6. 15. 11:33

 

타락 전, 타락 후 선택설은 모두 창조 이전

신원균 강도사 (2000.5.4)

 

2) 타락전 선택설과 타락후 선택설

 

우리는 도르트 신조의 예정론을 살펴보면 모든 조항에서 칼빈주의자들이 정확한 일치를 본 것은 아니었다. 특별히 제 1 조항에 대해서 즉, 항변파의 예지예정은 모든 칼빈주의자들이 거부하는 내용이었지만, 하나님의 선택이 타락전이냐, 타락후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칼빈주의자들이 일치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참여자들의 ‘타락후 선택설’을 지지하였기 때문에 도르트신조의 공식적 입장은 ‘타락후 선택설’로 종결지어졌다. 그러나 화란의 엄격한 신학교수의 고마루스(F. Gomarus)는 ‘타락전 선택설’을 고집하였다. 고마루스 외에도 마코비우스(Maccovius)가 있었다. 그리고 남부 화란, 오베리셀(Oversel), 그리고 프리슬란드에서 온 대표자들은 이 문제를 결정치 말고, 양 파 모두를 만족시키는 표현을 사용하기를 선호했었다. 곧 도르트회의 ‘타락전 선택설’을 반대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은 소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특히 이 당시에 참여했던 다른 화란 신학자들은 4명인데, 그 중에서 3명(Johannes Polyander, Antonius Thysius, Antonius Walleus)의 공통된 입장과 이에 서명한 Sibrandus Lubbertus의 입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여기에 F. Gomarus는 서명하지 않은 것이다). “구원에 이르는 예정은 주께서 은혜로우신 그의 뜻의 기뻐하심에 따라(엡1:5,11; 롬11:5) 온 인류로부터 죄로 타락하여 이렇게 잃어버렸던 어떤 사람들을(롬9:15,16)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하셨던 영원하고(엡1:4; 마25:34) 완전 자유롭고(롬9:15) 불변한(롬9:11; 롬11:28,29) 하나님의 결정이다.”

 

위에서 언급한 진술을 정리하여 언급하자면, 타락전 선택설은 선택이 타락의 작정에 우선한다고 주장하며, 타락의 작정을 예정의 가치를 드러내는 방편으로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타락후 선택설은 타락이 선택에 앞선다는 것이다.

 

이들 양 주장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의 강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타락후 선택설’의 강점은 이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두 죽게 되었지만, 그 중에, 선택이라는 ‘은혜’와 나머지는 아담 안에서 그 죄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른다는 ‘공의’가 타락전 선택설보다 더 강하게 논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죄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성이 잘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칼빈주의를 완전하게 만족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전에 아무 계획 없이 사람들을 창조하시고, 그리고는 사람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신 다음에야 선택과 유기를 하셨다는 이론은 전적으로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지와 죄에 대한 작정은 이 문제를 논리적으로 예정의 대상에 대하여 타락의 작정에 선행하는 더 깊은 신적 작정이 있는 것이다. 이에 만족할 만한 대답을 주는 것은 타락전 예정론이다.

 

타락전 예정론의 강점은 타락후 예정론의 “은혜와 공의”에 비하여 “하나님의 뜻과 주권”을 강하게 드러내는데 있다. 전자와 후자가 모두, 모든 유기자는 자기 자신의 죄가 그의 저주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점에선 의견을 같이하나(인간론), ‘타락전 선택설’론자는 유기의 궁극적인 원인은 타락에 선행하는 ‘은밀한 신적 작정’(신론)에 있다고 하는 점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한 신학자들이(쯔빙글리, 칼빈, 베자, 피스카토르, 퍼킨스, 호민스(Hommins), 보게르만(Bogerman) 등이 때때로 강력한 표현들을 사용했다. 최종 목적은 ‘타락후 선택론의 은혜와 공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다. ‘택자에 대한 은혜와 죄인에 대한 공의’는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이 후의 대부분의 교회가 신조를 작성함에 있어서는 ‘은혜’와 ‘공의’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타락후선택설’이 선호하였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만이 타락전선택설을 좀더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차이점을 발견하면서 본 저자는 타락전 선택설이 중심이 되면서 여전히 타락후 선택설의 내용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형식이 낫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1. 타락전 선택과 타락후 선택에 대한 정리.

 

타락전 선택과 타락후 선택은 모두 창조론과 관련이 있다. 즉 하나님의 신적작정 가운데서 (창조, 행위계약, 타락) 등을 결정하시기 전에 선택하셨는가? 아니면 이 결정을 하시고 선택하셨는가? 에 대한 차이인 것이다. 즉 실제적인 창조사건 이후에 선택했는가? 하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오늘날 타락후 선택론의 개념이 이것으로 많이 오해되고 있다)

 

이 말은 시간적으로(역사적으로) 창조사건이 일어나기 전 즉 무(無)시간의 상태에 있던 영원 전에 타락전이나 타락후 모두 설명이 되는 것이다. 결국 두 개념 모두 하나님의 신적작정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모두 장소와 시간을 초월해서 되어진 일이기 때문에 장소와 시간에 국한해서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하는데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영원전 신적작정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논쟁의 내용으로 다루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정리해 보면 역사적 순서와 논리적 순서로 구분할 수 있는데, 역사적 순서에 있어서는 타락후 선택설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리고 전천년주의자들이 이 입장을 많이 따르게 된다. 다음으로 논리적 순서에 있어서는 타락전 선택설이 더 합리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무천년주의자들이 이 입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