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칼뱅을 읽다’ 중 '타락과 그 결과를 중심'으로 살펴본 교회의 적용점
Sola (2021.6.12)
서론
인간의 타락에 대한 교리는 많은 교인들이 받아들이면서도 상당수가 왜곡되게 받아들이는 주제다. 그리고 이것은 구원론에 있어서 그 출발점이 되며 그렇기에 타락에 대한 신학이 잘못 인식 돼 있으면 그 이후에 나타나는 구원론에 대해서, 심지어 예정을 다루는 신론 등 많은 성경의 각 부분에 대해 반성경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타락에 대한 개념을 다루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인간의 타락에 대해서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것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갈 경우 타락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진 교인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타락과 천지차이만큼의 인식을 함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서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때문에 본론에서는 칼뱅을 읽다 및 기독교 강요에서 밝히고 있는 아담으로부터 발생한 원죄와 그것의 결과를 살펴봄으로써 죄에 대한 뿌리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죄로 인한 타락으로 인해 사람에게 의지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가능성이 그 의지 안에 있는지를 살펴보고, 교회에서 교육할 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본론
1. 아담으로부터 발생한 원죄와 그것의 결과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은 원죄의 근원과 전이, 그리고 그것의 결과들에 대해서 1,2,3권 곳곳에서 말하고 있다. 특히 2권 1장 8항에서는 그 범죄를 통해 사람이 저주에 얽히게 되었고 그 죄성은 ‘불타는 용광로’와 같다는 표현을 씀으로써 인간이 얼마나 죄를 기뻐하고 죄를 향하고 있으며 죄에 대한 본성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성경을 통해 밝히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이 죄의 결과로 인해 생긴 저주와 그와 상반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인한 구속을 동시에 알려주고자 했다.
인류의 죄는 원죄라고 불리는 아담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음으로 인해 발생했는데, 이것을 칼빈은 불순종과 불성실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리고 교부들은 원죄로 불렀고 칼빈은 기독교 강요 2권 1장 5항에서 ‘물려받은 부패’라는 표현으로도 사용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작정과도 연결이 되는 것으로써 아담이 죄를 지은 것은 하나님의 작정이었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있다고 기독교 강요는 밝힌다. 이 신비한 비밀과 원리에 대해 우리는, 성경이 가는 데 까지만 가야하는 원리에 따라서 지나친 호기심을 주의해야 한다.
이 아담으로부터 발생한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모든 것이 타락했다. 즉, 전적 타락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으로 인해 인간은 지식과 의지 등 모든 부분에서 부패했고 심지어 에베소서에서는 죄와 허물로 (이미)죽었다라고 선포한다. 이미 영적으로 죽은 인간이 어떤 선한 것을 스스로 행할 수 있는가? 그 어떤 선한 것도 행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원죄는 우리 스스로 짓는 죄와 달리 모든 사람의 대표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인 죄다. 생물학적으로 부모에게 전이된 것도 아니요 펠라기우스의 주장처럼 모방된 것도 아니다.
2. 타락으로 인한 사람의 의지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의지가 없어졌을까? 정답은 아니다. 인간에게 여전히 하나님은 의지를 남겨두셨다. 다만 이것을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의지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건강한 의지를 빼앗겼다’라고 2권 3장 5항에서 말한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흔히 말하는 자유의지는 빼앗겼다는 것을 내포한다. 타락 전 아담에게는 선과 악을 행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의지가 있었지만, 아담의 타락 후 인간은 죄와 허물로 죽은, 죄를 짓는 의지만 남아있다. 성령 하나님으로 인해 구원, 중생함 받기 전에는 말이다.
인간의 의지가 죄를 향하여서만 쏠려있다는 의미에서, 칼빈은 자유의지라는 것보다 의지의 자유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밝힌다. 단, 자유의지라는 단어를 올바른 위의 이해와 같은 바탕 하에 쓴다면 괜찮다고는 말한다. 의지의 자유라는 의미가 좀 더 정확한 표현인 이유는 죄를 지을 때 인간은 자신이 원해서, 선택해서, 본성적으로 짓는 것이지 자신은 원하지 않는데 억눌려서 억지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지는 자유롭다’라는 표현을 칼빈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고 이것은 타락과 그 결과에 대한 칼빈이 보여주고자 한 것과 일치한다.
3. 교회에서의 적용
교회에서 목회자는 성경적 교리인 전적인 타락에 대해 모든 성도들이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것은 성도들이 자신의 현 상태를 바로 파악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바른 이해에 바탕해 율법에 순종케 한다.
또한 목회자는 죄의 결과로 인해, 불신자는 죄를 향한 의지의 자유, 즉 루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예의지만 있다는 것을 교육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현대에도 수없이 존재하는 반성경적인 부분적 타락 등의 교리에 맞서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이단 신학인 웨슬리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를 받아들이는 교단 및 교회이다. 목회자는 그것들에 대해 올바르게 짚어주면서 성도들이 분별하도록 해야 한다. 웨슬리는 아담의 죄에 대한 죄책 때문에 사람이 죽지 않고 자신의 자범죄 때문만으로 죽는다고 잘못 말했으며 원죄에 대한 책임은 출생하자마자 없어졌다고 잘못 믿었다.
이러한 것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감리교와 감리교로부터 파생된 성결교, 구세군 교단 등 그리고 장로교 안에서도 통합교단, 기장 등 여러 웨슬리안주의 및 알미니안주의 사상에 바탕한 부분적 타락 등을 받아들이는 위험한 교회들을 분별하도록 교육해야 하고, 그 교단 및 교회들에 속한 교인들도 전도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또한 그들의 교회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 같아 보이면 바른 교회로 옮기도록 전도할 것을 목회적 관점에서 가르쳐야 한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 4권에서 밝히듯이 바른 말씀의 선포가 없을 때에는 참된 교회가 아니므로 그 교회에서 나와야 함을 밝혔듯이 말이다. 그것이 그 교회를 위해서도 성도를 위해서도 좋은 것이며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결론
인간을 대표하는 아담의 원죄의 유전으로 인해 인류는 전적으로 타락했고, 전적으로 부패 및 무능해졌으므로 선을 행할 수 없다. 오직 노예의지만 존재하여 죄를 향하여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의지만 있다. 이러한 타락의 원인과 결과를 바르게 아는 것은 성경의 다른 부분을 바르게 이해하는 근본 바탕이 된다. 전적인 타락의 문제에 대하여 이단 알미니안주의 5대 항론에 대항해 구원의 다섯 개 교리중 가장 먼저 그 부분을 다루고 있는 도르트 신조의 의미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기독교 강요 1권부터 곳곳에서 밝히고 있는 타락과 그의 결과에 대한 부분들을 잘 숙고함으로써 목회 현장과 우리의 삶동안 그것을 잘 기억할 때에 건강한 교회와 겸손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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