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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성경론

Sola. 2024. 10. 12. 06:0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성경론

 

배현주 목사 (2015.7.7)

 

 

“성경을 제외한 학문, 예술, 문화, 자연 등 모두는 일반 은총에 속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성경론 제1항은 “자연의 빛”을 언급한다. 여기에서 “자연의 빛”(Lumen Naturalis)이란 중세 시대부터 이성의 빛(Lumen Rationis)으로 표현되는 자연을 탐구하는 인간의 지성을 말한다.

 

이 자연의 빛으로부터 자연법이 발생하였다. 세속법은 모두 자연법으로부터 비롯된다. 그것은 인류가 전적으로 타락한 이후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양심을 따라서 발생한 법이다.

 

자연법(Lex Naturalis)은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법이다. 그것은 고대 사회에서도 있었다. 고대 사회에 대표적인 자연법에는 함무라비 법전이 있다. 그러한 법전들은 모두 자연의 빛을 따라서 형성된 자연법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성경론의 제1조는 그러한 자연의 빛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비록 자연의 빛과 창조와 섭리의 사역이 사람으로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하게 하나님의 선과 지혜와 능력을 드러낸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그것들은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과 그의 뜻의 지식을 충분하게 주지는 못한다”고 고백한다. 이 부분은 로마서 1장 19-21절과 연결된다.

 

사도 바울은 다음같이 선언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19-20).

 

사도 바울은 자연의 빛을 따라서 신을 사색할 때에 겨우 고대 그리스 철학의 수준에 머물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연의 빛으로 인간이 신에 대하여서 탐구할 때 알 수 있는 것은 다만 신의 존재에 대한 희미한 지식일 따름이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진술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자연의 빛과 창조와 섭리의 사역이 사람으로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하게 하나님의 선과 지혜와 능력을 드러낸다”는 부분과 일치하는 교리이다. 그리고 요한 칼빈은 기독교 강요 최종판 제1권 제5장의 표제에서 “하나님의 지식이 세상의 창조와 그의 계속적인 통치에서 빛난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처럼 로마서와 요한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동일한 교리적 입장을 진술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신의 존재를 피할 수 없을 만큼은 자연의 빛이 신에 대한 지식을 비추어 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여전히 그것들은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과 그의 뜻의 지식을 충분하게 주지는 못한다”고 고백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연의 빛을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라고 선언하고 있다.

 

요한 칼빈은 제1권 5장 14절에서 “불타오르는 등잔들이 창조자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이 세상의 솜씨로 우리에게 비추어주고 있는 것이 모두 헛되다. 그와 같이 그것들이 어디에서나 우리에게 비추일찌라도 그것들을 통해서는 우리가 올바른 도리로 이끌림을 받지 못한다”라고 진술한다. 결국 자연법으로는 하나님을 알아 가는데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치리할 교회법을 주셨다. 그것이 신구약 성경이다. 신구약 성경은 최고 권위의 교회법이다. 정통 교회는 성경으로부터 나왔다. 성경이 교회의 기초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여러 모양으로 그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이 본문은 히브리서 1장 1-2절을 상기 시킨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셨다.” 그것이 신구약 성경이다. 로마 카토릭은 성경이 교회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하며 교회의 전통을 성경과 동등한 위치에 둔다. 그러나 개혁 교리는 성경을 벗어나는 모든 인간의 전통을 배격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1장에서 칼빈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Notitia Dei)에 대한 진술을 그대로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 제1장의 교리적 진술은 300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헤르만 바빙크에게서 “일반 계시의 불충분성”으로 진술된다.

 

헤르만 바빙크는 [하나님의 큰일](Magnalia Dei) 제4장 일반 계시의 가치에서 “우리가 일반 계시 영역 전체를 개관해 볼 때 우리는 한편으로는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것과 부요한 열매들을 산출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가 그 빛으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진술하였다. 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1항을 정확하게 그 시대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헤르만 바빙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자연의 빛과 창조와 섭리의 사역”(the Light of Nature, and the works of Creation and Providence)을 “일반 계시”(Algemeene Openbaring)로 개념화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된 우주에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셨기에 일반 은총이라 보았다. 학문과 예술과 문화와 자연 그 모두가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다.

 

나아가 헤르만 바빙크는 일반 은총으로는 하나님의 존재 만을 희미하게 알 수 있을 뿐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얻기에 불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제1항과 동일한 교리적 입장이다.

 

신앙고백서 제1장 1항은 일반 계시의 불충분성과 특별 계시의 필요성 그리고 특별 계시의 총화로써 신구약 성경의 필연성을 고백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 1장 1항은 맨 마지막 부분에 계시 종결을 분명하게 고백한다. 그것이 “지금은 그의 백성들에게 그쳐진 그의 뜻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이전의 방식들”이라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이전의 방식들”은 직접 계시를 말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에게 직접 임재하셨고 선지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셨으며 사도들에게도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셨던 특별 계시의 현현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의 백성들에게는 그것을 그치셨다”고 고백한다. 이는 특별 계시가 성경으로 종결되었다는 것이다.

 

다시는 새로운 특별 계시가 없다. 특별 계시는 성경 안에서 종결되고 보존되었다. 이제 성령의 영감을 통한 특별 계시의 첨가는 없다. 다만 기록된 계시를 해석하는 조명이 남아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 이후에 모든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각자의 신학 저서 안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를 해설하고 있다. 헤르만 바빙크, 찰스 핫지, 윌리엄 쉐드, 루이스 벌코프 등으로 이어지는 교의학 저서들은 약간의 교리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장로교회 역사에 있어서 후대 교의학 저서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신구약 성경 66권의 범주는 이미 사도 시대에 결정되어진 것”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는 제1장 2항에 신구약 성경의 범주를 결정해서 고백서에 진술했다. 구약 39권 신약 27권이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은 66권이다. 이러한 결정이 왜 중요한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개혁 교회는 예배시에 성경 이외에 외경을 읽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은 성경과 함께 외경을 사용하고 있다. 로마 카토릭 교회는 반동 종교 개혁의 일환으로 트렌트 공의회를 개회하여서 트렌트 공의회 결정 문헌(Canones et Decreta Dogmatica Concilii Tridentini: A.D. 1563)을 작성하였다. 그 결정 문헌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구약 성경 39권 외에 외경으로 알려진 토비아스(Tobias) · 유디트(Judith) · 지혜서(Wisdom) · 바룩서(Baruch) 등을 구약 성경 목록에 넣었다. 여기에 로마 카톨릭의 성경관을 엿볼 수 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가시적 교회의 완전성을 주장하며 로마 교회가 완전하며 오류가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 회의에서 외경을 구약의 목록에 넣으면 성경만큼의 권위가 있다고 믿는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결정을 절대적으로 믿는 그들의 심각한 오류가 성경에 외경이 포함되게 되었던 원인이다.

 

로마 카토릭 교회는 트렌트 공의회 이전까지 고대 정통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고 있었던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의 성경의 범주를 트렌트 공의회에서 다르게 결정한다. 몇 권의 외경을 포함시켜서 성경과 동일한 위치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지금도 고치지 않고 있다. 로마 카토릭 교회는 그들이 결정한 교회의 전통을 무오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첨가된 외경도 로마 카토릭 교회가 성경으로 결정하면 정경이 된다고 본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경이 교회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후대에 첨가된 경전도 로마 카톨릭 교회의 결정에 따라서 정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정경이 되는 것을 로마 카톨릭 교회가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실로 어리석다. 신구약 성경의 범주는 이미 사도 시대에 결정되어 있었다. 다만 긴 세월이 지난 후에 정통 교회의 종교 회의에서 그것을 수납한 것에 불과하다. 구약 성경의 범주는 예수님 당대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랍비들은 구약 성경 39권을 “손을 더럽히는 책”이라고 하여서 함부로 손 대면 아니 되는 거룩한 문헌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는 구약 시대 랍비들이 구약 성경의 범주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눅 24:44)고 말씀하셨다.

 

이 본문에서 예수께서 구약의 범주를 말씀하셨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구약 성경의 범주였다. 이미 그 당대에 구약 성경의 범주가 공인되어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외경은 말라기서 이후에 기록되었다. 중간기 때에 유대 묵시 문학의 한 부분으로서 발생하였다. 당대 유대인들은 성경과 외경의 확연한 차이를 알고 있었다. 구약은 말라기서를 마지막으로 성경 기록이 종결되었다. 그것이 구약 성경 39권이다.

 

신약 성경은 고대 종교 회의로서는 힢포 대회(The Synods at Hippo:A.D. 393)와 카르타고 대회(Carthage: A.D. 397)에서 27권으로 결정되었다. 로마 교회는 이러한 고대 정통 교회의 종교 회의 결정을 따라서 성경의 범주가 정하여졌기에 성경이 교회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견해이다. 속사도 시대부터 여러 교부들의 증언을 통해서 신약 성경의 범주가 이미 27권으로 널리 공인 되어있었다.

 

고대 교부로서 [이단 논박]이라는 저서를 기록한 이레니우스(A.D. 170)는 그의 저서에서 신약 성경 전체를 거의 인용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A.D. 200)도 신약 성경 거의 전체 목록을 인식하고 있었다. 여러 증언들을 통해서 볼 때 신약 성경 27권은 후대에 결정에 의해서 정경이 된 것이 아니라 정통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널리 공인되었다.

 

다만 여러 분파주의자들이 신구약 성경의 범주에 대하여서 논란을 일으키게 되자 정통 교회가 종교 회의를 통해서 그 당시에 널리 공인된 신구약 성경의 범주를 정경으로 추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범주는 교회의 공적 종교 회의가 정하여 준 것이 아니다.

 

이처럼 성경의 범주는 이미 사도들 시대부터 공인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의 범주는 후대 교회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이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는 역사적으로 공인된 신구약 성경의 범주를 따라서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성경으로 고백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 1장 4항은 다음과 같이 성경의 권위를 고백하고 있다. “성경의 권위는 교회나 인간의 증거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직 전적으로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 그분에게 의존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여져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은 성경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한다고 진술한다. 그것이 성경의 자증성이다.

 

이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 2 항은 후반부에 성경에 대하여서 “그것은 신앙과 삶의 법칙으로서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서 주어졌다”고 고백한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되어있다. 그것은 사도와 선지자들이 영감을 받아서 기록한 것이다. 사도들의 권세는 신약 성경의 권위에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다.

 

신약 시대 사도와 선지자들이 기록한 신약 성경의 범주는 이미 기록이 종결되었을 때 결정되었다. 그것은 요한 계시록 22장 18-19절에서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신구약 기록 계시의 종결을 선언한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본문이 단지 요한 계시록에 국한된 것으로 볼 수 없다. 신구약 기록 계시의 마지막 문헌으로서 요한 계시록은 신구약 계시의 종결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8세기 이후에 발생한 계몽주의 신학은 이러한 정통 교회 소중한 유산을 폐기 처분시키고 문서설과 역사 비평 그리고 양식사 비평 역사적 예수 연구 등으로 신구약 성경을 난도질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보다 인간의 이성을 더 우위에 두었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다. 그리고 급기야 신구약 성경을 자신들이 임의로 판단하고 절단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문헌이라고 헛되이 주장하였다. 그래서 모세 오경의 저작설을 부인하고 후대에 편집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이사야서를 제 1 이사야서와 제 2 이사야서로 나누면서 저자가 두 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Q 문서설을 통하여서 신약 복음서의 사도들의 저작설을 부인하였다.

 

그리고 각 저자들의 신학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며 구약에서 신명기 신학과 이사야 신학 그리고 신약에서 바울 신학과 요한 신학을 주장하며 신구약 성경을 난도질 하였다. 그리고 심지어 구약 신학과 신약 신학은 전혀 교류할 수 없는 별개의 신학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참된 신자들은 동일한 신앙 고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러하다. “신구약 성경은 신앙과 삶의 법칙으로서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러한 신앙 고백적 유산을 버리는 순간 기독교는 이방 종교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신구약 성경의 기록 계시로서의 권위와 신구약 성경의 축자 영감설을 부인하는 순간 기독교는 그 기반에서부터 무너진다.

 

그러므로 개혁 교회는 신구약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견지해야한다. 그것은 거룩한 보편 교회의 신앙 고백적 유산이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에는 신구약 성경의 목록을 분명하게 제시함으로서 후대 신자들에게 성경의 이외에 외경을 성경처럼 읽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성직자들은 현대 개신교도들에게 친숙한 신구약 성경 66권의 범주를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정경으로 결정하여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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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47년판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