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 유익한 글

교회개혁의 의의 (1-2)

Sola. 2024. 12. 15. 06:00

 

제 1장 교회개혁이란 무엇인가?

 

2. 교회개혁의 의의

 

이상규, 교회개혁사, 성광문화사, 1997 / 개혁주의 학술원 (2007.2.28)

 

 

그러면 교회개혁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보여준 의미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교회개혁이란 원시 그리스도교 회복운동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개혁이란 그리스도 교회의 본래적인 신앙과 생활에서 이탈한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형식화된 의식적 생활에서 떠나 이탈한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형식화된 의식적 생활에서 떠나 본래적 기독교 혹은 사도적 교회에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성례적적인 제도(Sacramental system)와 공적(功績)사상 등 교회적 율법주의(Ecclesiastical legalism)와 비복음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근본의 기독교 혹은 사도적 교회로 돌아가려는 운동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개혁에서 어거스틴의 은총의 신학과 함께 사도 바울의 이신득의(以信得義)교리의 부흥을 보게 된다.

 

 

 

교리적(신학적) 개혁(Reform)으로서의 교회개혁

 

종교개혁의 의의를 논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 개혁의 첫째 구호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었다. 개혁자들은 로마교황의 권위나 모든 세속적 전총에 항의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내세웠다. 개혁자들은 중세교회의 부패의 근본적 원인을 성경에 대한 무지로 보았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성경의 절대권위를 강조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성경의 권위보다 교회의 권위가 우선시될 때 교회개혁은 불가능하게 되며 성경의 절대권위는 종속적 권위로 전락하고 만다. 성경의 가르침은 교회개혁의 토대이자 출발점이었다. 개혁자들은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 멈춘다."는 '오직 성경'의 원리와 오랫동안 교회에 만연되어 왔던 문자적(文字的), 혹은 여자적(如字的, Literal) 해석이나 우의적(寓意的), 혹은 풍유적(Allegorical)해석 그리고 경건주의적(신비주의적) 해석의 약점을 극복하고 역사적-문법적-신학적 성경해석 원리를 확립하였다. 이것이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다(Scripture Interprets Scripture)."는 주장이다.

 

16세기 개혁이 가져온 또 하나의 커다란 신학적 성취는 구원관에 있어서 복음주의적 체계이다. 구원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 혹은 행위(works)나 공로(merits)에 의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하는 '오직 믿음'(Sola Fide)의 원리였다. 신앙의인(信仰義認)의 교리, 더 정확히 말하면 은총을 통해 믿음으로 얻어지는 의인(義認)교리는 개혁운동의 근간이다. 이 신학은 교회 내에 오랫동안 있어 왔던 소위 '신인협동설'(神人協同設)을 극복하고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선포하였다. '오직 믿음'과 함께 '오직 은혜'(Sola Gratia)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이며 양자는 다 같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한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알미니안들의 주장처럼 받을 수도,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교회개혁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성취는 '만인 사제직'(Universal priesthood of believers)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로마 교황을 정점으로 한 중세적 교권체제에 대한 거부이며 가톨릭의 사제주의(Sacerdotalism)를 개혁한 것이다. 교회개혁의 큰 의의는, 신부(성직자)는 하나님께 대하여는 신자(평신도)의 영혼을 책임지고 신자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한다는 사제주의(司祭主義)의 그릇된 가르침을 극복한 것이다. 칼빈주의가 말하는 하나님의 주권이란 가톨릭의 사제주의를 개혁하고 모든 사람은-그가 성직자이든 평신도이든-다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지나치게 구분하고 성직자를 평신도보다 우월한 특권층으로 보려는 사고는 로마 가톨릭적이다.

 

로마 가톨릭은 7성례를 동반한 사제주의로 교권체제를 유지해 왔으나 개혁자들은 이것을 부인하고 하나님과 사랑사이의 중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며 마리아도, 성자도, 교황(신부)도 중보자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것이 바로 만인사제직의 발견이다.

 

 

 

영적 부흥운동(Revival)으로서의 개혁

 

교회개혁은 은혜의 교리를 재발견하고 사도적 교회로의 회복을 가져 왔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가려진 오랜 역사의 침체에서 벗어나 영적 부흥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런 점에서 캠브릿지 대학의 피터 뉴만 브룩스(Peter Newman Brooks)교수는 "교회개혁의 본질적으로 목회적 성격을 띤 운동이었다."라고 평하였다. 즉 개혁활동은 의식과 제도의 강보에 쌓여 냉랭한 스콜라주의적 이성으로 오도된 교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당시의 백성들에게 영적 소생의 빛을 주었다. 이런 점에서 루터나 칼빈 등 개혁자들의 저술과 성경강해, 성경주해와 설교는 다 목회적 동기를 지니고 있었다.

사실 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의 한 가지는 영적 부흥에 대한 갈망이었고 이 영적 갈망은 교회개혁운동의 내적 동기였다. 당시 사람들은 스콜라철학으로 무장된 제도화된 교회와 의식적 종교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영적 부흥을 희구했던 바 이 갈망은 개혁을 통해 구체화되어 갔다.

 

진정한 의미에서, 영적 부흥 없는 개혁은 공허한 것이며, 교회적 개혁 없는 부흥은 무의미하다. 진리에 대한 고통스러울 정도의 재검토 없이, 그리고 진리에 복종할 각오 없이는 영적 부흥은 있을 수 없다. 교회사상에 있어서 부흥운동은 항상 시대적 제약성과 한계성 그리고 보편적 원리가 될 수 없는 어느 정도의 약점을 지니지만 16세기 개혁은 신약교회의 부흥운동과 가장 가까운 영적 부흥이었다.

 

16세기 개혁에 있어서 교리적 요소가 영적 부흥의 측면보다 더욱 분명하게 부각됐던 이유는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학과 의식이 성경에서 지나치게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신학과 예배의식, 교회적 생활에 있어서 성경적 원리들이 재 규명, 재 진술되는 일이 보다 시급하고 긴박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교회개혁은 독일에서는 루터를 통해 시작되었지만 스위스에서는 취리히를 중심으로 쯔빙글리(U. Zwingli, 1484~1531)에 의해서, 제네바를 중심으로 한 불어 사용지역에서는 칼빈(J. Calvin, 1509~1564)에 의해 추진되었고, 그 외에도 여러 개혁자들에 의해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스코틀랜드 등지로 확산되어 갔다. 종교개혁사에 있어서 루터, 쯔빙글리, 칼빈의 개혁운동이 주류(主流)이며 정통이라고 한다면, 재세례파(Anabaptists), 신령파(Spiritualists), 복음주의적 합리론자(Evangelical Rationalists)들은 비주류 혹은 잠류(潛流)라고 할 수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교회사 교수인 윌리암스(G. H. Williams)는 전자를 관료적 혹은 행정적(Magisterial) 개혁이라고 하고, 후자를 급진적(Radical)개혁이라고 명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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