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 유익한 글

공부하는 개혁자, 존 칼빈

Sola. 2024. 5. 3. 06:00

 

공부하는 개혁자, 존 칼빈

 

배경락 목사 (2017.5.2)

 

 

중세 말 교회는 백성을 철저히 바보로 만들었다. 성경을 금서로 지정하여 읽지도 못하게 하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제대로 가르칠 필요를 느끼지 못하니까 성직자들도 성경에 대하여 무지하였다. 어떻게 해서든 사제(성직자)가 되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무사 안일이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할 필요도 없었고, 책을 읽을 이유도 없었다. 성경 한 구절 적당히 읽고 제 마음 내키는 데로 떠들면, 아무 것도 모르는 백성은 아멘하고 받아들였다. 그들은 헌금하면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복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백성들도 머리 아프게 성경을 공부할 필요 없고 돈 몇 푼 적당히 던져주면 끝이니 성직자나 평신도 모두 편하였다. 교회는 어떻게 해서든 돈을 끌어모으기에 혈안이었다. 성직을 매매하고, 가짜 성물을 팔고, 면죄부를 팔았다. 중세는 미신적이고 세속적이고 계산적인 기복신앙만 난무하였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중세 말 가톨릭과 너무나 흡사하다. 정식 신학교에서 3년 공부한다 하지만, 신학의 껍데기만 조금 맛보다 졸업한다. 성경 한 권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목사가 된다. 그러고도 자신이 신학을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한다. 신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그나마 보던 책과 이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뿐만 아니라 무허가 신학교에 1년만 등록하면 목사 안수받는 길도 있다고 하니 성직매매나 다를 바 없다. 한국 교회는 편협한 보수주의와 이상한 성령운동과 세속적 기복신앙이 판을 치고 있다. 성경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하여 동료 목회자들에게 책 읽고 공부하는 모임을 하자고 해도 동조하는 사람이 너무나 적다.

 

한국 교회 개혁이 필요한 데가 많지만, 무엇보다도 성경에 대한 무지에서 탈출이 시급하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중세 말 기독교의 무지함을 깨트리는 운동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들 모두는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하고, 성경을 연구하던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온몸을 불살라 공부하던 20대 30대 청년들이었다.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에 능통하였고, 고전을 읽고 암송하였으며, 성경 주석과 강해에 능숙하였다.

 

존 칼빈은 23살 때 ‘세네카의 관용론에 대한 주석’을 썼다. 그는 60여 권의 라틴어 고전과 20여 권의 헬라어 고전, 그리고 몇몇 교부의 저서를 인용하였다. 칼빈은 지성인이고 학자였다. 키케로, 버질, 타키투스의 책을 암기하였고, 플라톤과 세네카의 내용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는 종교개혁에 유화적이었다. 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카를 5세와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종교 개혁적 성향을 가진 독일의 선제후들과 손을 잡고 싶어 했다. 그는 전략적 차원에서 종교개혁에 대해 관용정책을 사용하였다. 그의 누이 마르그리트 공주는 개혁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그녀는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읽을 수 있었고,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영어, 독일어가 가능했다. 그녀 주변에는 문화적으로 교양을 갖추고 개혁 성향을 가진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기욤 브리쏘네, 르페브르, 제라르 루셀 등이 그녀의 후원 아래 활동하였다. 바야흐로 프랑스에도 종교개혁의 바람이 막 불어오려는 찰나였다.

 

1533년 11월 1일 칼빈의 친구인 니콜라스 콥(Nicolas Cop, 1501~1540)이 파리대 학장으로 연설하였다. 연설은 기독교 철학을 바탕으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파하였는데 명백히 개혁적이었다. 그 연설문 대부분은 칼빈이 써준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그때 칼빈의 나이 불과 24살이었다.

 

1534년 10월 17일 프랑수아 1세의 침실에 벽보가 붙었다. 가톨릭의 미사와 화체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팜플릿이었다. 누군가 왕이 잠자는 침실까지 몰래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에 프랑수아 1세는 큰 충격을 받았다. 팜플릿은 왕의 침실에만 붙은 것이 아니라 왕궁 이곳저곳에 붙어 있었다. 왕은 이 일을 뮌스터에서 농민전쟁을 일으킨 광신적 재세례파와 연관시켜 생각했다. 그는 종교개혁 사상을 관용하다가는 문제가 더욱 커지겠다고 판단하였다. 탄압이 시작되었다. 개혁 사상을 가진 자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32명의 개신교도가 체포되어 화형에 처해졌다. 니콜라스 콥과 칼빈도 위험을 느끼고 파리를 탈출하여야 했다.

 

 
존 칼빈

 

칼빈은 앙굴렘(Angoulême)에 사는 친구 루이 뒤 틸레(Louis du Tilet)의 집에 숨었다. 루이는 클레(Claix)의 참사회원이었다. 앙굴렘에는 매우 훌륭한 도서관이 있었기에 칼빈은 계속해서 학문에 집중할 수 있었다. 칼빈은 성경과 교부들의 서적을 연구하였다. 그는 많은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 강요 초판 작업에 몰두하였다.

 

칼빈은 공식적으로 신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한 그가 종교개혁 사상을 표출하는 콥의 연설문을 쓰고 난 후 불과 3년 만에 기독교 강요를 썼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학자들이 공부하는 책들과 연구 과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는 우선 1세대 개혁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개혁 사상을 튼튼히 하였다. 그는 루터, 부처, 츠빙글리, 멜랑히톤, 오이콜람파디우스 같은 개혁자들의 자료를 읽었다. 그 밖에 초대교회 공의회 자료,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들의 저서를 공부하였다. 무엇보다도 성경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있었다. 불과 27살 되던 해 신학을 공부한 적도 없는 평신도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출판하였다.

 

23살 때 처음 쓴 책인 ‘세네카의 관용론 주석’은 크게 실패하였다. 그는 자비로 출판하고 100권의 책을 사서 공짜로 나누어 주었다. 대학교수들을 찾아다니며 강의 교재로 사용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는 교수도 되지 못했고, 책도 팔리지 않아 빚더미에 앉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학문의 길을 계속 걸어갔다.

 

27살 때 쓴 기독교 강요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기독교 강요는 먼저 프랑수아 1세에게 프랑스 개혁교회를 변호할 목적으로 썼다. 왕이 생각하는 것처럼 프랑스 개혁교회는 급진적 재세례파가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이 비난하는 것처럼 개혁자들은 교회를 어지럽히고 깨트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되신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 되게 하고 거룩함과 보편성을 유지하는 사람임을 역설하였다. 그는 고국에 남아서 온갖 박해를 받는 프랑스 개혁교회를 염려하며 책을 썼다. 지도자들이 숙청당하고 마땅히 그들을 이끌 사람이 없는 개혁 교인들에게 바른 종교개혁 사상을 전수하기 위하여 글을 썼다. 기독교 강요 출판은 칼빈을 일약 국제적인 종교개혁자가 되게 하였다.

 

 

칼빈은 언제나 책에 둘려싸여 있었으며, 늘 한 손에 책을 들고 있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다른 종교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칼빈은 제네바 종교개혁을 이끌어 갈 때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교육이었다. 제네바에는 아카데미가 개설되어 인문학과 신학을 함께 공부하였고, 그곳에는 매우 훌륭한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 건립은 모든 개혁파 교육기관의 두드러진 점이다.

 

그는 1536년 출판한 기독교 강요는 여러 차례 개정하였다. 1536, 1539, 1543, 1545, 1550, 1559, 총 6번 출판하였는데 그때마다 분량이 늘어났다. 기독교 강요는 그가 평생 끊임없이 공부하였다는 증거다. 한번 만든 강의안 하나로 일평생 우려먹는 교수도 있지만, 칼빈은 평생토록 성경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여 나아갔다. 기독교 강요 최종판은 4권 8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독교 강요는 종교개혁 사상을 체계화한 책으로 후대 모든 개혁신학의 토대가 되었다.

 

그런데 과연 한국 목회자 중에 이 귀한 기독교 강요를 일독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아니 성경이라도 일독한 목회자가 몇 명이나 될까?

 

 

<참고도서>

 

1. 헤르만 셀더르 하위스, 칼빈, 조숭희 옮김, (서울 : KOREA.COM, 2003)

2. 볼페레트 더 흐레이프, 칼뱅의 생애와 작품 세계, 박경수 옮김,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2016)

3. 크리스토프 슈트롬, 개혁자 칼뱅, 문명선, 이용주 옮김, (서울 : 넥서스 cross, 2009)

4. 이동희, 꺼지지 않는 불 종교개혁가들, (서울 : 넥서스 cross, 2015)

5. 존 칼빈, 라틴어 직역 기독교 강요, 문병호 옮김, (서울 : 생명의 말씀사, 2009)

6. 스티븐 오즈만, 개혁의 시대, 손두환, 강정진 옮김, (서울 : 칼빈서적, 1998)

7. 김유정, "근대 유럽 지식네트워크의 중심 제네바 대학 : 칼뱅의 시대, 종교개혁과 대학의 설립 배경을 중심으로" ⌜EU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2014)

8. 신현광, "종교개혁과 칼빈의 교육" ⌜신학지평⌟ 15집 (2002)

 

 

https://brunch.co.kr/@rothem/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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