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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신학의 본질

Sola. 2024. 7. 16. 08:00

 

개혁주의 신학의 본질

 

한병수 교수 / 강윤석 강도사 요약 (2019.4.3)

 

 

(이글은 한병수 교수님의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 서론 제 8 장 개혁주의 신학의 본질]을 요약한 것입니다. 양이 많지만 도움이 되실 거라 믿고 여기에 올립니다.^^)

 

 

첫째,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 안에서 성경과 더불어 성경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가는 규범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 기록된 것은 한 이오타도 묵과하지 말아야 하며 동시에 성경의 기록은 인간의 욕망과 호기심을 따라 함부로 범하지 말아야 하는 침묵의 경계선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직접적인 언급이 없는 사안들에 대해 우리는 생각과 행위에 있어서 성경이 말하고 제시한 의미론적 경계를 넘어가지 않도록 적정과 절도의 규범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둘째, 개혁주의 신학의 현저한 특징은 기독교의 가장 바른 전통을 가장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신학 자체가 신학의 새로운 발명이나 생산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셋째, 개혁주의 신학은 최고의선(summum bonum)이신 하나님 자신만을 높이며 하나님이 전부인 신학이길 원합니다. 성경의 목적이 하나님 자신의 계시이고 그런 계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고 구원을 얻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면 신학도 이러한 성경의 목적에 부응하여 하나님만 높이며 하나님만 드러내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계시의 목적이 하나님을 계시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면 성경만이 아니라 일반계시 혹은 자연과 모든 만물도 하나님을 증거하고 드높이는 극장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네 번째, 개혁주의 신학은 사랑과 진리, 정의와 평화, 이론과 실천, 지식과 지혜가 입맞추는 신학이길 원합니다. 진리에 있어서는 가장 엄밀하게, 사랑에 있어서는 가장 관대한 신학이며, 용서에 있어서는 한없는 긍휼이 넘치는 신학이고, 하나님의 가장 깊은 것도 통달하는 가장 좁은 신학을 추구하는 동시에 정죄의 돌을 던지고 죽음의 칼을 휘드르는 원수까지 사랑하고 축복하는 넓은 신학을 추구합니다.

 

다섯째, 개혁주의 신학은 "다섯 가지 오직"(Five Solas)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1) 오직성경만이 신앙의 삶의 최종적인 척도라는 의미에서의 오직성경

2)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요 주님만이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 자체라는 의믜의 오직 그리스도

3)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과 성화 가능함으로 오직은혜

4) 오직 믿음

5)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돌려져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로써 개혁주의 신학은 사람의 기준과 사람의 노력과 사람의 공로와 사람의 힘과 사람의 자랑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신학이길 원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개혁주의 신학은 "튤립(TULIP)"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전적부패,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 인간의 제한속죄,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견인을 견지하고 있습니자.

 

일곱번 째, 개혁주의 신학은 성찬에 관하여 천주교의 화체설과 루터파의 공재설과 쯔빙글리 계통의 단순한 기념설이 아니라 실재적인 영적 임재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육체적 장소의 임재에 반대하는 공리로서 "유한은 무한을 담지 못한다"(finitum non capax infiniti, Extra - Calvinisticum)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칼빈의 경우 그리스도 예수가 하나님이 되시기에 모든 곳에 거하실 수 있기 때문에 성찬에 실재로 임하시나 본성과 관계하는 ´토툼´(totum)의 방식이 아니라 위격과 관계하는 ´토투스´(totus)의 방식으로 계신다고 말합니다.

 

여덟번 째, 개혁주의 신학은 신구약의 통일성을 주장하되 실체의 통일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풀이하면 항상 어느 시대나 같은 교리가 있었다는 것(교리의 통일성), 우리와 참된 믿음의 통일성 안에서 우리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믿음의 통일성), 같은 중보자에 대한 신뢰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중보자의 통일성), 아버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성부의 통일성), 같은 영으로 다스림을 받는다(성령의 통일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점에서 우리와 구약의 성도들 사이에는 실체에 있어서 차이가 없고, 우연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아홉번 째, 교회의 정치에 관련된 것으로서 개혁주의 신학은 천국의 열쇠권이 베드로 개인(unus)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회(unitas)에게 주어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Sola 주: 이것은 한병수 교수님이 잘못 이해하신 것으로, 정통개혁주의 신학은 천국의 열쇠권이 베드로 개인에게 주어진 것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사도들을 대표해 베드로에게 주어졌다는 장로회의 입장을 견지합니다. 반면 회중파는 천국의 열쇠권이 '사도들'이 아닌 '믿는 자들'을 대표해서 주어졌다는 잘못된 입장을 견지합니다.)

 

헤르만 바빙크는 칼빈을 따라 열쇠권이 독재적, 독자적, 주권적 통치가 아니라 "섬김"과 관계하며 "영적이고 도덕적인 권세"라고 했습니다.

 

열번째,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와 세속정치 사이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정치와 구별되는 교회의 고유성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교회의 유일한 왕이시며 머리라는 점에 있습니다.

칼빈은 성도들의 자유가 하나님을 향한 자유이며 세상의 정권과 상전에 대해서도 하나님 앞에 순수한 양심, 즉 "모든 죄악이 변명할 수 없도록 고발되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의 양심"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칼빈이 보기에 교회 안에서의 저항은 "성경의 순수한 교리"가 순수하게 보존될 수 있도록 "모든 그릇된 교리들의 모호한 속임수"에 대한 저항입니다. 이러한 진리에 핍박의 칼을 겨누는 세속권력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저항이라 여깁니다.

 

열한번째, 개혁주의 신학은 주일성수 및 예배 의식 부분에서 정해진 예식서에 제한되는 것을 거절하고, 부활절이나 성탄절같은 절기를 지키지 않으며, 세례시 십자가 상징을 긋지 않으며, 견신례 의식을 거절하고, 성만찬시 무릎을 꿇지 않으며, 성만찬을 사적으로 집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칼빈의 관점을 따라 특별히 청교도 대부분은 안식일을 "영원한 도덕법"인 십계명의 하나로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종결된 의식법적 요소가 제거된 도덕법적 준수 차원에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른 개혁주의 신학의 구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기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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