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칭의 교리
박양수 목사 (2014.11.1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장로교회의 교리적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확실하게 가르치기 위한 유용한 교육자료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으로 예수를 믿음으로 의로워지게 하고 그 의를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청교도들의 신앙고백서들의 여러 부분을 통해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다. 그 중에서 칭의 교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믿음에 의한 칭의
청교도들과 개혁주의자들은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것은 칭의 문제로 간주했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은 “칭의가 기독교의 축이며 기둥이다”라고 했고, 존 오웬(John Owen)은 칭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400페지의 논문을 썼다. 루터는 “칭의는 줄기에 해당한다. 여기서 모든 교리들은 흘러나온다. 오직 칭의 교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낳고 양육하고 세우고 보존하며 방어한다. 이 교리가 없으면 교회는 단 한 시간도 지탱할 수 없다. 칭의 교리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1).고 했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을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칭의에 대하여 “칭의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자기 보시기에 저희의 인격을 의롭게 여기시고① 받아드리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거저 주신 은혜의 행위이다② 이것은 저희에게 있는 무엇이나 저희가 행한 무엇으로 된 것이 아니고③ 다만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순종과 충분하신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전가시키시고④ 믿음으로만 받게하는 것이다⑤.(2)
이와 같이 신앙고백서는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힘입어 그 위에 머무는 믿음만이 칭의의 유일한 수단이다. 청교도들은 법적인 의의 선명성을 일차적으로 굳게 유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칭의와 성화를 언제나 병행했다. 로마서6장 1-2절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하면서 칭의를 얻은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여기서 칭의와 성화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이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티켓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죄를 짓고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원죄와 자범죄의 문제가 대두된다. 원죄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에 의해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법적으로 선언 받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면서 완전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어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죄인데 이를 자범죄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자범죄를 용납하신다는 말인가? “그럴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면 그 순간에 칭의의 근거가 되는 의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 또한 동시에 성령이 그 사람 안에 거 하면서 거룩(성화)의 사역을 시작하신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은 누구든지 법적이고 외적이며 완전한 칭의와 함께 실제적이고 내적이며 불안전한 성화를 받는다. 그레서 야고보서는 의롭게 된 사람은 자기 의로움의 실체성에 대한 증명으로 반드시 선한 행위를 보여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신자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을 때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칭의와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성화를 비교하여 설명할 때 신분상의 성화와 점진적인 성화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와 연합 되는 것과 중생과 칭의와 양자됨은 단번에 완성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들이다. 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들은 반복 될 수 없다. 즉 신분적인 성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별도로 구별 되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예를들면 고전1:2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점진적 성화를 촉구하는 말씀으로 고후7:1에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 했다. 살전5:23절에도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이렇게 신분상의 성화와 점진적인 성화는 구분되며 성경은 대부분 신분상의 성화를 얻은 사람이 점진적인 성화를 이룰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1. 성경에서 말씀하는 칭의
창세기15:6절에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첫 번째 사람이 아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하나님을 믿으로 의로워진 사람들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로마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복음이라고 소개한다. 이 복음은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의의 계시인데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통장에 넣어주셨다(롬1:16-17). 칭의는 로마서에서 체계적으로 쓰여졌고 갈라디아서에서 강력하게 변호하며 빌립보서에서 열열히 찬양한다(빌4:4-11).
2. 칭의란 말의 개념
칭의란 용어는 법적인 용어이다. 이 용어는 법정에서 빌린 말이다. 칭의는 당사자의 내적 상태가 아닌 법적 상태에 관한 용어이다. 의롭게 하다는 헬라어 디카이우(dikaioo)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법적인 성격을 갖는다. 오웬은 이러한 용어들은 어떤 사람을 사면이나 죄가 없다고 선언하는 의미로 사용된 법적인 신분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실상은 죄가 있는데 어떤 사람의 덕분으로 죄가 없다고 간주했다. 고후5: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하심이라”고 했다. 칭의에는 점진적인 단계가 없다. 온전한 의미에서 즉각적으로 의롭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사람들에게 입혀진 것이다. 칭의는 아버지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이다. 칭의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첫 째는 죄(원죄)의 용서이다. 둘째는 죄인의 신분 상태가 의롭게 되는 것이다.
3. 칭의는 생활에 연결 된다.
로마서5장에서 기술된 계속적인 칭의론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칭의에 기초한 것을 알 수 있다. 롬5:1-11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여러 측면에서 칭의가 기반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1)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은 화평을 이룬다. (2)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기도의 특권을 갖는다.(3)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인내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게 한다. (4)그리스도인은 자기 가슴 속에 부어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즐긴다. (5)끝까지 인내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보장을 받는다. 이는 구원의 확신과 영적 체험에 연관된 것이다.
4. 칭의 속에 성화도 들어있다.
초기 기독교 및 중세 기독교회가 칭의 교리에 분명하지 못했다. 그 원인은 어거스틴이 라틴어 동사인 “의롭다(Justificare)"를 '의롭게 만든다' 라고 해석 했기 때문이다. 칭의란 지금까지 살폈듯이 "의롭다고 선언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칭의란 그리스도의 의를 신자들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다. 만약 어떤 종류의 선행이라도 칭의를 받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덧붙여지면 이 칭의 교리는 즉시 무효화 된다. 갈2:21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고 했다. 롬3: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서 은혜(그리스도께)로 들어가게 하는 안내자일 뿐이다.
칭의를 점진적인 성화와 연결시키면 칭의는 효력을 발생하지 않는다. 칭의를 어떤 행위를 통해서 만드는 것으로 이해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된다. 존 오웬은 로마 카토릭의 교리가 두 개의 칭의론에서 나왔음을 지적했다. 첫 째 칭의는 세례에서 나온다고 했다. 카토릭에 의하면 세례(영세)는 은혜를 주입하는 행위로 세례를 통해서 원죄가 사라지고 모든 죄악된 습관들이 추방된다고 했다. 둘 째 칭의는 선행의 의다. 믿는 사람은 이 의로 영생을 얻는다. 이 선행의 의는 믿는 사람이 일생 동안 계속해야 하는데 이는 고해성사가 포함되며 사 후에는 연옥불로 정화시켜야 한다고 했다(3) 존 오웬은 "로마 카토릭의 가르침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칭의 교리를 얼마나 왜곡시키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거저 받는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의를 옮겨 받는 칭의가 완전히 왜곡되었다. 영생의 확신은 나중에 연옥불로 완성된다는 불확실한 과정에 의존하고 있다. 성경적 칭의는 로마서 8장에서 너무 확실한 칭의 교리를 확립한다. 롬8:33-34절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는 자시니‘라고 확실히 말씀하신다. 칭의는 법적인 용어로 하나님께서 죄인을 죄가 없다고 선언하는 주권적인 선언이다. 이 때 성화도 함께 이루어진다. 그러나 성화는 법적인 선언속에 들어있지만 삶을 통해서 점진적인 성화를 이룰 것을 성경 대부분에서 말씀하고 있다. 생활속에서 말씀을 지켜 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성화는 구원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고 상급과 복스러운 삶과 관계되는 것이다.
-----------
주1) [청교도들은 누구인가? ]에롤 헐스, 이중수 역 [양무리서원 2001] p166.
주2)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 강해] 지. 아이 윌리암슨. 최성덕 역 [성광문화사 ]p351
(1)롬3:22,24,25, 4:5 (2)고후5:19,21. 롬3:22, 24, 25, 27, 28. (3)엡1;6,7. 롬3:28. 딛3:5,7. (4)롬3:24,25, 5:17, 19. 4:6. (5)롬5:1, 갈2:16, 빌3:9, 롬3:25,26, 행10:43.
http://blog.daum.net/yangsu6882/113
https://m.youtube.com/@osola24 Osola (유튜브)
https://cafe.naver.com/data24 기독교 자료 (네이버 카페)
'신앙에 유익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년기 사상은 어디에서 왔는가? (1) | 2024.08.21 |
---|---|
윌리엄 구지 (William Gouge, 1575 - 1653) (0) | 2024.08.20 |
J.Calvin과 웨스트민스터 신학자 W.Gouge의 주일관을 통한 주일성수의 당위성 고찰 (논문) (0) | 2024.08.14 |
성경해석 - 정통교리 VS 자신의 이성 (0) | 2024.08.13 |
중생과 그 이후 (0) | 2024.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