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기 사상은 어디에서 왔는가?
임진남 목사 (2017.12.14)
지상의 예루살렘을 통해 그리스도가 천년동안 왕으로 통치하는 것은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 “천 년”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단어 때문에 천년왕국이라는 말이 만들어 졌다. 그런데 이 천년 사상을 처음으로 가르친 자들이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천년기는 유대묵시문학에서 시작이 된 것이다. 유대묵시문헌 제2 바룩서와 제4 에스라서에서 유대인들이 지상에서 만국을 통치한다고 하는 사상이 나오고 있다.
유대인으로 구성된 초대교회에 자연스럽게 천년 사상을 잔재했다. 2세기 변증가 저스틴에 의해 더욱 체계화되었다. 여기에 이레니우스가 천년 사상을 개진함으로 기독 교회는 천년 사상이 바른 성경적 가르침인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부 오리겐이 천년 사상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성경적이지 않다고 반박했다. 381년 콘슨타티노폴리스 공회의에서 천년 사상을 가르치는 것을 정죄했다. 또한 교부 어거스틴이 천년기를 배격하면서부터는 교회에서 천년 사상은 완전히 사라졌다. 어거스틴은 천년왕국을 가르치는 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해야 한다고 했다. 바른 교회는 천년동안 그리스도의 통치가 지상에서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확정했다. 그 뒤 천년왕국에 대한 가르침은 일부 소수 이단적 분파들에 의해 비밀리에 전수되었다.
종교개혁 때 재세례파에 의해 천년왕국이 재생되어 보급되었는데, 보편적인 성경해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종교개혁시대 재침례파에서 언급되었다가 천년기는 점점 확산되었다. 루터파는 1528년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에서 ‘천년 왕국은 유대인들의 꿈이다’ 라고 언급함으로 천년 사상이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19세기 중엽 영국의 다비가 성경 역사를 세대주의로 구분하면서,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을 문자적으로 강조하면서 천년왕국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부흥운동과 복음주의 교회들이 수용했다. 강력한 부흥운동의 여파로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에게 천년왕국이 전파되었다. 한국교회는 천년왕국이 성경의 가르침인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한국교회에서 유대묵시문학이 출발한 천년기를 기독교 정통 이해로 전이시켰다. 미국 신학교 일부에서는 세대주의적 천년기 혹은 역사적 천년기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 근원은 유대묵시문학이고, 다비의 성경 이해라고 분류하는 것이 정당하다.
우선 세대주의 성경해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종말론 사상에 혼돈을 갖는다. 대표적으로 주장되는 천년왕국은 전천년설과 후천년설이다. 그리고 문자적 ‘천년’을 견지하지 않는 무천년설이 있다. 전천년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 전에 재림하셔서 성도들을 부활시키고 예루살렘에서 모든 나라를 정치적으로 통치하시는 왕으로 계실 것을 말한다. 이 때 모든 성도들도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한다고 하는 가르친다. 후천년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초림과 재림 사이에 천년왕국으로 주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지금 왕으로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무천년설은 주님의 초림과 재림사이에 주님께서 도둑 같이 갑자기 재림하여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새 창조의 역사를 이루신다고 하는 것을 주장한다. 어떻게 보면 후천년설과 무천년설은 비슷하게 보인다. 하지만 가장 많이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사상은 바로 예수님께서 천년왕국 전에 재림하셔서 왕으로 통치한다고 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 전천년설을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신학교에서 배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은 결국 세대주의 성경해석에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배웠다고 해서 그것이 바른 성경해석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세대주의신학에서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예루살렘 회복에 있다. 지상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여전히 대망하고 있는 동물의 피의 제사가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그들은 그리스도를 기대하며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하는 중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A. D.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을 파괴시키고 모든 제사장들을 다 죽이셨다는 역사적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파괴시키고 레위족속을 멸절시킨 것은 더 이상 지상에서 어떤 피의 제사도 용납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통해서만 믿음으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경륜의 완성을 의미한다. 예루살렘이 파괴되어 거의 2천년 동안 이스라엘은 역사가 없는 민족이 되었다. 세상에서 나라 없는 민족으로 떠돌다가 1946년에 영국과 미국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어느 정도 지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이라면 2,00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육체적 아브라함의 혈통을 보존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2,000년 동안 한 민족이 나라가 없이 이방세계에서 떠돌아 살면서 그들의 피가 섞이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98% 이상이 육체적으로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닌 이방의 피가 섞인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면서 타락한 인간들은 계속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는 것을 원치 않고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는 것을 찾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세대주의 종말론이 한몫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천 년”이라고 하는 계시록의 말씀을 단지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1,000”이라고 하는 숫자는 문자적으로 천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이다. 그것은 아주 많은 시간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신 지가 2,00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아직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고 있다. 아니면 내일이라도 오실 수 있지만 주님께서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오실 수 있다. 그러므로 “천 년”에 대한 의미를 인간의 수의 개념에 대비시켜서는 안 된다. “천 년”이라고 하는 단어는 문맥상 부활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첫 째 부활과 두 번째 부활에 대해 말씀하는데 “천 년”안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는 중생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영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계 19장에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시고 복음으로 세상을 통치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천년 동안 왕국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와 시간 속에서 만왕의 왕으로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지상에서 예루살렘을 통해 세상을 통치하는 가르침은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다.
우리는 천년기 사상은 유대묵시문학에서 기원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기독교 정통 신앙에서 천년기는 배격했음을 밝혔다. 그러나 다시 천년기가 만연한데 기독교 정통 신앙으로 미화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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