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 5대 교리 탄생의 역사적 배경
닉네임: 산소 (2009.6.3)
프랑스의 위대한 개혁자「존·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교회역사에 전무후무한 정통기독교 교리를 체계화시킨 신학자이다. 그것은 교리뿐만 아니라, 교회의 행정, 성도의 신앙생활, 인간사회 생활 전반에 걸친 위대한 개혁이었다. 성경중심주의와 영역주권적(領域主權的)인 개혁의 물결은 전 구라파에 파급되어 로마 카톨릭은 힘을 잃고, 개혁주의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라는 대의민주제도(代議民主制度)아래 교회와 사회는 다 방면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은「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개혁주의의 위대한 유산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지상교회는 항상 마귀와의 전투에 직면해야 했다. 그것은 제네바를 기점으로 절대주권 사상과 성경정치(Bibiocracy)를 정착시켜 놓고 개혁주의 교회를 이끌어가던 칼뱅이 55세의 아까운 나이로 소천(召天)된 후 약 40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1603년경, 장소는 네델란드였다. 당시 네델란드는 가장 정통 신앙을 고수하는 개혁주의의 본산지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정부의 한 관리 출신인 "코른헤르트"(Coornhert)라는 자가 나타나서 칼빈주의의 "주권", "예정" 등을 반박하는 글을 써서 정부에 올렸던 것에서 사건은 터지기 시작했다. 정부와 국민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킨 격이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칼빈의 수제자「베자」(DeodreBeza)는 분개했다. 이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자기와 개혁주의를 같이 해온 화란신학교 교수「알미니우스」(James Arminius)를 불렀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코른헤르트를 찾아가 진상을 알아보고 그에 대해 반박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알미니우스는 즉시 진상에 나섰다. 그리하여 코른헤르트의 글을 읽었다. 그런데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다. 코른헤르트의 글을 읽고 알미니우스가 그만 감동을 받아 버렸으니 말이다. 이제 알미니우스는 총 뿌리를 칼빈주의 쪽에 돌려대고 난사하기 시작했다. 「절대주권은 잘못되었다. 예정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아주 타락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인간의 믿음을 보고 선택한다. 믿음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산물이다.....」라고. 칼빈주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어처구니없는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칼빈주의는 진통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교회에 환란이 찾아 든 것이다.
그리고 1609년 알미니우스는 죽었다. 그가 죽은지 일 년 후인 1610년, 그들을 추종하던 무리들, 곧 알미니안주의자(Arminianists)들은 알미니우스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5개의 반항의 글을 발표했다.
1) 인간은 완전 타락하지 않았고 자유의지가 남아 있다(자율구원성).
2) 하나님은 인간의 조건을 보고 선택하였다(예지예정 및 조건선택).
3)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다(만인구원).
4) 성령의 은혜는 충분히 저항 할 수 있다(자유의지).
5) 구원 얻은 사람도 잘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궁극적 구원 실패가능)
.이것이 바로 알미니안주의의 5대 항론(Remonstrance)이다.
칼빈주의 정통신앙을 자랑스럽게 지켜오던 화란 정부와 교회는 이러한 반대에 부딪혀 그냥 좌시할 수만은 없었다. 그리하여 화란의회는 세계적인 종교회의를「돌트」(Dort)라는 도시에 개최하기에 이르렀다(1618. 11. 13). 스위스, 영국, 신성로마제국, 독일 등 각지에서 온 27명의 사절과 84명의 교회지도자, 그리고 18명의 정부 고위층이 참가한 대 회의였다. 이것이 돌트 총회(Synod of Dort)이다.
신본주의에 기초를 두고 구원을 가르치는 칼빈주의의 신학과 인본주의에 기초를 두고 구원을 가르치는 알미니안주의 신학과의 대논쟁이 이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신학 대논쟁은 5세기경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을 연상시킬 정도로 17세기 초를 뜨겁게 달구었던 개신교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신학 대논쟁의 하나였다. 이 회의에서 칼빈주의는 알미니안주의 5대 항론을 면밀히 분석하고 신랄하게 비판을 가했다. 7개월간에 걸쳐 총 154회기를 거듭한 결과는 당연히 칼빈주의의 승리였다.
대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인간의 공로를 내세우는 가장 흉악한 이설(異說)임을 확인했다. 드디어 만장일치로 5대 항론을 기각시켰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적극적 대응책을 세위기로 했다. 그것은 차제에 칼빈주의를 확고히 하는 어떤 강령(綱領)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알미니안주의 5대 항론에 대치되는 "칼빈주의 5대 강령"(The Five Points)을 작성, 채택,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1619. 5. 9).
이렇게 해서 결국 이 회의를 통해 알미니안 주의자들에 반대하는 칼빈주의적 입장이 정리되어 5개항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것을 소위 '칼빈주의 5대 교리'라고 부른다. 이렇게 해서 알미니안주의는 정죄를 받고, 주모자들은 처형을 시켰다. 그리고 추종무리들은 모두 국외로 추방시켰다. 이 신학 논쟁에 의해서 화란의 개신교는 양대 산맥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 후 한편 알미니안주의는 네덜란드를 벗어나 , 영국으로 건너가 명맥을 유지하다가,「요한·웨슬레」(John Weskey)가 그 일파에 감명을 받고 알미니안 주의자가 된 후, 마침내「감리교」(Methodist)를 창설하기 이른다. 그리고, 그의 제자인 감리교회와 여기서 분파한 여러 오순절종파와 유니테리언주의와 침례교, 그리고 구세군의 교리가 되었다.
칼빈주의 신학은 장로교, 복음주의 교회에 영향을 주게 되어 신본주의를 신봉하는 장로교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로서 채택되었고, 장로교나 개혁교회의 기본구원관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조국교회는 교단을 초월하여 칼빈주의 신학을 많이 따르고 있다. 침례교에 이00목사 순복음교회에 조00목사 등등 유력한 목사님들 께서도 원래 알미니안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교단목사이지만 지금은 칼빈주의 자임을 천명하고 있다.
특히 침례교 목사인 스펄젼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였다.
“내가 전하고 있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도, 새로운 교리도 아니다.
나는 '칼빈주의'라는 별명이 붙은 저 강력한 옛 교리들을 기쁘게 선포한다. 여러분들도 차츰 칼빈주의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참된 하나님의 진리이다'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챨스 스펄젼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였다
“내가 하나님의 주권을 전파할 때, 사람들이 분해서 입술을 깨물고 이를 가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오늘날의 교조주의자들은 하나님을 받아들일지는 모르나, 그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그들을 지배하게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극단주의자들이라고 매도당하고 있다. 호의를 가지고 우리를 바라보거나 우리에 관해 말하는 목사는 거의 한 사람도 없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주권과 그의 거룩한 선택과 그의 백성에 대한 특별한 사랑에 관한 강력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찰스 스펄젼.은 계속하여 또 이렇게 말씀한다.
"'칼빈이 전파하고 어거스틴이 전파하고 바울이 전파한 옛 진리야말로 오늘날 내가 전파해야 할 진리이다.만일 전파하지 않으면 내 양심과 내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된다. 나는 진리를 조작할 수 없다. 나는 교리의 거친 면을 잘라내는 따위의 일은 전혀 할 줄 모른다. 스코틀랜드 전역을 뒤흔들어 놓은 존 낙스의 복음은 나의 복음이다. 그의 복음은 영국을 다시 한번 뒤흔들어 놓아야 한다."' 아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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