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칼럼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 (오디오 지원)

Sola. 2023. 8. 4. 06:00

[Osola 유튜브] (1)~(2)편까지입니다. '기독교 자료' 카페의 '오디오 칼럼' 게시판에 다른 자료들도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phiylkalb4&list=PLJ9genfsSDz2xqEq2DVYk2CuhIeVzDOwv&index=15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1장 해설

김명도 교수 / 튤립 교육선교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교회는 하나님이 보실 때 통탄할 정도로 타락해 가고 있다. 20세기 초엽 독일에서 건너온 “종교사학파(宗敎史學派, Religionsgeschichtliche Schule)와 영국에서 들어온 이신론(理神論,Deism)으로 인한 “자유주의”가 미국에 침투하여, 당시 프린스톤 신학교 신약학 교수였던 John Gresham Machen 박사(1929년 Westminster 신학교 초대교장)으로하여금, 1924년에 Christianity and Liberalism(기독교와 자유주의)라는 책을 펴내게 하였고, 그 자유주의는 Emil Brunner 와 김재준 목사를 통하여 한국에 상륙하여, 교단이 합동측(숭동측)과 통합측(연동측)으로 갈라지게 만들더니, 1960년대부터는 프랑스 빠리의 소르본느(Sorbonne) 대학의 석좌 교수이던 Michel Foucault 가 Madness and Civilization (狂氣와 文明)이란 책을 쓰면서 Postmodernism (後期 近代主義)를 도입하여 Jacques Derrida, Richard Rorty 등이 미국의 문화를 침식했다.

 

개혁주의 신학을 가장 잘 정립한 신조는 1643-·1647년에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서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3-1647 London, England)이다. 전문 33장으로 되어 있는 이 역사적 신앙고백서는 개혁주의 신학의 금자탑(金子塔)인데, 제21장은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잘못된 예배를 바로 잡자. 먼저, 신앙고백서를 원문인 영문으로 인용한 다음에 우리말로 번역한 후에, 이어서 그 신앙고백서가 가르치는 바를 설명하고자 한다. 영문 중 철자가 이상한 것은 신앙고백서 제정 당시(17세기) 사용되던 중세 영어의 철자법을 그대로 인용했다(예: 21:1의 sheweth 는 오늘날의 shows이다).

 

 

XXI OF RELIGIOUS WORSHIP, AND THE SABBATH-DAY

제21장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

 

1. The light of nature sheweth that there is a God, who hath lordship and sovereignty over all; is good, and doeth good unto all; and is therefore to be feared, loved, praised, called upon, trusted in, and served, with all the heart, and with all the soul, and with all the might. But the acceptable way of worshiping the true God is instituted by himself, and so limited by his own revealed will, that he may not be worshiped according to the imaginations and devices of men, or the suggestions of Satan, under any visible representation, or any other way not prescribed in the holy Scripture.

 

자연의 빛은 만물의 주가 되시고 만유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는 선하시고 만유에 선을 행하시며 그러기에 온 마음과 온 영혼과 온 힘을 다하여 경외하고 사랑과 찬송을 드리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의지하고 섬겨야 할 하나님이심을 보여 준다. 그러나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받으실 만한 예배 방법은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셨으며, 그 계시된 뜻에 국한되었으므로 사람의 상상이나 조작 혹은 어떤 형태로 표현되든지 사탄의 암시나 성경에서 처방하지 않은 다른 방법을 따라 예배해서는 안 된다.

 

해설

여기서 가르치는 것은 자연계시를 통해서 또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며, 그 하나님은 마땅히 우리의 경배를 받으실 분임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계시는 인간이 참 조물주이신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연 계시만으로는 하나님에게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 지 모른다.

 

하나님은 자신이 경배를 받으실 방법을 친히 성경에 기록하셨는데 그가 정하신 방법대로 예배드리는 예배만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말이다. 사람이 조작한 예배는 절대로 받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종종 예배형태를 조작해서 교인들을 즐겁게 하지만 그런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그 하나님을 하나님이 정해주신 방법대로만 경배하되, 온 마음과 온 영혼과 온 힘을 다하여 경외하고 사랑하며 의지하고 섬겨야 한다고 가르쳐 준다.

 

 

 

2. Religious worship is to be given to God, the Father, Son, and Holy Ghost; and to him alone; not to angels, saints, or any other creature; and, since the fall, not without a Mediator; not in the mediation of any other but of Christ alone.

 

예배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이므로 하나님에게만 드려야 하며 천사들이나 성자들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드려서는 안 된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는 중보자 없이는 예배를 드릴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해서만 드려야 한다.

 

해설

제 2절에서 가르치는 것은 예배는 하나님 아버지에게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 모두에게 드린다는 것과 또 예배는 하나님에게만 드려야 하며, 천사나 마리아나 다른 성도(천주교에서는 공로를 세운 사람은 시성[諡聖, canonize]하여 경배의 반열에 세운다)에게 예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천주교에는 예배가 세 가지 있다.

 

Doulia(둘리야)는 성자(시성한 사람)와 천사에게 드리는 예배이고, Hyperdoulia(후퍼 둘리아)는 마리아에게만 드리는 예배이고, Latreia(라트레이아)는 성삼위 하나님에게만 드리는 예배인데, 이는 비성경적이다. 우리의 경배의 대상은 하나님뿐이며 다른 어떤 것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예배할 때는 예수님을 중보자로 해야 한다. 타락 전에는 아담이 직접 하나님을 예배했어도 타락한 후에는 반드시 중보자 없이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데, 그 중보자는 오직 한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교훈한다.

 

 

 

3. Prayer, with thanksgiving, being one special part of religious worship, is by God required of all men; and, that it may be accepted, it is to be made in the name of the Son, by the help of his Spirit, according to His will, with understanding, everence, humility, fervency, faith, love, and perseverance; and, if vocal, in a known tongue.

 

기도는 감사와 함께 예배의 특별한 일부분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며, 받으실만한 기도는 성자의 이름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 뜻대로 마음으로 경외함과 겸손과 열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드려야하며, 소리를 내어 기도할 때는 알려져 있는 말로 해야 한다.

 

해설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다.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기도와 감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바이다. 항상 기도에는 4가지 요소를 내포하는데 영어로 “ACTS”이다. “ACTS”란 Adoration(경배), Confession(죄의 고백), Thanksgiving(감사), 그리고 Supplication(간구)이다. 기도할 때 반드시 이런 순서를 지키지 않아도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것이 이 네 가지 요소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리고 필요한 것을 구하되 항상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뜻이어든 이루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

 

반드시 예배에는 기도가 있어야 하다. 공기도(公祈禱)는 5분 내로 짧게, 사기도(私祈禱)는 시간제한이 없다. 그러나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금하신다(마태 6:7). 중언부언한다는 말은 기원1세기에 풍미하던 영지주의의 mantra(주문 呪文)을 말한다. 그리고 “주여, 주여, 주여, 주여, 주여”하는 식의 기도를 말한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기도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성자 예수의 이름으로 드려야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드려야 한다. 우리는 빌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이 친히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롬 8:26). 기도는 겸허하게, 그리고 열심히 인내심을 갖고 믿음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소리를 내어서 기도할 때는 반드시 <세상에 알려진 언어>로 기도해야 하며, 세상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할 수 없다는 말이다. NAPARC 회원 교단들이나 특히 가장 정통으로 믿는 미국의 정통장로교단이나 모두 하나같이 이 문제에 대해서 각별하게 엄격하다.

 

 

 

4. Prayer is to be made for things lawful, and for all sorts of men living, or that shall live hereafter; but not for the dead, nor for those of whom it may be known that they have sinned the sin unto death.

 

기도는 모든 합법적인 것을 위해서 하고 살아 있는 온갖 사람들과 앞으로 살 사람을 위해서 하되, 죽은 자들이나 사망에 이르는 범죄를 범한 자로 알려진 자들을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한다.

 

해설

기도는 합법적인 일을 위해서만 해야 하며, 현재 살아 있거나 앞으로 태어날 어린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며,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서는 안 된다. 또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은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없다. “사망에 이르는 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성경은 요한일서 5:16에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는데 이런 죄에 대해서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라고 한다. 이 말은 누가복음 12:10, 마 12:31, 막 3:29 등에 비추어 생각해야 한다.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들이다. 계속해서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들은 사이비신자 들이다. 육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러하다면 데살로니가 후서 2:11-12절에 비추어 아직 구원 얻은 사람이 아니며, 고의적으로 거역하는 죄를 짓는 무리이므로 스스로 멸망케 된 자들이니 기도하지 말라고 한다. 막 3:29의 내용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보고, 예수께서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의 힘으로 그런 사역을 한다고 하면서 주님을 대적했다. 그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른 죄는 용서받지만 고의적인 불신의 죄,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죄는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다(29-30).

 

 

 

5. The reading of the Scriptures with godly fear; the sound preaching, and conscionable hearing of the word, in obedience unto God, with understanding, faith, and reverence; singing of psalms with grace in the heart; as also the due administration and worthy receiving of the sacraments instituted by Christ; are all parts of the ordinary religious worship of God; besides religious oaths and vows, solemn fastings, and thanksgivings upon special occasions, which are, in their several times and seasons, to be used in a holy and religious manner.

 

경건한 두려움으로 행하는 성경봉독과 건전한 설교와 하나님에게 순종하여 깨달음과 믿음과 경외함으로 말씀을 양심으로 들음과 마음에 은혜가 충만하여 부르는 시편 찬송과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대로 합당한 성찬예식 등은 모두 하나님에게 드리는 일반 예배의 요소들이요, 이외에도 신령한 맹세들과 서원, 엄숙한 금식과 특별한 경우를 당하여 드리는 감사가 있으니, 이것은 그 때와 절기에 따라서 거룩하게 신령한 태도로 행사할 것이다.

 

해설

기도 외에 예배의 요소는 성경 봉독, 설교, 시편 찬송, 성례식(즉 세례식과 성찬식), 서원과 서약(결혼의 서약, 임직자의 서약 등)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사나 장로나 목사로 안수 받을 때 서약하는 일은 성경적이다. 여기서 본문 5절을 자세히 연구하자. 우선, 성경봉독은 경건하게 두려움으로 해야 하며, 공 예배 때 너무 경박하게 회중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너무 빨리 읽는다든지, 경건치 못하게 읽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설교는 교리적으로 건전한 설교를 해야 한다. “건전한 설교”란 성경적인 설교를 말한다. 개인의 경험담이나 간증을 말함이 아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푸는 설교를 말한다. 설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대언자(代言者)이다.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한다. 사람의 말이 아니다. (생략)

 

설교는 건전하게, 다시 말하면 교리가 바른 설교를 하라는 말이다. 분명히 알자. 주의 종으로 세움을 받은 사람이 행한 설교는 모두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는다는 엄연한 사실을(마 7:22-23, 고후 5:10). 말씀을 듣는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양심적으로 설교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 세상의 일을 생각하며 형식적으로 앉아서 설교가 끝나기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편을 찬송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노래하며 은혜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주의 찬송은 종교개혁기부터 악기 없이 시편을 “a capella”로 노래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NAPARC의 회원교단인 “북미주개혁장로교단”, 즉 RPCNA(Reformed Presbyterian Church of North America, Pennsylvania 주 Pittsburgh 에 본부)에서는 지금도 개혁주의 그대로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것을 종교개혁가들은 <Regulative Principle(규범 예배 모범)>이라 불렀다. 요한 칼빈도 악기 없이 시편만을 노래했다. 엡 5:19 나 골 3:16 말씀을보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라고 했는데, 많은 목사들이 찬미는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이고 신령한 노래는 복음성가로 잘못 알고 잘못 가르치지만,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LXX 에 보면 어떤 시편에는 humnos, 어떤 시편에는 그 제목이 psalmos, 어떤 시편에는 humnos psalmou로 되어 있다(예: 시 61, 66, 68, 83,등). 그러므로 “신령한 노래”는 우리의 복음성가가 아니고, 모두 시편을 말함이 자명하다. 악기는 원래부터 개혁주의 예배와 관계가 없었다. 청교도들도 악기 없이 시편을 a capella로 찬미했다. 물론 Luther 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란 찬송가를 착사 작곡한 것은 우리가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Calvin 이 새로운 찬송가을 작사했다는 말은 없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당시 부흥사, 이를테면, Charles Finney(찰스 피니, 1792-1875), D.L.Moody(디 엘 무디, 1837-1899), 그리고 Billy Sunday(빌리 선데이, 1862-1935) 등이 부흥운동을 주도하면서부터 오늘의 찬송가가 등장한다. 이들은 청중의 흥을 더 하고자 기존의 a capella보다 “신나는” 음악과 악기를 사용하며, 그 전에 이미 영국에서 Isaac Watts(아이잭 왓츠, 1674-1748)가 전통을 깨고 자유찬송가를 작사 작곡한 것들을 도입하여, 미국의 부흥사들은 그들의 부흥에 적용했다. 설교 후 “예수를 영접할 분은 앞으로 나오시오” 하는 Billy Graham type의 소위 ‘altar calling" 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D.L.Moody 이며,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다”는 신앙고백을 하도록 한 사람은 Fuller 신학교를 창립한 Charles Fuller 이다. 그는 40여넌간 전도방송을 하며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했다.

 

이런 찬송을 군중이 얼마나 좋아하는가는 오늘 Billy Graham Crusade에서 Just As I Am (우리 찬송가 339장)이 “전매특허” 처럼 불리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본질상 경건한 것을 싫어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오늘의 청소년들이 Rock'n'Roll, hard metal music을 괴성(怪聲)을 지르며 좋아하는 모습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엿본다. Human autonomy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다. Human autonomy가 치유되는 것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변화를 받을 때 되어진다. 진정으로 중생한 청소년은 오늘날 거의 없다. 교회에 출석한다고 모두 자동적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WCF LC. 61). 많은 청소년들이 교회에서 설교 말씀보다 음악에 흥미를 더 느낀다. 그리고 그 음악은 경건미가 전혀 없는 세속화된 곡들이다 (Rick Warren의 목회를 보라).

 

또한, 성찬식과 세례식을 주님이 제정하신대로 행해야 하며 성례식은 받을 준비가 된 사람만 참여해야 한다. 보통 NAPARC의 교단들은 성찬의 경우 Restricted Communion Service(통제적 성찬식)을 행한다. 보통의 교회의 경우는 Open Communion Service (공개적 성찬식)이나, Closed Communion Service(폐쇄적 성찬식)을 행한다. <통제적 성찬식>은 철저히 검증되고 심사를 받아 준비가 된 본 교회 성도들만, 그리고 그 교회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외부 방문 성도들만 성찬식에 참여함을 허락한다. 폐쇄 성찬은 본 교회 성도 중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하고 준비된 사람과 외부에서 방문한 성도라면 역시 죄를 회개하고 성찬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 참여한다. 개방식 성찬은 본 교회 성도 중 세례 받은 사람과 외부에서 방문한 성도 중, 세례 교인들은 모두 성찬식에 참여함을 허락하는 제도이다. 서약하는 일과 특별한 경우 일 년에 몇 차례 금식도 허용되는데, 진지하게 거룩하게 행해야 한다. 무엇이든 “되는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결코 용서되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어디에 보아도 “거룩하게”, “두려움으로”, “경건하게”라는 말을 많이 쓴다. 오늘의 교회 예배 풍속과 비교해 보라. 오늘의 예배에는 무엇이 결여(缺如)되어 있는가? 경건미(敬虔味)가 결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예배에는 거룩한 성격, 즉 거룩한(holy), 경건미(godliness) 그리고 경외감(reverence, fear) 등은 모두 사라진지 오래고, 예배를 사람이 고안(考案)하여 사람의 생각대로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제멋대로 드리지만, 신앙고백서는 <하나님이 제정하신대로 드리는 예배만을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역설한다. <개혁주의 성도>라면 <개혁주의 성직자>라면 다시 생각해야 할 심각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안 받으시는 예배라면 그런 예배를 무엇 때문에 드리는가?

 

 

 

6. Neither prayer, nor any other part of religious worship, is, now under the gospel, either tied unto, or made more acceptable by, any place in which it is performed, or towards which it is directed; but God is to be worshiped every where in spirit and in truth; as in private families daily, and in secret each one by himself; so more solemnly in the publick assemblies, which are not carelessly or wilfully to be neglected or forsaken, when God, by his word or providence, calleth thereunto.

 

복음 아래 있는 지금은 기도나 신령한 예배의 다른 어느 부분이라도 진행되는 장소나 향하여 예배드리는 방향에 매일 필요가 없고, 거기서 해야만 더욱 기쁘시게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모든 곳에서 하나님에게 예배하되 신령과 진정으로 할 것이며, 가정에서는 매일 또 은밀하게는 각 사람이 홀로 예배를 드릴 것이며, 공동예배에서는 더욱 엄숙하게 예배할 것이니 부주의해서나 혹은 고의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과 섭리로 예배에 부르신 것을 경홀히 하거나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해설

옛날에는 의식 법을 행하는 곳이 따로 정해져 있어서 그곳에서만 의식을 행했다. 그러나 복음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예배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암혈과 토굴 속에서 예배 드려도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 높은 건물 속에서 그랜드 피아노와 요란한 악기들의 반주로 찬송해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기도하는 것도 반드시 어느 일정한 장소에 매어 있지 않다. (생략)

 

어떤 일정한 장소에서 예배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모든 일(식사, 운동, 작업, 취침 등)의 모두가 예배는 아니다. 이것은 Rick Warren이 그의 저서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주장하는 비성경적 주장이지만, 예배는 다른 세상일을 하는 시간과는 엄격히 구별되는 다른 시간에 별도로 드려야 한다. 요리사가 요리를 하면서 예배 드린다는 것이나 식사를 하면서 예배드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3계명의 위반이다.

 

요즘 신학자들이나 성직자들이나 평신도는 예배를 대수롭지 않게 경시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예배를 경시하면 교리가 무너지고, 교리가 무너지면 기독교가 타락하고, 기독교가 타락하면 사단이 침입한다는 사실을 알자. 이것이 바로 오늘 개혁주의가 수난을 당하는 이유이다. 예배는 어디서나 드릴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신령과 진정”이다(요 4:24). 과연 얼마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가? 예배에는 항상 경건이 따른다. 거룩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건을 요구하신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개혁주의 신앙이다. 개혁주의 신앙은 예배를 매우 중요시한다. 예배 의식이 무너지면 교리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교회가 타락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예배가 무너져 가기 때문이다. 예배를 바로 드리지 않는 교회치고 바른 교리를 전하는 교회는 없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또한, “열심히만 예배하면 된다”는 주장은 아무 의미가 없다, 갈멜산 꼭대기에서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와 아세라의 선지 도합 850명과 대결했을 때(왕상 18장), 상대방이 더욱 열심이었다. 그러나 승리한 사람은 엘리야였다. 수가 문제가 아니다. 사람마다 “대형교회”를 자랑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교회에 진리가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엘리야의 경우처럼 진리는 항상 승리하는 법이다. 하나님의 법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뿐이다. 하나님은 만홀(漫忽)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 하나님은 항상 신령과 진리로 경배하고 섬기기를 바라신다. 예배는 “가정예배”이건 “공 예배”이건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항상 거룩하게 드려야 한다고 신앙고백서는 힘주어 가르친다. 또한 “결코 모이기를 소홀히 하지 말라” 고도 교훈한다(히 10:25).

 

 

 

7. As it is of the law of nature, that, in general, a due proportion of time be set apart for the worship of God, so, in his word, by a positive, moral, and perpetual commandment, binding all men in all ages, he hath particularly appointed one day in seven for a sabbath, to be kept holy unto him; which, form the beginning of the world to the resurrection of Christ, was the last day of the week; and from the resurrection of Christ, was changed into the first day of the week, which in Scripture is called, the Lord's Day, and is to be continued to the end of the world, as the Christian Sabbath.

 

자연의 법칙대로 해도 일반적으로는 적당한 때를 따로 구별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써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도 단호하고 도덕적이요 영구한 명령으로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에게 순종할 의무를 주셨으니, 하나님은 칠일 중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시고 그 날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지키게 하셨다. 이것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한 주일의 마지막 날이었고,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는 한 주일의 첫날로 변하였으니, 이 날을 성경은 “주의 날”이라 칭하였고,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지속될 것이다.

 

해설

예배는 별도로 정한 시간에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세속주의 목사가 말하는 대로 <우리의 하는 모든 것이 예배이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다(목적이 이끄는 삶, 참고).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주일에 성도들이 따로 모여 예배를 드릴 필요가 어디 있는가? 누구나 매일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식사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운동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은가? 그것으로 예배를 대신하면 될 것이 아닌가? 주일 예배는 왜 드리는가? 참으로 언어도단 (言語道斷)이다. 이런 가르침에 현혹되어 성도들은 비판 없이 이런 가르침을 받아들이며 남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남을 잘못 가르치면 큰 연잣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뺘져야 한다”(마태 18:6). 이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3:1에서 “많은 사람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선생된 자의 심판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요즘 성직자나 평신도는 하나님 두려운 줄을 모른다. 이것이 큰 문제이다. 그래서 교회가 타락에 타락을 거듭한다.

 

하나님은 7일 중 하루를 특별히 안식일로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도록 제정했다. 그 “하루” 란 일주일의 마지막 날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주일 7일중 하루를 말한다. 안식일은 창세부터 그리스도의 부활 때까지는 주의 마지막 날, 즉 토요일이었고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세상 끝날까지는 주의 첫날이 안식일이다(계 1:10). 요한은 밧모 섬에서 주의 날(계 1:10)에 부활하신 주님의 계시를 받았다. <He Kuriyake Hemera (헤 쿠리야케 헤메라), 즉 "주의 날" 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주의 날”이라는 단어가 새로 조성된 것이다. 안식일을 토요일에 지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골로새 2:16-17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안식일은 분명 주님의 부활로 인하여 토요일에서 주일로 변했다. 주님이 부활하신 직후부터 사도들은 주일에 예배드렸다. 증거구절은 고전 16:2; 행전 20:7 등을 보라.

 

 

 

8. This Sabbath is then kept holy unto the Lord, when men, after a due preparing of their hearts, and ordering of their common affairs beforehand, do not only observe an holy rest all the day from their own works, words, and thoughts about their worldly employments and recreations; but also are taken up the whole time in the publick and private exercises of his worship, and in the duties of necessity and mercy.

 

이 안식일은 여호와께 거룩하게 지켜야한다. 이 날 사람들은 마음을 준비하고 일상생활의 용무를 미리 정돈한 후에 세상의 일들과 오락과 그에 대한 생각을 끊고, 온 종일 거룩하게 쉬며, 공공 예배와 사적 예배 그리고 구제와 긍휼의 의무를 향하는데 바칠 것이다.

 

해설

여기서도 “거룩하게”라는 말이 나온다. 이와 같이 신앙고백서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경배할 때 “거룩”, “경건”, “두려움”이란 말을 자주 쓴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여 그 앞에서 우리의 신을 벗어야 할 <야웨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본질과 속성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가르친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제는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이라고 해야 한다(계1:10).

 

개혁주의 성도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을 6일간에 미리 시간 여유를 가지고 잘 정리해야 하고, 주일에는 마음을 준비하고 세상일이나, 말이나, 생각이나 간에 세상일이라면 삼가야 하며 하루 종일 거룩하게 지내야 한다. 주일은 가장 “축제의 날” 이다. 가장 기쁜 날이다. 주께서 구원을 완성한 날이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한 날이다. 주일은 곧 부활의 날이다. 그 부활을 기념하여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 주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한다. 주일은 하루 종일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의 말씀을 들으며, 배우며, 그를 찬송하며, 그의 사랑을 남에게 전하는 축제의 날이다. 이런 연고로, 칼빈이나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을 다른 날과 같이 여길뿐, 별도로 성대하게 지키지 아니하고 주일만을 축제의 날로 지켰던 것이다.

 

직장에 나가는 이들은 쉬어야 하며, 오락은 어떤 형태이든 금하며, 그 날은 하루 종일 개인 예배와 공 예배에 참여하는데, 주일에 할 수 있는 일 세 가지가 있는데, 즉, 1. 경건의 생활, 2. 필요한 일, 그리고 3. 자선행위이다. 여기서 <경건의 생활>이란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 공부하거나 전도하는 일이며, <필요한 일>은 그 날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한 일, 이를테면, 집에 화재가 발생했다든지 의사가 환자를 수술하는데 그 날 안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독한 경우 등이다. <자선행위>란 병원이나 감옥을 방문하는 일, 구제하는 일 등을 말한다.

 

이외에 다른 일은 어떠한 일도 주일에 금한다는 것이 신앙고백서의 가르침이다. 이 세 가지만 허용된다. 흔히, 1부 예배를 8시에 드리고 하루 종일 운동을 하거나, 다른 세상일을 하거나, 직장에 나가는 등의 세속적 사고방식을 신앙고백서는 절대로 허락지 않는다. 개혁주의 성도는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그대로 성경을 생활화하려고 노력한다. 장소가 협소해서 1부, 2부, 3부 예배를 드리는 것은 타당하지만, 각자 개인의 편의를 위해서 성도들이 모이는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의 NAPARC의 교단으로서 장소가 협소한 이유 말고 예배를 나누어 드리는 것은 한인들이 모여 있는 KAPC와 PCA의 한인노회, ARPC의 한인노회 뿐이다.

 

 

 

<오늘날의 교회의 잘못되어 가는 예배 풍습들 (표본)>

 

1. 주일 오전 일찍 1부 예배드리고 하루 종일 업소에 나가서 일하거나 아니면 친구와 같이 golf를 치러간다.

 

2. 교회에 사람들을 많이 모이도록 하기 위해서 성경에 명하지 않은 예배 형식을 도입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반론: 레위기 10:1-3은 정반대로 교훈한다. 그곳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나답과 아비후만 벌하시는 분이며 우리의 죄는그냥 눈감아주는 무질서하신 분인가 생각해 보자.

 

3. 교인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서 강대상에서 연극도 하고 연예인들을 초청하여 노래도 듣는다. 가끔 댄스 파티도 갖는다. 이런 기분 풀이가 무엇이 나쁜가?

 

4.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가 모르는 <새로운 목회 기술>을 개발하여 실습했더니 교회가 크게 [숫자적으로] 부흥하여 하나님에게 크게 영광을 돌렸다. 할렐루야 !

 

5. 성경말씀은 무어라고 하건 교인들을 기쁘게 하는 방향으로 예배를 드리자(Warren의 스타일). “교인들은 tempo가 빠른 음악을 좋아하니 <장송곡 같은, 찬송가?>는 버리고, 새로운 세속 음악을 도입하여 교인들을 신나고 기쁘게 하여, 다음 주일에도 그들이 교회에 출석하도록 한다(Rick Warren의 Purpose-Driven Church, 목적이 이끄는 교회, 영문판 p.187).

 

6.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을 보려면 교회에서 “죄”를 말하지 말라, 사람들의 기분이 상하여 교회 출석률이 떨어진다(Schuller 의 교회성장세미나).

 

7.교리를 따지면 교인들 간에 분열이 생기니 교리를 가르치지 말라 (이머징 교회운동)

 

8. 하나님의 법대로 예배드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적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모이도록 하는 것이 목회자의 목회 원리이다. 그래서 열린예배가 좋다.

 

9. 일 년에 한번 있는 세계적 축제 국제마라톤 대회가 주일에 있게되면 그 날 예배를 취소하고, 모두 마라톤에 참가하든지 아니면 운동을 구경하도록한다.

 

10 .예배는 예배드리는 사람 중심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인간이 기분 좋아할 때 그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므로.

 

11, 계시를 못 보는 사람은 2등 크리스챤이며, 훌륭한 성도는 항상 새로운 계시를 보아야 한다. 성경의 종결성을 믿지 않으며 지금도 하나님의 계시가 여전히 임한다.

 

12, 천당이나 지옥 혹은 연옥을 구경하고 왔다고 하는 목사는 그 어느 누구보다 신령하고 본받을 우수한 목사이므로 되도록 많은 헌금을 그에게 보내야 한다.

 

13. Tres Dias 혹은 Alpha Course를 거부하는 성도는 교회에서 절대로 직분을 맡지 못하며 항상 2등 성도로 생활해야 한다.

 

14. 목사는 교회의 “제사장” 이니 목사에게 불복종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다.

 

15. 벧전 2:9 은 “목사님만” 을 지칭하는 말씀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 요리문답 중에서 십계명과 관련된 부분

 

십계명 중 첫 네 계명에 관한 대 요리 문답

 

문101. 십계명의 서문은 무엇인가?

답. 십계명의 서문은 이러한 말들이니, 곧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라고 한 것이다. 이 서문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주권과 여호와이심과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자존하시는 이로서 그의 모든 말씀과 행사에 존재를 부여하신 것을 나타내시고, 또한 옛날 이스라엘에게 하시듯 자기의 모든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언약의 하나님이신 것과 애굽의 종살이에서 저희를 인도하여 내시듯 영적 속박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나타내시고,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그 이 만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의 모든 계명을 지켜야 하겠다는 것이다.

 

 

문102. 하나님에게 대한 우리의 도리를 포함하고 있는 첫 사 계명의 요지는 무엇인가?

답. 하나님에게 대한 우리의 도리를 포함하고 있는 첫 사 계명의 요지는,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문103. 제 일 계명은 무엇인가?

답. 제 일 계명은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신 것이다.

 

 

문104. 제 일 계명이 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제 일 계명이 명하는 것은 하나님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며, 우리의 하나님으로 알고 인정하는 것과 그에 합당하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화롭게 하되 생각으로, 묵상으로, 기억함으로, 지극히 높임으로, 공경함으로, 경배함으로, 선택함으로, 사랑함으로, 사모함으로, 주를 두려워함으로 행할 것이며, 주를 믿고, 의지하고, 바라고, 기뻐하며, 주 안에서 기뻐하고, 주를 향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불러 모든 찬송과 감사를 드리며, 온 정성을 다하여 순종과 복종을 하며, 모든 일에 주를 기쁘게 하고자 애쓰고, 무슨 일에나 주께 범죄하면 슬퍼하고, 겸손히 주와 동행하는 것이다.

 

 

문105. 제 일 계명이 금하는 죄는 무엇인가?

답. 제 일 계명이 금하는 죄는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무신론과,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과 더불어 혹은 그 대신 여러 신을 두고 예배하는 우상 숭배와, 우리 하나님을 원치 아니하고 하나님으로 공인하지도 아니하는 것과 이 계명이 요구하는 대로 하나님께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안 하거나 경홀히 하는 것과 무지와 잊어버리는 것과 오해와 거짓 의견과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악한 생각들과, 하나님의 비밀들을 뻔뻔하게 호기심을 가지고 조사하는 것과 모든 망령된 것과,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과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자기 일을 구하는 것과,

 

과도하고 절제 없이 다른 일에 마음과 의지와 감정이 쏠리는 것과 전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하나님께로부터 마음과 뜻이 정성이 떠나는 것과, 헛되게 남을 잘 믿는 것과 불신과 이단과 잘못 믿는 것과 의혹과 절망과 완고함과 심판을 받으면서도 무감각한 것과 마음이 굳은 것과 교만, 주제넘음과 육신의 방심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과 비합법적 수단을 쓰는 것과 비합법적인 방법을 의지하는 것과, 육신의 향락과 기쁨, 부패하고 맹목적이고 경솔한 열심 냉담함과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죽은 것과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짐과 배교하는 것, 성자들이나 천사들이나 어떤 피조물을 대하여 기도하거나 예배드리는 것과 마귀와 상담하고 맺은 모든 맹약과 마귀의 암시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사람을 우리 신앙과 양심의 주로 삼는 것과 하나님과 그 계명을 경홀히 여기거나 멸시하는 것과 성령을 거스르고 근심하게 하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에 불만하고 조급해 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과하시는 불행에 대하여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과 우리의 됨됨이나 가진 것이나 능력의 선한 것을 두고 그 찬양을, 재산이나 우상들이나 우리 자신에게나 혹은 다른 피조물에게 돌리는 것이다.

 

 

제106문. 제 일 계명 중에 “나 이외에”라고 한 말씀이 특별히 교훈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제 일 계명 중 “나 이외에” 혹은 “내 앞에서”라는 말이 교훈하는 것은 만물을 보시는 하나님이 다른 신을 섬기는 죄를 특별히 살피시고 그것으로 분하게 여기신다는 것이다.그러므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시는 증거요 가장 염치없는 처사가 되도록 악화시키시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무슨 일로 주를 섬기든지 그 보는 앞에서 하듯 하게 하려하심이다.

 

 

제107문. 제 이 계명은 무엇인가?

답. 제 이 계명은 “너를 위해서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니라” 하신 것이다.

 

 

제108문. 제 이 계명이 명하는 것이 무엇인가?

답. 제 이 계명이 명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말씀 중에 정하신 종교상 모든 예배와 규례를 받아 순종하며 깨끗하고 완전하게 지키라는 것인데, 특별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와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전하고 들으며 성례를 집행하고 받으며 교회 행정과 치리와 봉사의 일과 그런 사역의 연속, 종교적 금식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일과 하나님에게 서원하는 것을 하며, 아울러 모든 거짓 숭배를 자기의 직위와 소명을 따라서 거절하고 미워하고 반대하여 모든 우상과 기념물과 함께 우상숭배를 제거하라는 것이다.

 

 

제109문. 제 이 계명이 금하는 죄는 무엇인가?

답. 제 이 계명이 금하는 죄는 온갖 우상을 고안해 내는 것과 우상숭배를 의논하는 것과 명령하는 것과 쓰는 것과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시지 않은 예배를 어떤 모양으로라도 승인하는 것이며, 거짓 종교를 용납하는 것과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인데, 삼위일체중 전부 혹은 일부를 내면적으로 우리 마음속에서나 또는 외면적으로 어떤 종류의 우상 혹은 피조물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그것을 예배하거나,

 

그 안에서 또는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며, 꾸며낸 신들의 형상을 만들거나 그들을 예배하는 것과 섬기는 것과 미신적인 모든 방책과 하나님의 예배를 더럽히는 것이나 가감하는 것을 금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고안해서 실행하는 짓이거나 전통으로 말미암아 남에게로부터 받은 것이나 비록 고전, 습관, 신앙심, 선의나 그런 이름이나 구실로 해도 죄가 되며 성직매매와, 신성한 것을 더럽히는 것과 온갖 모양으로 무시하며 경멸하며 방해하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와 규례를 반대하는 것이다.

 

 

제110문. 제 이 계명을 더 잘 지키게 하기 위해서 첨가된 것이 무엇인가?

답. 제 이 계명을 더 잘 지키게 하기 위해서 첨가된 것은 이러한 말이니,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재가 되신 것과 우리가 그의 소유된 것 외에 자신의 뜻대로 드리는 예배를 위한 뜨거운 열심과 영적 간음인 모든 우상숭배에 대해서 보복하시는 분노와 이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국문하시며 여러 세대에 걸쳐 저희를 처벌하시겠다고 위협하시며 그를 사랑하고 이 계명을 지키는 자를 높이시며 여러 세대에 저희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이다.

 

 

제111문. 제 삼 계명은 무엇인가?

답. 제 삼 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하신 것이라.

 

 

제112문. 제 삼 계명이 명하는 것이 무엇인가?

답. 제삼계명이 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칭호와 속성과 규례와 말씀과 성례와 기도와 맹세와 서원과 제비뽑는 것과 그의 행사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자기를 알게 하신 것은 거룩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용하되 생각과 묵상과 말과 글로써 거룩한 신앙고백과 상응한 교제를 하되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하라는 것이다.

 

 

제113문. 제 삼 계명이 금하는 죄는 무엇인가?

답. 제 삼 계명이 금하는 죄는 하나님의 이름을 명하신대로 쓰지 않는 것과 그 이름을 무식하고 망령되고 불경하고 세속적이요 미신적으로 남용하거나 하나님의 칭호와 속성과 규례와 행사를 신성을 모독함으로 혹은 위증함으로 쓰는 것이며, 모든 죄악 된 저주와 맹세와 서원과 제비뽑는 것이며, 우리의 맹세의 서원은 합법적인 것인데 이를 어기는 것이나 불법적인 것인데도 지키는 것과 원망하고 시비하며 주제넘게 세부까지 간섭하며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를 잘못 적용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나 어느 부분이라도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적용하거나 곡해하는 것과 불경한 농담과 이상하고 유익이 없는 질문들,

 

헛된 말다툼이나 거짓 교훈을 주장하는 것이며, 말씀이나 피조물이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무엇이라도 마술이나 죄악 된 정욕이나 행위에 남용하는 것이며, 헐뜯고 비웃고 욕하거나 어떤 모양으로라도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와 도리를 반대하는 것이며, 위선으로 혹은 사악한 목적으로 신앙고백 하는 것이며,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불안하고 현명치 못하고 결실이 없고 더러운 생활로 믿음에 수치를 끼치거나 믿음에서 타락하는 것이다.

 

 

제114문. 제 삼 계명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 첨가된 것은 무엇인가?

답.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이니 이는 그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므로 우리가 그 이름을 어떤 식으로라도 훼방하거나 남용할 수 없으며 특별히 하나님은 이 계명을 범하는 자를 용서하시거나 죄 없다 하시지 않기 때문에 비록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도 사람의 비난과 형벌을 피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피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소요리 문답서 제56문 참고).

 

 

제116문. 제 사 계명이 명하는 것이 무엇인가?

답. 제 사 계명이 모든 사람에게 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중에 정하신 절지를 그의 앞에 신성하게 혹은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이며 특별히 칠일 중에 하루를 온종일 지킨다. 이 날은 세상 시작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하기까지는 이레 중 일곱째 날이고 그 후로부터는 세상 끝 날에 이르기까지는 이레 중 첫 날인데 이날이 기독교의 안식일이요 신약에서는 주일이다.

 

 

제117문. 안식일 혹은 주일을 어떻게 거룩하게 하여야 하는가?

답. 안식일 혹은 주일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온종일을 거룩하게 쉼으로 할 것이며 죄악된 일 뿐 아니라 다른 날에 합당한 여러 가지 세상일과 오락까지도 그치고 그 외에는 그 시간을 부득이한 일과 자선 사업에 허용하는 것을 제외 한, 공사 예배에 바쳐 사용하기를 기쁨으로 삼고, 그 목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예비하며 조심성 있게 또 부지런하고 적당하게 우리의 세상 일을 때를 맞추어서 해치워서 우리가 그 날의 임무를 감당하기에 쉽도록 하는 것이다.

 

 

제118문. 왜 특별히 가장이나 윗사람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주어졌는가?

답. 안식일을 지키는 책임이 가장이나 윗사람에게 있는 것은 저희만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책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다 지키도록 돌아볼 의무(charge)가 있으며, 또 저희는 자기 세상 일로 인하여 자주 아랫사람을 [안식일 지키는 것을] 방해할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제119문. 제 사 계명이 금한 죄는 무엇인가?

답. 제 사 계명이 금한 죄는 그 명한 바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부주의하고 게으르고 유익 없이 이행하거나(unprofitable performing) 그것에 싫증을 느끼는 것이며 나태함으로 그날을 더럽게 하거나, 죄악 된 일을 행하는 것이며 세상의 일과 오락에 대한 불필요한 일과 말과 생각을 하는 것이다.

 

 

제120문. 제 사 계명을 더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첨가된 것은 무엇인가?

답. 제 사 계명을 더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첨가된 것은 그 공평성이니 하나님이 우리의 행할 여러 가지 일을 위하여 칠일 중 여섯 날을 허락하시고 자신을 위해서는 오직 하루만을 떼어 두신 것이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라고 하신 것은 그 날 하루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장하는 이가 되었다 하심이요,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이란 것은 또한 자기가 친히 모범을 보이신 것이니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시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다. 하나님께서 그 날에 복을 내려 하나님을 섬기는 날로 거룩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 날을 거룩하게 함으로 우리가 우리에게 내리는 축복의 방편이 되게 정하신 것이니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신 것이다.

 

 

우리 모두 바로 알고 바로 믿자. 바르지 못한 예배를 하나님은 받지 않으히고 오히려 진노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진정으로 (성경에서 정한대로) 예배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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