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교회 3

왜 프로테스탄트를 받아들였나 (칼뱅과 제네바교회 이야기 2)

왜 프로테스탄트를 받아들였나 임종구 목사의 칼뱅과 제네바교회 이야기 (2) ​임종구 목사 / 푸른초장교회 (2017.1.12)​​1536년은 칼뱅과 제네바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해이다. 먼저 칼뱅이 바젤에서 초판을 출판했고, 제네바는 복음을 따라 살기로 모든 시민이 결정한 해이기 때문이다. 제네바는 스위스 도시들 가운데서 가장 마지막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도시 중 하나이다. 스위스에서는 취리히(1524)가 가장 먼저 복음을 받아들였고, 이어서 베른(1528) 바젤(1529) 뇌샤텔(1530) 제네바(1536)로 이어진다.​중세시대에 야만족을 대상으로 선교할 때 한 도시, 한 민족이 돌아오는 집단적 회심이 일어났다. 종교개혁시대의 회심 역시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집단적, 제도적 회심이었다. 이것이 제국에..

제네바교회, 이렇게 구제했다

제네바교회, 이렇게 구제했다 임종구 목사 / 기독뉴스 (2017.5.18) 예배를 영어로 ‘서비스(Service)’라는 부르는 것은 구제가 예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종종 구제를 ‘예배 후의 예배’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예배(worship)’와 ‘복지(welfare)’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그렇다면 칼뱅이 사역했던 제네바교회의 구제사역은 어떠했을까? 베르게리오는 제네바의 모습을 “나는 교회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해 공개적으로 모금을 하는 것을 결코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단 한 명의 거지도 만나지 못했다. 그것은 이 도시에서는 진정한 형제애 가운데 풍성한 도움이 이들에게 제공되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종교개혁 이전의 제네바에는 ..

제네바에서의 칼빈의 초기 사역과 제네바 교회

제네바에서의 칼빈의 초기 사역과 제네바 교회  18개월의 초기 사역과 그 성격 작자 미상 (기독교 편집)  1. 제네바로 오기 이전의 칼빈  (1) 1533. 11. 1. Nicolas Cop의 빠리 대학 총장 강연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주해에 근거한 루터파적인 내용의 강연  -Erasmus의 신약성서 제 3판의 사상과 언어를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주해 부분에서 Bucer가 라틴어로 옮긴 루터의 해석을 상당 부분 그대로 따르고 있음.   (2) 샤를르 데스뻬빌르(Charles d'Espeville)라는 가명 사용하며 피신  쌩똥쥬(Saintinge)에 있는 앙굴렘므(Angoulême), 네락(Nerac), 노이용(Noyon), 빠리(Paris), 다시 쌩똥쥬(Saintinge), 뽀아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