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찬송

교회의 완전한 찬송 (왜 우리는 공예배에서 시편찬송을 부르는가?)

Sola. 2023. 5. 11. 07:00

 

 

교회의 완전한 찬송 (왜 우리는 공예배에서 시편찬송을 부르는가?)

북미개혁장로교회 시편찬송 팜플렛 / translated by Yangs  (2012.9.18) 

 

 

우리 개혁장로교회의 많은 방문객들은 대부분의 현대의 복음주의적 교회들과는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우리의 찬송집에 대하여 놀라움을 갖는다. 우리의 찬송집은 성경 안에 기록되어진 150편의 시편을 음율에 맞춘 버젼만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적인 확신으로서 하나님께서 성경의 시편을 그 분의 백성들이 공적 예배 중에 부르기 위해서 만드셨다고 믿는다. 더불어 시편 찬송 외에 보증된 다른 그 어떤 것도 있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여러분이 보다 진지하고, 또한 기도하며, 시편만을 찬송으로 부르는 이 주제 (exclusive psalmody)에 대한 성경적인 논지들을 고민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램이다.

 

 

 

기본적인 원칙들

 

1. 시편의 충분성 (The sufficiency of the Psalms)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하나님의 말씀은 그 분의 백성들에게 충분하다.

 

성경에서의 시편은 노래로 불려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 그 분을 찬양하고 경배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사람이 지은 찬송가가 예배 안에서 사용되어질 필수 전제는,단지 시편만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찬양을 하는데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들을 거부함과 동시에 시편의 150편만이 모든 세대를 아우러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완벽하게 충분한 찬송가로 믿는다.

 

 

 

2. 예배의 규정적 원리 (The 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

 

예배의 규정적 원리는 개혁주의 전통에서 이어져오는 교회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지켜온 교리이다. 이 원리는 성경 신명기 12장 32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 .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찌니라."

 

16세기의 개혁주의 자들은 다음의 표현을 가지고 이 원리를 설명했다. "무엇이든 예배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하나님의 의해 명령된 것이 아니라면, 이는 금지된다."

 

17세기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이러한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최선의 방법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제정되었고 그분 자신의 계시하신 뜻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망상과 고안, 사단의 지시에 따르거나, 어떤 가견적 예배 대상 앞에서 혹은 성경이 말하지 않은 방법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지 않으신다. "

 

여기에서의 기본적인 신념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 안에서 하나님께로 나아와야 하는지 결정하는 하나님의 특권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로 모일 때에 성경의 시편을 부를 것을 명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인간 스스로 만든 노래를 부르는 것을 명하지 않으셨다. 예배의 규정적 윈리의 일관된 적용으로, 하나님께서 예배에 명하지 않은 노래들의 사용은 배제된다.

 

 

 

3. 언약의 연속성

 

시편은, 신약 시대 안의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을 반영하는 찬송으로 보충되야만 하는 구약 성경의 찬양이라는 점이 논의되어져 왔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는 성경의 시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새로운 언약을 선포하는 제일의 목적을 위해 쓰어졌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지적하는 바이다.

 

사실 예수님 스스로 시편이 그 분 자신에 대한 책이라는 것을 언급하셨다 (누가복음 24장 44절).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은 아주 놀랍게도 시편들 안에서 예시되었다. 만약 하나님의 사람들이 단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까지만 시편을 부르는 것으로 요구받았으며, 시편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진가를 완전하게 깨달았을 때에는 시편 찬양을 버려두는 것이라면, 이는 굉장히 이상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시편들의 영광스러로움이 구약에 의해 예언되며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으로인해 깨달아지는 하나님의 언약 그대로에 들어맞는 전개에 있다고 믿는다. 새 언약의 자손들로서, 우리는 시편을 바라보고, 모든 시대를 통한 그의 약속의 성취에 대하여 하나님께 찬송을 드린다.

 

우리는 아무런 의미없이 성경 자체의 찬양집이 신약성경보다 구약성경의 페이지 안에서 발견 된다는 것이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을 마치 구식으로 취급하며 거의 대부분을 신약성경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구약성경은 우리가 배워야 할 한낱 도덕적 규범에 관한 이야기들로 보기도 한다.

 

우리는 구약성경이 낡은 것, 혹은 시대에 뒤쳐지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바울이 "모든 성경은 성경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유익하니" 라고 기록하였을 때, 그는 구약 성경 역시 여기서 언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편을 통한구약의 예언들이 교회의 찬양으로 정착될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선택된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서 그들의 유산을 계속해서, 시대를 거쳐,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4. 예배의 목적

 

시편 찬송이란 주제에 대하여 또 한가지 염두해야 할 중요한 내용은 예배의 속성과 목적에 있다. 우리는 예배가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의 많은 교회들 안에서는 사람 중심의 예배가 되고 있다. 사람 중심의 예배는 예배를 통해 무언가 얻기 위하여 교회에 오는 예배자들의 감정을 중요시하고 있다.

 

하나님 중심의 예배는살아계신 하나님께 "신령과 진실로" 나아가기를 갈망하는 예배의 목적을 중요시한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이유가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예배 가운데로 나아갈 때, 그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 만약, 예배자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예배의 방식을 그들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그들은 어떠한 감정이 격동됨을 경험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지켜지는지를 보면, 하나님은 이 예배 안에서 영광받지 못하신다.

 

나답과 아비후는 그들이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레위기 10장 1절)"을 드렸을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높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접근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 보다 하나님 중심이 아닌, 되려 인간 중심이었기에,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의 진노에 휩싸이고 죽음을 맞이 한다.

 

예배에서의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우리 스스로생각해 낸 하나님을 향한 접근 방식이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다. 이에 반하여, 우리는 하나님 그분의 디자인을 따라 그분께 나아가고자 결단하며,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분을 찬양하는데 집중해야만 한다.

 

 

 

시편찬송의 유익

 

1. 오류가 없는 시편찬송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함께 모여 찬양을 드릴 때, 우리는특별한 방식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와 예배 찬송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드려진다.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가 찬양 안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 또한 완벽하고 흠이 없어야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저자가 된 찬송이 사람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할지라도 그것은 완전하지 못하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무오하다. 왜냐하면 오직 성경만이 바로 성령의 감동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직접 작성하신 노래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는 우리의 찬송이 오류와 흠 없이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시편을 부르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에게 엄청난 유익을 가져다 준다. 우리가 무엇을 노래하는지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영향을 주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사람의 노래를 부를 때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속으로 오류의 씨앗을 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노래만을 부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시고, 그분을 따라 그의 생각을 따라가는 사고하는 법을 배운다.

 

의심할 것 없이, 세대를 걸치면서 많은 경건한 이들이 지은 아름답고 유익한 찬송들이 분명 존재한다. 성경의 시편만이 하나님의 백성의 예배 가운데 불려져야 한다는 우리의 확신이 이러한 사실을 비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더불어 이러한 찬송들이 성도의 삶에 어디에도 위치할 곳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그저 말하는 바는 이러한 찬송들의 위치가 공적인 예배 가운데는 없다는 점이다.

 

 

 

2. 성경 암송을 증진시키는 시편찬송

 

시편을 부름에 있어 또 다른 놀라운 유익은 성경 암송에 있다. 노래의 반복은 어떠한 내용을 암송하는데 최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바 없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광고송을 기억하고 있는가?) 매 주일 예배에서 시편을 부르는 것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심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악보를 보지 않고도 시편을 따라 부르며 하나님을 높이는 어린이들과 모든 회중 사이에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 되겠는가!

 

 

 

3. 성령의 능력을 갖는 시편 찬송

 

제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언어라 할지라도,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관통하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은혜를 부여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그분의 말씀에 관하여는 이러한 약속을 받았다. 히브리서 4장 12절이 우리를 확신케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시편을 부를 때에 인간이 만든 찬송가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마음을 찌르신다. 좋은 찬송이 그저 우리의 감정을 격동시킨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심령을 찌르고 쪼개신다.

 

 

 

4. 적절하게 균형잡힌 주제들을 가지고 있는 시편 찬송

 

어린이에게 양배추과 젤리빈 사이에서의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봐라. 둘 중 어는 것을 아이가 선택하겠는가?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매력적인 것을 선택하는 자연스러운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어떠한 것들이 사실은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들이 되기도 한다. 예배에서 우리가 부르는 노래들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인 것다.

 

성경 안에는 우리가 특별히 선호하는 몇몇의 주제들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모든 뜻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은혜를 성장시키기 위하여 꼭 필요함에도, 우리가 이해하고 소화시키기에는 무척이나 어려워보이는 주제들도 있다.

 

만약 우리 자신의 생각만을 쫒는다면, 우리는 단지 우리에게 가장 호감이 되는 주제들만을 집중적으로 예배 안에서 부르게 될 수 있다 (가령 은혜, 사랑, 구원의 주제들). 그리고 그 반대로, 겉으로 보기에 조금 덜 매력을 느끼게 되는 주제들을 한 켠으로 방치시킬 수 있다 (예, 악인에 대한 심판과 비난).

 

대다수의 찬송가들을 검토한다면, 이러한 요지가 더욱 확인될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심판 모두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루시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만을 지지하여 또 다른 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속성을 전체적으로 잘 알기 위해서 우리는 단지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모든 속성을 고려하고 묵상해야만 한다.

 

시편의 책 속에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 그리고 구원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많이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과 저주 또한 꺼리낌 없이 그대로 나타나있다. 그러므로, 시편은 하나님의 모든 뜻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기 위한 찬양의 책이자, 달면서도 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영으로 공급하는 양식이다.

 

 

 

5. 연합의 기초를 제공하는 시편찬송

 

이 시대에는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는 많은 종류의 찬송집이 있다. 이러한 책은 각 교회들의 특정한 신학적 유산과 확신을 반영하고 있는 찬송들을 포함하고 있다. 때로는 다른 교단 교리에서 동의 할 수 없는 신학적 내용을 가지고 있는 찬송들도 그 안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시편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편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시편은 나뉘어진 교단의 선을 가로지를 수 있는 하나의 찬송가를 제공한다. 시편은 어떠한 개별, 혹은 그룹의 특정한 교리적 이해를 반영하지 않는다. 이 책은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끌어주고, 시편의 모든 내용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전 우주적으로 수용되어진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노래들을 가지고 찬양을 드리며 교회들이 하나를 이루는 그 발걸음을 상상해 보아라. 우리가 애호하는교리들만을 가지고 지나치게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대신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며 성경의 시편들의 광대한 주제들을 함께 배워나가게 될 것이다.

 

 

 

 

이 소책자는 공예배에서의 실제적인 시편찬송을 부르는 것에 관하여 단지 표면만을 다루었을 뿐이다. 우리는 왜 우리가 이러한 확신 속에 거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러한 짦은 설명들이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더불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시편찬송의 경이로운 유익의 일부분을 여러분들에게 전해졌기를 기대한다. 여러분은 이 주제에 대하여 더욱 심화된 질문들을 가지고 있을텐데, 또 시편 찬송과 관련된 또 다른 책들을 읽어보기를 기꺼이 추천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 각자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의미에 대하여 더욱 깊은 이해와 통찰을 허락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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