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찬송으로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김준범 목사 (2016.5.27)
시편찬송은 언제나 교회의 찬송이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서 예배 때마다 불려진 찬송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찬송’이라고 하면 ‘찬송가’를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고, ‘시편찬송’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소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은 언제나 가장 좋은 찬송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찬송이 가장 좋은 찬송일까요? 무엇이 좋은 찬송입니까?
좋은 찬송을 규정짓는 요소들을 몇 가지로 열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찬송을 부르는 사람의 신앙과 인격도 중요하고, 찬송의 내용을 얼마나 마음으로부터 이해하고 진심으로 부르느냐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찬송을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찬송하는 태도와 형식과 곡조도 좋아야 합니다. 찬송의 곡조는 찬송의 내용에 걸맞도록 적절하게 조절된 것이어야 합니다. 독창보다는 합창이 천상의 찬송에 보다 가깝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찬송의 내용(Content)이 좋아야 합니다. 찬송이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찬송의 내용이 성경적이지 못하고, 인간의 감정과 넋두리만을 쏟아 내거나, 세속적이고 기복적이고 신비주의적이고 심지어 이단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 그런 찬송은 좋은 찬송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찬송의 가사(Text)에 담긴 찬송의 내용이 좋아야 합니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성도들에게 부르도록 주신 찬송인 시편의 내용을 가지고 찬송하는 것보다 더 좋은 찬송의 가사를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시편찬송은 가장 성경적인 가사를 가진, 가장 신뢰할만한 찬송이고,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찬송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역사 가운데 있던 교회들은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시편으로 하나님을 찬송해 왔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교회들이 시편찬송을 가장 좋은 찬송으로 알고 불렀다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시편찬송은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시편찬송은 구약성도들의 찬송이었습니다. 우리는 구약의 족장들이 찬송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세에게 율법이 주어지기 전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은 찬송했습니다. 노아가 찬송했고(창 9:26), 멜기세덱도 찬송했습니다(창 14:20). 아브라함의 종이 찬송했고(창 24:27,48), 레아가 찬송했으며(창 29:35), 야곱이 찬송했습니다(창 49:8).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 모세와 미리암도 하나님께 찬양했습니다(출 15:1-21). 비록 족장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시편이 지어지기 전의 성도들이었지만, 이들의 찬송은 이들의 찬송은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시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모세의 기도는 시편 90편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성전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편으로 찬송했습니다. 다윗은 많은 시편의 기록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윗은 레위 지파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자들을 세워서 성전에서 찬양하게 하였으며(대상 15:16), 솔로몬도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을 세워 제사장들과 함께 나팔을 불며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습니다(대하 5:11-14).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회당에서 예배할 때에도 그들은 시편으로 찬송하였습니다. 회당의 찬송은 시편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도 시편으로 찬송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저녁 만찬 때, 주님과 제자들은 찬송을 불렀습니다(마 26:30). 대부분의 성경 주석가들은 이것이 유대인들이 유월절에 부르던 시편, 곧 할렐(Hallel, 113-118편)이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와 교부시대의 찬송도 언제나 시편찬송을 의미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3장 16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였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초기 기독교회는 성경의 시편을 자신들의 찬미, 곧 영적인 노래로 여겨서 그들의 예배에서 시편으로 찬송했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합니다.
초대교회 이래로 기독교회는 지난 2000여년 동안 시편으로 하나님을 찬미해 왔습니다. 바른 신앙 위에 서있던 모든 주님의 교회는 언제나 시편을 애송하였습니다. 교부들이 부른 찬송도 시편찬송이었습니다. 찬송가학자인 노쓰코트(C. Northcott)는 말하기를 4세기에 이를 때까지 서방 교회에서 시편찬송만이 불려졌으나, 4세기에 들어오면서 성경으로부터 온 찬송(즉, 시편찬송)이 아닌 찬송가(hymns)가 불리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Hymns in Christian Worship, London, 1964, 19). 그 근거로는, 라오디게아 공의회(the Council of Laodicea, 주후 314-374년)의 결의문 중에서 “교회 안에서 영감되지 않은 찬송가를 부르거나 정경이 아닌 책을 읽는 것을 금지한다”는 구절을 들 수 있습니다. 칼세돈회의(451) 같은 종교회의(Council)들도 시편찬송 외의 소위 ‘비영감적인 찬송’에 대해 반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타나시우스나 암브로스, 어거스틴은 모두 시편찬송을 권장하였습니다. 초기 기독교회에서 예배 시에 시편찬송을 불렀다는 것에 대한 증거는 매우 많이 있으나, 시편찬송 외에 다른 찬송가들이 예배 때에 불렸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으며, 시편찬송을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부들의 찬송도 시편찬송이었습니다. 시편찬송이 대세였습니다.
영적 암흑기였던 중세에도 시편찬송이 있었지만, 이 시편찬송이 소수의 찬양대의 전유물이 되고, 뜻을 잘 알지 못하고 라틴어로 불렀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모두 찬송이 중요하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였습니다. 물론 중세에도 시편찬송이 완전히 사라졌던 것은 아니지만, 회중찬송으로서의 시편찬송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개혁자들은 이것을 다시 회복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시편을 운율에 맞추어서 회중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시편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와 마르틴 부처(Martin Bucer)와 같은 개혁자들은 시편찬송을 불렀고, 제네바의 칼빈도 부처에게서 시편찬송의 중요성을 배워서 [제네바 시편찬송가]로 알려진 시편찬송가의 작성에 관여하였습니다. 칼빈의 영향을 받은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John Knox)는 교회 개혁을 위해서는 예배 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교회 개혁을 위해 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 사역을 강조하는 동시에 예배에서 시편찬송을 고수하였습니다.
청교도들도 시편찬송을 그들의 예배 찬송으로 불렀습니다. 시편찬송에 대한 청교도들의 태도는 청교도들의 신학적 입장이 가장 잘 요약되어 표현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예배와 안식일에 관한 장이 제21장 5항은 예배의 요소들을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경건한 두려움으로 하는 성경 봉독과, 건전한 설교와, 하나님께 순종하여 깨달음과 믿음과 경외함으로 말씀을 양심으로 들음과, 마음에 은혜가 충만하여 부르는 시편찬송과,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합당한 성찬 예식,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일반 예배의 부분들이요...”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에서도 시편찬송을 부를 때에 다음과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두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공적으로 찬송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회중에서 함께, 또 개인적으로 가정에서 시편을 찬송할 것이다. 시편을 찬송하는 데 있어서 목소리는 곡조에 맞게 엄숙하게 낼 것이다. 그러나 제일 조심할 것은 이해를 가지고 마음에 은혜를 품고서 주님께 찬송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온 회중이 다 함께 불러야 하므로 읽을 수 있는 자는 다 시편책을 가질 것이요, 다른 사람들도 나이나 다른 조건으로 불능이 되지 않는 한 읽는 법을 배우라고 권면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는 회중의 많은 사람들이 읽지 못하므로 목사나 또는 다른 당회원이 임명한 적합한 사람이 시편을 한줄 한줄 노래하기 전에 읽어줄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 중 [시편찬송에 대하여] 항목.
실제로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시편 150편 전체가 운율에 맞추어 번역될 수 있도록 후원하였다는 역사적인 사실도 이미 밝혀졌습니다. 18세기에 이를 때까지 지내면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한 자들도 있었으나, 큰 틀에서 시편찬송은 가장 합당한 예배찬송으로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특별히 칼빈과 낙스의 전통을 이어 받은 장로교회는 공예배에서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찬송은 시편찬송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시편은 예배에서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공인 찬송이었습니다.
장로교회의 공예배에서 찬송가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입니다. 예배시간에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부르는 현대 복음주의 교회들의 예배 형태는 19세기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일어났던 전도집회에서부터 온 관습입니다. 전도집회에서는 죄인들을 회심시키기 위한 설교와 함께, 대중들의 매력을 끌 수 있도록 음악을 배치하였는데, 그것이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부르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전도는 죄인들을 회심시키기 위한 것이며, 그 모임들은 분명 교회의 공예배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전도집회에서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부르던 관습은 공예배의 찬송으로 도입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교회도 초기 선교사들로부터 이러한 찬송가를 소개받고 이것을 이제까지 공예배의 찬송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찬송가를 도입하였던 19, 20세기에도 시편찬송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도르트신경과 벨직 신앙고백을 교리표준으로 받아들이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는 칼빈의 제네바 시편찬송을 지금까지 신실하게 지키면서 예배에서 시편으로 찬송하고 있으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교리표준으로 받아들이는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도 스코틀랜드에서 부르던 풍의 곡조와 운율에 맞추어 시편으로 계속 찬송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최근 한국교회 안에서도 예배에서 시편으로 하나님을 찬송하자고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상당수의 교회들이 시편찬송을 도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늦었지만 참으로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편찬송의 그 장구한 역사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감사하는 것은, 2004년에 120곡으로 편성된 시편찬송집을 한국교회에 소개한바 있었던 고려서원에서, 2016년 6월 중으로 330곡으로 개정증보된 시편찬송집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개정증보판은 시편 1편부터 150편까지를 빠짐없이(비록 각 시편들의 내용 전체를 가사로 담지는 못하였지만) 수록하고 있으며, 특별히 시편 119편은 한절도 빠짐없이 다양한 곡조로 부를 수 있게 하는 등, 기존의 곡들보다 더 많은 시편의 내용으로 찬송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부록으로 신약의 구절들 가운데 찬송으로 부를만한 좋은 구절들을 택해서 신약의 찬송들로 15곡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시편찬송가 개정증보판에 사용된 곡조로는, 기존의 스코틀랜드 시편찬송가의 곡들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웨일즈, 잉글랜드, 스웨덴, 화란, 독일, 미국 등지에서 수백 년 동안 애송되어 온 좋은 곡들이 다수 포함되었고, 특별히 제네바 시편찬송가에 들어있던 제네바 시편송들 중에 가장 애송되는 곡들이 45곡 정도 포함되어, 예배의 찬송이 여러 모로 더욱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한국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하는 성도들이 예배할 때마다 시편찬송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들이 더욱 많아지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시편찬송으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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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범 목사는 양의문교회(서울시 종로구 사직동 소재, 예장 고려개혁) 담임목사로서, Free Church of Scotland College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미국 Greenville Presbyterica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고려서원에서 출판된 '시편찬송가' 편찬에 기여하였고, 2016년 6월 경에 증보된 '시편찬송가'를 발간할 예정에 있다. 고려서원에서 출판된 '시편찬송가'는 '목회대학원'에서 '시편찬송'을 소개할 때에 사용되고 있다.
http://reformedjr.com/board02/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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