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예배 (롬 12:1,2)
김대운 목사 / 경성교회 (2020.10.12)
오늘은 우리가 주님께 드려야 할 영적 예배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영적예배가 무엇인지, 두 번째로 영적 예배의 절대적인 전제 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영적 예배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울은 1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로 우리가 주님 앞에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할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라는 부사는 당연히 앞의 내용과 논리적으로 연결된 권면임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11장까지 주님의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은혜의 역사로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설명한 후 우리가 보여야 할 반응이 바로 영적 예배라는 사실을 교훈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이라는” 표현도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이라는 관점에서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큰 은혜와 자비하심을 생각하면서 주는 권면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놀라운 은혜, 일방적인 은혜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주님 앞에 드려야 할 예배는 다름 아닌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여기서 우리말로 번역된 영적 예배라는 표현도 더 쉽게 설명하면 합당한 예배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역사로 구원 받은 우리가 드려야 할 합당한 예배는 우리 몸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제물은 죽는 것이 전제가 되어 있는 데,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산 제물이라고 함으로써 이는 곧 거룩한 희생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 합당한 예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끌어들여서 우리가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대면예배를 강해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대면예배를 드릴 경우에 코로나가 더 확산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교회가 이웃 사랑의 차원에서 현장 예배를 고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많은 사람이 수긍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이웃에 대한 배려는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동안 교회는 정부에서 요구한 것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방역 수칙을 지켜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방역수칙을 지킨 교회에서는 확진자가 다녀갔어도 집단감염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집단감염은 방역수칙을 어긴 소수의 교회에서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웃을 사랑해야 되니까 모든 교회가 모이면 안 된다고요? 그러면 그리스도인 식당 주인들은 코로나를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서 식당 문을 닫아야 될까요? 그리스도인 커피숍 주인은 이웃들에게 코로나를 확산시킬 위험이 있으니까 커피숍 문을 닫아야 할까요? 그리스도인 버스 운전기사와 지하철 기관사도 밀폐된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 운집하도록 만드니까 한 동안 일을 그만둬야 할까요? 그리스도인 사업주는 직원들을 코로나의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회사 문도 닫고 모든 업무를 비대면으로 처리하도록 지시해야 할까요?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되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중교통도 피하고 시장이나 마트도 이용하면 안 될까요?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이웃 사랑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스도인으로서 보여야 할 진정한 이웃 사랑은 다름 아닌 복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현장예배를 포기하는 것은 이웃 사랑 실천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함을 핑계로 타협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복음을 실천하는 가장 기본이 바로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1세기의 기독교인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에게 예배란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주일에 모여 있으면 더 쉽게 발각될 수 있었습니다. 잡힐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나왔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대한 고마움이 그들을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주 앞에 나오도록 만들었습니다.
북한에 있는 지하교회 교인들도 예배드리다가 발각되면 전원 노동교화소나 총살을 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몰래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왜요?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예배 자체가 곧 그들이 믿고 있는 복음을 실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 이들의 모습이 곧 복음의 진리에 대한 강력한 외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목숨을 걸고 예배드리는 신앙인들의 삶이 어떻겠습니까? 대충대충 살겠습니까? 아니면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어떤 자리에서든, 어떤 일을 하든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하겠습니까? 당연한 것이죠. 그들은 주님께서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기 위하여 예배 뿐 아니라 모든 일에서 자신을 희생한 진실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우리도 동일했습니다. 8월 19일까지 교회들이 현장 예배를 지켜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쉬는 날, 더 일해서 돈을 버는 날로 여기는 일요일을 주의 날로 부르면서 주님을 섬기는 일에 바친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전염병의 위험 속에서도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현장예배를 드림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있을 때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전염병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거의 다 숨어버렸습니다. 그깟 삼백만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는 큰 교회들이 다 숨어버림으로서 우리가 가진 복음이 고작 삼백만원에 굴복시킬 수 있는 무력한 것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무력한 것으로 전락시키면서 모이지 않는 것이 이웃 사랑이고 주님께 드려야 할 합당한 예배, 영적 예배일까요?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공 예배를 지켜야 합니다. 공 예배에 나와서 주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진단하고 돌이킴으로서 더 거룩한 산 제물처럼 복음을 위하여 희생하는 삶을 살 수 있길 결단하고 주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드려야 할 진정한 영적 예배입니다.
두 번째로 영적 예배를 위하여 반드시 요구되는 조건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와 같은 방식을 취하기보다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아버지의 뜻을 분별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로마천주교의 예배가 부패하고 타락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겠다면서 형상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런 형상을 만드는 것을 철저히 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회적 배려, 글을 알지 못하는 교인들에게 형상을 만들고, 성경의 중요한 장면들을 그림으로 보여줌으로 그들의 신앙에 도움을 주겠다는 그럴듯한 명목을 내세워서 성경이 금한 것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실수는 오늘날의 교회가 그대로 답습하거 있습니다. 실용주의를 받아들인 교회들이 영상예배라는 문명의 이기를 통하여 결국 중세교회의 형상예배를 그대로 따르고 있으니 이는 결국 교회의 쇠락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온라인 비대면 수업도 문제가 많죠? 그런데 예배를 온라인으로 비대면으로 드리라고요? 비대면 할 수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비대면으로 예배하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온 교인이 함께 주 앞에 나와서 드려야 할 공예배를 어떻게 세속의 방식을 따라 영상으로 대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예배는 마땅히 이 세대를 본받을 것이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명령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 합당한 예배입니다.
1,853년 영국에서 콜레라가 한참 유행할 때 콜레라 발병지 바로 강 건너편에서 사역했던 스펄전목사님은 이 시기를 복음전파의 최적기로 이해했습니다. 이 당시에 발생할 콜레라로 무려 236,000명이나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콜레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스펄전 목사님은 최선을 다해서 교인들을 회집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에 확신을 갖도록 가르쳤습니다. 이 뿐 아니라 수많은 새로운 신자들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전염병을 핑계로 교회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하여 더 열심히 교인들을 회집하며, 두려움과 불안에 교회에 못 나오는 이들을 격력하고, 죽어가는 이들에게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전염병의 발발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상기시켜주는 종말의 징조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징조가 눈에 보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속을 따라, 세속이 정해주는 방식의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오히려 복음전파의 최적기로 이해하고 사람들의 가슴에 분명한 복음에 확신을 갖게 할 뿐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에 빠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더 열심히 모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모여야 되겠죠? 열심이 너무 지나쳐서 증상이 있는데도 나오시면 안 되겠죠? 우리는 세속이 정해준 예배가 아니라 성경이 명하는 예배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영적예배는 주님의 일방적 은혜의 역사로 구원 받은 성도들이 드려야 할 합당한 예배로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 영적 예배의 전제조건은 세속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성경을 따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우리의 공예배에 적용해도 이웃 사랑을 내세워서 비대면으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세속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공예배에 나와서 주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진단하고 더 주께서 받으실 합당한 제물이 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주의 은혜를 의지하는 자세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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