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절, 과연 신약교회가 지켜야 할 절기인가?
손재익 목사 / 한길교회 (2015.6.10)
맥추절을 지키는 한국교회
매년 7월 첫 주가 되면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맥추감사주일’을 지킨다. 한국교회가 주로 지키는 맥추감사주일은 구약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맥추절’을 근거로 두고 있다. 성경에 보면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절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유월절(무교절), 맥추절(칠칠절, 오순절), 장막절(수장절)이다(출 23:14-16; 34:18-22; 레 23장; 신 16장). 여기에 근거하여 매년 맥추감사주일을 교회의 절기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유월절이나 장막절은?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유월절과 장막절은 지키지 않는가? 맥추절을 지키는 이유가 구약의 3대 절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유월절과 장막절도 지켜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 맥추절보다 유월절이 성경에서 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가? 그런데도 한국교회 중에서 유월절이나 장막절을 지키는 교회를 들어본 적이 없다. 유월절 감사주일도 없고 장막절 감사주일도 없다. 맥추절을 지키는 이유가 구약의 3대 절기이기 때문이라면, 유월절과 장막절도 지켜야 한다고 말해야 정상인데 전혀 그렇지 않다. 지키려면 3개 다 지키고, 그렇지 않다면 3개 다 안 지켜야 하는데 하나만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 자체로 모순이 아닐까?
게다가 성경에 보면 위에 열거한 것 외에도 구약시대에 지켜야 할 절기로 나팔절(레 23:23-25), 속죄일(레 23:26-32), 안식년(출 23:10-11; 레 25:1-7), 희년(레 25:8-12), 부림절(에 9:20-32)이 있다. 맥추절을 지킨다면 이것들도 다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닐까? 왜 하필이면 맥추절만을 고집하는 것일까?
구약절기에 대한 바른 이해
구약에 있는 내용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듯, 구약의 절기들을 오늘날에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늘날 어린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회 안에 성막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이처럼 구약의 이야기들은 신약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구약에 나오는 여러 사항들이 그러하듯, 구약의 절기 역시 신약적 의미에서 해석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를 들어,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출애굽의 출발을 기념하는 것으로(출 12장), 유월절을 통해서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유월절은 신약시대에 와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고전 5:7). 구약의 유월절에 죽임 당한 어린 양은 그것의 신약적 의미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더 이상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다. 만약 지금도 어린 양을 잡아야 한다고 말하면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일이다. 실제로 한국교회의 그 누구도 유월절을 맞아서 그것을 기념한다든지 어린 양을 잡는다거나 무교병과 쓴나물을 먹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월절은 신약시대에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성취되었음을 믿기 때문이다.
맥추절의 구속사적 의미
이러한 관점에서 맥추절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국교회에서는 맥추절을 ‘보리추수’를 기념하는 날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보리 농사를 지은 것에 감사해서 지키는 절기라고 강조했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농사를 짓는 경우가 없다보니 그 이유를 바꿔서 말하기를 한 해의 절반인 상반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로 지켜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성경적 근거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맥추절이 ‘보리추수에 대한 감사’라는 말은 더더욱 그렇다. 히브리어 성경과 영어성경을 살펴보면 이 사실을 자세히 알 수 있는데, 우리는 ‘맥추절’이라는 말이 한글성경에 ‘맥추’(麥秋)라고 되어 있어서 ‘보리(麥) 추수’로 오해를 하지만, 히브리어 성경과 영어 성경에 보면 ‘맥추’라는 단어가 아니라, 그냥 ‘추수의 절기’(the Feast of Harvest)라고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보리 추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추수’에 있다. 구약 이스라엘이 맥추절을 지켰던 것은 ‘보리’에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추수’에 핵심이 있었다. 게다가 이 ‘추수’는 단순히 농사를 짓는 일과 관련해서 생각하면 안되고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생각해야 한다.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추수’는 곧 ‘출애굽의 완성’을 의미한다. 더욱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 맥추절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성경의 기록을 보면, 출애굽기 23:16에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이 명령은 아직 추수를 할 수 없는 광야에서 주어진 명령이다. 왜냐하면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사를 짓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광야 생활 하는 중에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직까지는 맥추절을 지킬 수 없다. 맥추절을 지키려면 추수를 해야 하는데 광야에 있으니 그럴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명령은 언제부터 지킬 수 있었을까?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착할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실제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니 만나와 메추라기가 그쳤다. 그리고 그 땅에서 열매를 얻을 수 있었다(수 5:12).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에야 비로소 추수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맥추절을 지킬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명령을 왜 출애굽기 23장에서 주셨는가? 그것은 출애굽의 완성을 사모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가나안 땅에 도착할 것은 소망케 하시기 위함이다. 이렇게 볼 때에 맥추절은 추수의 절기지만 더 궁극적으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라고 하는 징표로 드리는 절기이다. 맥추절을 지킨다는 것은 가나안에 도착해야만 가능한 것이니, 도착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렇기에 구약의 맥추절은 단순히 추수의 절기를 넘어선다. “출애굽을 통해서 시작된 구원이 드디어 완성되었구나” 하는 것을 기억하는 절기이다. 유월절을 통해서 출애굽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구원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맥추절을 통해서 추수의 절기를 지키는 것은 구원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맥추절의 구속사적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것을 신약적으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구약의 유월절은 신약 시대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표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5:7에는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라고 말씀한다. 이처럼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유월절 때 양이 죽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우리를 위한 희생양이 되어 주심으로, 구약의 유월절의 의미를 이루셨다. 이렇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출애굽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구원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남은 것이 있다. ‘출애굽의 완성’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한 출애굽이 시작되었다면,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출애굽의 완성이 남아 있다. 그래서 유월절에 죽으신 예수님께서는 안식 후 첫 날(초실절, 初實節)에 부활하셨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初實)가 되셨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그리고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도 열매가 되게 하셨으니(고전 15:23), 그것은 바로 성령님을 우리에게 부어주신 일을 통해서 였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맥추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오신 성령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부활의 열매가 되게 해 주셨다.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해 주시는 일을 통해서 하신다. 이런 점에서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졌다면, 맥추절은 성령님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첫 열매로 삼아주시니 이제 우리가 구원의 열매, 추수의 열매가 되었다.
이러한 점을 잘 드러내시기 위해서 성령님은 매우 의도적으로 맥추절(오순절)에 오셨다. 이 맥추절은 유월절로부터 50일이 지난 날이다. 맥추절의 다른 말인 오순절에서 ‘오순’(五旬)이라는 말은 50이라는 말이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지 50일째 되는 안식 후 첫 날에 오셨다. 이 사실은 이미 구약에 예언되어 있다. 맥추절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레위기 23:15-16에 보면 “안식일 이튿날......일곱 안식일 이튿날....”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예수님은 유월절에 죽으셨고, 초실절(유월절이 지난 첫 안식일 다음날)에 부활하셨으며, 맥추절(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통해서 유월절 구원을 완성하셨고, 그 완성을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하시니 바로 오순절 사역을 통하여서 전달하시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신약의 맥추절이 갖고 있는 의미인 것이다.
이 사실을 드러내시기 위하여서 성령님께서는 아주 의도적으로 오순절에 오셨으니, 이제 구약의 맥추절을 폐하시고 당신의 강림을 기념케 하시기 위함이다. 사실 구약의 맥추절과 신약의 오순절 성령 강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성령님은 다른 때에 오셨을 수도 있다. 꼭 예수님 부활하신지 50일 째 되던 날에 오실 필요는 없다. 20일째 오셔도 되고, 30일째 오셔도 된다. 아니면 예수님이 승천하시던 날 그 날 바로 오셔도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매우 의도적으로 50일 되던 날 오순절까지 기다리신 뒤에 그 날에 임하셨으니 우리로 하여금 구약 맥추절의 의미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구약의 맥추절은 그 의미를 끝내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유월절의 의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끝난 것과 같다. 그렇기에 더 이상 구약의 맥추절을 지키는 것은 성령님의 강림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구약시대로 역행하는 행위이다. 그리스도와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속 사역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구원을 무위(無爲)로 돌리는 일이다. 새 언약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여전히 옛 언약 시대를 살려고 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제로 우리는 유월절도 지키지 않고, 장막절, 나팔절, 속죄일, 안식년, 희년, 부림절 등 아무것도 지키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유독 맥추절만 지킨다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맥추절, 과연 신약교회가 지켜야 할 절기인가?
우리는 지금 새언약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옛언약 시대를 사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 맥추절의 신약적 의미가 성취되었는데도 여전히 맥추절을 지키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새 언약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여전히 옛 언약 시대를 살려고 하는 것으로 기독교를 유대교로 만드는 일이다.
그동안은 잘 몰라서 그렇게 해 왔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맥추절을 지키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근래에는 맥추절을 지키는 것의 문제점을 알고는 성령강림주일로 바꾸어서 지키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당수의 교회들에서 맥추감사주일을 지키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하던 일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랫동안 지켜오던 맥추절을 갑자기 없애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그전에 그렇게 가르치던 분들은 왜 그렇게 가르쳤느냐?” 라고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문제를 이미 인식하고 있는 많은 목사들은 오랫동안 해 오던 것에 익숙한 장로들과 성도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쉽지 않아 그냥 해오던 대로 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이 문제를 이미 130년을 넘은 한국교회에서 “잘못되었습니다.”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성경적이지도 않은 것을 마치 성경적인냥, 하나님의 명령인냥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개신교회는 개혁교회이다. 개혁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바에서 어긋난 것이 발견되었을 때에는 바로 개혁하는 교회이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이렇게 말했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해 가는 교회이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그동안 잘못 지켜왔더라도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특히 이 문제를 개교회에서 해결하기보다는 총회적으로, 공교회적으로 다루어서 하루 빨리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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