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진화론, 결국 하나님과 인간 멀어지게 할 것
김병훈 교수 (합동신대 조직신학) / 김진영 기자 (2018.6)
본지는 얼마 전 '창조와 진화'라는 주제로 과학자 3명을 만나 인터뷰 했다. 각각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한윤봉 전북대학교 화학공학부 교수(한국창조과학회 회장), 이승엽 서강대학교 기계공학·융합의생명공학 교수(지적설계연구회 회장)다. 셋 모두 기독교인이자 과학자로서 창조와 진화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진솔하게 밝혔다.
이번엔 신학자와 마주했다. 김병훈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다. '과연 성경은, 창조와 진화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그 답을 구하기 위해서다. 아래는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진화론은 성경적이지 않다"
-신학자로서 '진화론'을 어떻게 보나?
"'진화'라는 말의 대중적 의미, 즉 어떤 현상이나 생명, 물질 등이 단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현상을 '진화'라고 한다면, 여기에 반대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창조의 반대 개념으로서 현재 논쟁이 되는 진화론은 이런 의미의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자연선택' 그리고 '돌연변이'와 같은 유전자 변이라는 것을 그 핵심 개념으로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진화론이다. 나는 신학자로서, 이런 입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성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적이지 않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생명과 인간을 창조했다'는 기독교 신앙의 토대는 창세기 1장에 있다. 하나님께서 물질과 우주,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식물과 동물을 각각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것들 모두와 구분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이 창조됐다고 창세기 1장은 증언하고 있다. 만약 창세기 1장이 단지 동물의 창조에서 끝나고, 거기에 특별히 인간을 창조했다는 언급이 전혀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그것으로 창조의 사역이 마무리 되고, 창세기 2장에서 갑자기 아담이 등장했다면 말이다. 정말 그랬다면, 혹시 인간이 동물에서 진화했을 수 있다고 해석할 개연성은 있다. 그러나 명백하게도 성경엔 그렇게 쓰여 있지 않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적어도 기독교인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
"유신진화론? 모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하지만 "하나님께서 진화라는 방법으로 인간을 창조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스스로는 진화적 창조론자라고 하는 유신진화론자들이 대개 그런 주장을 하는데, 신학적으로 볼 때 굉장히 모순적인 주장이다. 진화론은 결코 하나님의 창조와 함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창조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해 창조하셨음을 말하는 반면, 진화론은 이 진리를 부정한다. 바꿔 말해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셨다는 것을 배제해야만 진화론의 전개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생명의 기원에 관해, 진화론은 존재론적 또는 인식론적으로 하나님을 배제한다. 즉 그것은 무신론적 진화주의나 적어도 불가지론, 이신론을 전제로 한다.
이런 점에서 진화론은 그 자체로 과학이 아니라 일종의 신념이자 세계관의 산물이다. 모든 생명은 물질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철학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생명의 문제를 탐구함에 있어 절대로 신은 가정하지 않는다. 이를 '방법론적 자연주의'라 부른다. 눈에 보이는 자연만을 전제로 과학을 하자는 태도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지금의 진화론이다. 따라서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문제에 있어 결코 충분하며 타당한 방법론이 아니다.
과연 진화론이 그렇다. 그 이론 체계 어디서도 신의 향기를 맡을 수 없다. 진화론 안에서 인간을 비롯한 생명은 그저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기를 불어넣은, 그런 특별한 존재의 인간은 그 속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애초에 자연주의 방법론에 의해 태어난 진화론을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와 연결시킬 수 있나? 앞서 본 대로, 창세기 1장은 오히려 그 반대, 즉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를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진화론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의 개입을 부정하는 개념이고, 창조론은 그 반대를 말하는 것이므로 진화적 창조론 또는 유신진화론은 모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이 하나 있다. 과거 16~17세기, 서구의 과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발견해 낸 자연의 법칙에서 하나님의 신성과 위대함을 느꼈다. 요컨대 신앙의 눈으로 자연을 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은 신앙의 눈으로, 일반계시인 자연은 그 실체가 방법론적 자연주의인 과학으로 봐야 한다는 유신진화론자의 주장은, 단언컨대 틀렸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 진화론을 계시하신 것이 아니다."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날'(day)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욤'을 '24시간'이 아닌 '충분히 긴 시간'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진화적 방법으로 창조했다"고도 볼 수 있는 건 아닌가?
'젊은 지구론'에 대해
"'욤'이 '24시간'만이 아닌 '충분히 긴 시간'을 뜻하기도 한다는 건, 물론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일차적 의미는 '24시간'이고, 무엇보다 창세기 1장에 쓰인 '욤'은 그 문맥상 '24시간'에 더 가깝다는 게 여전히 가장 강력하며 전통적인 주석이다."
-그렇다는 것은, 지구의 나이가 짧게는 약 6천 년, 길어도 1만 년 정도라는 소위 '젊은 지구 연대'를 지지한다는 건가?
"지구연대에 관한 과학자들의 논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의 '욤'이 '24시간'을 뜻한다는 것이 내 신학적 양심이기에, 지구의 연대도 비교적 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것은 성경적 근거에 따른 판단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그 때에 아담과 하와도 만드셨다면, 그 이후 인류의 역사가 곧 지구의 연대일 것이다. 유신진화론은 약 45억년 전에 지구가 만들어지고, 약 36억년 전에 물질에서 생명이 우연히 나왔으며, 진화의 방식으로 이 세상의 생물들이 나왔고, 아담과 하와는 진화에 따른 선행인류에게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아담이 인류의 시조임을 부인하고, 아담에 의한 원죄론을 신화로 취급하며, 인간의 죽음이 죄로 인한 것이라기보다 생물학적인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조차 젊은 지구론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 만큼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택한 과학의 영향이 큰 탓이 아닐까? 유신진화론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이론과 주장을 정말 경계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진화론이라는 질서를 놓으셨고, 단지 그에 따라 이 세상이 스스로 진화해 온 것이라면, 끝내 그것은 인간에게서 하나님을 밀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은 진화론을 통해서는 결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한다.
유신진화론이 기독교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해답을 주고, 그들을 위로한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땐 오히려 그 반대다. 과연 유신진화론이 교회를 지켜낼 수 있을까? 오늘날 주류 과학계가 진화론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무리하게 기독교 신앙과 조화시키려는 시도는, 당장에는 그럴 듯하게 보일 수 있지만, 마침내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만들 것이다."
-'노아의 홍수'는 실제 전지구적 격변이었다고 보나?
"만약 노아의 홍수가 전지구적 격변이 아니었다면, 어딘가 방주에 타지 않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얘긴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셨다고 기록하고 있고, 홍수 이후 노아가 인류의 새로운 시조라고 말하고 있으니, 노아의 홍수는 전지구적 격변이 맞다고 본다."
-끝으로 기독교인들, 특히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이 우주는 정말 심오하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으면 한다. 간혹 과학을 공부하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와 모순되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진화론 때문이지, 과학 자체 때문은 아니다. 순수한 과학자로서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신성을 더욱 깨달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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