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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성도가 교회를 옮겨야 하는가?

Sola. 2023. 7. 23. 07:00

 

언제 성도가 교회를 옮겨야 하는가?

튤립 신학연구원 원장 김명도 교수

 

 

많은 성도들이 현재 출석하는 교회에 불만을 갖고 다른 교회로 이적할 생각을 하는 것이 오늘의 풍토이다. 그래서 상담을 해 온다. 그러나 이는 심각하여 소홀히 다룰 문제가 아니라서 세심한 주의와 기도가 필요하다. 오늘은 성도가 언제 교회를 옮겨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선, 사람들이 왜 교회를 옮길 생각을 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부터 해부해 보자.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한번 좋은 교회 (성경대로 가르치고 행하는 교회) 을 정하면 떠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부르시거나 아니면 다른 먼 지방으로 이사를 가기 전에는 이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저런 여러가지 일로 교회를 옮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날 생각을 가지는 이유는 참으로 천태만상이다. 하나씩 더듬어 보자.

 

 

보통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려 하는 이유

 

1. 거리가 너무 멀어서.

 

거리가 먼 곳에 살면서 교회의 모든 집회에 출석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가까운 거리에 참다운 교회가 없다면 거리가 좀 멀어도 좋은 교회를 택할 수밖에 없으니 교회를 떠날 이유는 안된다. 단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아무 교회에나 출석하는 일은 절대 금물이다. 신앙생활은 생명보다 더 귀하기 때문에 육신에 편리할 대로 아무런 교회나 택해서 <적당히> 신앙생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태어 옛 이야기를 하자면, 청교도 시절에는 사람들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포장 마차를 타고 주일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주일 아침이 되면 기쁜 마음으로 온 식구가 교회에 출석했다.

주일에 상점의 문을 여는 일도 없었고, 세상 일에 얽매어 교회를 빠지는 일도 없었다. 물론 나중에 2세 3세 때에 내려와서는 그런 경향이 나타나서 성직자들의 우려를 야기 시킨 것이 사실이지만 초기 이민자들은 모두 뜨거운 신앙에 불타면서 주님을 사랑했다. 그러므로 현재 출석하는 교회가 참되고 진실된 교회인데 단지 거리가 멀어서 다른 교회로 이적해야 겠다는 생각은 한번쯤 재고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2. 교인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보통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려 하는 이유)

 

어떤 분은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어떤 교우와 말다툼을 하거나 사업상의 일로 문제가 생겨서 그 사람을 보고 싶지 않으니 교회를 이적하려는 분이 있다. 이는 금물이다. 성경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믿는 성도라면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성경은 서로 화목하여 서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서로 이해하고 용서 하라고 가르치는데 사소한 일 (혹, 사소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으나) 서로가 불편하다하여 교회를 옮기면 멋 훗날 천당에 올라가서는 각자 <다른 교회> <다른 방> 에 출입할 것인가? 천당에는 다른 방도 없고, 다른 교회도 없다. 모두 그리스도를 모시고 영원히 원망도 슬픔도 없이 살게 된다.

이 땅의 교회는 장차 우리가 누릴 천당의 모형이다. 그림자 이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다.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고 풀어야 한다. <결자해지> 라는 말도 있다. 손해를 끼치거나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먼저 용서를 구하여 서로 회해할 일이 필요하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는 말씀은 야고보서에서 읽어 보는 잘 알려진 성경구절이다. 옛날 필자가 어느 한인 신학교에서 일을 볼 때의 일인데 당시 <현직 교장>과 <전직 교장> 의 사이가 극도로 악화되어 아무리 회해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적이 있다. 그 두분이 그 교단에서는 저명한 "지도자" 급이지만 서로 대인 관계가 극에서 극을 달리고 있었다. 이는 속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교인들 간의 다툼으로 인하여는 교회를 떠나서는 안된다. 성경이 허락지 않는다. 성경이 허락지 않는 다는 말은 하나님이 허락지 않는다는 말이다.

 

 

 

3. 교회의 가르침이 마음에 안들어서, (보통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려 하는 이유)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어떤 가르침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인가? 교회는 한 개인의 욕망이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존재함이 아니다. 가장 현저한 예는 <교회가 생기가 없다. 고루한 찬송가만 한다 세상적인 신나는 노래를 했으면 좋겠다> 라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의 신앙에 문제가 있다. 그런 노래를 좋아한다면 구태어 교회에 나올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런 분들은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는 초진자들로서 교회가 바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가르침이 마음에 안든다는 것도 무슨 가르침이 어떤 면에서 마음에 안드는지 판단해 보아야 한다. 가령 교회가 죄문제를 중점으로 거론하고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바로 살자고 설교하기 때문에 교회를 이적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오늘의 교회가 타락하는 이유는 이런 <사이비신자>들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상상이외로 너무도 많다. 설교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은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판단의 기준은 <설교가 성경적인가>하는 문제뿐이다. 설교가 성경에서 어긋나면 단연코 교회를 떠나야 한다.

오늘의 많은 교회가 이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설교가 성경에서 어긋나지 않으면 마땅히 설교를 경청해야 하고 잘 가르치는 장로를 배나 존경할 자로 여겨야 한다 . 이런 교회를 떠나서는 안된다.

 

 

 

4. 목사의 윤리 문제 때문에, (보통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려 하는 이유)

 

요즘 세상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출석하는 교회의 성직자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생각할 문제이다. 그러나 정죄하고 판단하기 전에 진상을 정확히 파익할 필요가 힜다. 항상 어느 교회에나 목사를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있게 마련이다. 성경에도 바울을 대적하는 무리가 있었다. 예수님에게 대적하는 유대인들의 무리가 있었다. 진리가 있으면 진리를 훼방하는 비진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직자가 애매하게 누명를 쓰는 일도 있을 수 있으므로 진상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일을 유포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멀리 함이 필요하고 만일 성직자의 윤리가 사실로 판단되면,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이 필요하다. 두번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그런 사람에게서는 배울 것이 없으므로 교회 이적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즘은 성직자들의 목회자로서의 기본 자질이 현저하게 타락해 가는 것이 사실이고, 앞으로 더욱 더 악화 될 것을 성경이 예언하고 있다. 성직자가 실수 할 때 성도들이 처음에는 기도하라고 하는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 그런 일이 생기면 그는 요한일서 3:9 말씀대로 아직 <중생하지 못한 사람> 임이 입증되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목사에게는 두 번의 실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유명한 종교개혁가 Samuel Rutherford 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점점 퇴색해 가고, 성경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목사들이 날마다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러므로 목사가 상습적으로 비윤리적인 일을 하지 않는 한 교회를 떠나서는 안된다.

 

 

 

5. 교회에서 직분을 맡기지 않으므로, (보통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려 하는 이유)

 

교회를 떠나고 싶은 충동을 많이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역시 가만 생각하면 <때가 아직 되지 않아서 하나님이 아직 허락하지 않는다> 고 생각할 문제이며 교회를 떠나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개 본인은 상당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회나 목사가 임직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생각일 뿐이고 당회의 공정한 생각이 아닐 수 있다. 또 당회에서 추천한다해도 투표에서 낙선되면 근시안적으로 보면, 그를 보는 교인들의 시각이 웅변적으로 반영된 것이고, 원시안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아직 그런 직분을 허락하지 않는 증거이니 어떤 면에서 보아도 그런 일로 인하여 마음 상할 일도 아니며 교회를 떠날 일이 못된다. 성경은 <겸손으로 허리띠를 띠면 때가 되매 하나님이 높이시리라> 라고 가르친다. 지금 이 상담에 응하고 있는 필자는 신학교를 나오고 목사 고시를 끝내고도 7 년동안을 목사로 안수 받는 일을 일부러 미루어 온 일을 기억한다. <목사의 일을 담당할 만큼 자신감이 없었고 잘 못하면 하나님에게 받을 징계가 두려웠기 때문> 이다. 목사이건, 장로이건, 집사이건, 권사이건, 주일학교 반사 이건 모두 <남보다 더 많이 받은 사람들이니 잘 못하면 하나님에게 더 많은 매를 맞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 야고보 장로도 3:1에서 <많은 사람이 선생이 되지 말라> 고 경고한다. 요즘의 문제는 <겸손> 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 교회를 떠나야 하는가?

 

대답은 한 가지 뿐이다. <내가 이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는 확신이 설 때 단연 교회를 떠나라. 무슨 말인가 하면, 참 교회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는데, 즉 바른 말씀 선포, 바른 성례집행, 그리고 바른 권징 이행인데 이 세가지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이행되지 않아 성경말씀을 어기면 내가 주님의 뜻대로 신앙생활할 수 없게 되므로 그 때는 단연코 교회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성도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신비적인 연합>으로 하나가 되어 있다.

성도는 바른 말씀의 선포를 통해서 그리스도로부터 영적인 영양을 공급 받아 영의 생명을 유지하고, 성찬식이나 세례식 등 바른 성례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이며 영적인 연합을 견고히 하고, 바른 권징을 통해서 순수하게 주님을 따르게 한다. 그런데 교회가 변질되어 이런 일들을 하지 못 한다면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라도 그것은 <거짓 교회>이며(이사야 4:1) 성도가 거짓 교회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참다운 교회는 교인들이 모두 100 % 거듭난 사람들만 모인 곳이 아니다. 그런 교회는 세상에 동서 고급을 막론하고 하나도 없다. 참다운 교회는 위에서 말한 세 가지 특징이 살이 있어서 그대로 실천하는 교회이다. 여러분 주위의 교회에서 이런 교회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