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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신앙고백서(1561)에 나타나는 개혁주의 성경관

Sola. 2023. 11. 22. 06:00

 

네덜란드 신앙고백서(1561)에 나타나는 개혁주의 성경관

 

이상웅(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이 글은 이상웅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개혁주의적 성경관에 대해 연구하고 제시한다.

 

 

1. 들어가는 말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는 종교개혁의 형식적 원리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신적인 기원을 가진 문서이기 때문에, 모든 참된 신지식(congnitio Dei)과 선악의 판별 기준은 오직 성경에서 찾아져야 한다. 그러나 근대 비평학의 발달과 더불어서 성경의 영감과 신적인 권위에 대한 확신은 의심으로 변하고 마침내는 비평적으로 다루어야 할 ‘고대문서중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여기는데 까지 이르고 만다.

 

인간을 척도(homo mensura)로 삼는 자유주의자들뿐 아니라 소위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서도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이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어느 시대나 그러하였지만 특별히 21세기에 살아가는 우리 개혁주의자들에게는 성경의 기원, 영감, 권위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재정립하고, 이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뒤흔들어 놓고자 하는 파괴적인 비평학과 어느 정도 동의하고자 하는 입장들에 대해서 바른 성경관을 변호하고 방어해야 할 책무가 주어져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시대적인 책무의식에서 본 연구는 출발하였다.

 

논자는 개혁주의 성경관을 확인하는 작업의 일환으로서 네덜란드 신앙고백서(Confessio Belgica, De Nederlandse Geloofsbelijdenis, 1561년)의 성경관을 논구해 보고자 한다. 순교자 귀도 드 브레에 의해서 1561년에 처음으로 공표된 이 신앙고백서는 라틴어 번역으로부터 영어번역본에 이르기까지 벨직신앙고백서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일관되게 네덜란드신앙고백서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1561년 첫 원본에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순수성에 따라 살기를 소망하는, 저지대에 살고 있는 신자들의 공통의 일치에 의해 만들어진 신앙고백”(Confession de foy, faicte d’un commun accord par les fideles qui conversent es Pays-Bas, lesquels desirent vivre selon la purete de l’Evangile de Notre Seigneur Jesus-Christ)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사실 벨직신앙고백서이든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이든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다만 이 신앙고백서는 네덜란드개혁교회와 동질의 신학을 추구하는 북미주개혁교회에서 ‘일치를 위한 3신앙고백서’(Drie formulieren der eenighied, The Three Forms of the Unity) 중 가장 오래된 신앙고백서라고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1563년에 공표된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1618-1619년에 작성된 도르트신경에 비해 이 신앙고백서는 1561년에 출간되었다).

 

또한 브레이던호프의 지적처럼 3대 신앙고백 문서 가운데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유일하게 순교자가 만든 것이다. 자신이 고백한 신앙고백에 대하여 자신의 피로 손수 인을 친 문서라고 하는 점에서 감동을 주는 신앙고백서인 셈이다.

 

논자는 본고에서 이와 같은 네덜란드신앙고백서에 담긴 개혁주의 성경관을 논구해 보고자 하는데, 자료문제와 논의의 순서를 먼저 밝히고자 한다. 연구서들에 대한 참고도 필요하지만, 본고의 우선적인 주 자료원은 네덜란드신앙고백서 본문 자체이다.

 

 

 

2. 역사적 배경과 성경관 논의의 컨텍스트

 

2.1.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저자 귀도 드 브레와 역사적 배경

 

다양한 토론들이 있긴 했으나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의 저자 내지는 주요 저자로 공인되어온 사람은 순교자가 된 귀도 드 브레 혹은 귀 드 브레(Guido de Brès or Guy de Bray, 1522-1567)이다. 드 브레가 신앙고백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을수도 있고, 출판하기 전에 여러 교회에 보내어 자문을 구했다고 하더라도 신앙고백서의 주요 저자는 귀도 드 브레라는 점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의 저작 배경에는 저자 드 브레의 삶과 그가 활동했던 저지대의 역사적 상황이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적지 않은 논의들이 공표되어 있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최대한 간결하고 요점들만 제시하고 지나가고자 한다.

 

귀도 드 브레는 1522년 저지대에 속한 베르흔(Bergen/ Henegouwen)에서 출생했으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기 어렵다. 다만 칼 5세의 통치하에 있던 가톨릭 지역에서 자라난 그가 개혁파적인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1547년경이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1548년 드 브레는 개혁파신앙에 대한 박해를 피해서 런던으로 갔고, 그곳에서 유럽의 개혁자들인 마르틴 부처, 요한 아 라스코, 페트루스 다테인 등과 교제하면서, 신학적 지식을 처음으로 광범위하게 쌓게 되었다. 그는 1552년에 다시 저지대로 돌아와 순회설교자로 사역했다(레이설 또는 릴르와 주변지역). 4년 후 가톨릭의 박해가 극심해지자 다시 저지대를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망명을 떠나게 되었고(1556년), 그후 베자가 가르치고 있던 스위스 로잔과 칼빈이 목회하고 있던 쥬네브로 가서 1559년까지 머물면서 신학공부를 계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기간 동안 드 브레가 어떤 공부를 하였는지에 대해서도 확인하기는 어렵다.

 

1559년에 다시 고국으로 되돌아온 드 브레는 도르닉(Doornik, 프랑스어로는 뚜르네이 Tournai라고 부름)에서 비밀교회를 조직하여 목회하기 시작했다. 비밀스러운 사역을 진행하던 중에 박해를 일삼는 신성로마제국과 로마가톨릭에 대하여 자신들이 믿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공개적으로 알려야 하겠다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작성하게 된 것이 바로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이다. 헤이띵(W. Heijting)에 의하면 신앙고백서는 ‘1561년 4월 전에’(voor April 1561) 드 브레가 사역하고 있던 도르닉(= 뚜르네이)의 은신처에서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쇄된 신앙고백서 책자가 공적으로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11월 1일-2일 사이 밤중에 도르닉 성벽안으로 몰래 투척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부터였다.

 

드 브레는 개혁파 신자들이 믿고 있는 신앙이 재세례파의 과격한 신앙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펠리페 2세나 저지대 행정관들이 박해를 중단해 줄 것을 탄원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드 브레의 간절한 소원에도 불구하고 그의 탄원서와 신앙고백서는 펠리페 황제나 그가 세운 섭정 마르가 레타에 의해 수용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극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다. 드 브레는 4년 동안 프랑스 북부에 소재한 아미엥(Amiens)과 세당(Sedan) 등에 머물렀고, 1566년에 도르닉에서 멀지 않은 발랑시엔느(Vaenciennes, L’Aigle)에서 목회사역을 시작했다. 한때 복음에 의해서 발랑시엔느가 개혁도시가 되는가 싶었으나, 결국에는 스페인군대에 의해서 성은 함락되었고, 도피중에 잡힌 귀도 드 브레는 체포되어 몇 개월 동안 감옥에 갇히어 된다. 그리고 1567년 5월 31일에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해지고 나서 화형에 처해지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드 브레의 삶의 여정과 신앙고백서의 작성 경위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스페인과 가톨릭진영의 박해아래 고난받고 있던 저지대지방 신자들의 공통적인 신앙고백이 무엇인지를 공개적으로 밝히기 위해서 작성되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1561년 원본 앞부분에 첨부한 펠리페 2세에의 헌정사와 뒷편에 수록한 저지대 지방관원들에게 보내는 탄원서 등과 더불어서 함께 고려할 때에, 본 신앙고백서가 가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은 저지대의 개신교 신자들은 재세례파와 같이 위험스러운 무리들이 아니라 복음적인 신앙을 가지고 위정자들의 합당한 권위에 순복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을 밝혀서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주도록 요청하는데 있음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신앙고백서의 저자인 귀도 드 브레나 동역자 뻬레그랭 드 라 그랑쥬(Pérégrin de la Grange) 목사는 순교자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로써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자신의 고백을 위해 피로 인친 순교자의 신앙고백서가 된다.

 

 

2.2.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성경론의 컨텍스트

 

이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성경관이 드러나고 있는 2조-7조의 문맥(context)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먼저 우리는 총 37개조로 구성되어 있는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구조를 간략하게 주목해 보고서 성경관의 문맥을 살피고자 한다. 귀도 드 브레가 자신의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기 위해 많이 의존했던 테오도르 베자의 신앙고백(1560년)에 비하자면 그 분량이 짧지만, 프랑스신앙고백서(1559년) 보다는 두 배 가량 분량이 많다. 37개조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토론이 있어 왔다. 깜뻔신학교의 교의학교수였던 뽈만(A. D. R. Polman)은 다음과 같은 분석을 제시한 바가 있다.

 

1. 하나님과 하나님을 알게 되는 방편들(1-11조)

2. 창조, 섭리, 타락과 그 결과들(12-15)

3. 선택과 타락한 인간의 회복(16-17조)

4. 그리스도(18-21조)

5. 구원의 은덕들(22-26조)

6. 교회와 은혜의 수단들(27-35조)

7. 정부와 최후의 일들(36, 37조)

 

반면에 최근의 학자들은 네덜란드신앙고백서가 개혁파교의학(Reformed Dogmatics)의 논의 순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동의를 하고 있다. 대니얼 하이드에 의하면 신론을 먼저 다루고(1-13조), 인간론(14-15조), 기독론(16-21조), 구원론(22-26조), 교회론(27-36조) 등을 다루고 나서 종말론(37조)으로 신앙고백서의 내용은 전개된다. 신앙고백서의 최신 화란어 편집본의 편자 라우껀스 역시도 이러한 분석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 분석에 따르면 성경관은 어떠한 문맥에 속하게 되는 것일까? 전통적인 교의학의 로치(loci)방식에 의하면 성경관은 서론(Prolegomena)에서 다루어져 왔다. 서론에서 신학의 원리와 방법론을 다루고 나서, 신론과 다른 로치로 넘어가는 것이 종래의 개혁주의 교의학의 순서였다. 그러한 순서를 거의 따르고 있는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성경관은 서론부분에 별도로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신론과 연관지어서 위치하고 있다. 신앙고백서 1조에서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들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 후에, 이러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 계시에 달려있음을 말하면서 성경에 대한 고백이 시작된다(2조).

 

인간이 하나님을 알수 있게 허락하신 이중적 수단에 대해서 2조는 다루고 나서, 이어지는 3조에서는 기록된 말씀에 대해 기술하고, 4조에서는 성경의 정경적 책들 66권의 명단을 소개하고, 5조에서는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 다루고, 6조에서는 정경적인 책들과 외경의 차이점들에 대해 기술하고, 7조에서는 유일한 신앙의 규범으로서의 성경의 충족성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러고 나서 8조부터 다시금 신론적 주제가 전개되어진다(8-13조).

 

우리는 이와 같은 성경관과 신론과의 배치 문제 내지 구조 문제에 잠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16세기 개신교신앙고백서와 17세기 개신교신앙고백서의 구조적 차이에 주목한 리처드 멀러(Richard A. Muller)의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멀러에 따르면 1, 2차 스위스 신앙고백서(Confessio Helvetica prior et posterior)를 제외한 16세기의 다른 신앙고백서들(프랑스신앙고백서와 네덜란드신앙고백서 포함)은 성경을 먼저 다루고 하나님에 대해 고백하는 17세기 신앙고백서들(예컨대 아일랜드신조,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등)과는 달리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서 성경으로 넘어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멀러는 16세기 신앙고백서들이 왜 그러한 논의의 순서(즉,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해서 성경관으로 넘어가는 방식)를 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신학적인 이유로서 “우리가 성경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알수 없지만, 또한 성경적 계시의 존재 또한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역사적인 이유인데, 성경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멀러에 따르면 성경관에 대한 폭넓은 논의는 종교개혁 2세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진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37개조로 된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구조와 성경관이 담긴 2-7조의 구조적 위치 문제를 논구해 보았다. 본 신앙고백서는 16세기 개신교 신앙고백서의 구조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해서(1조), 그 하나님을 어떤 수단 혹은 방편에 의해서 알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는 중에 성경관(2-7조)을 다루게 되는 것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고나서 본격적인 신론적 주제들이 기술되는 것을 보게 된다(8-13조). 이와 같은 구조 혹은 컨텍스트를 고려해 볼 때에 우리는 네덜란드신앙고백서에서 성경관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바르게 고찰할 수가 있다고 사료된다.

 

 

 

3.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성경관 분석

 

이제 본격적으로 네덜란드신앙고백서 2-7조의 내용을 분석 고찰해 보고자 한다. 해당 텍스트들을 주도면밀하게 읽고 분석하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본 신앙고백서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프랑스신앙고백서(Confessio Fidei Gallicana, 1559)의 해당 본문들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3.1. 하나님 지식의 근원으로서 계시(2조)

 

유일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들에 대한 고백으로 1조를 시작한 본 신앙고백서는 2조에서 어떤 방편 혹은 수단에 의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데로 넘어간다. 일단 2조의 첫 머리를 주목해 보면 “우리는 두 가지 수단에 의해 그분(= 하나님)을 알게 된다”(Nous le connaissons par deux moyens)고 고백하고 나서, 그 두 가지 수단이 무엇인지를 차례대로 기술해 주는 것을 주목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허락된 두 가지 방편이 무엇일까? 첫째는 “이 우주적 세계의 창조, 보존, 그리고 통치”를 통해서(par la création, conservation et gouvernement du monde universel)라고 말한다.

 

소위 신학적으로 자연계시(revelatio naturalis) 내지는 일반계시(revelatio generalis)라고 명명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내용이다. 신앙고백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보존, 통치가 “우리들의 눈 앞에 마치 아름다운 책과 같이 놓여져 있다”(d’autant que c’est devant nos yeux comme un beau livre)고 하는 흥미로운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고 나서 세계 속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들은 “문자들”(de lettres)에 비유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한 문자들로 구성된 세계라는 책을 통해 우리들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 20절에서 말한대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 즉,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알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을 충분히 알게 하시며 핑계할수 없도록 만드신다고 하는 점을 지적한다. 약간의 표현상의 차이는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첫 방편에 대한 설명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1권 5장과 여러 주석들 가운데서 공표된 해설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음을 주목할 수가 있다.

 

하지만 첫 번째 신지식에 이르게 하시는 방편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신앙고백서도 마찬가지로 두 번째 ‘더욱 명백하고 분명한’(plus manifestement et évidemment) 방편을 주셨다고 기술한다. 그 방편이란 ‘그분의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sa sainte et divine Parole)을 가리킨다. 이 거룩한 말씀이라는 방편이 어떤 효용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생에서 그분의 영광과 그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들을 충분히” 알려준다고 기술했다. 즉,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과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이 ‘명백하고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종합해 보건데, 네덜란드신앙고백서 2조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두 가지 방편에 대해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방편은 자연계시 혹은 일반계시로 정리되어질 수 있는 것이고, 두 번째 방편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2조는 이러한 두 가지 방편이 있다고 하는 점을 명시하였을 뿐 두 번째 방편에 대한 더 분명한 소개는 하지 않았다.

 

 

3.2.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3조)

 

네덜란드신앙고백서 3조는 2조에서 ‘그분의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sa sainte et divine Parole)이라고 언급했던 바에 대해서 상술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말씀이 … 라고 믿는다”(Nous confessons que cette Parole de Dieu)라고 하는 3조의 모두는 일단 성경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the Spoken Word)에 대한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물론 3조 말미에는 그러한 말씀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기록되어 성경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3조에서 말하고자 하는 첫 번째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주어진 것도 전달된 것도 아니고, 오로지 사도 베드로가 말한 대로(벧후 1:21)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하는 점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 자체에 대한 말씀이 아니고, 그 전단계인 구두계시의 단계를 말한다. 3조의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그 계시가 기록되어지는 단계를 말해준다.

 

그리고 그 후에, 비범한 배려에 의하여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분의 종들인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바(신탁 oracles)를 기록하라 명령하셨고, 그분 스스로 손수 두 판에 율법을 기록해 주셨다.

 

이처럼 신앙고백서 3조는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신탁들(oracles)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비범한 배려)에 의하여 기록되도록 명령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손수 써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조처를 ‘비범한 배려’(par le soin singulier) 혹은 ‘특별한 배려’(een bijzondere zorg)라고 부른다. 그리고 3조의 말미에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 글들을 거룩하고 신적인 경전”이라고 부른다는 고백으로 끝을 맺는 것을 보게 된다.

 

이처럼 3조에서는 구두 계시가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감동에 의해서 주어졌으며,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에 의하여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하여금 계시를 기록하도록 조처하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수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에 의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록해 주신 말씀을 ‘거룩하고 신적인 경전’ 즉, 성경이라고 부르게 된 것임을 명시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이러한 표현들과 그 행간에서 네덜란드신앙고백서를 작성했던 귀도 드 브레에게 있어서 성경이라고 하는 책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으로 받아 들여졌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3.3. 정경(4조)

 

네덜란드신앙고백서 4조는 이어서 정경의 명단을 소개해 준다. 4조는 “우리는 성경이 두 책 즉, 구약과 신약안에 포함되었으며, 정경이라 불리우는 이 책들에 대해 아무 것도 반대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믿는다.”라고 시작한다.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신구약 성경을 ‘정경적’이라 표현한다. 그러고 나서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정경의 명단을 나열해 준다. 동일한 66권이지만, 다른 신앙고백서와 다른 점들이 있다. 일례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7년)는 66권의 명단을 단순하게 나열하지만,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여러 가지 설명들을 덧붙여 가면서 나열한다. 본신앙고백서가 정경의 명단을 나열하고 기술하는 방식에 있어서 특이한 점들을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선 구약을 소개함에 있어서 모세오경이라는 표현만 사용하고, 다섯권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역대상하를 말하면서도 파라림포메네(dits Paralipomènes)라는 특이한 단어를 덧붙였다. 역대상하에 대해서 부언한 빠라리뽀멘느(paralipomènes)라는 표현은 ‘the things left over’의 의미이다. 열왕기상하와 역대기를 조화시키려고(harmonize) 하는 전통에서 이 표현을 사용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스라를 에스라1서(the first of Ezra)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시편을 다윗의 시편(Psaumes de David)이라고 함으로 다윗을 주요 저자로 지칭했고, 잠언, 전도서와 아가서를 열거하면서 솔로몬의 세 책들(les trois livres de Salomon)이라고 명시함으로서 세 책의 저자가 솔로몬이라고 하는 점을 명시한다. 그리고 4대 선지서(les quatre grands Prophètes)라는 명칭하에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포함시켰고, 다른 12 소선지서(puis les autres douze petits Prophètes)라는 명칭 하에 호세아로부터 시작해서 말라기까지 나열한다.

 

신약의 경우는 4복음서(les quatre Évangélistes)라는 명칭을 제시하고 네 개의 복음서 명단을 제시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이 신앙고백서는 로마서로부터 시작해서 히브리서까지 총 14개의 서신을 바울이 썼다고 명시한 점이다.

 

그리고 현대에 일반서신(general epistles)라고 불리우고 있는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 2, 3서 그리고 유다서를 “다른 사도들의 일곱 서신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특이점들을 고려해 볼 때,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각 성경책의 전통적인 저자설을 지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구태여 모세오경이라 불렀고, 솔로몬의 세 책들이라 불렀다. 그러면서 문제가 될수 있는 것은 히브리서의 저작권을 바울에게 돌린 점이다. 후일에 네덜란드신앙고백서를 받아 본 칼빈은 이 3조에 대해서 동의하되 다만 히브리서를 바울서신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 반대했다. 그리고 야고보와 유다에 대해서도 사도라고 지칭한 점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또한 문제로 제기될 수 있는 것은 4대 선지서라는 명칭하에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나열하면서 ‘예레미야애가’를 빠트리고 있는 점이다. 귀도 드 브레가 본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기 위해 크게 의존했던 프랑스신앙고백서 3조에서는 예레미야애가를 빠트리지 아니하고 리스팅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놀라운 일일 것이다. 또한 1618-1619년 도르트총회에서 승인한 최종 수정 공인본에서 조차도 애가서는 누락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더 충격적이라고 할 것이다. 단지 원저자 귀도 드 브레의 실수뿐 아니라 초기의 다양한 역본들과 도르트의 공인본 조차도 누락시킨 사실을 몰랐고, 한역본들 조차도 그 사실을 놓친 것은 심히 의아스러운 일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역사적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3.4. 성경의 권위(5조)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4조에서 정경으로 믿는 성경책 명단을 나열한 후, 5조에서는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De Auctoritate Sacrae Scripturae) 무엇을 믿는지를 고백한다. 우선 5조의 모두는 4조의 내용과 맞물려서 시작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책들만을 우리 믿음을 규정하고, 기초놓고, 확립하기 위하여 거룩하고 정경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소위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의 성경적인 원리가 분명하게 천명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귀도 드 브레나 저지대 개혁교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개혁주의 신자들이 “믿음을 규정하고, 기초놓고, 확립”하기 위해선 성경 66권만을 ‘거룩한 정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사실은 불변의 원칙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구절들 속에서 5조는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어떠한 의심도 없이 믿는데”라고 말한 후에, 왜 그러해야 하는지 이유를 밝힌다. 우선 그러한 믿음의 근거는 “교회가 그것들 자체를 받아들이고 인정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는 교회의 정경수용 결정과 공인을 믿음의 근거로 받아들이는 것을 전면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성령의 증언과 성경의 자증성(autopistia)이다. 성경의 권위에 대해 기술하는 5조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로 끝을 맺고 있다.

 

더욱 특별히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서 그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증거하시기 때문이며, 성경 스스로가 그렇게 증거하기 때문에 믿는다. 왜냐하면 맹인이라도 성경안에서 예언된 것들이 성취되고 있음을 깨닫게 될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일단 우리는 여기서 프랑스신앙고백서 4조와 내용상 유사함을 발견하게 된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이 책들을 정경적이며, 우리 신앙의 확실한 규범이라고 아는데”라고 시작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로 제시한 내용에 있어서는 네덜란드신앙고백서 5조와 거의 유사함을 보인다.

 

교회의 공통적인 동의와 일치에 의해서 보다는 유익하긴 하나 신앙의 조항을 발견할수 없는 다른 교회적 문헌들과 성경을 구별하게 만드시는 성령의 증언과 내적인 조명에 의해서 우리는 이 책들을 정경적이며, 우리 신앙의 확실한 규범이라고 안다.

 

두 신앙고백서 모두 성령의 내적인 증언을 언급한다. 다만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성경이 스스로 증거한다”고 첨언했고, 프랑스신앙고백서는 ‘성령의 내적인 조명’을 언급했다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가신성의 근거로 제시된 내용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1장 5항에서도 분명하게 전승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무오한 진리와 신적인 권위에 대한 우리의 완전한 납득과 확신은 우리의 가슴 안에서 말씀으로 그리고 말씀과 함께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인 역사로 말미암는다.

 

 

3.5. 정경과 외경의 차이(6조)

 

이어지는 6조에서는 정경적인 책들과 외경의 차이에 대해서(De Discrimine Librorum Canonicorum et Apocryhorum) 기술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게 된다. 외경적인 책들은 최초의 번역성경인 70인경(LXX)과 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역(Vulgata)에서 정경과 더불어 수록한 일군의 책들을 말한다. 본 신앙고백서 6조는 그 명단을 다음과 같이 나열해 준다.

 

에스드라 3, 4권, 토비트,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에스더서 부록, 불구덩이 속의 세 아이들의 찬송, 수잔나의 역사서,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비의 두 책 등.

 

이렇게 외경들의 명단을 나열하면서 정경과는 구별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 후에,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외경의 가치에 대해서 전면 부정하지 아니하고 다소 유보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책들은 그 내용이 정경에 기록된 내용과 일치하는 한계 내에서만 읽혀질 수 있고 교훈을 줄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기독교적인 종교 혹은 신앙의 어떤 면이라도 확증을 줄 수 있는 능력이나 효능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이 책들로 인해 다른 거룩한 책들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진술을 두 가지로 나누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적어도 6조에 의하면 나열한 외경들을 무조건 무시하거나 거부한 것이 아니라 제한적인 사용이 가능하다고 진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신앙고백서는 외경의 “내용이 정경에 기록된 내용과 일치하는 한계 내에서만 읽혀질 수 있고” 심지어는 “교훈을 줄 수도 있다”라고 하는 단서를 달고 있다. 1561년 네덜란드신앙고백서를 작성했던 주요 저자 귀도 드 브레가 순교하기 두 주전인 1567년 5월 19일자로 어머니에게 써 보내었던 편지를 그 일례로 들 수가 있다. 그는 구약의 외경중 하나인 「마카비하」 제 7장에 기록되어 있는 한 용감한 어머니에 대해 언급했다. 7명의 자식이 순교자가 된 어머니 이야기이다.

 

이 예를 인용하면서 드 브레는 아들을 순교자로 두게 될 어머니의 영광에 대해서 언급하며 위로하려고 한다. 선교학적인 측면에서 본신앙고백서를 논구한 박사논문을 쓴바있는 웨스 브레이던호프(Wes Bredenhof)에 의하면 귀도 드 브레는 그의 모든 저술들에서 총 48회나 외경으로부터 인용하고 있다고 한다. 본신앙고백서 6조에 표현한대로 드 브레는 실제로 정경의 기록과 일치하는 선에서 외경을 사용했었다는 것을 확인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로 6조에 의하면 외경은 정경과 관련해서 ‘그것이 없으면 안되는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는 점이다. “기독교 신앙의 어떤 면이라도 확증을 줄 수 있는 능력이나 효능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이 책들로 인해 정경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종교와 신앙의 어떤 면들’이든 확증할수 있는 능력과 효능은 외경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정경에 달려있다는 점을 천명했고, 어떤 경우에도 외경이 다른 거룩한 책들 즉, 4조에서 열거한 정경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외경에 대한 입장을 1647년에 작성된 장로교회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1장 3항과 대비해서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외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밝힌다.

 

보통 외경이라고 부르는 책들은 신적 영감에 의해 된 것도 아니며 정경의 일부도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아무런 권위도 없다. 또한 다른 인간적 저서보다 더 인정되거나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외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도 읽고 배울 수 있다고 말한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경우와는 달리 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서의 입장은 단호하다고 할 수가 있다. 물론 전자도 외경의 정경적 권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배척했다. 최근에 『신약정경론』을 출간한 변종길은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외경에 대한 태도는 “중세를 지나오는 동안 오랫동안 교회에서 읽혀져 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같은 귀도 드 브레에 의해 작성된 1561년 원문은 1619년 도르트총회의 최종 수정안에서도 변경되지 않고 통과되었다.

 

정리를 해보면, 네덜란드신앙고백서 6조는 외경의 권위를 정경의 권위와 동일시하지 않으며, 다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이 정경과 일치할 때 읽거나 교훈을 받을 수 있다라고 하는 점을 유보적으로 말했을 뿐이다. 사실 외경의 내용들 가운데는 “역사적 진실성에서나 성경과의 조화에서나 도덕적 표준으로서나 영감서의 성격을 가지지” 못하며, 또한 “오류가 무수하며 의심없이 정경적인 책들에 발견되는 진술들과 충돌하는 진술들이 많다”고 하는 점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들수 있는 것은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자신들의 연옥설의 근거로 삼아온 마카비 2서 12장 42-45절과 같은 부분이다. 그러나 죽은 병사들을 위한 속죄제를 드리게 한 것과 같은 내용은 비정경적인 책에서 언급된 것일 뿐, 정경 66권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고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하등의 교리적 구속력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3.6. 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7조)

 

성경관을 다루고 있는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마지막 조항인 7조는 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에 대해서 진술하고 있다. 특히 신앙의 유일한 규칙으로서 성경이 무오하고 충분하다는 사실을 단호하게 천명하고 있다. 우선 7조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다 포함하고 있으며,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어야 할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안에 충분하게(suffisamment) 가르쳐지고 있음”을 고백함으로 시작한다. 성경에는 구원을 얻기 위해 믿어야 할 내용들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 방식이 전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진술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심지어는 사도라고 하더라도, 성경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것과 달리 가르치는 것은 불법이” 되는 것이다.

 

신앙고백서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1장 8절에서 선언한 것을 따라서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고 해도”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또한 7조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것을 더하거나 빼는 것”이 성경에서 금지하고 있다는 점(신 12:32; 계 22:18-19)을 상기시키면서, 이러한 엄격한 금지조항에서 성경의 “가르침이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고 진술한다.

 

성경이 그와 같이 완전하고 충족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인간적인 문헌이나 권위를 가질 만한 것들도 성경의 권위에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상술하는데로 나간다. “우리는 어떤 인간들의 저술들도, 그들이 성자라고 하더라도, 신적인 문헌(즉, 성경)과 비교해서는 안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어서 “하나님의 진리는 모든 것 위에 뛰어나기 때문에,” “어떤 관습도, 거창한 숫자도 즉, 다수성이라고 해도, 고대성도, 시간의 연속성도, 인물의 연속성도, 공의회들도, 결정사항들도, 규례들”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진리’와 비교해서는 안된다라고 선언한다.

 

앞서 우리는 ‘성자’라고 불리우는 인간의 저술조차도 성경의 권위에 대적할 수 없다고 하는 점을 보았는데, 이어지는 구절 속에서도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스스로 거짓말쟁이며, 공허 자체보다도 더 공허한 자들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강한 진술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종류의 인간적인 저술도, 인간들이 권위있게 여기는 어떤 기준이라고 해도, “모든 것 위에 뛰어난” 하나님의 진리와 비견할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을 그렇게 대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의 충족성과 완전성을 강조한 후에 7조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지극히 순리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무오한 규범과 일치되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온 마음을 다하여 배척한다.” 그리고 그렇게 배척해야 하는 이유는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찾았다. 즉,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는 요한일서 4장 1절의 말씀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한 요한이서 1장 10절 말씀들이다.

 

정리해 보자면, 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에 대해서 진술하고 있는 본 7조의 내용은 그 역사적 배경에 있어서는 성경이외의 교회 전통을 중요시했던 로마가톨릭교회의 입장에 대한 단호한 거부가 담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프랑스 신앙고백서 5조와 대비해서 볼 때에, 본 조항이 내용적으로 뿐 아니라 문구적으로 유사성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할수 있다. 그러나 양자의 결론 부분이 상이해지는 것을 주목하게 된다. 후자는 앞서 열거했던 다양한 인간적인 기준들은 “성경에 따라 조사되고, 규제되고 개혁되어야 한다”라고 제시하였고, 이어서 “그러므로 우리는 세 개의 신조들 즉, 사도신경, 니케아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 등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기 때문에 [받아들인다]고 고백한다”로 끝을 맺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무오한 규범과 일치되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온 마음을 다하여 배척한다.”로 끝맺은 네덜란드신앙고백서 7조와 달라진 내용이다.

 

 

 

4. 나가는 말

 

우리는 이상에서 개혁교회 ‘일치의 3신앙고백서’중 가장 먼저 작성된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성경관을 논구해 보았다. 특히 성경관이 기술된 2-7조 텍스트를 세세하게 분석해 보았다. 우선적으로 우리는 본신앙고백서의 역사적 배경과 구조, 그리고 성경관이 표현된 2-7조의 문맥(context)을 살펴보았다. 이어서 2-7조의 내용을 차례대로 분석 고찰해 보았다. 위에서 논구했던 바를 간략하게 요약하고 평가의 말로 본고를 끝맺음하고자 한다.

 

일단 성경관이 다루어진 문맥은 16세기에 작성된 개신교 신앙고백서들과 일치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부터 시작하고 난 후에 그러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방편을 다루는 중에 성경관이 제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신앙고백서의 2조에서는 하나님 지식의 두 근원내지 방편으로서 계시에 대해서 먼저 진술하고(자연계시와 특별계시), 3조에서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로의 특별한 배려를 고백했고, 4조에서는 정경적인 책들의 명단을 설명구와 더불어서 나열하는 것을 보았다. 5조에서는 성경의 정경성을 믿을수 있게하는 권위의 근거는 성령의 내적인 증언(testimonium internum)과 성령의 자증(autopistia)에 있음을 고백하고, 6조에서는 외경적인 책들의 권위와 사용가능 여부에 대해서 진술하는 것을 보게 된다.

 

마지막 7조에서는 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perfectio et sufficientia)에 대해서 고백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귀도 드 브레와 네덜란드신앙고백서에 의하면 성경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번 방식을 보여주고, 구원을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계시해주는 ‘무오한 규범’이며, 그 안에 담긴 ‘가르침은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분석 작업을 통하여 본신앙고백서에서 고백된 성경관이 철저하게 개혁파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판단은 2-7조를 칼빈이 직접 초안하고 프랑스 개혁교회 총회에서 수정하여 받아들였던 프랑스신앙고백서(Confessio Fidei Galliana) 2-5조를 대조하여 살펴보거나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대조하여 고찰해 보아도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는 사실이다. 본 신앙고백서의 성경관과 여러 교리들에 대한 진술이 개혁파신앙의 내용을 잘 표현해준다고 판단되었기에 1618-1619년 도르트(레흐흐트) 총회에서 개혁교회를 위한 ‘일치의 3신앙고백서’중 하나로 공인될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관에 제한해서 볼 때에 몇 몇 비판적인 논의점들도 발견할 수가 있었다. 4조에서 정경의 명단을 나열할 때에 예레미야애가를 빠트린 점은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보다 더 깊은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또한 6조에서 제시하는 외경에 대한 평가와 사용여부에 대한 입장은 장로교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제시하는 바와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음도 확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역사적인 배경을 살필 때에 이해가 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후자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앞선 논의에 근거하여 우리는 순교자 귀도 드 브레가 작성했고, 1618-1619년 도르트총회를 통해서 “일치의 삼신앙고백서”중 하나로 공인되었던 네덜란드신앙고백서가 담고있는 성경관이 다른 개혁파 신앙고백문서들에서 개진된 입장과 대체로 일치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점이나 독특성이 존재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고, 어떤 부분들은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좀 더 검증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도 사실이다. 오늘날 같이 파괴적인 성경관이 횡행하고 있는 때에,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성경관의 정립과 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들의 중차대한 과제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하면서 본고를 마치고자 한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2016.10.12)

http://m.reformednews.co.kr/6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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