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와 스위스 개혁이야기
이종찬 주필 / 기독신문 (2016.3.14)
스위스의 개혁자 올리히 쯔빙글리는 에라스무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문주의자였다. 노르웨이의 개혁자 마틴 아그리꼴라나 스웨덴의 개혁자 울라브스페트라가 루터에게서 배운 제자라면 쯔빙글리는 루터에게 배우지 않고도 스스로 개혁사상을 형성한 사람이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경 원어 연구에 몰두하였기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 흑사병에 걸려 죽음의 위기를 맞기도 했던 이 사람 쯔빙글리는 죽음의 위기 속에서 얻은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배우게 된다. 그것은 바로 전능자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지존자이심을 깨달은 것이었다. 따라서 생명도 구원도 교황의 손이 아닌 전능자 하나님의 주권에서 나온다고 믿게 된다.
이와 같은 개혁자 쯔빙글리가 개혁운동에 발을 담근 계기가 사순절에 발생한다. 1522년 3월 쯔빙글리는 사순절 기간에 친구 프로샤우어의 집에 초대된다. 저녁모임이었다. 중세의 사순절 기간은 일절 육식과 음주가 금지되었던 것이 당시의 정서였다. 제정일치의 중세사회에서 신앙적 규율은 사회법과 동일시되고 있었다. 당시 저녁 모임이 길어지자 프로샤우어는 소시지를 내왔고 쯔빙글리를 제외한 동료들은 모두 맛있게 간식 삼아 먹고 헤어졌다. 이날 참석한 모두가 입을 다물었으면 아무 일이 없었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입싼 사람들이 있어 이 소문은 일파만파가 되어 시의회에 알려지게 된다.
결국 프로샤우어는 사법당국에 체포된 체 벌금형이라는 견책을 받는다. 쯔빙글리는 이런 일련의 사태 속에서 사순절 규정은 물론이고 중세 가톨릭의 전체문제를 살피게 된다. 그리고 그가 시의회에 제출한 것이 67개조항의 항의문이었다. 그의 주장들은 루터와 같은 것이 많지만 교황의 권위, 사순절 금식, 화체설, 성찬, 마리아 숭모, 성화숭배, 성자추앙 유물수집, 공로구원, 연옥 등 수많은 중세전통들이 성경에 위배된다고 지적한다.
취리히 의회는 당시 취리히 대성당의 사제인 쯔빙글리의 주장을 받아들임으로 취리히를 천년의 중세 전통에서 벗어나는 개혁의 도시가 되게한다. 그는 앞장서서 취리히 대성당의 성화를 떼어냈으며 성상을 부수고 매주 베풀던 성만찬을 1년에 네 번만 시행하게 함으로서 베른, 바젤, 샤프하우젠, 제네바 등의 도시로 개혁을 확산시켜 나갔다. 사순절 기간에 먹은 소시지 문제가 스위스 개혁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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