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weeks)의 첫날과 제 7일 안식일과의 관계 등
폴 쥬이트
<폴 쥬이트 著, 주일의 참뜻(옥한흠 역), 개혁주의신행협회간행> 89p-91p 까지 발췌하여 올려드립니다.
주weeks의 첫날과 제7일안식일과의 관계 (요한복음 5장 17절)
소망 중의 완성에 대한 변증론은 기독신자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서로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해서는 모이는 날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하는데 반혀여(히 10:25),
요한 복음은 이 날이 구약적 안식일의 관계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 빛을 던져주고 있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 주장은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 하여 예수를 핍박하던 유대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진 것이다(16절). "이제까지"라는 표현은 우리 주님께서 일을 그칠 때인 진정한 신적 안식일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성자께서 마칠 때는 언제일까? 그것은 그가 아버지께서 주신 자 모두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심으로 마지막 원수 곧 사망을 발아래 둘때가 아닌가?(요 6:39-40).
그러나 원칙적으로 최후의 원수인 사망은 잠자고 있는 자들의 첫 열매인 예수 자신의 부활로 이미 멸망 당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원칙적으로 그의 계시와 구속사업을 완성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에서의 자기의 생명을 마치게 되었을때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었다"(요17:14)고 주장할 수 있었으며 또한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다 이루었다"(요19:30) 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마칠 때까지 자기와 아버지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 뒤에는, 첫 번째 창조의 끝에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안식이 달성되지 못하였다는 사상이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안식하신 날이 제 7일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이 맹세하신 바와 같이 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히브리서 4:3-4)
이 신적 안식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계시와 구원의 역사, 즉 실로 모든 피조물에 줄 역사가 완성되어야 진징코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사회에서는 엿새 동안의 창조역사가 끝난 후에도 계속하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에서 완성되었다고 믿었다.
말하자면 원래의 제7일의 안식은 궁극적인 새로운 시대에 완성될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화목과 그리스도에 의한 그의 창조에서 최초의 안식일이었던 하나님의 이레되는 날의 안식이 궁극적으로 완성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유대인의 안식일에 대하여 자유하셨던 예수의 자유에 바탕을 둔 기독론적 근거가 요한복음 5:17에 암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수는 그의 구속 사업을 통해 그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므로 안식일을 폐기하신다.
이제 이 모든 것은 기독교의 안식일을 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셔서 그의 계시와 구속사업을 완성 하신 날은 이레되는 날이 아니고 첫날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안식일은 더 이상 제7일이 될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신자들은 부활 기념일을 한 주일에 한번씩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 최종 안식일의 보증과 기대가 되며(히 4:9) 이 날에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안에 계실 것이고(고전 15:28) 또한 만물이 새롭게 될 것(계21:5)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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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7-11>
이 구절에서 우리가 연구할 중심 구절은 "우리가 떡을 때려하여 모였더니"인데 이 구절은 공식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즉 "모인다"라는 동사는 예배를 위한 집회를 가리키는 전문적인 용어이며 "떡을 뗀다"는 표현은 신자들의 식사를 나타내는 말로 초대교회 기독교 문헌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사도 행전 20:7이 실제로 보여주는 공식적인 성격은, 이 본문에서 떡을 뗀다는 것과 바울 식의 '주의 만찬'과는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미 잘 알려진 형태로 구성되어 있던 신자들의 집회를 묘사하고 있다고 결론 지을 수 밖에 없다.
이 모임의 특별한 면은 곧 떠날 예정이어서 고별사를 새벽시간까지 길게 한 바울이란 사람이 참석했다는 것 뿐이다. 이러한 뚜렷한 상황이 뒤집어 다른 식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집회가 다음 날 떠나게 되어 있었던 바울을 위해 베푼 송별연인데 이것이 우연히 주의 첫날과 시간적으로 일치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본문에는 바울이 다음 날 그의 여행을 계속하기 원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첫 날에 모인 것이라고 하는 기록은 없다. 단지 그 형제들은 떡을 떼기 위해 모였고 바울은 이튿날 떠나려고 계획했기 때문에 강론을 새벽녘까지 계속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신자들이 첫날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던 최초의 확실한 기록이며 그 묘사 방법에 의해 볼 때 이 날이 신자들 사이에서 정기 예배일로 간주되어 적어도 그 후 50년대까지는 충분히 지속되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가지 정확하지 못한 문제는 정확한 집회 시간에 관한 것이다. 분명히 저녁 집회였지만 그것이 토요일 저녁인지 일요일 저녁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대답은 저자가 하루를 유대인의 관례에 따라 저녁에서 저녁까지 보고 있는지 로마인의 관례에 따라 밤중에서 밤중까지로 보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유대인의 관례에 따르려면 저녁집회는 토요일 저녁에 있었을 것이다. 몇몇 학자들이 이 견해를 택하고 있으며 새 영어 성경(NEV)은 이것을 "토요일 저녁"으로 번역하고 있어 초신자에게 많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그 구절이 일요일 저녁 집회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방 그리스도인 신자들의 사회에서는 시간계산이 로마인의 관례를 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의미가 분명한 최근의 모든 자료들은 그리스도인 신자들이 일요일에 모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 구절이 성경의 기록에서 토요일 저녁 모임을 말하는 유일한 근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거의 인정받기 어려운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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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쥬이트 著, 주일의 참뜻, 개혁주의신행협회간행> 61-62p에서 발췌 하였습니다.
계 1:10의 "주의 날"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요한 계시록 1:10)
형용사 "주의"(헬라어 : 퀴리아코스)는 기독신자가 처음 만들어 낸 말이 아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라는 표현은 세속문헌에서는 그 유례가 없고 기독교 자료에서만 처음으로 나타난다.
..중략 ..
"주(主)"라는 명칭은 예수께서 구약에 계시된 주가 되신다는 확신에서 주어진 것처럼 "주의 날"이라는 표현도 그 날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날이라는 확신에 의해 사용된 것이 틑림없다. 따라서 그 날은 그 분과 직접 연관된 날인 것이다.
몇몇 학자들은 계시록 1:10의 "주의날(Lord's Day)"이라는 문구는 계시록의 근본적인 내용에 비추어서 마지막 날의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주의 날"(Day of the Lord)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이론에 반대되는 생각이 거의 지배적이다. 헬라어 "퀴라아케 에메라(Lord's Day)"와 "에메라 토우 퀴리오이"(Day of the Lord)는 유사한 표현이긴 하나 확실히 그들의 차이를 간과해 버려서는 안된다.
(한글 성경에는 둘다 "주의 날로"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본장에서는 편의장 전자를 "주일"로 후자는 "주의 날"로 번역한다.-역자주)
요한 계시록의 저자는 구약의 "주의 날(히브리어: 욤 요우헤와우헤 Yom YHWH)"을 번역할 때 70인역과 신약에서 한결같이 볼 수 있는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전에 전혀 사용되지 않던 새로운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가 어떤 다른 것을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없을까?
더우기 그 후에 나타난 교부들의 경우에서 "주일"이라는 용어가 일요일을 가리키는 것을 보면 계시록 1:10이 이 법칙에서 예외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결국 요한 계시록의 저자가 그의 확상을 오로지 "주의날"(day of the lord)과 관련된 것으로 보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계시록 초두에 나오는 7교회 편지에 비추어보면 그것을 알수 있다.
그 편지는 분명히 그가 기록하던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요컨대 "주일"이 우리가 모든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주께 거룩히 바쳐야할 24시간의 길이를 의미한다. 그것은 안식일 계명이 명확한 주일 신학의 기본이 되었던 훨씬 후에 생긴 의미였다.
"주일"이라는 명칭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주일"과 아주 유사한 표현인 "주의 만찬"(Lord's Supper)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유사한 표현을 사도 요한이 밧모섬으로 추방당하여 거기서 그가 "주일"에 환상을 보기 약 40년 전에 고린도서를 쓰면서 사용하였다.(고린도전서 11:20).
"주의 만찬"(Lord's Supper)이라는 표현이 "주일"이라는 말보다 먼저 나왔으므로 "주일"이란 이 말은 "주의 만찬"에서 나왔고 그리스도인들이 공중 예배의 결정인 이 만찬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던 그들의 날을 이러한 이름으로 불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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