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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항상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칼빈의 견해 (제28회 정암신학강좌 2강의)
헤르만 셀더하위스(Herman Selderhuis) / 이승구 통역
강남성도교회 노승수 작성 (2016)
1. 서론
“I´l est vray que ie voy que mon corps s´en va en decadence: s´il y a quelque vigneur, elle diminue de iour en iour, et ie contemple la mort sans l´aller chercher dix lieuës loin.”
“나의 몸은 후패하고 날마다 나빠져 간다. 죽음을 생각하기 위해 먼 곳을 갈 필요가 전혀 없다”고 칼빈은 말하였다. 죽음은 이를 테만 10마일 거리(ten leagues)에 있다. 예전에 이는 시간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으므로, 이는 열 시간을 말한다. 일 마일을 걷는 데는 한 시간이 필요하다. 칼빈은 1554년에 했던 욥기 설교에서 자신은 죽음으로부터 10 시간 거리에 있다고 말하였다. 물론 칼빈은 그 때로부터 10 시간 뒤에 죽은 것은 아니고 10년 후에 죽었다. 그러나 이 말은 죽음이 항상 그와 동행하였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준다. 죽음은 계속 그를 따라다녔고, 일찍부터 그와 함께 하였으며, 그를 당혹하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글에서 나는 죽음과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한 칼빈의 신학적 견해에 대해서 다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즉, 나는 물리적 죽음과 영적인 죽음에 대한 칼빈의 견해에 집중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의 체계 안에 잘 맞지 않는 사실과 씨름하는, 인문주의자로써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갈등하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와 씨름하는 어떤 사람(칼빈)의 말을 여러 분들과 함께 들어 보길 원한다. 나는 칼빈이 죽음의 실재와 죽어감의 사실을 다루는 방식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아직 그런 책이 쓰여진 일은 없지만, 칼빈의 죽음의 신학을 쓰려면 한 권의 책이 필요할 것이기에, 이 짧은 글에서는 이렇게 주제를 한정 지우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다. 근자에 초기 근대에 대한 연구에서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연구가 탐구 주제가 된 일이 있다. 그러나, 아주 부드럽게 말한다고 해도, 그런 연구서들에서 칼빈은 별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450주기는 이 문제를 탐구해 볼만한 좋은 기회이다.
첫 부분에서 나는 칼빈의 개인적인 사람에서 죽음이 어떻게 하나의 실재가 되었는지를 간단히 묘사해 볼 것이다. 그리고는 둘째 부분에서 그의 주석들과 설교들에 근거해서 기독교적인 방식으로 죽음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견해를 요약해 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셋째부분에서 실제로 죽음이 실제 삶에 다가 올 때 이런 죽음관이 어떻게 기능하는 지를 보여주려고 해 보겠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칼빈의 경험 속에서 또한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하는 지를 통해서 이를 구체적으로 보이도록 할 것이다.
2. 칼빈의 삶에서 죽음에 대한 경험 (Death in Calvin´s life)
초기 근대에 살던 여느 사람들과 같이 칼빈도 죽음을 일상적이고 어디에서나 경험하는 실재로 경험하였고, 그가 이런 경험을 표현하는 것을 잘 보면 그것이 얼마나 실존적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된다. 칼빈은 인생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트랙에 놓으시고 작은 장애물 코스를 뛰어 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잘 조직해 놓으신 짧은 경주”(a short race organized by God)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곧 그에게 데려 가실 것이므로 이것은 짧은 경주이다(CO 31.834). 인생은 짧고 별 의미가 없다. 우리가 어디를 돌아보던지 죽음과 절망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내면도 망쳐져 있고(spoiled), 우리는 그저 죽음의 반영일 뿐이다. 이 삶의 모든 사건들이 최종적 파멸을 위한 서주(praeludium interitus)일 뿐이라는 것은 참되지 아니한가(CO 32.73)? “우리 인간들은 마른 풀과 같고, 순식간에 시들고, 죽음에서 결코 멀지 아니하다. 사실 우리는 지금도 이미 무덤 속에 살고 있는 것과 방불하다”(CO 32.66). 우리의 생명은 “마치 비단 줄에 걸려 있는 것 같고” “우리들은 수천의 죽음으로 우겨 싸져 있다”(CO 31. 302). 죽음은 출생에서부터 시작한다.
“태에서 나오는 것은 수천의 죽음 가운데로 들어가는 현관이다”(CO 31.656). 삶은 신속히 날아가고, 아직도 나지 않았는데 다시 죽는 것과 같을 정도이다(CO 32.73).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수많은 악을 경험한 후에 우리 모두는 아주 신속히 무덤에로 향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에서 경험하는 것은 우리 존재의 온전한 멸절 밖에 무엇인가? 우리는 몸이 얼마나 빨리 부패하는 가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매순간 어디서나 수 없이 많은 죽음을 직면한다. 칼빈은 삶이란 아주 깨어지기 쉽고 죽음은 매순간 도처에서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잘 의식하고 있다. 자주 인용되지만 들을 때마다 인상적인 칼빈의 다음 같은 말을 생각해 보라:
위를 쳐다보면 얼마나 많은 위험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가? 그러나 아래 땅을 돌아보아도 그곳에서 또 얼마나 많은 독을 보게 되는가? 얼마나 많은 야수들이 너를 찢어 낼 수 있는가? 뱀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칼과 함정과 걸림돌들과 맹수들과 건물 안의 감옥들과 돌들과 던져진 창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하자면, 한 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우리들은 열 죽음을 만날 뿐이다(CO 40.135-36).
칼빈은 위험으로 가득찬 세계에서 살고 있다. “도시에서는 많은 사고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또한 길을 모르고 숲 속으로 들어가면 곧 바로 사자들과 늑대들의 먹이가 되는 위함을 감수할 뿐이다”(CO, 32.136). “배를 탄다고 해도, 죽음에서 겨우 한걸음 떨어져 있을 뿐이다. 말을 탈 때도 발이 미끄러져 죽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시가지를 걸어간다고 해도 지분 위의 기와들만큼이나 위험 요소가 있다. 당신이나 당신의 친구가 무리를 가지고 있으면 사고가 나서 부상당할 위험에 가까울 뿐이다”(Institutes, 1. 17. 1).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 그 시대의 모든 어린 소년들과 소녀들과 같이 칼빈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죽는 죽음을 보았고, 많은 아기들이 사산(私産)되는 것을 경험했으며, 시체들이 시내 한가운데로 실려 가는 것과 유럽의 전장터에 널부러져 있는 수 없이 많은 시체들을 보았다.
칼빈 자신에게 더 의미심장했던 것으로는 1515년 있었던 그의 어머니 쟌느(Jeanne)의 죽음이었다. 이로 그는 6살에 어머니를 잃었다. 6살짜리 아이에게는, 그가 16세기에 살든지 21세기에 살든지, 그의 어머니의 죽음이 상당한 감정적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아주 자명하다. 또한 후에 그와 그의 아내 이델레트(Idelette) 사이의 독자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1542년 7월 28일에 이델레트는 아들을 낳았고, 그 아이에게는 칼빈의 삼촌인 쟈크(Jacques)의 이름을 따라 세례가 베풀어진다. 칼빈은 이 아이의 출생도 위험이 동반 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고 쓰고 있다(CO 12.420). 조산(早産)된 아기였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그로부터 두 주 조금 더 살고서 죽었기에, 조산된 아이가 죽기도 빨리 죽었다.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들을 주셨으나, 하나님께서 데려 가셨다“(CO 9.576). 또한 결혼 생활 9년 만에 이델레트도 먼저 죽었다. 칼빈은 이델레트의 마지막 순간들을 화렐에게 써 보내면서, 밤새도록 여러 번 그녀에게 왔다 갔다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그녀를 격려하고 또 기도하러 가곤 했는지를 말한다. ”여덞 시가 되기 바로 전에 그녀는 조용히 마지막 숨을 쉬었소, 그래서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그녀가 삶에서 죽음에로 가는 것을 거의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소“(CO 13.229). 칼빈은 자신이 슬픔으로 온전히 압도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그렇게 하는 한 방식이 계속해서 일하여 잠시라고 그 상실이 그를 공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화렐에게 고백하였다. 자신의 부인과 아들을 잃은 것 외에도 칼빈은 그가 사랑하였던 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 편지에서 언급하고 있다.
칼빈이 이 생의 가운데서 죽음으로 둘러 싸여져 있다고 썼을 때 그는 중세에 잘 알려진 노래와 자신의 경험을 연관시키면서 말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잘 알고 있으며, 그러나 같은 노래로써 그는 죽음 가운데서도 우리들은 생명으로 둘러 싸여 있다는 자신의 확신을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의 학문적인 작품 가운데서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방식에도 이 같은 확인이 반영되어 있다. 이제 이 주제에 대한 논의에로 나가 보기로 하자.
3. 칼빈 사상에서의 죽음 이해
죽음은 『강요』에서 큰 주제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실 『강요』에 죽음에 대한 언급 자체도 매우 드물다. 『강요』에서 죽음이 따로 다루어지고 있는 유일한 곳은 미래의 삶에 대한 묵상(the meditatio future vitae)에 대한 부분인데, 이는 영생의 맥락과 직접 연결되어 제시되고 있다. 성경과 특히 사도 바울이 이 세상에서의 비참함과 죽음 이후의 삶의 영광에 대해서 말하는 바를 언급한 후에 “죽음의 날과 종국적 부활의 날을 기쁨을 가지고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진보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는 것 이외의 다른 결론에 이르지 않는다.
칼빈에게 이것은 지상에서의 삶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것이 아니었고, 영원한 삶의 영광의 빛에서는 부나 건강과 같은 이 세상에서의 좋은 것들도 깨지기 쉽고 잠시 경험하는 것이며, 영원한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삶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기쁨을 가지고 기다린다는 것은 사실 충만한 의미를 지닌 삶을 기쁨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 올 때에) 죽음을 갈망하기 보다는 죽음에 대한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죽음을 언급하기만 해도 떨고, 죽음을 전적으로 무시무시하고 재난스러운 어떤 것으로 여기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칼빈은 그렇게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데,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 두려움이 있음을 분명히 알기에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의 생의 말기인 1562년에 칼빈은, 삼십년 전에 일어났던, 박해의 두려움에 대해서 말한 바 있다. 사무엘하에 대한 한 설교에서 칼빈은 그가 피난하기 전에 프랑스에 있던 때를 회고하면서 그 때 자신이 얼마나 박해를 두려워했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나는 얼마나 두려웠는지 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죽기를 바랐을 정도이다(사무엘하에 대한 칼빈의 설교, 122).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깊은 것은 죽는 순간 바로 다음에 올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칼빈은 이런 의미의 죽음의 두려움을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표현한다. 이 두려움은 우리가 하나님을 더 잘 알아 갈수록, 그리고 더욱 더 그를 위해 살기를 갈망할수록 더 증가하는 두려움이라고 한다(C0 31.77). 이것은 “죄인이 여기서 그의 진노와 벌의 엄중함이 영원한 죽음 외에도 수많은 죽음에 해당하는 그런 심판자와 직면해 있다“는 인식이다(CO 31.318).
칼빈의 생각 가운데 나타나는 이 이중적 측면을 볼 수 있는 것이 흥미롭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더 잘 알아가면 갈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증가한다고 말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것과 실제로 다른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진보를 이루어 가는 것은 죽음을 기쁨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중성은 우리가 칼빈의 신학에서도 루터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동시에 의인이면서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이라는 신학을 발견하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죄인으로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의인으로서 나는 죽음을 기쁨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다. 후자의 것이 결정적이기에 신자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말아야만 한다(CO 31.303). 그러므로 『강요』에서나 그의 다른 저작들에서나 그리스도인의 죽음의 침상에서 그/그녀의 죄나 예정에 대한 의심 때문에 그/그녀에게 올 수 있는 그 어떤 시험(시련, tentationes)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죽음 앞에서 고난스러울 이유를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들뿐이다.
미가서 5장에 대한 설교에서 칼빈은 삶의 한 가운데서 죽음이 오는 것에 대한 중세의 노래를 다시 언급하면서 이를 신자와 불신자의 구별에 적용한다. 첫째로, 칼빈은 불신자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저항 가운데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고 말한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그들은 죽음 가운데서 그들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정도로 타락한 사람은 삶의 한 가운데서 죽음을 겪고 있다고 이미 말한바 있다.” 그런데 신자들에게는 그와는 정반대의 것이 적용된다. “왜냐하면,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들고 우리를 무사하게 하시는 한 우리는 죽음에서도 생명을 경험하는 것이다.” 칼빈에게는 죽음의 침에서 예정에 대한 의심과 투쟁이 있을 수 없으니, 신자는 그의 죽음이 곧 삶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죽음의 신학적 차원을 다루는 구절에서 칼빈은 경험적 차원도 표현해 내고 있다. 그는 『영혼 수면설에 대한 논박』(Psychopannychia)에서 그는 죽음은 죄에 대한 형벌이며, 따라서 죽음은 온전한 절망을 가져 온다고 진술한다. 즉, 죽음은 진노하시고 형벌하시는 하나님께서 (조인인) 우리에게 부가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심판대 앞에 서고자 하는 열망은 우리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도자(guide)시요, 함께 하시는 분(companion)”이심을 믿는 사람에게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확신이 죽음은 정말 비참한 것이라는 사실을 제거시키는 것은 아니다.
위 인용문 사이에 칼빈은 스쳐 지나가는 말로 “죽음은 공포로 가득하고 외로운 것이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 강한 말은 칼빈이 죽음을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았고, 죽음은 우리를 겁나게 하며 죽음이 찾아 올 때 그것은 우리를 외롭게 하는 사건으로 온다는 실존적 경험을 잘 의식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칼빈이 창세기 38:7에 대한 주석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물론 믿는 사람들은 불신자와 같이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죽음은 여전히 두려운 어떤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사정이 달라져서 죽음이 그들을 더 이상 해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죽음은 여전히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다. 이 두려움은 계속되는 것이라고 칼빈은 인정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알지 못했던 것처럼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칼빈은 나무란다. 칼빈의 생각에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동시에”(simul)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죽음에 대한 칼빈의 생각을 “동시에 두려우면서 위로됨”(simul terror et consolatio)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칼빈은 또한 죽음에 대한 운명론적 견해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 가운데서 우리의 죽음의 순간을 이미 정하셨으므로, 어쩔 수 없으며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은 다 부질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칼빈은 아주 많이 비판한다. 칼빈이 말하는 방식으로부터 우리들은 그가 이런 견해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 지를 잘 알게 된다. 그들은 말하기를 죽음의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면서, 만일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는 것이 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런 운명론자들은 미래를 위해 계획하는 것을 의문시하며, 노상강도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노선을 따라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한다.
연약한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식사 조절을 하면서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것도 의문시한다. 이런 모든 계획들이 모두 다 하나님의 섭리에 반(反)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 어떤 사람들이 때로 이것을 칼빈주의의 전형적인 태도라고 말하기도 하는 (그러나 실상은 그것이 칼빈주의가 아닌... 역자 보충) 이런 태도를 칼빈은 강하게 거부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다 미리 계획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죽음의 순간을 작정하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건강에 유의해야 하고, 우리의 생명과 삶을 위험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칼빈이 현세의 삶의 비참한 것들에 대해서 말할 때 그는 특히 우리 몸의 비참한 상태를 언급하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온전한 새로운 상태를 대조하여 말하는 것이다. 죽음은 몸과 영혼의 결합이 끊어지는 것이며, 죽음으로 영혼이 풀려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몸에 대해 무시하는 플라톤주의적이고 이원론적인 견해를 지닌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병들고 그의 생애 대부분의 기간 동안 머리와 몸에 고통을 겪어 온, “확고하며, 온전하고, 부패하지 않으며, 종국적인 천상의 영광에로 갱신되기” 위하여 이 “우리의 몸이라는 불안정하고, 경함이 있으며, 부패할 수 있고, 덧없고, 소모적이며, 부패하고 쇠락한 장막”을 벗어 버리기를 갈망하는 사람의 소리를 드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좋은 것이나, 만일에 당신의 몸이 칼빈의 몸과 같이 계속해서 고통을 겪게 되면 당신도 새로운 어떤 것을 얻기를 간정히 바라게 될 것이다. 지상에서의 삶과 몸과 영혼의 관계에 대한 칼빈의 견해는 그 자신의 계속적인 병들과 고통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런 전기적 측면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그렇게 보면 그가 이 세상에서의 삶이나 인간의 물리적 측면을 비하하는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해 질 것이다. 오히려 칼빈은 몸이 불멸성에 참여할 것으로 되어져 있다는 점에서 몸을 존중해야만 한다고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다시 일으키실 것이라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몸에 얼마나 큰 가치를 돌리고 계신지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삶 일반도 무가치하여 여겨지지 않는다. 오는 생명(the life to come)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은 종국적으로 그 때에 진정한 삶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칼빈의 개념은 사무엘하 12장에 대한 그의 주석(sola 주: 칼빈의 설교집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서 칼빈은 다윗과 밧세바 사이의 아이, 그들이 범한 범죄 때문에 죽은 이 아이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태도를 상당히 길게 논의하고 있다. 사무엘하 12장 23절에 의하면, 그 아이가 병들어 있을 동안에 금식하면서 몸을 괴롭게 하던 것에 비해서 다윗은 이제 이미 죽은 아이의 죽음 때문에 자신을 더 괴롭히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 지를 의문시한다.
“마치 다윗이 모든 인간적 감정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고 칼빈은 말한다. 그러나 칼빈은 곧바로 덧붙여 말하기를, 이런 말은 다윗이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애도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고, 그 애통의 성격이 이제 바뀌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첫째 애통은 마땅히 자신이 받아야만 하는 고통을 아이가 받는 것을 보면서 자신 때문에 죽음은 접근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애통이었다. 그러나 이제 아이가 죽었으니, 이제는 자신의 죄에 대한 애통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자연히 있는 사랑의 감정으로부터 애통하는 것이 다윗 안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 볼만한 흥미로운 것은 성겨 본문은 다윗이 아기의 죽음에 대하여 애곡한다고 말하지 않고 있는데도 칼빈은 다윗이 그것도 애곡한다고 하면서 왜 다윗이 그렇게 하는 지를 칼빈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애곡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죽음으로 아이를 잃어 본 경험이 있는 칼빈이 다윗이 어떻게 느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되었음이 분명하다. 여기서 다시 한번 더 칼빈이 자신을 다윗과 동일시하면서 아이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애통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성경 본문은 그런 것을 말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드러냄은 분명히 인간의 감정이 적법한 것임을 옹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깊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애곡하면 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의 죽음에 직면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버지는 무지막지 하게 잔인한 괴물일 뿐이라고 칼빈은 말한다. 그러므로 칼빈에게 있어서 슬픔의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감정이 자신을 좌지우지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칼빈은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칼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칼빈에게는 “지나치지 않음, 즉 적당함”(moderation)이 주제어라고 할 수 있다. “신실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슬픔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 해야만 한다.” 우리는 구약에서도, 또한 신약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칼빈에 의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는 것과 애통해하는 것을 바울은 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슬픔과 애통이 적당한 한계 내에 있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죽음이 하나의 실재라는 것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상기함으로써 신자들은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죽음은 항상 우리의 마음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지나치지 않게 적응하도록” 되어야 한다. 이렇게 지나치지 않는 것은 다음에 올 생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보와 준다. 칼빈은 이것을 신앙의 성장의 한 표지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이런 조절이 없다면 우리는 마치 하늘 소망이 없는 것처럼 [즉, 이 세상 사람과 같이] 애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조절(moderation)은 죽음 이후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는데, 그런 관점이 칼빈의 사상의 근저(根底, the base line)이다. 또한 이것이 칼빈의 설교나 다른 작품들에서 회개케 하도록 하기 위해서 지옥의 무시무시함을 묘사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다. 칼빈은 또한 그들의 죽음의 침상에서 자신들이 선택되었는가 아닌가의 문제를 가지고 고뇌하며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확신의 말을 전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선택 교리는 그런 고뇌와 영적 투쟁을 일으킨다고는 칼빈이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며, 그의 많은 서신 교환 가운데서 이런 갈등과 고뇌를 한 칼빈주의자를 한사람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빈의 예정론과 섭리론이 죽음의 침상에서 확신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든지, 장례식에서 감정을 표현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사실은 그 역(逆)이 참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에 죽음과의 어떤 투쟁이 있다면 그것은 칼빈 자신의 투쟁인데, 왜냐하면 칼빈은 죽음을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이는데, 죽음과 죽는 자아는, 말하자면, 그의 사상 체계에 잘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칼빈은 ‘질서’(ordo)에 집착했다고 할 정도로 질서를 중요시했는데, 그렇기에 죽음 같이 질서에서 벗어난 것이 그의 사상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죽음을 다루려하고, 파악하고 통제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해 보려고는 했지만 이것을 없애 버릴 수는 없었다. 욥기에 대한 설교에서 칼빈은 죽음은 무질서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진술한다. “죽음은 하나님의 질서를 뒤집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들이 왜 죽음을 죽도로 싫어하는 지에 대한 설명도 된다. 우리의 본성은 우리의 멸절을 원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죽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칼빈이 말한 모든 것을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지 더 알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칼빈은 유명한 죽음에 대한 키프리안(Cyprian)의 논의를 읽어 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여기서 죽어가는 상황 그리고 죽음의 정황에서 칼빈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했는지 알기 위해 칼빈의 편지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4. 칼빈의 편지들에 나타난 죽음
칼빈이 죽음을 어떻게 보았으며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지니는가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슬픔을 다루는 방식과 죽음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다루는데 반영되어 있다. 이를 살펴보면서 우리들은 칼빈에게도 이론과 실천이 항상 균형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죽음 앞에서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장사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서 오는 것은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칼빈주의자의 이미지와 연관해서 우리들은 그런 태도들 시발시키고 보급시킨 사람은 분명히 칼빈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는 칼빈주의자의 정확한 이미지가 아니다. --- 보역). 그의 유일한 위로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 조차도 불행한 상황이 아니다”(CO 6. 631)는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칼빈의 편지는 동시에 죽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눈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도 보아야 한다.
칼빈은 이런 슬픔이 만사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계신다는 믿음과 갈등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은 새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왈도파가 핍박받고 고난당하는 소식을 듣고서 칼빈은 화렐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저는 눈물로 이 편지를 씁니다. 슬픔에 가득 차 있고 때때로 눈물이 쏟아져셔 편지 쓰기를 잠시 중단해 가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CO 12.76).
바레느(Varennes)의 영주인 그의 친구 기욤 드 트리에(Guillaume de Trie)가 죽었을 때, 칼빈은 너무 슬퍼서 병들 정도였다: “사랑하는 바네르를 탈취당한 저는 큰 슬픔 가운데서 침대에 누워 이 편지를 대서시킬 정도입니다”(CO 18.649). 이 두 가지 인용문이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칼빈을 얼마나 병들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프랑스 피난민 교회를 섬기던 동료 목사님이 그의 아내를 잃엇을 때 칼빈이 보낸 위로 편지 가운데서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아내의 죽음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손상이며, 얼마나 큰 고통을 일으켰는지요? 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드립니다. 7년 전에 일어난 일로부터 그런 슬픔을 다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CO 15. 867). 이델레뜨가 죽은 지 7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지금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비록 칼빈이 이것을 편지 가운데서 언급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느낄 수 있다.
그의 동료 꾸로 목사(Courault)가 죽었을 때, 칼빈은 자신이 파선하였다고, 슬픔 때문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겠다고 쓰고 있다. 하루 종일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낯 시간의 고통에 이어 밤의 공포가 몰려온다고 한다. 아니면, 칼빈 자신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꾸로 목사님의 죽음은 거의 나를 파선시키는 것과 같이 심각하게 나의 건강을 해쳐서 고통을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낮에는 이것을 생각하는 일 밖에는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낮 시간의 무시무시한 고통에 더하여 또한 밤의 고뇌가 따라 옵니다. 나에게는 아주 친숙한 불면의 많은 시간들뿐만이 아니고, 밤새도록 눈도 감지 못하도록 하는 이것이 나의 기력을 다 빼내어 이것보다 제 건강에 더 해로운 것을 없을 정도입니다"(CO 10. 273).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런 감정들이 ‘이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적 돌보심 아래 있다’는 칼빈의 확신을 결코 빼앗아 가지 못한다. 칼빈은 이 모든 정황들 안에서 죽어감, 죽음, 그리고 상실의 고통들과 하나님의 삶에 대한 지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연관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은 어떤 선을 위하여 의도하신 것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분명히 하는 방식으로 그리하는 것이다. 칼빈하고 아주 가까웠던 집사의 한 분이셨던 끌로드 페레이(Claude Féray)가 전염병에 감염되어 죽자, 칼빈은 자신이 완전히 파선하였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이 분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지녔는지, 모든 정황 가운데서그의 지지자와 피난처 같이 되었었는지를 인식하게 되었을 때 칼빈은 하나님께서 이 친구를 데려 가심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의지하던] 자신의 죄를 엄중하게 지적하셨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CO, 11.213). 그의 자녀가 죽었을 때도 칼빈은 같은 말을 한적이 있다. 칼빈은 화렐 이델레트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낸 것에 대해서 감사를 표하고 있다. 그녀는 너무 슬픔에 사로 잡혀 있어 도무지 감사의 편지를 쓸 수 없는 상황임을 설명하면서 칼빈은 다음 같이 썼다:
“우리 작은 아들의 죽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되게 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는 그의 자녀들에게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잘 아십니다.”(CO 11. 430).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슬픔을 하나님의 돌아보시는 섭리와 연관시키는 것은 칼빈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따라서 이는 칼빈이 리헤브르(Richebourg) 공(公)에게, 그의 아들 루이가 역병으로 사망했을 때 그를 위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에서 가장 잘 예증된다(CO 11.188-94). 위로의 편지에 대한 에르스무스의 지침을 칼빈이 채용하여 작성한 이 편지는 칼빈이 사는 것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한 모든 것을 잘 드러내어 준다.
개혁자들에게는 공동된 확신이었던 섭리에 대해서 칼빈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했는지 또한 이 확신이 실제로 어떻게 보였는지에 대해서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 편지를 읽어 보면 된다. 칼빈은 루이의 선생님이었던 그의 친구 끌로 페레이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슬픔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 역병이 스트라스부르에 창궐하고 있으므로 자신의 가족의 대해서도 염려를 표한다.
끌로드 선생님과 당신의 아들 루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받았을 때, 나는 너무 놀라고 너무 낙담하여 몇일 동안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비록 하나님 면전에서 기운을 차리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한 때에 내려주시는 피난처 됨에서 위로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지금도 마치 전혀 나 자신이 아닌 것과 같이 느끼게 됩니다. 사실 저 자신이 반은 죽은 것 같이 일상적인 일을 거의 하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전능한 힘에 뿌리를 내리고 전혀 요동하지도 감정적으로 흔들리지도 않으면서 그 어떤 것도 그저 스쳐지나가게끔 하는 강한 칼빈과 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들은 슬픔에 사로잡혀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칼빈을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상실과 슬픔으로 언급한다. 그래서 리헤부르 공(公)을 위로하고 그에게 이런 정황 속에서도 굳건히 서라고 권면하는 것이 자신에게 쉬운 것이라는 인상을 전혀 주고 있지 않다. 칼빈 자신이 자녀를 잃는 고통을 알고 있고, 그 상실과 부재의 고통을 알며, 그런 상황에서 자주 나타나게 되는 “왜?-라는 질문의 부담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칼빈은 리헤부르 공에게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 자신들을 다음 같은 불평과 질문에 빠뜨리는 것보다 우리의 기운을 빼고, 낙심하고 맥 빠지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 왜 다른 방식으로는 아닌가요? 왜 이번에 이런 식으로 이 일이 발생했는지요? 우리 편에서 잘못을 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등한시했다면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잇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 잘못한 것이 없다면, 그 또한 이런 불평을 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칼빈은 고통 속에 있는 이 아버지가 이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자기를 자책하는 것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칼빈이 생각하기에 유일하게 위로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에로 그를 인도하기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아들을 데려 가신 이는, 그의 것으로 우리 모두를 만드시고 그 상황에서 잠시 우리에게 맡기셨던 그 하나님이십니다.” 이 맥락에서 칼빈은 현재의 삶을 “오는 생명”(the life to come)과 대조시킨다: “당신의 아들에 대한 생각 중에서 이 여려운 시기에 우리의 삶을 아주 순수ㅡ하게 선한 목적에로 인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생각하신다면, 이렇게 이른 시기에 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옮겨진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분명히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맥락에서 칼빈은 우리의 삶을 폭풍 속을 항해하는 여정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기대한 것보다 더 빨리 안전한 항구에로 이른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이냐고 말하는 것이다. 칼빈은 또한 이 소년의 신앙과 행위를 칭찬한다. 그에 대해서 기대하던 좋은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리헤부르 공이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론을 즉각적으로 예상한다. 즉, 물론 자신의 아들이 지금 “하늘”(heaven)에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러나 지금 자신의 아들을 잃었다는 실재는 남아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다. 칼빈 자신도 이 질문과 그 어떤 형태의 위로도 쉽게 주지 못하는 난점을 잘 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라는 사실이 우리가 이 죽음 대해서 슬퍼한다는 것을 막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몰아내기 아주 어렵고,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을 정도로 아버지의 슬픔을 억누르기 어렵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에게 더 고통 받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감정을 제쳐 버리고 돌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가르침 받은 인생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는 칼빈이 죽음과 슬픔을 어떻게 다루는 지를 매우 상세하게 보여주는 예가 된다. 그러나 그의 편지들은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예를 들어서, 그가 그의 친구였던 기욤 드 트리에(Guillaume de Trie)의 죽음에 대해서 쓸 때, 앞에서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칼빈은 그야 말로 병져 누웠다. 그의 침상에서 칼빈은 마지막에는 드 트리에가 하늘에 이르는 현관에서 자신을 맞아 주리라는 것이 자신에게 위로가 된다고, 그러나 그 위로가 자신의 이 슬픔을 다 앗아 가지는 않는다고 쓰고 있다.
또는 다음 같이 간단하게 요약하기도 한다: “그는 지금 복된 상태에 있다. 그러나 나는 비참한 가운데 있다.” 이 두 편지는 모두 칼빈이 자신의 원칙인 “지나치지 않는 원칙”(the principle of moderation)에 다 따라 살지는 못했음을 잘 보여 준다. 사실 칼빈은 페레이의 죽음을 언급하는 편지의 말미에 고백하는 것처럼 자신이 너무 멀리 간다고 인정한다: “나는 나의 슬픔을 간단히 언급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주체 할 수 없게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는 바를 지키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지나치지 않음은 덕이다. 그리고 이것이 칼빈에게는 이상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영은 원하지만 몸이 연약하다는 에수님의 말씀의 진리를 사도 바울과 함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5. 칼빈의 죽음
그의 생애 마지막 즈음에 칼빈은 죽음을 갈망한다거나 적어도 죽음이 곧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는 말을 자주 썼다. 특히 이즈음 사는 것은 투쟁에 가까웠고, 그런 상황에서 그는 삶에 대해서 곧 제대하기를 바라는 의무 병역을 감당하는 것과 비슷하게 말하고 있다(CO 15.357).
만일 당신이 조심해서 살펴본다면, 아침에 일어난 사람이 걸을 수도 없고 음식을 먹을 수도 없으며, 계속해서 늙어 가지 않고서는 손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것과 같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흘러가 버린다고 인정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항상 죽음을 향해 가고 있고, 죽음은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고, 우리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CO 33. 212).
그의 모든 격려와 영원한 삶에로 들어간다는 기대와 그 기쁨을 표현하는 것과 함께 칼빈은 우리가 점점 늙어 간다는 것과 인생이 점점 짧아져 간다는 것을 기뻐하는 것은 상당히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칼빈에게도 출구는 없어서, 지금부터 450여년전인 1564년 5월 27일 저녁에 칼빈은 죽게 된다. 그 다음 말인 1564년 5월 28일 주일 오후 2시에, 그가 요청한대로 (CO 21. 105-106) 늘 사용되던 나무 관에 실려서 일반 묘지(Plein Palais)에 안장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장례식은 그 관과 같이 깨끗하고 침착하게 치뤄졌다.
모든 것을 지나치게 하지 않는다는 그의 원칙은 이 장례식에서도 잘 지켜졌다. 그러나 장례식은 결국 몸을 무덤에 묻는 것이지, 그 인격 전부에 대한 것은 아니다. 칼빈은 사람들이 “하늘”(heaven)에서 서로 알아 볼 것이라고 하면서 그 상황에 대한 묘사에서 좀 더 나아가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던 프랑스 피난민 교회의 목사였던 리샤르 보빌(Richard Vauvill)은 그의 아내가 죽었을 때에 칼빈에게서 다음 같은 위로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에 그녀와 다시 연합하기 위해서 당신이 기쁨을 가지고 되돌아 갈 여인과 살 수 있었다.”(CO 15.867). 그러니 칼빈은 죽으면 이델레트와 재결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하늘”에서 어떤 신학적 논의와 대화를 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루터가 결코 받아 보지 못한 루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칼빈은 그들이 “하늘”에서 함께 있으면서 조용히 논의를 계속할 수 있으리라고 쓴 바 있다. 같은 말을 멜랑흐톤에게 한 적도 있다. 그와 함께 하늘에서 잔치를 벌이기 원한다고 하였다. 이 둘의 성격을 생각할 때 그 잔치는 수수하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베풀어지고, 춤은 없는 그런 잔치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떤 잔치이든지, 일단 이 세상에서 죽음이 올 때는 일단 눈물이 있고, 위로도 있다는 것을 칼빈은 잘 안다. 또한 다음 같은 사실도 칼빈은 잘 아는 것이다: 죽음에는 탈출구가 없으나, 죽음이 끝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을 향해 갈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은 실상 참된 삶을 향해 가는 것이다.
6. 요약과 결론
이로부터 내가 이끌어 내고자 한 결론은 다음 같은 것들이다:
1. 칼빈의 작품에는 예정과 선택의 주제가 죽음의 침상에서의 고뇌와 의심의 원인으로 나타난 적이 없다.
2. 칼빈은 죽음에 직면하여 슬픔의 감정을 가지는 것을 자연스럽고 성경적인 것으로 여겨 적법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었다.
3. 죽음에 대해 슬퍼하는 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어떠해야 한다고 칼빈이 말한 것과 칼빈의 실제적 목회적 조언과 죽음과 죽어 감에 대한 그 자신의 실제 모습 사이에는 일종의 긴장이 있다.
4. “칼빈의 생애와 신학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는 그 동안 칼빈 연구에서 많이 간과해온 분야이다.
이런 네 가지 결론은 칼빈 자신의 말로 가장 잘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델레트가 죽었을 때, 칼빈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고 말했었다(CO 13.230, 228-29).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고백이다. 그런데 그의 아내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칼빈은 다음 같이 표현한 한다: “하나님께서 근자에 나의 아내를 고향으로 그에게 데리고 가셨기에 나는 반쪽 사람일뿐입니다”(CO 20.394). 천상의 위로가 있다. 그러나 지산에 큰 상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아내의) 죽음은 칼빈을 반으로 갈라놓았다. 그는 신앙으로 가득찬 사람이지만 죽음이 그의 균형을 온전히 앗아 갔다. 죽음은 그만큼 (지상에 있는 사람에게는)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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