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과 장로교 찬송
조진형 / 혜원교회 / 음악평론가 (최소 2009년)
16-17세기에 독일에서 루터의 코랄이 발달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프랑스 네덜란드에서는 요한 칼빈에 의하여 시편가(Psalmnody)가 발전한다. 칼빈은 성경에 바탕을 둔 찬송을 원하여 시편을 가사로 한 것을 고집하였다.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 은 1509년 7월 프랑스 피카르디에 있는 노용에서 태어났고 1564년 제네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노용의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고 23년에 파리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다.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연구하면서 복음주의로 전향, 히브리어를 연구하면서 복음주의로 전형, 라틴어로 <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iane Religionis)를 저술한다. 36년에는 프랑스 프로테스탄트를 인정해달라고 국왕에게 청원서 <관용>(De Clementia)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 청원서는 카톨릭과 마찰이 되어 피난할 수밖에 없게되어 제네바로 들어가 프란시스 1세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신학에 관한 저술에 전념하는 동시에 종교 간행물을 출판하게 된다. 루터가 종교개혁에 한창인 스트라스브루크로 칼빈이 들어가서 개혁 운동을 펴는 한편, 마틴 부처(Martin Butzer)를 만나서 그에게서 음악이론을 배우게 된다.
39년에는 유니슨으로 노래해야 민중들로부터 호응을 얻게 되고 그들이 배울 수 있다는 찬송이념에 따라 스트라스부르크 시편송을 출판하였다. 41년 제네바에 돌아와서는 시편가에 더 열정을 갖게 된다. 제네바에서 개혁에 성공하고 개신교 이념에 따라 개혁교회 곧 오늘의 장로교의 근본을 이루게 된다. 칼빈은 예배에 있어서 루터와 같이 음악의 중요성을 간파하였으며 기악보다는 성악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또 가사도 주로 구약의 시편에서 택하였으며 사용하는 선율도 다성이 아닌 단성, 즉 유니슨으로 부르게 하였다. 또한 오르간이나 다른 어떤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배제하였다. 칼빈의 종교음악은 교회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으며 무반주의 단선율로 가사는 구약의 시편을 담은 찬송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음악 형식에도 제한된 형식을 고집하였다. 그 한 예로 라틴어 찬송가인 Nucdimittis(시몬의 노래, 눅 2:29-32)를 프랑스어로 부르게 하는 한편, 세속성을 띤 민요가락의 찬송가는 일체 금지시켰다. 이런 면이 루터의 코랄과 다른 점이다.
1536년 칼빈은 프랑스에 체재하면서 당시 명성을 떨치던 시인 클레망 마로(Clement Marot)를 만나게 된다. 그의 영향을 받아서 자기의 번역물을 구디멜(Goudimel) 부르즈아 (Louis Bourgeois)등의 작곡으로 등장시키며 특히 친구인 로이(Loys) 의 작곡으로 파리에서 83곡의 <다윗 시편송>을 출판하기도 한다. 그후 41년 제네바로 돌아와서 영국 퓨리탄이 애용하고 교계에 자극을 준 <제네바 시편가>를 착수, 다음해인 42년에 발간하기에 이른다. 이 제네바 시편가는 브르즈아의 작곡으로 된 것을 합쳐서 83곡의 <베제의 시편> (Bezes Psalm)이라 하여 출판하였다. 이것이 장로교의 최초 찬송가이다. 그후 56년에는 당시 마이트르(Maitre)뷔송 (Buisson) 다커(Dagues)등의 곡이 포함된 125곡을 선정 재차 <제네바 시편가>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여 이 찬송가는 광범위하게 파리나 노용에 보급되어 사용되었다.
64년에는 르중 (Cluude le Jeune) 이 <다성 제네바 시편가> (Geneva Psaltel Polyphonically)로 4성 5성으로 된 다성 시편송을 작곡하여 출판하기에 이른다. 독일에서는 수사토(Susato)에 의해서 <사우테르 리데켄>(Sauter Liedeken)이란 명칭으로 시편가가 출판되었으며, 네덜란드에서도 라틴어로 번역하여 시편가가 출판되어 64년에 재판될 만큼 활력이 있게 보급되었다.
영국에서는 스턴홀드(Sternhold) 홉킨스(Hopkins) 등에 의해 영문으로 번역하여 보급되었다. 이같은 시편송은 17세기에 하벤스크로프트(Ravenscroft, 1696) 등에 의해 105곡으로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화성으로 편곡되었으며 <스코틀랜드 시편송>으로 1635년 출판되어 18세기에는 신대륙 미국으로까지 보급된다.
칼빈은 카톨릭 전통을 배제하고 원시 초대교회 전례를 따르려고 하였다. 칼빈의 개혁이념은 루터와는 상반되는 좀더 엄격한 점이 많았다. 루터는 카톨릭의 전통을 지키며 그의 개혁이념에 따라 적절한 수정을 가한 것으로 음악도 카톨릭교회의 전통을 배제하지 않고 그래도 모방한 듯한 루터식 코랄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칼빈은 카톨릭 정신을 배제하고 원시 초대교회 전례를 좇으려 했으며, 교리도 거기에 기초를 두고자 하였다. 1536년 칼빈이 제네바에 망명하기 전에는 예배의식에 회중 찬송가가 없었다. 그 원인은 프랑스어로 된 찬송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쯔빙글리(Zwingli, 종교개혁가)가 인도하던 쥬리히에서도 처음에 찬송가가 없었다가 1598년에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칼빈이 스트라스브루크에서 독일의 루터 코랄을 들어본데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니까 칼빈의 찬송의 근원은 스트라스브루크에서 루터의 찬송에서 영향을 받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가사에 구약시편을 고집하여 프랑스 운율에 맞게 만든 것이 시편가 등장으로 본다. 칼빈은 루터처럼 음악을 좋아한 증거도 없고 소양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그는 시편가와 몇 개의 캔티클만 부르도록 주장하였다.
이같은 칼빈의 음악에 대한 시상이 <제네바 시편가>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여기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들은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인가?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며 기도하는 노래가 있어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영광을 돌리게 하는 노래가 있어야 된다. 이것은 성 어거스틴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 자신이 말씀하시고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다윗의 시편보다 더한 찬송가는 찾지 못하였다. 우리가 시편을 노래할 때에는 하나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좋은 찬송가이다."
칼빈은 인간이 만들어낸 노래는 경박하고 이단적인 요소가 끼어들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거룩한 노래를 찾았다. 그러한 노래는 하나님으로부터 감동받지 않은 사람은 쓸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성경의 시편을 가장 적합한 찬송가로 선택하였던 것이다. 루터가 창작된 가사를 사용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칼빈은 자작된 가사의 찬송을 배제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예배에서 다성음악과 악기사용을 금하였다. 그래서 예배음악은 자국어로 된 시편가를 무반주로 유니슨으로 부르게 하였던 것이다. 프랑스 개신교도들에게 이 시편가를 부르게 하여 하나님과 각 개인이 교제하는 수단이 되게 하였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상징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앙을 위하여 싸웠으며 고난을 당하면 신앙의 투사로 싸웠는데 이것을 유그노전쟁(1562-98년가지 약 50년간 싸운 30년 전쟁의 전초전이었다)이라고 한다. 이 전쟁으로 30만의 개신교도들이 독일 네덜란드 영국 등지로 망명하게 된다. 개신교도들은 이 시편가를 노래함으로 용기와 힘을 얻었으며 전쟁터에서는 이 시편가가 군가가 되었으며 순교자들에게는 마지막 순교의 노래가 되었던 것이다. 이를 서양사에서는 <쟈코뱅의 후노당의 노래>라고 말한다.
칼빈은 음악에 전문성이 없었기 때문에 시편에 여러 기존의 곡들을 인용하였다. <칼빈의 첫 시편가> (Calvin First Psalter, 1539)의 저자 리처드 테리(Richard R. Terry)는 "역사는 이상한 아이러니로 꽉 차 있지만 카톨릭 예식의 종점에서 여흥으로 시작된 프랑스 운율 시편가가 프랑스 개신교의 가장 엄격하고 독점적인 노래가 된 것처럼 야릇한 것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칼빈의 시편가는 이와같이 가사내용에 엄격한 것이었으나 곡은 세속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와는 달리 세속성이 강한 것이었다. 15세기 말에 몇편의 시편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사용되기는 하였지만 운율로 노래부르기 시작한 것은 궁정시민 클레망 마로에 의해 번역된데서 시작된다.
1536년까지 마로는 30편의 시편을 번역하였으며 이를 당시의 프랑스 운율 노래곡조에 붙여 왕실의 여흥의 하나로 불렀는데, 이것이 지방에도 퍼져 불려지게 되었다. 마로에 의해서 칼빈이 엄선하고 번역한 19편의 시편과 시므온의 노래와 십계명 스트라스부르크 신도의 신조와 함께 <음악에 붙인 몇 개의 시편과 노래>(Aulcus Pseaulmes et Cantquesmys en Chant)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는데 이를 음악사에서는 <스트라스부르크 시편송>이라고 불렀다. 이 시편가의 곡조는 대부분 마로의 운율 시편과 독일 루터의 코랄의 곡조를 모방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마로의 운율시편은 당시 인문주의 정신에서 생겨난 예술작품으로 샹송 섯곡조였다고 추측하고 있다. 곡조가 다양한 리듬형태로 되어 있으며, 교회선법 위주이나 때로는 루터의 시도와도 같이 근대조의 선구형인 토날리티(tonallity)를 시도한 곡도 있다.
시편가의 운율은 당시 세속 유행가와 흡사하여 가사는 몇 개의 스탄자(stanza)로 부르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것은 12-14세기 프랑스 방랑시인들의 운율을 따른 것이었다. 이같이 칼빈의 시편가를 돕던 마로가 세상을 떠나자 칼빈은 후계자를 구하지 못하여 애쓰다가 1548년 베자(Theodore Beza 1519-1605)를 만나 시편가 작업이 계속된다. 베자에 의해 62년에 시편 150편, 시므온 노래, 십계명 등이 수록된 완성된 <제네바 시편가>를 출판한다. 이 시편가는 칼빈의 공인된 교회의 시편가로 권위가 있어서 제네바 파리 리용 등 15개 출판사에서 동시에 출판하여 1565년까지 3년 동안에 63판 이상 출판되었다. 이것은 <제네바 시편가>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하며, 당시 개신교 가정마다 이 시편가가 있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개혁교히에서 오랫동안 공인된 찬송가로 사용되었다. 시편가의 리듬이 간결하고 쉽게 기억될 수 있는 것이어서 회중에게 감동을 주었다.
<제네바 시편가> 의 곡조 근원은 고대교회의 것을 모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고대 중세 성가와 관련이 있는 부분이 많다. 또한 많은 곡들이 프랑스 전래 민요에서 찾아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으며 적어도 10여곡은 그레고리안 찬트에 근원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시편가들은 완전한 창작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기존의 곡들을 편곡하거나 수정하고 변화시켜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칼빈이 제시한 원리에 의해서 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독일 코랄과는 다른 프랑스 특유의 곡조를 파생시켰던 것이다. <제네바 시편가> 의 특징은 곡조보다 리듬에서 찾을 수 있다. 독일의 루터코랄은 가사의 억양을 중시한 반면 시편가는 시를 읽는 사람이 사용하는 리듬형태를 사용하는 인본주의적 경향을 띤 프랑스 운율을 사용하였다.
박자는 기본적으로 복합박자형이지만 극히 간단하게 되어 있다. 이 시편가가 회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이 리듬이 간결하고 쉽게 기억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네바 시편가>는 프랑스와 유럽대륙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으며 기독교 음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20여개국으로 번역되어 보급되었다. 특히 네덜란드와 독일로 많이 보급되었다. 루터는 음악에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코랄에서 독특성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칼빈은 음악의 전문성이 없었기 때문에 가사를 성경에 바탕을 두도록 강조하였으나 곡은 창작적이지 못하고 기존적 곡들 - 그레고리 안 찬트, 전래된 곡, 프랑스 민요 - 에 바탕을 두고 인용하거나 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단순성을 살핀 것이며 성경적이어서 감동을 주고 교회음악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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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시편찬송 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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