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이단 등

신사도 운동 문제점과 평가

Sola. 2023. 10. 4. 06:00

 

신사도 운동 문제점과 평가

 

심창섭 교수 -총신대 신학대학원

 

 

총회 신학부(부장 김유문 목사)가 총회의 신학 정체성을 정립하고 개혁신학을 확산하기 위해 "21C 개혁신학이 개혁의 길을 묻는다"는 주제로 전국을 투어하며 "총회 개혁주의 신학대회를 가졌다. 16일 사랑의교회에서 가졌던 同 대회에서 前 총신대 신학대학원 심창섭 교수가 "신사도 운동"을 발제하면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평가한 내용 전문을 싣는다. 본고는 발제가가 총회 신학부의 의뢰에 의해서 '총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구한 신학적인 평가임을 밝힌다. - 편집자 주 -

 

 

I. 들어가면서

 

신사도운동(New Apostolic Movement)은 피터 와그너의 영적, 신학적 진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영적, 신학적 진화는 오순절교회의 성령 운동과도 연관되어 있다.

 

피터 와그너는 신사도 운동을 제 2의 사도시대의 발견임을 주장하면서 “신사도적 종교개혁”(New Apostolic Reformation)이라 칭한다. 즉 신약시대의 12사도들과 예언자들이 지금도 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은사지속론을 주장하는 한국의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신사도운동을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피터 와그너에 수학한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와 목회자는 “이재범 교수, 목원대 총장을 역임한 이요한 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원인 신진 학자 성결교 홍영표 박사, 그리고 하나님의성회 중진 명성훈 목사를 비롯하여 상당히 많다.”(김영한, “신사도운동, 교회성장의 새패러다임” in blog.naver.com/cselee59/100202554)

 

와그너는 한국의 저명한 목회자들과도 교분도 있다. “한국 감리교 김선도 목사,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를 비롯하여 많은 원로 목회자들과 교분이 있고, 와그너리더십연구소를 세웠다.”

(김영한 “신사도운동, 교회성장의 새패러다임”

in blog.naver.com/cselee59/100202554)

 

은사 지속 론을 주장하는 학자들 중에서 신사도 운동을 성령의 역사로 보는 자들도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장로교에서 은사 중지 론을 신봉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그룹이 신사도운동을 사이비 미혹의 영의 운동이라고까지 강하게 폄하하고 있으나, 개혁주의 전통에 서면서도 은사 지속 론을 믿는 학자들(차영배, 오영석, 오성춘, 오성종, 성종현, 김명용, 현요한, 최윤배 등)은 대체적으로 긍정하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

 

웨슬리 부흥전통을 이어받은 성결교에서는 서울 신대 전 총장 한영태, 성결대 전 총장 성기호, 배본철 교수, 그리고 감리교신학대 총장과 목회대 총장을 역임한 감리교계의 원로 신학자 박봉배 박사는, 은사 지속 론에 동의하면서 신사도운동에 대하여 하나의 성령의 역사로써 긍정적으로 보고자 한다.”(김영한 “신사도운동, 교회성장의 새패러다임” in blog.naver.com/cselee59/100202554)

 

반면에 초대교회와 같은 은사지속론을 반대하는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신사도운동에 대해 부정적이다.

 

은사지속론에 대한 부정과 긍정의 견해는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 피터와그너와 같이 사도들이나 예언자들이 초대교회처럼 다시 나타난다는 주장을 수용한다는 것은 곤란하다. 더군다나 그의 주장에 현혹된 많은 종교지도들과 신학생들이 사도들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고 사도의 권세를 회복하여 기적, 예언, 축사, 귀신 몰아내기 등 사도시대에 일어났던 은사운동의 재현에 심취해 교회를 혼란케 하는 행위는 반 교회적이고 이단적인 행위이다.

 

특히 피너 와그너는 역사적인 정통기독교를 “종교의 영” 혹은 “낡은 가죽부대”로 규정하고 신사도운동을 “새 가죽부대”와 “포도주”라고 주장한다. 초대교회도 은사 지속 론을 주장한 많은 부류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몬타누스파다. 그들은 오늘날의 신사도주의자들처럼 사도(여사도)을 인정하고 은사중심의 사역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다 허구임이 확인되었고 정통교회에는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피터 와그너의 주장에 대해 검토하고 신사도운동의 문제점들을 논하려 한다.

 

 

 

II. 본론

 

1. 피터 와그너(Peter Wagner)의 은사운동 진행과정-신사도운동의 전주곡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 운동 진화과정은 자신의 저작인 [Wind of the Thirds]에 기록되어 있다. 피터 와그너의 개종은 대학시절에 도리스(Doris Wagner)라는 독실한 여학생와의 만남을 통해 일어났다. 피너 와그너가 처음 출석한 교회는 보수적인 전통교회였고 I.V.F 단체와 접촉하면서 복음주의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다.

 

그 후 그는 풀러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남미선교회와 S.I.M 소속 선교사로 볼리비아에 파송된다. 그는 반오순절주의자 보수 복음주의자로 기적과 은사의 능력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선교를 시작하였다. 16년간의 볼리비아 선교를 마친 후 풀러신학교에 교수로 활동하였다. 피터 와그너는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Anderson McGavran)과 함께 풀러신학교 교회성장학의 두 기둥을 이루었다.

 

피터 와그너는 신사도운동의 신앙관은 15년간 4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첫 번째 피터 와그너의 영적 변화는 1960년데 볼리비아 선교지에서 인도 선교사 스텐리 존스의 신유집회를 통해 나타난다. 자신은 신유의 은사를 믿지 아니했으나 스텐리 존스의 기도를 통해 자신의 목에 생긴 혹을 수술 한 후 악화된 환부를 치유 받게 된다. 하룻밤 사이에 그의 혹 수술부위가 깨끗이 치유 되는 경험을 통해 와그너는 신유에 대한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와그너, 2006. pp. 46-47)

 

두 번째 영적 변화는 1960년 말 도날드 맥가브란의 교회 성장 학 강의를 통해 시작된다. 피터 와그너는 교회 성장이 예언과 성령의 은사를 주장하는 중남미의 오순절 교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남을 인식하면서 성령의 오순절식의 은사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갖게 된다.

 

“그들의 예배에는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었다. 대다수의 우리 복음주의적 교회의 질서 정연하고 차분한 예배와는 달리 오순절 신자들의 예배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성령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손뼉 치며 함께 손잡고 그 손들을 높이 들기도 하였다. 어색하게 그들의 흉내를 내던 나는 곧 그런 예배를 즐거워하게 되었다. 그들이 하는 방언과 예언 등을 들으면서 나는 이런 은사들이 사도시대에 종결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와그너, 2006, p.48)

 

그후 그는 성령의 은사 체험을 교회성장과 연계시키는 [Spiritual Power and Church Growth]을 저작하면서 신앙관의 큰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

 

세 번째 피너 와그너의 영적 변화는 1970년 중반에 테네시 소재의 하나님의 교회에서 오순절 교인들을 통해 현장의 영적 체험을 겪으면서 나타난다. 그는 오순절 교인이 되고 싶은 강한 충동을 갖게 된다.(와그너, 2006, p. 49)

 

네 번째 피너 와그너(아래 사진)의 영적 변화는 빈야드 운동의 대부인 존 윔버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존 윔버와의 교제는 피터 와그너의 세계관 변화의 클라이막스 였다. 1975년 존 윔버는 피너 와그너의 목회학 박사과정의 교회 성장학 강의를 받게 되고 와그너는 자신의 학생인 윔버를 통해 치유를 위한 기도, 이적, 기사, 방언의 은사 등을 더욱 깊게 은사체험 신앙으로 빠져 들게 된다.

 

피터와그너.jpg

와그너는 윔버에게 ‘이적, 기사와 교회성장’(Signs, Wonders and Church Growth)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맡기기도.(와그너, 2006, pp. 50-51) 존 윔버는 강의 도중 와그너의 고혈압 치유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피터 와그너는 심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굉장한 느낌의 평화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완전히 맥이 풀려 이러다가 강의실 바닥에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나는 ‘존’이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중계방송 하듯이 설명하는 소리를 들었다. ‘성령께서 와그너 박사에게 임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그에게 임한 성령을 보실 수 있습니까?’ 아마 나는 5분 정도 거기 앉아 있었을 것이다. ‘존’이 나에게 말하기를 ‘성령께서 당신에게 사역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허락을 받기 전에는 약을 중지하지 마십시오” 라고 말했다.“(와그너, 2006, 52)

 

이 일 후 피터 와그너는 적극적으로 환자를 위해 안수기도를 시작하게 된다. 그의 은사체험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것은 레이크 에비뉴 회중교회의 주일 성경공부 반을 통해서였다. 사도행전의 성경공부 시간에 중보기도, 신유, 축사, 예언의 은사, 행정, 영분별, 지식의 말씀 등의 여러 가지 은사체험을 경험하게 된다.(와그너, 2006, p. 53)

 

와그너는 또한 1984년 여름 랑카스터의 루터교 목사 후레드 루디의 집에서 120명 펠로우쉽 지도자들과 함께 치유를 위한 집회 중 자신이 한쪽 다리가 짧은 사람을 길게 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후레드 루기 목사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 졌고 곧 이어 두 명의 짧은 다리와 척추 통증 환자를 치유하게 된다.피터 와그너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신유의 은사를 주셨다는 확신을 더욱 확고하게 갖게 된다.(와그너, 2006, pp. 55-56)

 

피터 와그너는 또한 존 윔버의 포도원 교회 집회에서 성령의 강한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집단 치유의 명령을 받게 된다. 이 집회에서 피터 와그너는 50명의 사람들의 짧은 다리를 치유했고 척추통증과 질병 등을 치유하게 된다.(와그너, 2006, p.56)

 

또 다른 큰 은사가 짧은 다리가 길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는 조용기 목사의 방문으로 이루어진다. 열 살 때 열차 바퀴에 한쪽 다리를 다쳐 흉하게 짧아진 이집트의 정교회 목사의 다리가 길어진 기적이었다. 그 후 피터 와그너는 조용기 목사가 보낸 여집사의 망가진 엉덩뼈를 치유하게 된다.(와그너, 2006. p. 57)

 

피터 와그너는 이러한 신유의 은사체험을 통해 오순절교회의 은사운동을 전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그리고 오순절교회와 은사주의 운동의 진정성을 위한 반증으로 신유 집회를 통한 초대형교회의 성장의 사례를 열거한다. 그는 성장하는 교회의 80%는 오순절이나 은사운동교회임을 지적한다.(와그너, 2006, p. 75)

 

대표적인 사례로 조용기 목사의 여의도 순복음교회, W.F 쿠무이 목사의 깊은 생명성서교회, 스웨덴의 생명의 말씀교회, 영국의 은사운동 가정교회, 라틴아메리카의 폭발적인 은사운동교회, 말레지아의 갈보리교회, 싱가폴의 갈보리 카리스마틱 센터, 그리고 방콕의 소망교회 같은 은사운동교회의 두드러진 성장 등을 언급한다.

 

그리고 한국의 김기동 목사도 제 3의 물결도 이에 포함 시킨다. 와그너는 김기동 목사 교회의 주일예배를 인도하였고 김기동 목사의 성공적인 성장과 기적에 대해 소개한다.

 

“김 목사는 10명의 죽은 자를 살려내었고 수천의 귀신들을 쫓아내었으며 59명의 완전한 절름발이를 걷게 했다고 증거 되고 있다”(와그너, 2006, p. 74)

 

피터 와그너는 또한 김 기동 목사에 의해 완치된 간첩 김 신조의 아내의 위암 치유를 소개한다. 이로 인해 김 신조는 김 기동 목사를 만나게 되었고 김 목사는 김 신조에게 붙어 있던 3마리의 귀신을 쫓아내었다고 보고한다. 이로 인해 김 신조는 즉시 마음을 열고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이다.(와그너, 2006, p. 95)

 

피터 와그너의 신앙관의 변화는 은사주의를 만나고 체험하면서 시작되었고 이러한 체험은 바로 신사도 개혁(New Apostolic Reformation)이라는 제 2의 사도시대를 출범시키기 위한 전주곡이 되었다

 

 

2. 신사도운동(제 2의 사도시대)의 출범

 

피터 와그너는 자신의 은사체험을 바탕으로 사도시대 은사운동의 재현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동안 발생한 은사운동의 아류들의 족보를 열거하면서 자신의 신사도개혁운동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신사도운동의 정당성을 뒷 바침하는 은사운동들은 1830년대 영국의 에드워드 어빙( Edward Irving), 1900년경 아프리카 독립교회, 1970년대의 미국의 은사주의운동(charismatic movement), 그리고 1970년 중반의 중국의 가정교회운동, 그리고 1970년 후반의 남미의 풀뿌리교회운동(grassroots church movement) 등이다.

 

또한 1988년 자신의 동료인 빌 헤이몬의 예언적 사도운동을 신사도 개혁의 자양분으로 소개한다.(와그너, 2004, pp.10-11)

 

"이와 같은 많은 뿌리의 자양분을 받은 신사도적 운동은 성경의 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예언을 통하여 그 결실을 맺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미국 기독교의 역사적 흐름에서 신사도적 개혁의 족보가 고전적인 오순절 운동과 함께 시작되었고, 그 뒤를 이어 독립은사주의 운동과 더불어 진행되어 왔다는 것을 아는 것은 도움이 된다.“(와그너, 2004. pp. 10-11)

 

피터 와그너는 1940년대의 회복운동, 치유운동, 늦은 비 운동 등이 하나님의 성회와 고전적 오순절교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을 도리어 신사도 운동의 때가 성숙하지 못한 탓이라고 판단한다.(와그너, 2004, p. 12) 그러나 지금은 때가 무르익어 임계질량이 채워졌음을 주장하면서 이런 운동을 적극적으로 신사도개혁운동의 자양분으로 옹호하고 있다. 그리고 2001년을 제 2의 사도시대가 개막된 시점이라고 주장한다.(와그너, 2004, pp. 12-13)

 

 

 

3. 신사도운동의 주장

 

“신사도개혁운동의 가장 급진적인 특징은 사도의 직임이 오늘날에 그리스도의 몸에서도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널리 인정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와그너, 2004, p. 14)

 

 

1) 신사도 운동은 초대교회의 중보자, 예언자, 사도의 직임이 오늘날에도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중보자의 직무는 원수 마귀가 설치해 놓은 장애물들을 제거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뚜렷하게 들 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선지자들의 직무는 하나님의 은성을 직접 듣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비밀을 선지자에게 보이지 않고는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암 3:7) 그러나 사도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직무이므로 전체의 질서를 잡는 사람들이다. 오늘날에도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딛 1:5)(와그너, 2004, p. 14)

 

피터 와그너는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초기 100-200년간을 제외하고는 사도시대의 성경적인 교회체제가 확립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사도의 직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의 직임 회복을 통해 진정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확신하기에 신이 난다”: 와그너, 2004, pp. 14-15)

 

 

2). 신사도 운동은 기존 교회를 낡은 가죽 부대, 신사도운동을 새로운 가죽부대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가죽 부대, 즉 제 2의 사도시대에 들어왔다.”(와그너, 2004, p. 2004)

 

피터 와그너는 예수가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않는다는 말씀(마 9:17)을 인용하여 기존 교회를 낡은 가죽 부대로 규정한다. 전통교회가 쓰임 받는 시대가 지났고 새 가죽부대 즉 제 2의 사도시대 교회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와그너, 2004, pp. 16-18)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를 위해서 새로운 가죽 부대들을 연이어 만들어 오셨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가죽 부대로 들어왔다. 이것을 나는 제 2의 사도시대라고 부른다.”(와그너, 2004, p. 18)

 

 

3) 신사도 운동은 반대하는 세력을 사탄의 계략에 빠진 종교의 영들이라고 주장한다.

 

“종교의 영은 종교적 수단들을 사용하여 변화를 막고 현상을 유지하는 일을 맡은 사탄의 사자이다.”(와그너, 2004, pp. 22, 227))

 

피터 와그너는 신사도운동은 방해하는 세력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종교의 영이란 메타포를 사용하여 이방종교와 기독교를 사탄의 계략에 빠진 영들이라고 칭한다. 두 개의 영은 비기독교 종교청을 맡은 영과 기독교청을 맡은 영이다.

 

비기독교 종교청의 영은 이슬람, 일본의 태양의 여신, 태국의 부처, 안데스의 인티와 같은 이방 종교들이다. 기독교청에는 두 개의 국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개인종교 보안국으로 개인이 구원 받거나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교회 구조국이다.

 

교회구조국은 종교적 권력과 조직을 통해 ‘장로의 유전’에 집착케 하므로 새 가죽 부대인 제 2의 사도시대를 가로 막는 주 세력이다. 이 교회구조국의 영은 종교 지도자들로 하여금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고 낡은 가죽 부대를 유지하도록 한다.(와그너, 2004, pp.23-24)

 

 

4) 신사도운동은 하나님 나라의 권세는 집단에 기존교회의 운영체제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도와 선지자와 같은 개인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의 직분에 대해서는 편안해 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은 지나간 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와그너, 2004, p. 37)

 

피터 와그너는 전통교회의 운영조직인 당회, 공동의회, 집사회, 총회 등은 낡은 가죽부대에 속한다고 하면서 제 2의 사도 시대는 이러한 통치 권세는 사도적 권위에 속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여러 지역교회들을 관할하는 사도적 리더십은 이와 사뭇 다르다. 이 리더십은 교회적 직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서 세움 받거나 폐해진다. 사도적 네트워크가 교단을 대신한다....그들[목사들]은 광역 사도의 영적보호( spiritual covering)아래 들어갈 젓인지 말 것인지를 결단하여 선택한다.

 

이것은 사도와의 인격적 동의에 따라 성립되는 관계이다. 이 관계 안에서 사도는 영적 권위를 가지고 목사를 지도하며 그 삶에 영향을 행사하고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사역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며 영적 아버지로서 목사를 격려하는 것이다. 이에 보답으로 목사는 사도의 삶과 사역을 위해 필요한 재정을 공급하는일을 섬기게 된다.”(와그너, 2004, pp. 41-42)

 

 

 

5) 신사도 운동은 전통교회의 교회 중심 사역을 거부하고 일터의 사도적 사역과 지역적 사도적 사역 등을 주장한다.

 

피터 와그너는 신사도교회의 사도와 선지자의 사역은 교회의 사역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의 현장에서의 사역임을 강조한다. 그는 교회 대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젼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일터에서 발생하는 삶의 영역의 사역으로 이동해야 주장한다.

 

그 주장하는 일터는 “재정, 과학기술, 가사, 운송, 농업, 군사, 정부, 법조, 통신, 사업, 체육” 등 인간의 삶의 전 영역을 포함한다.(와그너, 2004, p, 83) 그리고 사도는 지역전체를 관할하는 사역의 직무를 맡았다는 것이다. 지역적 사도는 특정한 지역사회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궁극적 사역을 받은 자들이다.(와그너, 2004, p. 101)

 

이러한 피터 와그너의 견해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회의 사역을 부인하는 견해에서 발생한 것이다.

 

 

 

 

6) 신사도 운동은 사도적 선포는 특별한 권세와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줄리안 와츠의 이야기는 사도의 기름부음이 특정한 지역사회 전체가 하나님이 정하신 궁극적 사명을 회복하도록 도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제적인 예가 된다.”(와그너, 2004, p.100)

 

피터 와그너는 신사도시대의 사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분명한 지시를 받고 선포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즉 신사도의 사도는 지역 전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회복되도록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와그너는 이사야 61장 10절에서 62장 4절의 말씀을 인용해서 줄리안 와츠라는 사도가 길드포드라는 도시에 대해 사도적 선포를 한 것을 사례로 들어 사도적 선포의 정당성을 주장한다.(와그너, 2004, pp. 99-100) 현실적인 적용의 예를 들면 사도들이 어떤 지역에 가서 지역을 향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선포하면 그대로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를 역으로 적용하면 땅 밟기의 수준과 같은 것이다.

 

 

7) 신사도 운동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새로운 영적 도구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사도 운동은 제2차 로잔대회(1989) 이후에 루이스 부쉬의 10/40 창의 이론과 함께 발달한 영적 도해를 그대로 단골 매뉴로 수용한다. 그리고 “동일시 회개”(identificational repentance: 자신이 직접 그 죄에 관여하지 않았을지라도 그 죄를 자신의 죄로 받아 드리고 회개하는 기도-역주)와 사도적 중보기도, 땅 밟기(prayer-walking), 전략적 차원의 영적전쟁( strategic-level spiritual warfare)" 등을 행한다.(와그너, 2004, p. 110)

 

영적도해는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과 사탄이 세상역사에서 대등한 세력으로 대립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사탄이 점령한 특정 지역을 정하고 땅 밟기, 대적기도, 선포기도,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축사기도 등을 행한다. 최 바울 선교사의 [세계영적도해]나 [하나님의 나라]도 이러한 이론을 전제로 저술된 것이다.

 

 

8) 신사도 운동은 사탄(지역의 영들)과의 싸움을 복음전파를 위한 사역의 주된 임무라고 주장한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항하는 ‘공중전’은 전 세계의 미전도 종족들에게 나아가 사역하는 전도자들, 교회 개척자들, 그리고 목사들이 수행할 지상전의 길을 닦기 위해 필요하다.”(와그너, 2004, p.130)

 

피터 와그너는 전통교회의 복음사역에서 영적 전쟁에 대한 강조가 부족한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제 2의 사도시대에는 마귀와 영적 싸움을 하는 것이 전도자의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서를 보면 마귀의 세력과 싸우는 일은 예수님의 생각 속에서 하챦은 주제가 아니라 중심적인 관심사였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예수님에게는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포함시키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와그너, 2004, 126)

 

특히 피터 와그너는 마닐라 제 2차 로잔회의에서 “지역의 영들”(territorial spirits)이란 주제로 강의를 하였다. 와그너는 바울의 말(엡 6:12: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싸움)을 인용하여 복음전파의 사역자들은 적극적으로 마귀와의 ‘공중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와그너, 2004, p.129)

 

물론 이러한 주장은 와그너 자신의 영적체혐에 기초한 것이다. 와그너는 마닐라를 떠나기 전 하나님이 세미한 음성으로 자신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내 아들아, 나는 네가 지역의 영들에 관한 영역에 지도자로 서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와그너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성임을 확신했다는 것이다.(와그너, 2004, p. 130)

 

와그너는 그 뒤 [원수를 대적하라](Engaging Enemy), [지역의 영들](Territorial Spirits)등의 단행본을 출간하여 자신의 저서를 통한 영적전쟁에 대한 근거들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지역의 영’들에 통찰력이 있는 25명 지도자들로 구성된 싱크탱크를 구성하여 ‘영적 전쟁 네트워크’ SWN)를 결성하였다.

 

이 모임에서 영적운동의 수준을 정하였다. 기초적 수준의 영적전쟁은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이고, 주술적 영적 전쟁은 사탄주의, 마술, 뉴에이지, 프리메이슨, 동양 종교 등 조직된 악의 세력을 대적하는 사역이고, 그리고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은 지역의 영들과 같은 높은 지위의 어둠의 정사들과의 싸우는 사역이다.(와그너, 2004, pp.130-131) 그래서 와그너는 “참된 사도의 특징 중의 하나는 교회를 이끌어 사탄의 나라를 침노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와그너, 2004, p. 132)

 

영들을 대적해서 싸운다는 의미에서 와그너는 사도를 “하나님의 군대에서 장군으로 복무하라는 명을 받은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와그너, 2004, p. 144) 이런 신사도 운동의 주장인 영적도해, 영적전쟁, 축사, 땅 밟기기도, 예언과 대적기도 그리고 선포기도는 극단적이며 세대주의 이원론 사상과 유사하다. 특히 한국의 단기 선표 팀 중에서 이러한 영적도해의 이론을 중심으로 선교를 전략적 영적 전쟁의 일환으로 보는 평화행진의 등의 단기선교는 잘못된 것이다.

 

 

9) 신사도운동은 전통적인 신학교 교육은 영적 전쟁에서 대항할 능력을 상실한 교육을 하고 있으므로 신학교육의 무용론을 주장한다.

 

“수도원은 존경할 만한 성직자는 반드시 일반 평신도보다 더 많이 배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교회에 심었다.”(와그너, 2004, p. 152)

 

와그너는 정규신학교육은 실제적인 영적 싸움에 대항할 능력을 배양하지 못하고 아카데믹한 지식 교육에만 치중한다는 것이다. 와그너는 신사도운동에서 사도로 인정받은 350명의 탁월한 지도자는 국제사도협의회(ICA)의 통계에 의하면 60%가 정규 신학교 교육을 받지 아니 했다는 것이다. 그는 슈바르츠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신학교육의 무용론에 대해 말한다.(와그너, 2004, p.145-151)

 

“정규 신학교육은 교회 성장 및 교회의 전반적 자질과 음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와그너, 2004, p.147)

 

대적하는 영들에 대항할 능력이 없는 신학생의 배출은 기독교 종교의 영들에 의한 것이며 이러한 현 상태의 신학교육은 제 2의 사도시대의 개혁을 방해하는 요소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와그너, 2004, p. 156)

 

와그너는 또한 목사 안수도 정규 신학교육을 받은 특정인들에게 제한해서는 안 되며 모든 평신도 사역자에게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수가 목사직 안수에만 적용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교사 등도 목사와 마찬가지로 안수의 대상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중보자, 선교회 사역 지도자, 축사 사역자, 경배 사역자, 상담 사역자 등 안수의 대상이 된다고 본다.”(와그너, 2004, p. 161)

 

와그너는 백투예루살렘 운동의 사례를 들어 이와 같은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반증한다.

 

“일반적인 서구식 선교 방법에 따르면 이 사역자들은 자격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들 중에는 정규 신학공부를 한 사람도 없고 그 들 중 대부분은 신학교 학위는 온도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학위를 의미하는 degree라는 말이 온도를 의미하기도 함-역자주)!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즉 고난의 풀무 안에서 경험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것은 교실에서 배울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한 훈련이다.”(와그너, 2004, p.164)

 

마침내 와그너는 정규 신학교육의 무용론의 대안으로 새로운 형태의 지도자 훈련체제인 ‘사도적 교육협의회’(ACEA)를 결성한다. 와그너는 또한 자신이 세운 리더십 연구소(WLI)의 사도적 교육의 내용을 함께 소개한다.

 

1. 하나님의 성도들을 모두 사역을 위해 준비시킨다.(학력에 관계없음) 2. 신학교육에서 정보전달은 일차이고 은사전달이 일차이다. 3. 은사전달이 중심이므로 학점이 필요 없고 은사를 받으면 통과한다. 4. 일정한 표준의 커리큘럼이 아닌 학생들의 필요에 의해 조정된다. 5. 전임학생이나 교수가 없이 필요에 따라 방문 체제를 활용한다.

 

와그너는 이러한 지도자 훈련이야 말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성령의 사역에 응한다는 것이다.(와그너, 2004, p. 171)

 

 

 

10) 신사도 운동은 전통신학과 교리 등은 인간의 지식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인간의 시도이다.”(와그너, 2004, p.178)

 

피터 와그너는 기독교는 핵심적인 절대 진리가 있는데 이 절대 진리를 해석과 추론의 과정을 거처 각자의 주관적인 이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도식에 의해 그는 칼빈의 5대교리인 툴립(TULIP)을 절대 진리의 범주 밖으로 옮겨진 사례임을 반박한다.

 

특히 그는 인간의 전적 타락, 제한된 구속, 성도의 견인 등에 대한 교리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서술한다. 와그너는 칼빈의 전작타락이나 제한적인 구속 그리고 성도의 견인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견해는 칼빈주의적이 아니고 존 웨슬레 적이다. (와그너, 2004, p. 185-187)

 

와그너의 또 다른 신학적 견해는 그의 삼위일체론이다. 와그너는 325년의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양태론을 선호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 자신은 삼위일체론자이지만 단일신론을 주장하는 양태론자들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열린 신학의 태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 오순절 성회, 연합 국제 오순절 교회가 양태론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이들은 이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사도적 지도자들의 폭 넓은 교리 이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와그너, 2004, pp. 192-195)

 

“오늘날 대부분의 사도적 지도자들은 여전히 삼위일체에 대한 강한 개인적인 확신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선택할 때에는 우리의 교리적인 부담을 가볍게 하고 있다.”(와그너, 2004, 195)

 

 

 

11) 신사도 운동은 사도적 지도자들의 완전한 성결(perfectionism)을 주장한다.

 

“하나님은 교사들보다 사도들을 더욱 엄격하게 심판하실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사도로 공인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와그너, 2004, p.204)

 

와그너는 사도적 지도자들의 온전한 성화를 요구하면서 개혁주의 성화론 보다 웨슬리의 성화론을 선호하는 입장에 선다. 비록 자신은 개혁주의의 신학적 견해인 성경의 권위, 이신칭의의 교리, 만인제사장설 같은 개혁주의자들의 주장을 믿고 있다.

 

또한 이것이 사도적 교리의 핵심임을 밝히지만 루터나 칼빈의 주장들을 타협 함 없이 굳게 붙잡아야 할 절대적 진리의 범주에 속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개혁주의의 성화론의 약점은 웨슬리의 성결론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와그너, 2004, pp. 206-207)

 

그는 웨슬리의 성화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존 웨슬리가 성경연구를 통해 확신하게 된 바는, 믿는 자들은 개인적인 성결에 이를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도 믿는 자들이 그렇게 성결해지기를 기대하신다는 것이다.”(와그너, 2004, p. 211)

 

웨슬리의 성결론을 수용한 와그너는 개인적인 성결을 위해서는 죄악 된 본성을 가진 우리는 성령 충만을 통해서만 성결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성령 충만을 통해서만 온다.“(와그너, 2004, p. 219) 와그너는 자신의 성결한 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내가 죄를 짓지 않고 하루를 살 수 있다면 그 다음날도 그럴 수 있고 아무리 오랜 기간이라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때든지-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죄가 내 삶에 침투할 수 있기에 나는 계속 기도하며 성령 충만을 유지하고자 한다.”와그너, 2004, p. 221)

 

와그너는 사도적지도자들은 웨슬리의 성화론 처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바울과 같은 거룩한 삶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책망 할 것이 없는 자들을 사도로 세워졌기 때문에 사도적지도자들도 사도들처럼 책망 할 것이 없는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와그너는 사도가 완전한 존재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의 사도들은 초대교회의 사도적인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와그너, 2004, pp.222-224) 이러한 피터 와그너의 주장은 16세기 재세례의 완전주의 성화론과 유사한 주장이다. 그리고 완전한 성화론은 교회적으로 불 가능함을 확인한 것이다.

 

 

4. 신사도 운동에 대한 평가

 

1) 사도들의 출현에 대한 평가

 

신사도 운동의 지도자 와그너는 자신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사도임을 자청한다. 문제는 오늘날에도 사도가 존재할 수 있는가이다. 피터 와그너는 엡 4:11절과 고전12: 28절을 사도직의 연속성을 주장한다.(와그너, 2004, p. 37-38) 그의 견해는 전통적인 교회가 주장하는 사도 직분의 단회성에 반대되는 입장이다.

 

교회사적으로 보면 12 사도들이 활동하던 시대를 지나면 사도들의 임무가 종결되었기 때문에 동일한 사도들이 나타나지 아니했다. 사도들이 전도하면서 다른 지도자들에게 사도의 직분을 주면서 새로운 사도들을 교회에 적이 없다. 바울의 경우에도 장로들을 교회의 감독으로 세웠으나 그들을 사도라 칭한 적이 없다.

 

바울은 디모데, 디도, 아굴라, 오네시모, 등의 초대 동역 자들을 사도로 칭하지 아니했다. 바나바와 야곱의 경우에 사도라고 칭한 적이 있지만 그들은 다른 사도들과 함께 호칭되었을 때 포함된 것이며(행 14:4,14;고전 15:7; 갈 1:19)

 

그들을 확실한 사도로 인정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뒤로 그들을 사도의 위치에 세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예수님이 직접 세운 직분으로 독특한 의무를 가진 단회적인 명칭이었다. 성경은 오히려 거짓 사도들을 경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 들이니라”(고후 11:3)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계 2:2)

 

2세기(AD.156년경)에 예언과 방언을 하며 은사운동을 주도한 몬타누스주의(Montanism)는 막시밀라와 프리스킬라를 여선지자로 인정하였지만 초대교회는 이들을 이단으로 정죄 하였다. 초대 교회지도자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초대교회의 사도나 선지자나 예언자의 역할은 종결된 것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특히 바울은 엡 4:11과 고전 12:28절에서 교회의 직분들을 언급할 때 그 직분들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고 있다. 바울은 교회에 있어야 할 영원한 덕목은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하였다.(고전 13:13) 바울이 언급한 교회의 직분들 중 어떤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경우에 교회를 필요해서 세운 단회적인 것이 될 수 있다.(정이철, 2013, pp. 82-84) 그리고 어떤 직분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회역사에서 사도나 선지자의 직분은 중단되었고 목사와 교사 같은 다른 직분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신사도 운동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경의 직분들을 문자적으로 해석, 적용하여 현재에도 사도나 선지자들이 나타난다면 오늘날에도 다윗이나 모세가 나타나야 할 것이다.

 

예수 당시의 사람들도 신사도 운동가와 같은 맥락에서 엘리야와 세례요한 혹은 예레미야나 선지자가 다시 온다고 믿었다.(마태 16:14) 그러나 그들이 기다리던 자들이 온 것이 아니라 예수가 오셨고 예수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것이다.(마태 16:16)

 

마호멧이 실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수가 마지막 엘리야요 선지자로 세상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마호멧은 여전히 또 다른 선지자가 나타났다고 주장하면서 예수가 마지막이 아니고 자신이 마지막 선지자라고 주장하였다. 신사도 운동가들도 동일한 맥락에서 자신들이 사도와 선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신사도 운동가들의 사도와 선지자의 재현은 교회직분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은 예수가 한 일들의 목격자들이요, 증인들이었다.(행:11:21-22)

 

그래서 이들 외에 아무나 사도로 인정되지 아니했으며 사도들은 특별한 지위를 가진 지도자들이었다. 바울은 분명히 교회의 직분을 세울 때 사도나 선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감독(장로)과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만 말한 것이다.(딤전 3:1-13)

 

 

 

2) 사도들의 권세에 대한 평가

 

사도와 선지자의 재현을 주장하는 신사도운동가들은 사도들에게 특이한 권위를 부여한다. 신사도운동은 신약성경의 사도의 은사와 직분을 재확인하면서 성령께서 자신들의 사도들에게 영적인 권위를 위임 했다는 것이다.

 

전통교회에서 교회의 권위가 공동의회나 제직회와 같은 교회의 구조에 있다고 보면 반면 신사도운동은 자신들의 사도 개인들에게 교회를 다스리는 권세가 주어졌다는 새로운 권위 구조를 주장한다.(와그너, 1999, p. 359)

 

그리고 사도가 지역의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로 목사들을 총괄하는 권력과 권세를 갖게 된다. 사도들에겐 목사들 보다 뛰어난 영적 권위가 부여되면서 목사를 지도하게 된다. 즉 사도들은 목사의 영적 아버지로 군림하여 목사들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목사가 사도를 공궤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한 군데도 없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신사도운동처럼 사도협의체를 구성하여 통치한 적이 없으며 모두들 복음 전파의 순례자로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의 최초의 회의도 사도들만 참석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들이 함께 모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도 개인의 권세보다는 교회공동체의 의견을 존중하는 교회체제였던 것이다.

 

사도 개인들이 모든 것을 지도하고 관장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도들은 말씀 전파에 전념하기 위해 재정적인 책무를 집사들에게 위임하면서 권력의 분할 정책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신사도운동이 반대하는 전통교회의 민주적인 정치체제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와 사도들의 장전에 나타나는 사도들과 복음전파자들의 생활은 철저하게 지역 담당의 통치가 아니었고 순례자로서의 청빈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한 곳에서 3일을 머물지 못하도록 할 만큼 엄격하게 사도들의 겸손과 청빈의 삶을 요구하고 있다.

 

신사도 운동가들이 자신의 사도들에게 권세의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초대교회의 사도의 역할을 잘 못 이해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결국 로마카토릭교회의 교황제의 부활에 지나지 않는다.

 

 

 

3) 사도들의 완전한 성결의 삶에 대한 평가

 

와그너는 사도적지도자들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바울과 같은 거룩한 삶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도들을 책망 할 것이 없는 자들로 세워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적지도자들도 사도들처럼 책망 할 것이 없는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와그너는 사도가 완전한 존재는 아니라는 전제를 하고 있지만 신사도운동의 사도들은 초대교회의 사도적인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사도운동가들은 현실적으로 사도적인 삶과는 동떨어진 추문에 휩싸여 있다.

 

“신사도 운동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도 유명한 일화들이 많다. 문신의 사도 타드 벤틀리, 선지자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밥 존스, 대예언자 폴 케인, 또 다른 거짓 사도 테드 헤거드(Ted Haggard) 등 신사도 개혁운동의 운동가들의 이력에는 빈번한 감옥살이, 마약, 정신병력, 사탄과의 불루스, 동성연애, 어린 시절부터의 빈번했던 천사들과의 만남, 무당 계보의 가문 등을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결혼 하면 질투 나니 독신으로 살아 달라는 예수의 부탁을 들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정 이철, 2013, p.76)

 

사도와 선지자로 자청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는 캔사스시티의 IHOP의 참석자들 중에도 위와 같이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정 이철, 2013, p. 77) 피터 와그너는 자신들의 사도적 권위를 높이기 위해 신사도들의 도덕적 절대 우월성을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와 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와그너는 완전한 성화론을 위해 칼빈의 전적 타락의 원리를 떠나 알미니안적인 성화론을 따르는 경향으로 진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사도 바울의 성결을 신사도 성결의 모델로 언급하지만 사실 바울은자신을 만삭되지 못한 자로 태어났고 죄인 중에 괴수이며 곤고한 자라고 자백하였던 것이다.

 

 

 

4) 신사도 운동의 세계관 평가

 

신사도 운동은 역사를 사탄과 하나님과의 영적 전쟁의 구도로 해석한다. 와그너는 기독교 역사에서 영적 전쟁에 대해 말하면서 제 2의 사도시대의 사도들은 마귀와 영적 싸움을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역의 영들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위해 ‘지역의 영’들에 통찰력이 있는 25명 지도자들로 구성된 싱크탱크를 구성하여 ‘영적 전쟁 네트워크’ SWN)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며 어둠의 정사들과 싸워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점령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우선적으로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들은 재역의 영적 전쟁에서 군대와 장군으로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제 2차 로잔대회의 연사들은 지역의 영들과 싸워 전 세계의 미전도 종족 전도를 위해 사역하는 전도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연사들은 “사탄이 특정한 지리적인 영역들을 영적인 어두움에 가두어 놓기 위해 그 지역들을 영적으로 관할하는 일을 위임하한 마귀적인 정사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바사군과 헬라군(단 10:20참조)이라는 이름의 영들이 오늘날 역사하는 지역의 영들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고 역설했다.”(과그너, 2004, p. 130)

 

와그너는 마닐라를 떠나기 전에 자신이 지역의 영역에 대한 지도자로 나서기로 원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확신했다는 것이다.(와그너, 2004, p. 130) 이 지역의 영들은 오순절의 세대주의인 루이스 부쉬의 10/40창의 이론으로 연결되었고 영적도해 사상이 발달하였다.

 

중국 가정교회의 토마스 왕의 백투예루살렘 운동도 이와 유관된 유사운동으로 나타났고 인터콥의 최바울도 백투예루살렘을 주장한바 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러한 서진 운동을 인하여 이슬람 세계가 보복행위로 일어난 것이 9.11사태라는 터무니없는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다.(이인규, 2011, p. 53)

 

그러나 이러한 신사도운동의 세계관은 전통오순절교회에서 추방당한 늦은비 운동, 캔서스예언그롭, 빈야드운동과 토론토부레싱 등을 모태로 태어난 것이다. 이들은 전부 이단적인 주장을 한 집단으로 확인된 것이다.(이 인규, 2011, p. 54)

 

신사도운동의 세계관의 큰 오류는 위와 같이 세계역사를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구도로 해석하는데 기인한다. 기독교 세계관은 공중에 권세 잡은 자를 물리치는 영적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그에게 순종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김 재성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하나님은 보좌에서 다스리시며, 사탄의 간섭의 간섭을 최소화하여 자신의 계획에 따라서 통치하신다. 성경에서 나오는 구속사의 사건들 하나하나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참새 한 마리라도’ 그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도구로 사용된다.

 

개신교 정통신학은 성경전체의 전망과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종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와그너와 챨스 그래프트가 갖고 있는바, 사탄과 하나님의 영적 대립이라는 기본구도 설정이 맞을 수 없다는 말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락가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통해서 나타나고, 성령의 내주하심과 돌보심 가운데서 임재하는 것이다.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의 통치와 절대주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성취, 성령의 재창조, 보호하심과 임재하심을 밝혀 알려주는데 있다.”김 재성, 2013, pp. 27-28)

 

 

 

5) 신사도 운동이 이적에 대한 평가

 

피터 와그너가 오순절 은사주의를 경험하고 신사도 운동을 주창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이 치유 은사의 능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와그너는 자신의 목에 있었던 혹과 혈압이 치유되는 과정에서 은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존 윔버 등을 만나면서 자신도 은사의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그는 많은 병자 특히 다리가 짧은 환자들을 많이 치유하였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면에 있는 주로 오순절 계통의 은사주의자들의 사례를 통해 자신의 치유 은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가 신사도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이러한 치유의 은사를 경험하면서 부터였다.

 

피터 와그너는 자신의 치유에 대한 결과를 참된 치유로 변증하지만 객관적인 확실한 데이터는 제시하지 못한다. 그의 조사에 의하면 1986-1987년 동안 치유한 환자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 설문 조사에서 전혀 차도 없음 18%, 조금 좋아졌음 28%, 상당히 좋아졌음 25%, 완전히 좋아졌음이 29%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회신된 편지의 82%가 기도 후에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자신의 치유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서술하였다.(와그너, 2006, p. 256-257) 치유해 준 병의 종류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환자는 시간이 가면 좋아질 수도 있고 많이 좋아질 수 도 있고 그리고 완전히 치융 될 수 도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치유된 환자들이 즉석에 완전한 치유가 이루지지 않고 점진적으로 치유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치유 사건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그리고 그는 세계의 유명한 은사주의들의 치유 사역에 대한 내용을 보고하면서 한국의 김기동 목사의 경우도 포함시켜서 치유의 사례를 열거했다.

 

와그너의 보고에 의하면 김기동 목사는 “10명의 죽은 자를 살려내었고 수천의 귀신들을 쫓아내었으며, 59명의 완전한 절름발이를 걷게 했다.”는 것이다.(와그너, 2006. p. 74) 다른 이적은 차제하고 10명의 죽은 자들이 살아났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사실로 인정하고 서술하는 것을 보면 그가 보고하는 치유의 은사들이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인정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치유의 이적들은 다른 종교나 무속 신앙에서도 발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핵심은 이적과 기사에 있지 아니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인격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5. 결론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그 동안 교회성장을 위해서 온갖 종류의 교회성장 프로그램을 선호하면서 앞 다투어 교회에 도입해 왔다. 그 결과 일시적인 효과를 가져 온지는 모르겠지만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었고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는 데는 실패하였다.

 

지금 한국교회의 성장의 부진은 바로 그 결과로 인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교회역사는 교회가 말씀 중심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항상 부작용을 경험한 것이다. 초대교회 이단들이 그러했고, 중세 교회가 그랬고, 16세기 재세례파와 같은 영성주의 자들이 그랬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 무분별한 영적 체험 신앙이 그러했다.

 

오순절운동의 여파로 나타난 주관적인 성령의 은사체험은 한편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개신교의 축을 흔들었다. 오늘날 이러한 은사주의 중심의 성령체험은 신사도운동을 낳았고 신사도운동은 교회관은 물론이고 기독교 세계관까지 뒤 흔들어 놓았다.

 

다시 한 번 이런 역사적인 교훈을 통해서 교회는 은사중심의 주관적인 영적체험에 의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말씀 중심의 인격적 목회와 교훈을 통해 올바른 교회로 자리매김할 때 건강한 성장이 이루어지게 됨을 확인하게 된다.

 

성령의 역사하시는 역동성을 교회 전통이나 교리적 도그마로 제한해서도 안 되지만 주의 말씀이 사역자들의 목회와 교인들의 삶의 중심이 되어 한국교회가 바로 서는 전환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길 소원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현재의 성장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일한 전철을 또 밟아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 목록

 

김재성, 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서울: 킹덤북스, 2013)

이인규, 신사도운동의 정체와 비판 (서울: 대릶문화사, 2011)

정이철, 교회 운동에 빠진 교회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3)

피터 와그너, 정운교 역, 피터 와그너의 제 3의 바람 (서울: 하늘 기획, 2006)

피터 와그너, 김영우 역,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서울: 쉐키나, 2006)

 

http://www.christianfocus.kr/m/content/view.html?section=9&category=15&no=3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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