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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침수)는 세례의 방법중 하나이며 성경적 근거가 빈약하다

Sola. 2024. 11. 25. 06:00

 

세례가 맞는가, 침례가 맞는가?

 

닉네임: 학자의 혀 (2012.7.30)

 

 

아래는 세례의 양식에 대한 바른 견해가 물을 붓거나 뿌리거나 적시는 등의 ‘세례’와 완전히 담그는 ‘침례’ 중 어느 것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시행하는 것인지에 대해 정리된 글을 모은 것입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가 보이지 않는다면 ‘히브리어 폰트’와 ’‘헬라어 폰트’를 설치해야합니다.)

 

 

 

1. 이정현 저, 「개혁주의 예배학」 (도서출판 지민) 중에서

 

알렉산더 카슨(Alexander Carson)은 “βαπτω(밥토)는 헬라어의 전 역사에 있어서 오직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물속에 잠그다 혹은 담그다의 의미 외에는 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했고, 스트롱(A. H. Strong)도 “이것은 물 속에 완전히 담그는 침수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카슨과 스트롱의 말에 근거한다면 침례교의 침례 주장은 원어상 근거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βαπτω’(밥토)나 ‘βαπτιζω’(밥티조)가 ‘물에 잠그다’는 침수를 의미할까?

 

침례교에서 침례를 주장하는 주 근거는

첫째, ‘βαπτιζω’(밥티조)는 ‘to immerse’를 의미하고,

둘째, 로마서 6장 3-6절, 골로새서 2장 11-12절과 같은 성구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분명하게 물 속에 잠기는 것(immersion)과 물속에서 나오는 것(emergence)의 모형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LXX(70인경)에서 ‘βαπτω’(밥토)나 ‘βαπτιζω’(밥티조)가 반드시 침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단어는 열왕기하 5장 14절, 이사야 21장 4절, 에스겔 23장 15절, 출애굽기 12장 22절을 비롯 약 20회 출현한다. 이런 구절들에서 히브리어 ‘טבל’(타바르)은 ‘βαπτω’(밥포)나 ‘βαπτιζω’(밥티조)로 번역되어 ‘담그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이것이 침례와 일치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물에 담그다’는 것이 항상 침수를 의미할 수 없다. 열왕기하 5장 14절 나아만의 경우에도 원문상 물 속에 완전히 침수 되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며, 다니엘 4장 30절과 5장 21절에 나타난 ‘βαπτω’도 느부갓네살의 몸이 하늘의 이슬로 목욕되어졌음을 의미할 뿐 이슬에 잠겼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레위기 11장 32절과 욥기 9장 31절ㅇ에서는 그 개념이 침수와 매우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신약에서는 ‘βαπτω’(밥토)가 4회, ‘βαπτιζω’(밥티조)가 75-80회 정도 나타남을 볼 때 ‘βαπτω’(밥토) 보다 강세 및 반복형인 ‘βαπτιζω’(밥티조)가 자주 등장함을 볼 수 있다. 이 단어가 신약에서 비록 다른 몇 가지 의미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세례를 주다’와 ‘세례를 받는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마태복음 15장 2절과 마가복음 7장 2-5절, 누가복음 11장 38절은 유대인의 관습, 소위 ‘장로들의 유전’을 설명하고 있다. 식사하기 전에 손 씻는 관례에 관한 것이다.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손 씻는 방법은 주로 두 가지로 손을 물에 담그는 방법과 손 위에 물을 붓는 방법이 있다. 위의 성경 구절에서 말하는 정결의식은 손 위에 물을 부어 이쪽 저쪽을 씻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런 구절에서 침례교도들이 말하는 침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

 

또한 히브리서 9장 10-23절에 나타난 ‘여러가지 씻는 것’의 표현도 침례를 의미할 수 없고 오히려 뿌리는 것(springkling)에 의하여 시행된 속죄의식이 세례로 불리워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레위기의 정결의식 가운데 몇가지가 뿌리는 것으로 시행 되었음을 알 수 있다(레14:4-7,16, 49-53, 16:19, 민8:5-7, 19:18-19). 만약 침례교의 주장이 옳다면 히브리서의 ‘여러가지 씻는 것들’은 침수에 의해서 시행된 정결의식에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구약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결케 하는 의식과 행위를 배제하여야 할 것이다.

 

침수를 주장하는 자들은 때때로 세례요한을 예로 들어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한다. 세례요한은 요단강과 물이 많은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마3:6, 막1:5, 요3:23). (침수를 주장하는 자들은) 이 구절을 읽으면서 요한은 처음부터 침례를 준 것으로 이해한다. 요단강이나 애논에는 물이 많을 것이고 그리고 그 물 속에 잠기게 해서 침례를 주었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분명 자의적이며 또한 추측적인 해석일 뿐이다. 이곳들은 침례가 세례의 방법으로 베풀어졌고 또한 침례를 베풀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선택된 장소들이 아니다. 요한이 이곳들을 선택한 다른 이유가 있다. 다른 곳에는 물이 적었으므로 세례 받기 위해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유대인들의 필수품인 물로 접근하는 사람들의 물을 빼앗는 야비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군중들이 광야에 있는 요한을 찾아왔을 때 그들 중에는 먼 곳에서 짐승들을 타고 방문한 자들도 있었으므로 짐승들에게 필요한 물도 요한은 고려 했어야했다.

 

‘요단강에서’와 ‘물이 많은 애논에서’의 표현은 요구된 단순한 장소로 이해해야지 요한의 세례의 방법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요단강과 애논이라는 표현은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 침례가 세례의 방식으로서 올바른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침례교의 논증의 다른 부분을 살펴보자. 그것은 그리스도의 장사 지냄과 부활하심을 근거한 것으로 해당 성구는 로마서 6장 2-6절과 골로새서 2장 11-12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baptised into Cfrist’, ‘baptised into His death’(롬6:3, 갈3:27) 그리고 ‘baptised into one body’(고전 12:13)와 같은 표현들을 침례로 언급한다. 그러나 이것이 강조하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세례의 방식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4권 15장 19항에서 ‘침례를 받거나 혹은 물을 붓거나 뿌리거나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baptize’를 ‘침수하다’란 의미로 말하고 있다.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성경은 침례(수)를 주장하지 않음을 살펴보았다. 그 첫 번째로 ‘βαπτω’나 ‘βαπτιζω’가 LXX의 구약과 신약에서 침례시행의 의미가 없음을 고찰해보았고(이 단어들은 방법을 규정하지 않고 단지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로 이해해야 한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의 장사 지냄과 부활이 참례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것이 아님을 복음서와 서신서를 통하여 간략히 알아보았다. 성경의 세례 방법이 침례가 아니라면 물을 붓거나 뿌리거나 적수의 방법이 가능할 것이다.

 

 

 

 

2. 김영재 저, 「교회와 예배」 (합신대학원출판부) 중에서

 

세례는 죄 씻음을 주시는 정결의 의식으로 다른 종교에도 비슷한 의식이 있으나 기독교에서는 신자가 교회의 지체가 될 때 단 한 번 받는 것이 특이하다. 그러나 기독교가 시작될 당시의 이방 종교에는 세례 의식이 없었다.

 

기독교의 세례는 세례 요한에게서 비롯된 것인데, 그리스도 이전의 유대교에서 개종자를 받아들일 때 정결의 의식을 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은 것을 보면, 세례가 당시의 사람드에게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니었다고 짐작 할 수 있다. 구약에는 세례 의식에 대한 말씀은 없으나 세례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은 있다. 즉 세례는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것으로, 새 언약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는 징표이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거듭 죄를 범하는 어쩔 수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26:25-28)

 

세례는 일차적으로 씻는다는 뜻을 함축하는 예식이다(행22:16, 고전6:11, 엡5:26, 딛3:5, 히10:22). ‘βαπτιζω’(밥티조)는 고전 헬라어에서는 ‘침수(浸水)되다’, ‘가라앉다’라는 뜻이었으나 코이네 헬라어 시대에 와서는 ‘씻는다’라는 의미로 쓰였다(막7:4, 눅11:38). 그러므로 ‘침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말 성경에 나오는 ‘세례(洗禮)’라는 말을 ‘침례(浸禮)’로 고쳐 읽는 것은 옳지 않다. 정결의 의식을 가리키는 ‘세례(βαπτισμα)’는 죄를 씻는다는 정결 의식의 본뜻을 나타내는 말로서 옳게 번역한 말이다. 세례를 주되 어떻게 주느냐, 물을 뿌림으로냐(by sprinkling) 아니면 사람을 물에 잠기게 함으로냐(by immersing)하는 것은 정결 의식의 방법에 관한 질문으로서 그것은 이차적인 것이다. ‘침례’는 ‘세례’와 대칭이 되는 말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침례’는 세례 의식의 방법을 표현하는 말일 뿐 그 본래의 의미를 대변하는 말이거나 그 의미에 대칭이 되는 말은 아니다.

 

 

 

 

3. 정일웅 저, 「개혁교회 예배와 예전학」 (총신대학교출판부) 중에서

 

기독교의 세례는 물로 씻는 의식이었다. 이것은 원래 ‘세례(洗禮)’란 헬라말 밥티제인(βαπτιζειν)에 근거한 것으로 이 말은 의도적으로 반복되는 침수 행위와 씻는다는 뜻으로 사용된 말이었다(immersio). 그러나 침수가 불가능한 곳에서는 처음부터 세례가 물을 부어주는 의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역시 그러한 상황은 물이 없는 곳을 말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병자와 죽어가는 자들에게는 침수 대신에 물을 머리에 부어 줌으로 세례가 시행되었던 것이다(affusio). 이에 따라 기독교의 세례는 오히려 침수 행위보다는 부어 주는 약식 세례가 더 일반화되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또한 우리는 신약성경의 증거들에서 세례의 외형적인 형식에 있어 여러 가지가 이미 허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사도 시대에는 가장 간단한 형태로의 세례가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행2:21, 8:38, 10:48, 16:15,33).

 

 

 

 

4. 김홍전 저, 「성례란 무엇인가」 (성약출판사) 중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을 때 만일 제자들이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전혀 몰랐다면 아마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잘 몰랐을 것입니다. 결국 세례라는 것은 벌써 이전에 어떤 형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구약 시대에 쭉 내려오면서 행하던 정결 의식 즉 결례(潔禮)로서 물을 끼얹든지 혹은 물로 씻는 예를 말합니다. 그런 까닭에 제자들에게 그것은 전혀 생소한 일이 아닐뿐더러 훗날 그 의미가 훨씬 깊어졌습니다.

 

 

 

 

결론

 

이상에서 보듯이 성경은 직접적으로 침례를 말씀하고 있지 않다. 성경에서 사용된 용어의 뜻이 그러하고, 구약의 유대의 정결예식을 살펴보아도 그러하다. 세례는 그야말로 ‘씻는다’는 의미를 말씀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침례가 옳다’, ‘침례가 성경적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세례의 방식으로 세례든 침례든 여느 방법을 취할 수는 있으나 어디까지나 우리가 그것을 취하는 것이지 성경이 명령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세례나 침례 모두 행할 수 있다. ‘반드시 침례의 형식이 성경이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넘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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