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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교회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손재익 목사 (2013.12)
한국교회의 송구영신예배와 우리교회
한국에 있는 많은 교회들은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송구영신예배’라는 것을 드립니다. 대개 밤 11시 정도에 시작해서 ‘송구’에 해당하는 예배를 드리고, 11시 59분 30초 정도가 되면,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카운트 다운’을 합니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서로 인사한 뒤에 ‘영신’에 해당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우리교회는 다른 여느 교회들처럼 12월 31일 밤부터 1월 1일 새벽까지 진행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예배 라는 것을 드리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교회가 이상한(?) 혹은 유별난(?) 교회라서 그럴까요?
‘송구영신’의 유래
먼저 우리는 송구영신(送舊迎新)예배라는 것이 무엇에 기원을 두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말은 사전적 의미로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뜻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송구영신의 유래를 살펴보면, <향토문화대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섣달 그믐날은 음력 12월 마지막 날로 제석(除夕) 혹은 제야(除夜)라고도 한다. 섣달은 한 해를 다 보내면서 새해의 설을 맞이하기 위한 서웃달[설윗달]의 준말이다. 이 날 전국 각 곳에서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이므로 새벽녘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수세(守歲)를 하면서 새해를 맞이한다. 수세의 풍습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로서 우리나라에 역법(曆法)이 들어온 이래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수세는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통과 의례로 마지막 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라는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가에서는 다락·마루·방·부엌에 모두 등잔을 켜놓는다. 흰 사기접시 하나에다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 변소까지 환하게 켜 놓으니 마치 대낮같다. 그리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데 이것을 수세(守歲)라 한다. 이는 곧 경신을 지키던 유속이다”라고 하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새벽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는데 그 유래는 섣달 중 경신일(庚申日)에는 자지 않고, 밤을 지켜야 복을 얻는다는 경신수세의 도교풍속에서 나왔다 합니다.
이러한 설명에서 보듯이 섣달 그믐날(12월 31일)을 송구영신의 의미로 수세를 지키는 것은 한국의 전통 무속신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날 사람들은 집안을 환하게 밝히고 정성스레 제사상을 차리고는 밤잠은 자지 않고 신령을 기다립니다. 불 밝혀진 집으로 들어오는 신령들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하면 일년 동안 운수대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송구영신’과 ‘예배’의 결합
그런데 이러한 세시풍속과 무속 신앙에 ‘예배’라는 단어가 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 송구영신예배입니다. 장로교신학대학교에서 예배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운용 교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에게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풍성한 정초 세시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 섣달 그믐에는 모든 연중거래를 마무리하고 새해 준비를 하게 되는데, 그날 저녁에는 ‘해지킴’(守歲)이라 하여 집 안팎에 불을 밝히고 새벽까지 자지 않고 밤을 지새우고는 했다. 정월 초하루는 ‘설날’이라 하여 연시제(年始祭)를 지내며 집안과 동네의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는 풍습이 있었다. 세배하러 온 손님들에게는 음식을 대접하고, 설날에는 덕담을 나누면서 서로 새해를 축하하고 축복하는 인사를 나누고는 했다. 이러한 전통 문화의 토양 위에서 자연스럽게 한국교회의 송구영신예배는 시작되었다.” 이 설명에 의하면 ‘송구영신예배’라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적인 무속신앙과 한국의 역사 속에서 받아들이게 된 도교신앙에 근거한 ‘송구영신’이라는 제도에 ‘예배’라는 형식만을 덧붙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에는 이런 식으로 전통신앙이나 관습에다가 ‘예배’라는 형식만을 덧붙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추도예배’라는 것입니다. 조상을 숭배하는 ‘제사’라는 형식을 ‘예배’라는 형식으로 대체했을 뿐, 그 내용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이사예배, 돌예배, 생일예배, 개업예배 등과 같은 것은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송구영신 예배’ 성경적인가?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무속신앙과 한국의 역사 속에서 받아들이게 된 도교신앙에 근거한 ‘송구영신’이라는 제도에 ‘예배’라는 형식만을 덧붙인 ‘송구영신 예배’는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성경적 의미에서의 ‘송구’와 ‘영신’의 의미를 제대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송구’(送舊)라는 것은 말 그대로 지난 간 것을 보내는 것이며, ‘영신’(迎新)은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송구와 영신은 날(日)과 해(年)의 변화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12월 31일이라고 해서 ‘송구’해야 하며, 1월 1일이라고 해서 ‘영신’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독교적 의미의 ‘송구영신’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은 것은 것입니다. 우리가 알 듯이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옛 세상이 지나가고 새 세상이 들어온 대 변혁입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옛 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어 재창조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도에게 있어서 송구영신이란 해(年)의 변화가 아닌 본성의 변화, 거듭남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송구영신(送舊迎新)합니다. 우리는 12월 31일에 송구하고, 1월 1일에 영신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해야 하며, 이 모든 것의 기초는 주님의 부활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서 기독교회는 매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주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1주일 중에 특별히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예배의 날로 삼음으로서 우리의 송구영신이 바로 주님의 부활에 기초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매주일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송구영신예배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도 지키고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12월 31일도 지키면 안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12월 31일을 송구영신예배로 드리게 될 때에 우리는 성경적 가르침에 기초한 주일예배에서 송구영신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고 기복신앙과 전통 무속신앙에 기초한 송구영신예배를 통해서 송구영신의 의미를 찾게 되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독교적 송구영신의 의미를 훼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12월 31일과 1월 1일에 시행되는 송구영신예배는 기독교적인 송구영신의 의미를 훼손하게 만드는 기형적인 예배로서 사라져야 합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송구영신예배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구절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송구영신예배의 비성경적인 면에 있어서 과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행해지는 송구영신예배의 기복적인 모습
한국교회에서 행해지는 송구영신 예배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형태의 예배가 얼마나 잘못된 사상에 기초한 것인지를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송구영신예배를 강조하는 이유를 보면 새해 첫날의 예배를 잘 드려야 일년 내내 복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간구 없이 송구영신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 날 예배에 오는 사람들에게 미리 헌금 봉투를 내어 줍니다. 사람들은 그 봉투에 한 해 소원을 적어서 그에 대한 기대만큼의 금액을 넣어 헌금함에 넣습니다. 그러고는 목사가 되도록 많고 좋은 복을 빌어주기를 바랍니다. 목사는 봉투나 쪽지에 적힌 사연을 일일이 읽어가며 때로는 직접 호명까지 하면서 긴 기복기도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성구제비뽑기’를 하기도 합니다. 무슨 점괘를 뽑듯이 성도들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선정한 복을 기원하는 성경 구절을 한절씩 뽑아들게 한 후에 그것을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하면서 1년간 그 구절을 부여잡고 기도하면 소원을 이룬다는 식으로 강조하기도 합니다. 이 때 선정된 모든 구절들은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무조건 좋은 내용입니다. 심지어는 이 날 예배에서 목사에게 안수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회개의 제목을 불에 태우기도 하는데 이 모든 일들은 신앙적인 행동이 아니라 미신적인 행위입니다.
주일예배로 충분하다
위와 같은 이유에 따라 우리 교회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드려도 되고 안 드려도 되는 것이 아니라 드리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성경적 가르침에 충실하려 하고 기복 신앙을 배격하는 우리교회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송구영신예배 대신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일 예배로서 충분하다고 봅니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행20:7; 고전16:2; 계1:10)과 우리가 믿는 바 신앙고백(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7절;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16-117문답;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58-59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103문답)은 주일이야 말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가장 중요한 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에 기초하여 우리교회가 소속된 대한예수교 장로회 (고신) 총회의 헌법 예배지침 제2조 1항에서는 ‘주일’이 예배하는 날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배하도록 정해져 있는 날이 있는데, 굳이 12월 31일과 1월 1일이라는 성경이 명하지도 않았고, 그 정신도 성경적이지 않은 송구영신예배를 따로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근거한 언약의 날인 주일(主日)보다 다른 날이 더 강조되는 것을 지양하는 것이 보다 더 성경적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주일마다 송구영신 해야 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는 고백이 주일마다 되풀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교회들은?
전 세계에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한국교회 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교회가 유별나고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교회가 그러한 것이고 우리교회는 송구영신예배라는 성경적이지 않은 예배를 드리지 않음으로서 더욱 보편적인 교회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송구영신예배의 비성경적인 요소들을 경계하여 우리교회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부산 동래언약교회(예장 고신; 최성림 목사 시무), 포항 샘터교회(예장 고신; 강현복 목사 시무), 부산 유은교회(예장 고신; 윤석준 목사 시무), 대학교회(예장 고신; 홍성수 목사), 영천 실로암교회(이광호 목사 시무)나 언약교회(예장 합신; 이승구, 최현진 목사 시무) 등에서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송구영신예배의 비성경적인 요소들을 염려하여 드리지 않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절대 금함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다른 교회의 송구영신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가 출발한지 오래되지 못하여 아직까지 연약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우리 교회에 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송구영신예배에 대한 미련과 습관이 남아 있어서 다른 교회에 가서라도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려고 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분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로서 권면합니다. 바른 복음을 깨달았다면 그동안 잘못 행하던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그 습관을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차라리 가정에서 기도와 묵상 가운데 한 해를 맞이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앙 안에서 가족이나 소외된 이웃과 더불어 유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개혁교회는 끊임없이 개혁해 가는 교회입니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 개혁은 나 자신의 개혁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성경적이지 않은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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