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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존직원’(통상직원)인 목사는, 은사주의를 추구할 수 없다!

Sola. 2024. 9. 17. 06:00

 

‘항존직원’(통상직원)인 목사는, 은사주의를 추구할 수 없다!

 

장대선 목사 (2018.2.13)

 

 

장로교회의 목사들은 ‘항존직원’(혹은 통상직원, ordinary and perpetual officer)으로서, 모든 장로교회의 교파들은 공히 이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장로교회에 헌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대부분의 장로교 신자들에게 생소한 것처럼, 장로교회의 통상직원인 ‘항존직원’으로서의 목사직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대부분의 목사들 또한 생소한 실정이 백 년을 넘어선 한국장로교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장로교회들 대부분이 사실상 장로교회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인데, 근본적으로 ‘신사도운동’(the new apostolic reformation)과 같은 은사주의를 추구하거나 관심을 기울이는 것 자체가 그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즉 대부분의 장로교회 목사들이 방언 등 신약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은사들에 대해 긍정하거나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엄밀한 의미에서 장로교회의 목사의 직분을 가벼이 여기거나 버리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장로교회 목사들이 성경의 각종 은사들에 대해 단호하게 ‘종결’(close)을 표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그렇게 되는 이유 가운데 대부분은 어려서부터 그런 풍토에 익숙했거나 심지어 그런 은사들을 경험한바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본인 또한 아직 오십이 안 된 나이임에도 방언현상과 일종의 환상을 경험한바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언컨대 장로교회의 목사는 결코 은사주의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는 직분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의미에서 장로교회의 모든 직원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목사직이 항존직원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장로교회의 헌법에 당연히 첨부되어야 마땅한 웨스트민스터 정치모범(the form of presbyterial church government, 1645)은, “교회의 직분자들에 관하여”(of the officers of the church) 언급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세우신 직분들 가운데, 사도와 복음 전하는 자와 선지자들과 같이 특별한 직분들은 이제는 중지되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와 복음 전하는 자와 선지자들”이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특별한 은사들 또한 중지된 것이며, 다만 그러한 일이 비상적 섭리로만 가능할 뿐이다.

 

반면에 웨스트민스터 정치모범의 “교회의 직분자들에 관”한 이후 본문에서는 이르기를 “다른 직분들은 통상적이고 영구한 것들인데, 목사와 교사(교수)와 교회의 다른 치리자(이를테면 장로들)와 집사들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본문에 따라 장로교회 헌법에서는 ‘항존직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니, 그 말은 달리 통상적인 직원을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직원들의 직무 또한 비상적인 것들(사도와 복음 전하는 자와 선지자들이 행했던 이적들)이 아니라 통상적인 것들이니, 이후로 그런 직원들의 통상적인 직무들이 무엇인지를 웨스트민스터 정치모범은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7)은 제1장에서 “성경에 관하여” 언급하는 1항의 말미에 분명하게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식들은 이제는 중단되었다.”고 했다.

 

그런즉 “사도와 복음 전하는 자와 선지자들”이 경험했던 계시의 방식들 또한 중단되었다는 것이 장로교회 직원들이 고수하고 가르칠 신앙의 내용이다. 그런데도 사도적 은사들을 수용하고 추구하는 오늘날의 장로교회 직원들의 현실은,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한 지극히 심각하고 비상식적인 처사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신앙 원리는, 모든 신앙의 기준을 성경에 두는 원리임과 아울러 오직 성경의 진리로 충분하며 만족한다는 신앙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그런 개혁된 신자들이야말로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이 땅 가운데서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빈한한 인생을 살아간다고 해도,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런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는지,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의무를 요구하셨는지를 성경 가운데서 깨닫는 것으로 기뻐하며 만족하는 것이 바로 “오직 성경”의 실천적인 신앙의 원리다.

 

그러니 그런 원리를 따라서 사역하는 장로교회의 직원인 목사가 어찌 성경의 진리 외에 부수적이라 할 신사도적 은사들에 착념하겠는가? 그런 것들은 사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셨을 당시의 유대인들이나 추구하던, 그야말로 표적들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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