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대화

사도신경에 지옥강하를 넣은 이유에 관한 대화

Sola. 2023. 8. 10. 06:00

 

사도신경에 지옥강하를 넣은 이유에 관한 대화

(2018년쯤)

주-: 위의 세 파(천주교, 루터파, 성공회)는 복음선포 등의 의미로 사도신경에 넣었다면, 개혁교회 즉 공교회는, 왜 주님이 당하신 고통의 의미로 사도신경에 지옥하강을 넣었는지요?

(사도신경의 지옥하강 근거구절이 저는 벧전3:19인줄로 알고있는 상태입니다)

 

 

한유식 목사: 

중요한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미약한 소견입니다. 혹시 더 좋은 의견이나 수정할 것이 있으면 덧붙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대로 사도신경이 다른 신조들과 같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의 과정을 거쳐서 작성되었는지는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만 교회의 역사과정 속에서 점차적으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고, 특히 ‘지옥강하’부분은 아퀼레이아 양식의 신경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90년경,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도신조의 역사를 더 자세히 아시는 분들이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왜 ‘지옥강하’에 대한 고백이 사도신경으로 들어왔을까? 왜 이 부분을 없이 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일까? 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해본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칼빈은 사도신경의 역사적 과정에 대해서 충분히 언급한 후에 지옥강하를 빠뜨려서는 안되는 이유를 말하는데, ‘이 어귀에 귀중하고 유용한 신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강요에 보면 칼빈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요점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당하신 고난을 신경이 말한 다음에, 그가 하나님 앞에서 받으신 저 보이지 않고, 헤아릴 수 없는 심판에 대해서 적절히 말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구속하시는 대가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주셨을뿐 아니라, 그 보다 더 위대하고 훌륭한 값도 주셨다는 것을 – 즉, 정죄와 버림을 받은 사람의 무서운 고민을 그의 영혼이 겪으셨다는 것을 – 우리가 알게 하려는 뜻이다"

(기독교강요 2권 16장 10항, 생명의 말씀사)

 

즉 지옥강하라는 것이 우리가 당해야할 하나님의 모든 진노를 예수그리스도께서 온전히 담당하셨는데, 그 무서운 지옥형벌의 고통까지도 피하지 않으시고 담당하셨다는 것을 충분히 알려주기 때문에 ‘지옥강하’에 대한 고백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지옥강하’ 문구 삽입에대한 칼빈의 견해입니다.

 

저도 칼빈의 견해에 바탕을 두고 신조의 작성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주셨을 때 성경에서 알려주는 하나님의 뜻(교리)들을 정리하고 체계화시키는 의무도 주셨기에 우리는 신앙고백을 작성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작성할 때,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명시적으로 성경에 그 교리를 나타내셨으면 우리는 성경에 명백히 기록된 단어나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여 교리화시키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교리)를 추론적으로 나타내실 때가 있습니다. 즉 단어나 사건을 통해서 추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 성경이 말하고 있는 단어와 문구로는 명확히 명제화 시키기에 어려운 경우가 생깁니다.(그렇다고 성경이 불충분하고 오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성경의 계시성, 영감성, 자증성, 무오성, 충분성, 명료성, 통일성을 목숨을 다해 믿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교리화’와 성경 해석에 있어서 ‘추론적해석’ 부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의 성구들, 신약의 성구들을 많이 사용하면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그냥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편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제화 하고, 교리화 하고, 그것을 신조화 해야 하기에 부득이하게 성경에 없는 말들을 사용하게 됩니다.

 

‘삼위일체’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성경을 신앙과 삶의 규범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성경에서 계시되고 있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고백하고자할 때, 또 후에 생긴 이단들에 대해 방어와 공격을 할 때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성경에 없는 ‘삼위일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그것을 고백에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미를 더욱 효과적이고 충분히 나타내기 위해서 ‘지옥강하’에 대한 고백이 사도신경으로 들어오게 된 것으로 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고 반드시 공교회의 결정을 통해서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랬을 때 사도신조는 교회의 역사과정을 거쳐서 사용되었고, 교회가 전체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였기에 오늘날에도 중요한 신조로서 마땅히 받아들이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것은 우리가 처음 지옥강하를 삽입한 사람들의 의도를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그당시 '지옥강하'를 넣으면서 실제적인 사건으로 이해하고 넣었는지, 아니면 의미적인 이해로 여기고 삽입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설사 처음 지옥강하 문구를 작성한 사람들이 실제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넣었다는 것이 오늘날 확인될지라도 우리의 해석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하나님의 섭리과정 속에서 획득해온 신앙의 유산에 근거해서 생각해볼 때 지옥강하를 실제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의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른해석 임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베드로전서 3:18,19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역사적이고, 공교회적인 장로교회의 주류적인 해석은 노아시대 때의 사람들(베드로전서가 기록될 당시 그들은 불신앙의 형벌로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 태초부터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여전히 구약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이 증거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그리고 미처 충분히 살피지 못해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대요리문답에서 말하는 것을 말씀드리지 못했었는데, 신앙고백서와 대요리 문답은 '지옥강하'를 "사망의 권세 아래 머물러 계셨으나 썩지않고"로 풀어서 기록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되어 사망의 권세 아래 머물러 계셨으나 썩지않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8장3항)”

 

 

“문50:그리스도가 죽은 후에 자신을 낮추신 일은 무엇인가?

 

답: 그리스도가 죽으신 후에 자신을 낮추신 일은 장사되고, 제3일까지 죽은 자의 상태와 사망의 권세아래 계속 계신 것이다. 이 일을 가리켜 사도신경에서는 “지옥에 내려가시며”라고 표현해 왔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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