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신앙고백서, 개혁주의 장로교 신앙고백 ‘원조’”
이대웅 기자 (2019.4.30)
‘위그노와 프랑스 신앙고백서’ 주제 개혁신학포럼 세미나
위그노와 프랑스 신앙고백서’라는 주제로 개혁신학포럼 제17차 정기세미나가 29일 서울 안암동 안암제일교회에서 개최됐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신호섭 교수(고려신대원, 올곧은교회)가 ‘프랑스 신앙고백서의 신학적 의미’를, 서창원 교수(총신 신대원, 고창성북교회)가 ‘위그노 신앙과 그 유산’을 각각 강의했다.
개혁신학포럼 측은 내년까지 2년간 ‘장로교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슬로건 아래 왈도파(Waldenses)로부터 시작돼 위그노(Hoguenots)로 이어진 프랑스 개혁주의 장로교의 역사와 교리를 연구할 예정이다. 오는 가을 세미나에서는 16세기 마르틴 루터보다 400년 가까이 앞서 ‘이신칭의(以信稱義)’를 부르짖었던 12세기 왈도파에 대한 강연이 진행된다.
신조 없는 신앙, 생활의 순결 지켜나가는데 치명적 약점
신앙고백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이해와 연구의 산물
이날 신호섭 교수는 먼저 신앙고백서의 의의와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교회는 성경이 가르치고 믿는 바를 신조를 통해 요약해 왔다”며 “교회가 요약한 신조와 신앙고백들은 성경의 중요한 교리들을 요약해 신자의 믿음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오류를 바로잡고 이단의 공격에 맞서 진리를 수호하는 중대한 역할을 해 왔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신조는 무엇보다 성경의 교훈을 요약해 주고, 성경의 올바른 이해에 도움을 주며, 거짓된 교훈과 생활을 막아주는데 있어 공적 표준으로서 방패가 된다. 따라서 신조 없이는 신앙과 생활의 순결을 지켜나감에 있어 치명적 약점을 갖게 된다”며 “역사적으로 기독교회는 여러 신조와 신앙고백들을 통해 분열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정통성을 도전하고 허물려는 포도원의 여우로부터 교회를 수호하고 지켜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만일 신조와 교리가 필요없고 성경으로만 충분하다면, 설교를 해서도 안 되고 성경을 교리적으로 교훈해서도 안 되며, 그냥 성경만 읽어야 한다”며 “신조는 필요없고 성경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은 현대 교회를 세속화와 타락, 그리고 혼합주의로 몰고 가려는 사탄의 또 다른 전술전략에 놀아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질타했다.
신 교수는 “신조는 주님의 물으심에 대한 인간의 답변, 다시 말해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 즉 계시에 대한 이해와 연구의 산물이다”며 “하나님에게서 나온 계시와 달리 사람에게서 나온 신조에는 오류가 있을 수도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계시가 오류 없이 정확하게 이해되고 보존되기 위해서도 역사하신다”고 밝혔다.
신호섭 교수는 “역사적 개혁파 신조를 연구하거나 관심을 가진 이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는 신앙고백서에 대해 연구할 뿐, 전문 그 자체를 공부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신앙고백서나 교리문답서를 가장 잘 공부하는 방법은 신앙고백서 자체를 수차례 읽고 정리하고 연구하고 묵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신앙고백서, 칼빈 초안 개정해 채택돼
신학과 교리, 수많은 시간과 논쟁 통해 확립돼
이후에는 ‘프랑스 신앙고백서’의 신학적 의미와 주요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프랑스 신앙고백서는 칼빈이 설립한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테오도르 베자와 더불어 개혁신앙의 계보를 잇는 칼빈의 제자였던 앙뚜안 드 샹디(1534-1591)에 의해 만들어졌다”며 “그러나 이는 앙뚜안이 스스로 작성한 것이 아니라, 칼빈의 초안을 개정한 것”이라고 했다.
신호섭 교수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하던 칼빈은 그의 조국 프랑스에서 로마가톨릭 교회로부터 잔혹하게 박해를 받고 있던 위그노(Huguenot)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들의 신앙과 교회를 변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며 “이에 1559년 칼빈이 만든 초안을 앙뚜안이 개정해 같은 해 제1회 프랑스 개혁파교회 전국대회에 제출했다”고 전했다.
신 교수는 “칼빈의 제자 베자는 이를 프랑스 국왕 샤를 9세에게 보냈다. 그리고 이 초안은 1571년 프랑스 개신교 전국 총회에서 승인됐다”며 “이는 개혁교회 역사에서 처음으로 장로교 총회를 조직한 사건이고, 이 총회시 칼빈의 초안을 개정해 신앙고백서로 채택했으므로, 공식적으로 최초의 장로교 신앙고백서라는 중대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신호섭 교수에 따르면, 개혁교회의 신조는 네덜란드(화란)의 ‘세 일치 신조’와 영미권의 웨스트민스터 신조로 나뉜다고 한다. ‘세 일치 신조’란 벨직 신앙고백서(156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 그리고 도르트 신경(1619)이고,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신앙고백서(1646), 소요리문답(1647), 그리고 대요리문답(1647)이다.
이 모든 신앙고백서는 16세기 개혁주의 신학자들인 요한 칼빈과 하인리히 불링거, 피터 마더 버미글리, 무스클루스 같은 신학자들의 신학에 기초한다. 그는 “프랑스 신앙고백서는 이들 이후 신앙고백서 제정의 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 말하자면, 개혁주의 장로교 신앙고백의 원조”라며 “독자들은 역사적 개혁파 신조의 기초가 되는 프랑스 신앙고백서를 통해, 장로교 신학의 뼈대를 학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신학이나 교리는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간과 논쟁을 통해 확립된 교의이다. 그래서 우리는 개혁주의 신조나 신앙고백서 앞에 ‘역사적(historial)’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이라며 “우리가 믿는 신앙은 역사적 신앙이다. 이는 주관주의를 배격하고 객관주의를 지향한다”고 살폈다.
또 “역사적 신앙고백서는 우리가 믿는 바가 무엇인지를 성경에 기초해 객관적으로 제시할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밝히 보여준다”며 “나아가 통일성 있는 신학 체계를 제시하기에, 모든 교회 구성원들의 신앙의 통일성을 기하게 해준다”고 평가했다.
▲위그노 바시 대학살 현장 그림에 나오는 그 장소. 위그노들의 후손들이 학살 현장을 복구하여 전시해 놓았다. ⓒ크리스천투데이 DB
그는 “당시 프랑스 개신교도들은 로마가톨릭 교회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1571년 8월 24일 성 바돌로매의 날에 샤를 9세가 군대를 이끌고 수많은 위그노들을 학살하는 참극이 벌어졌는데, 위그노들은 박해에 ‘순교’로 대응했다”며 “개혁신학은 이러한 박해에 대해 참된 신앙고백서를 제정함으로써 오해를 불식시키고 참된 기독교 교의를 정립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프랑스 신앙고백서는 개신교와 위그노들이 국가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참되고 사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진실한 신자들임을 밝히고 있다”며 “마지막 39-40항에서 국가 권력과의 올바른 관계를 적시함으로써 국가가 교회를 어떻게 보호하고 교회는 그런 국가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보여줌으로써 박해를 중지시키고 신앙의 자유를 확보하려 했다”고 했다.
프랑스 신앙고백서, 삼위일체적 구조 따르면서
구원론과 교회론은 매우 강조, 종말론은 생략돼
정교분리는 정부와의 분리, 정치와의 분리 아냐
프랑스 신앙고백서는 사도신경의 삼위일체적 구조를 따라 성부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하나님과 계시), 성자 하나님의 인격과 구속 사역(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사역),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구원의 적용 사역(구원론, 교회론) 등으로 나뉜다. 1559년 초안은 35항이었으나, 개정 후 총회 승인을 받은 신앙고백서는 40항으로 구성돼 있다.
신 교수는 “프랑스 신앙고백서에서 드러나는 특징 중 하나는 삼위일체적 구조를 따르고 있으나, 구원론과 교회론이 매우 강조된 반면 종말론이 생략돼 있다는 것”이라며 “칼빈이 로마가톨릭 교회와 국가 당국으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던 개신교인들, 특별히 위그노들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돼, 참된 교회, 그리고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밝히려 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프랑스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과 계시로서의 성경(1-8항)’, ‘인간론(9-11항)’, ‘기독론(12-15항)’, ‘구원론(16-24항)’, ‘교회론(25-33항)’, ‘성례(34-38항)’, ‘교회와 국가의 관계(39-40항)’ 순으로 구성돼 있다.
신호섭 교수는 “프랑스 신앙고백서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당시의 역사적·신학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당시 프랑스 개신교도들은 극심한 핍박을 받으면서, 로마가톨릭 교회의 구원론적 오류와 우상숭배적 미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또한 그 다른 극단으로서 재세례파와 신령파라 불리는 자유파 등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고 해설했다.
신 교수는 “‘계시로서의 성경’을 앞세우는 이유는, 이것이 로마가톨릭 교회를 포함한 그 어떤 권위보다 앞서므로 교회의 권위를 한정해 주기 때문”이라며 “구약과 신약의 목록을 기록한 이유는 정경을 강조함과 동시에 성경에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빼는 로마가톨릭의 외경과 가경(1546, 트리엔트 공의회)을 배격하기 위해서(벨직 4항, 웨스트민스터 2항)였다”고 했다.
특히 프랑스 신앙고백서 마지막 부분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 “앞서 말했듯 39항에서는 로마가톨릭 교회처럼 정부의 일치주의도, 재세례파 교회처럼 정부와의 완전한 분리도 배격하고 있다”며 “정교분리의 원칙은 정부와 종교의 분리이지,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의 대사회적 통치와 교회의 대영적 통치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며 “국가는 교회가 고요하고 단정한 경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회와 교회의 영적 권세를 보호해야 하고, 교회는 그러한 국가를 존경하고 국가와 관원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 “40항에서는 국가와 관원이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된 권위를 받았으므로, 신자는 당연히 그러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복종하는 멍에를 메야 한다”며 “재세례파와 같이 국가 권력도, 군사적 임무 수행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하라고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지 못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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