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자료

칼케돈 신조 강해

Sola. 2023. 10. 24. 06:00

칼케돈(Chalcedon) 신조 강해 (451년)

 

 

(1) 칼케돈 신조의 작성배경 및 논쟁 내용

 

콘스탄티노플 신조와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와 동일한 신성을 가지신 분임을 밝혔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완전한 사람임을 고백하는 문제를 가지고 신학자들 사이에 이론(異論)이 많았다. 즉 그의 한 존재 안에 신성과 인성이 어떤 모양으로 연합되어 있느냐의 어려운 문제였다. 신인양성을 믿으면서도 그의 신성을 더 우세한 것으로 강조한 사람들은 주로 알렉산드리아 학파(네스토리우스파, 몹수에스티아의 데오도레)에 속했었고, 그의 인성의 약화를 막으려는 사람들은 주로 안디옥 학파(유티케스)였다. 이러한 기독론의 역사적인 논쟁들을 일괄하여 종식시키고 정통신조를 확립할 목적으로 로마의 감독 레오(Leo)가 449년 6월 13일에 플라비안(Flavian) 황제에게 보낸 편지 톰(The Tome)에서 논쟁의 해결을 위한 신학적 시론을 발표하였었다. 황제 데오도시우스 2세는 451년에 칼케돈에서 제4차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칼 회의를 소집하였다.

 

 

① 그릇된 교리 {네스토리우스(Nestorius)와 유티케스(Eutyches)의 주장}

 

벌코프(Louis Berkhof)는 당시 그릇된 교리를 주장하였던 네스토리우스와 유티케스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하여 설명해 주고 있다.

 

몹시수에스티아의 데오도레(Theodore of Mopsuestia)와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강조했고, 그 안의 로고스의 내재를 신자들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똑같이 누리는 단순한 도덕적 존재로만 이해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람을, 곧 하나님과 연합하고 하나님의 목적에 동참하지만 단일한 인격적 생명의 하나 됨에서는 그와 하나가 아닌 사람을 보았던 것이다. 즉, 두 인격으로 구성된 한 중보자를 보았다.

 

이에 반대하여 알렉산드리아의 시릴(Cyril of Alexandria)은 그리스도의 인격의 단일성을 강조했고, 그의 반대자들은 그가 양성을 부인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반대자들이 오해한 듯싶지만, 유티케스와 그 일파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에 의해 흡수되었거나 양성이 융합하여 단일한 본성이 되었다는, 그리스도의 양성을 부인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그 근거로 시릴을 인용하였다.

 

 

② 바른 교리 (칼케돈회의의 결정 내용)

 

Louis Berkhof는 칼케돈 신조의 진술에 관한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다음과 같이 4가지를 들고 있다. ① 양성의 특성은 일위에 속한다. 예를 들면, 전지(全知)와 제한된 지식과 같은 것이다. ② 신인의 수난은 참으로 무한한 것일 수 있으나, 그 신성은 감각할 수 없다. ③ 그리스도의 인격의 근거와 기초를 이루는 것은 인성이 아니고 신성이다. ④ 로고스는 어떤 독특한 인간 개체와 연합한 것이 아니라, 인성과 연합한 것이다. 처음부터 신격의 제2위와 연합된 개인이 있은 것이 아니라 동정녀의 복중(腹中)에서 인간의 본질과 연합한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의 핵심을 신조 본문을 통해서 확인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이 한 분의 유일하신 그리스도-성자, 주, 두 가지 본성(physesin)을 타고 나신 독생자를 인정하며, 이 두 가지 본성이 혼동(asunkutos)되거나, 한 본성이 다른 본성으로 변하거나(atrepotos), 두 다른 분리된 범주로 갈라지거나(adiaretos), 양성의 영역과 기능에 따라 각각 대립(achoristos)되지 않는 것을 인정한다. 각성의 특성은 연합으로 인하여 무효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각성의 고유성(idiotetos)이 보존되고 양성이 한 품성과 한 자질(hypostasis)로 일치를 이룬다. 양성은 갈라지거나 두 품성으로 분리될 수 없고 오직 합하여 하나님의 한 분이시며 유일하게 독생하신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

 

 

 

(2) 칼케돈 신조의 특징 및 영향

 

이러한 칼케돈 신조는 삼위일체에 대한 오해를 지나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오해를 명확히 정리한 것이다. 즉 신성과 인성의 자리를 성경적으로 바르게 정립하게 된 것이다. 결국 교회는 이 시기에 오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정확한 교리적 내용을 고백하게 되었고 그 풍성함의 내용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이해는 교회에 중요한 교리적 기초가 되어서 후대의 신학적 기틀을 놓는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던 것이다. 즉 위와 같이 고백한 객관적 신앙고백이 개혁교회의 즉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 보면 이러한 형상에 관한 그리스도에 대한 기준으로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는 다음과 같다. “문97. 우리는 어떤 형상이라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답. 하나님은 어떠한 모양을 가진 분으로 그려질 수 없으며 그려져서도 안된다. 피조물은 그림으로 그려질 수 있으나, 하나님은 피조물을 섬기거나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피조물의 모양을 만들거나 그것과 비슷한 것을 만드는 것을 금하신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8장 2절은 칼케돈 신조를 요약해 놓은 듯 하다. “삼위일체의 제 2위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셔서 성부와 한 본체이시며 동등이시나, 때가 차매 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 사람에 속하는 모든 본질적 요소와 공통적 연약을 함께 취하셨으되 죄는 없으셨으니, 그는 성령의 권능에 의하여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그 여인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온전하고, 완전하고 판이한 두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이 변질, 합성, 혼동 없이 한 위에 분리될 수 없이 결합되었다. 이 분은 참 하나님이시오, 참 사람이시며 한 그리스도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되신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바른 성경적인 고백은 모든 개혁교회 안에 인정되었고 이와 같은 정신에 서 있지 않는 모든 내용들은 철저하게 정죄되고 교회에서 제거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른 신앙의 정통성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면 매우 심각하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교회의 객관적 신앙고백 기준을 무시하고 등한시 해 왔기 때문에 정통적으로 사도 후에 그리스도에 신앙고백이 어떤 것이 참되고 바른 것인지 알 수 없는 혼돈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즉 초기 교회 당시에는 목숨을 걸고 드러내며 지켜왔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교리적 내용을 오늘날은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두 본성에 한 인격”의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개되지도 않고 또한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신앙고백에 있어서 중요한 내용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과거 이단들이 행했던 모습들이 횡횡하게 된 것이다. 즉 신성을 무시하고 단지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강조해서 예수님을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내고, 조각하고, 영상화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된 것이다. 어느 교회든지 주일학교의 공과를 보면 온통 예수님을 아저씨나 수염난 할아버지로 그려서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또한 주일학교뿐만 아니라 교회 자체도 교회를 치장하고 장식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예수님을 그리거나 액자에 장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요즘은 스테인드글라스로 교회에 장식하는 것도 보게 된다. 그리고는 더욱 심각한 것은 이렇게 해야 만 신앙적 교육이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은 신앙교육의 가장 중요한 효과가 “시청각 교육”이라고 모두들 목소리를 높여서 강조하고 있다.

 

결국 이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정통적인 객관적 신앙고백의 기준에 입각하여 볼 때는 과거 이단들이 행했던 일들을 그대로 행하고 있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가 이와 같은 비참함과 부패에 빠지게 된 것은 개혁교회의 객관적 신앙고백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기준만 최소한 알았다고 한다면 오늘날 이렇게 까지 성경의 참된 의미를 곡해하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럽히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이런 교회의 혼탁과 부패는 오늘날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 속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즉 칼케돈 신조는 동방, 특히 발칸반도의 저속화 된 기독교를 정화하기 위하여 753년 콘스탄티노플 노회에서 결의한 ‘성상 반대 결의’에 기본 정신이 되었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아무튼 그들이(성상옹호론자들) 묘사해서는 안되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묘사하려고 시도하는 것 때문에 비난을 받을 때에 그들은 다음과 같이 변명하는 말을 했다. “우리는 우리가 보았고 또 전승된 그리스도의 육신만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네스토리안들의 오류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육신은 말씀이신 하나님의 육신, 즉 신성과 분리되지 않으며 신성으로 완전하게 성육하여서 전적으로 거룩하게 된 육신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육신이 어떻게 이제 와서 신성과 인성으로 분리될 수 있겠는가?(즉 신성을 배제한 인성만을 그리스도로 표현할 수 있게는가 하는 문제이다. 과연 그런 인성만 표현된 예수님이 참된 예수님이겠는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자이신 하나님과 둔한 육신 사이에서 중보의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의 인간 영혼도 또한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인간 육신이 동시에 말씀이신 하나님의 육신이듯이 (그리스도의) 인간 영혼이 말씀이신 하나님의 영혼이어서 그의 영혼과 그 몸이 다같이 동시에 신화(神化)하였고, 따라서 그가 자발적으로 고난을 받았을 때도 그의 신격은 분열되지 않았다. 그 까닭은 그리스도의 영혼이 있는 곳에는 그의 신격이 있고 그리스도의 몸이 있는 곳에도 그의 신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만일 그가 고난을 받았을 때 신성이 그의 영혼과 몸에서 불리될 수 없이 그대로 있었다면 어찌하여 어리석은 자들이 감히 그의 육신을 그의 신격에서 분리시키는 모험을 하여 그 육신을 마치 단순한 한 인간의 형상처럼 제시하려 드는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육신을 그의 신격에서 분리시켜서 그것을 단순한 육신의 본질에, 또 그 육신 자체의 인격에 돌려서 그것을 형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들이 삼위일체에다가 제 4의 위격을 도입하게 되기 때문에 그들은 불경의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어간다. 더구나 그들은 신격에 의하여 성육되어서 신화된 그 육신을 마치 신화되지 않은 것처럼 제시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든 간에 묘사될 수 없는 신격을 묘사하여 그리스도의 인간성과 혼동시키거나(단성론자들처럼) 혹은 그리스도의 몸이 신화되지 않고 분리되어 있는 듯이 네스토리안처럼 제시하는 사람이 된다.

 

아무튼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합당하게 용납할 수 있는 유일한 형상은 성만찬 예식에서 나오는 떡과 포도주뿐이다. 이 형상만이, 또 이 형식만이 그의 성육신을 제시하기 위하여 그가 선택하신 것이다.

 

이처럼 칼케돈 신조의 바른 신앙고백의 내용을 교회가 바르게 이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곧 부패하여 다음과 같은 잘못된 결의를 하게 된 것이다. 즉 753년 콘스탄티노플 노회의 성상 금지 결의는 큰 충격을 서방교회에 주었고 성상을 안치하고 그 앞에서 경건생활을 실천하던 신자들을 자극하였다. 그리하여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제7차 에큐메니칼 공회를 787년 니케아에서 소집하여 753년의 콘스탄티노플 노회의 결의를 무효화하고 성상을 숭배 또는 예배할 수는 없지만 존경하며 절하며 입맟출 수 있음을 결의하였다. 동방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교회가 다같이 이 결의를 받아들였으나 그것은 잠정적이었고 815년에 동사 양교회는 성상문제로 다시 분쟁에 들어갔다. 결국 서방 로마교회는 동방의 로마제국과 정치적으로 분열되었고 그 결과 서방 로마교회는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프랭크 제국과 유대를 맺게끔 되었다던 것이다.

 

여기서도 보면 처음에는 절대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753년의 회의를 약간만 수정해서 받아들였던 것이 후대로 가면 갈수록 완전히 거부하는 형태로 발전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객관적 신앙고백을 엄밀하고 철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느슨하고 타협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신이 결국에 가서는 신조 전체를 변질시키고 버리게 되는 길로 나가는 문의 역할을 하게 됨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조의 채택에 있어서도 엄밀하고 철저하게 고백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인지를 알 수 있다. 특히 이런 채택에 대한 정신은 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더욱 자세하게 다루어 질 것이다.

 

 

 

(3) 칼케돈 신조에 대한 평가

 

Louis Berkhof는 칼케돈 신조는 “양극단의 견해를 전부 정죄하고, 위(인격)의 단일성(unity)과 양성을 함께 주장했다”는데 큰 의의를 두지만 아쉬운 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니케아 회의가 삼위일체 논쟁을 끝마치지 못한 것처럼 칼케돈 회의도 기독론 논쟁의 종결을 짓지 못하였다”. 즉 앞에서도 보았지만 이단들은 매 시기 때마다 더욱 자신들의 입장을 숨기면서 들어오기 때문에 교회는 더욱 철저하게 진리의 내용을 드러내고 밝힐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우리는 여기서 칼케돈 신조가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의 공통적인 특징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즉 칼케돈 신조는 그 신조의 내용과 근거를 앞선 신조들의 정통성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본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부들을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한 분이신 유일한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도록 가르치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 옛 예언자들도 이렇게 증거하였고 주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셨고, 교부들의 신조도 이렇게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이처럼 교회의 객관적인 신앙고백은 항상 교회의 역사를 살피고 그 역사 속에서 객관적인 기준으로 바르게 인정되었던 신앙의 기준인 앞선 신조에 영향을 받고 그 동일한 정신으로 신앙고백이 세워져 가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참된 진리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결코 변함없는 동일한 내용임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신조는 오늘날과 상관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오늘날 이렇게 말하면서 신조는 과거의 것이고 오늘날은 오늘날의 형편에 맞게 성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면서 신조를 과거의 것으로 돌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옳지 못한 태도인 것이다.

 

교회의 객관적인 신앙고백인 신조는 성경의 참된 내용을 바르게 고백하고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세월이 흘러도 그 참된 진리의 내용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도 여전히 과거의 신조들의 정신과 그 내용이 오늘날 개혁교회의 기초와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오늘날도 여전히 그 내용이 소개되고 가르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신조들도 독립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미 객관적으로 정립된 신앙고백의 내용에 기초해서 고백되어진 것이기에 동일한 힘이 있는 것이다. 이런 신조의 독특한 역사성과 특징은 종교개혁의 신조들을 살펴보면 더욱 깊이 알 수 있다. 즉 종교개혁시대의 많은 신조들이 이 고대 신조의 내용들과 그 권위에 기초하여 고백되어졌기 때문인 것이다.

 

이처럼 신조에는 역사를 초월하는 독특한 성격이 있는 것이다. 이런 신조의 성격을 잘 이해해야만 오늘날 과거의 신조를 소중히 여기고 또한 배우고 익히는 일에 열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 내용들은 참된 진리에 대한 영원한 교회의 객관적인 신앙고백이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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