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산책 (5)
닉네임: 나그네 / 칼빈장로교회 (2016.5.22)
사도시대가 그들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시대가 이르기까지를 소위 ‘속사도 시대’라고 일컫는다(주후 100~325). 사도시대는 계시와 영감의 시대였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설립된 비상적 시기였다. 그런 만큼 이후 기독교의 원리요, 모범이며 전례들의 제정의 시대였다. 속사도 시대는 이전 시대의 계속이며 적용이고 전진이며 확대이지만 이미 제정된 규정 안에서 였고 얼마나 정확한 선에서 머무느냐 아니냐의 싸움이 치열하게 있던 시대다. 그 간략한 개요를 시작한다.
1. 속사도 시대의 개요
이 시대는 사도요한의 죽음부터 박해의 시기가 종결되던 무렵, 즉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즉위까지로 정한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것은 박해의 교회요, 투쟁과 순교의 시대였다. 3 백여 년간의 박해 속에서 변절하지 않고 유대교와 이교와의 투쟁에서도 변질되지 않으려 했다. 이런 박해 가운데에서도 이교의 문화와 이단자들의 미혹에 대해서 깊은 사색과 변론들로 교회를 수호했던 교부들이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가난하고 비천해 보였고 인기도 없고 법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굴의 신앙으로 견뎠고 때로는 순교의 피로 교회를 지켜냈으며 때로는 고상한 논리로 신앙을 변증했다.
초대 교부들의 문서 중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에 나오는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묘사를 간략히 소개한다. “... 그들은 그리스나 야만인들 도시에 산다... 지역의 관습을 따른다. 그러면서도 살아가는 모습이 지역 주민들과 사뭇 다르게 단정하다. 고향에 살면서도 나그네처럼 산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데도 모든 사람에게 박해를 받는다. 죽음을 당하는 것 같은 데 살아 있다. 선을 행하면서도 범죄자처럼 처형을 당한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쾌락을 거부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들을 미워한다. 그리스도인들도 매일 처형을 당하면서도 수가 불어난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당해 주신 것이기에 그것을 빼앗을 수가 없다”
2,3세기 기독교 신학은 주로 헬라.로마의 이교 사상에 대한 변증과 다양한 영지주의 이단들에 대한 논박이 주를 이뤘다. 이런 내용들이 훗날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유산들로 남게 되었다.
2. 당시 기독교 신앙이 힘을 얻게 되는 요인들
2.1. 박해 시대에 기독교의 특성 중 하나는 ‘배타성’이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부패와 문란한 생활상을 보여주었고 기독교가 가진 근실한 도덕성과 성결에 대한 강한 입장은 이교들에게 미움을 샀다. 이런 연유로 처음에는 신자들 대부분이 가난하고 미천한 사람들이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교육 수준이 높고 귀족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이 새로운 종교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고대 유명한 도시 카르타고는 인구 1/10이 기독교로 개종했고 이들 중 원로원 의원과 귀족들, 총독의 친척들도 개종했다는 기록이 있다. 뿐만 아니라 2세기 중반부터 유명한 교부들(저스틴, 이레니우스, 오리겐, 터툴리안, 키프리안 등)은 당대의 사상가들과 대등한 수준을 가진 학자들이었다.
2.2.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권은 광활하였을 뿐만 아니라 치안과 질서가 안정되었고 헬라어와 헬라문화가 널리 보급되었다.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이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읽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아울러 성경은 일찍부터 다양한 언어로 번역 보급되었다. 라틴어, 시리아어, 이집트어 등. 로마 제국 아래에서 비교적 쉽게 먼 지역까지 전달할 수 가 있었다.
2.3. 당시 유대교와 이교 세계는 외적으로는 번성하는 듯 보였지만 내적으로는 쇠락을 향해 가고 있었다. 도덕과 윤리성이 없는 대중종교, 계층에 상관없이 탐욕과 불의가 판치는 사회 속에서 기독교 신앙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고고한 신앙을 보여주었다. 기독교는 회의적이고 유물론적인 사고의 틀 속에서 현세를 뛰어넘는 내세에 대한 확신이 무엇보다도 강하였다.
3. 기독교의 전파
3.1. 아시아는 일찍부터 사도들에 의해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었던 지역이다. 사도들의 사후에 속사들에 의해서 아라비아 반도나 멀리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3.2. 이집트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가 기반을 다진 곳이다. 일찍이 이곳은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머물렀던 곳이며 이스라엘이 ‘종 되었던 집’이었다. 알렉산드리아는 동방과 서방을 잇는 요충지로 대규모 도서관들이 있고 유대정신과 헬라사상이 만나며, 모세의 종교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만났던 곳이다.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은 파라오 계열의 후손들이지만 대부분 흑인들과 아랍인들의 혼혈족이었다. 대부분 하층민들이었다. 이슬람교도들이 득세 하면서 도서관의 기독교 장서들은 불태워졌다. 기독교 문서들이 코란과 일치하건 불일치하건 모두 불태워졌다. 오늘날도 대다수가 이슬람교도들이고 삼위일체설을 부인하는 콥트교도들만이 명목상 기독교도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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