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산책 (7)
초기 기독교 조직과 권징 1
닉네임: 나그네 / 칼빈장로교회 (2017.3.20)
박해의 시대를 지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면서 외형적으로 거듭 발전해 나갔고 그에 따라 교회의체제가 더욱 구체적으로 만들어져 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모두가 원했지만 모두가 원하는 방식과 내용은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빛이 강하면 어둠도 짙듯이 교회의 외적 발전은 오히려 초기 교회의 빛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1. 직제의 구분
유대교 출신이든 이교도 출신이든 자라는 교회 안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신자들이 자기들의 이전 종교의 관습을 버리지 못한 경우가 생겼다. 유대 신자들은 모세율법 아래에서 대제사장.제사장.레위인의 구조를 자연스럽게 주교.사제.부제의 삼중 교직을 유추하게 만들었다. 이교 신자들도 대부분 제사를 중심으로 일반 신자들과 구분되는 사제직의 특별함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약 교회는 하나님과 신자들 사이에 중재하는 특별한 사제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벧전 5:3에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사도 시대에 감독들과 장로들은 군림하고 명령하는 직분이 아니라 섬기고 봉사하는 직분이었다. 이는 주님의 가르침이었다(막 10:42~45). 그러나 사도시대가 지난 후 교회는 성직자들과 평신도를 구분하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알려진 성 이그나티우스는 “성소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 성결하지만 성소 밖에 있는 사람은 성결하지 않다. 감독과 장로와 집사를 떠나서 무슨 일을 행하는 사람은 양심이 순결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키프리안이다. 그는 ‘사제직’을 인정한 최초의 인물이다.
3세기부터 이미 성직위계제도의 토대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평신도 중에서도 세례받고 성찬 참여 계층이 있고 세례 예비자 계층이 생겼다. 성직자들은 지위가 더욱 격상되어서 성소 사역에만 전념하도록 했고, 독신의 문제도 사역의 집중과 관련하여 의무는 아닐지라도 권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측면도 공존했다. 예컨대, 회중들이 자신들의 사역자를 인정하고 배척할 권리를 가졌다. 주교직이 공석일 때 교구성직자들의 판결보다 회중의 선거권이 우선시 되었다.
2. 새로운 직분들
3세기 중엽에 새로운 직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1) 차부제(부집사) - 집사를 돕거나 대리하는 직분. (2) 독서자 : 집회 때 성경 낭독하고 교회 도서를 관리. (3) 시종 : 주교의 공식 임무를 보조하고 수행함. (4) 구마사 : 귀신들린 자와 세례예비자들에게 기도와 안수 함. (5) 선창자 : 예배 중에 시편, 음악 등을 담당. (6) 문지기 : 예배당 시설 관리자 (7) 큰 규모 교회에 둔 교리교사(catechist), 예배시 통역자 등이 임시직으로 생겨났다.
3. 주교제의 기원에 대해서
주교제는 장로제에서 변형되었지만 장로제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특별히 훗날 로마 카톨릭은 권위와 중재의 원칙에 입각하여 주교제를 필연적으로 고수했다. 주는 실질적인 사제며 제가 개념에서 나왔다. 그리고 성직자와 평신도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에 기초되었다.
사도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주교의 자리가 없었다. 감독이나 장로들이 지교회를 치리하고 목양하는 직분이었으나 아직 사도들의 지도력과 공종하였다. 하지만 사도들이 죽고 오롯이 감독이나 장로(이 둘은 동일직이다)들에 의해서만 교회가 다스려져야 했기 때문에 더욱 확고하고 철저한 리더쉽을 강화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외부적 위험 요소들 박해나 이단 사상의 공격들에 통일성 있고 강력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권위의 구심점이 필요했던 정황도 발견된다. 그런 가운데 주교 개념이 서서히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키프리안은 주교는 교회 자체라고 했고 “주교는 교회 안에 있고, 교회는 주교 안에 있으며, 만약 누구든 주교와 같은 편에 서지 않으면 그는 교회 안에 있지 않다”고 극단적으로까지 말했다.
4. 주교의 직제
주교들은 교회적 정치적 중요도에 따라 상이한 계급으로 분화했다. (1) 시골 교회의 주교들. (2) 도시 주교들 중 수도대주교들은 나머지 주교들 보다 높았다. 특히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로마의 주교들은 훗날 총대주교 제도(즉, 교황)의 씨앗이 되었다.
5. 교황제의 씨앗
도시의 중요도에 따라 당연히 로마의 주교는 총대주교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부여받았다. 예루살렘과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역사 존중을 받았지만 로마의 주교만큼 실질적이지는 못했다.
로마 주교의 권위에 대한 근거들 (1) 로마 교회의 깊은 역사가 있다. (2) 대표 사도인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사역하고 순교했다. (3) 로마는 세계의 수도로 정치적 중요성을 가졌다. (4) 로마 교회의 행정적이 능력과 체제가 있다.
로마 카톨릭의 교황 연대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시작해서 – 리누스 – 아나클레투스 – 클레멘스 로 이어진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에서 레오 13세(1878)까지 전체 교황 수는 263명이다. 현재는 266번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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