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정치

목회는 방법론이 아니다

Sola. 2024. 1. 12. 06:00

 

목회는 방법론이 아니다

 

배현주 목사 (2017.1.11)

 

 

목회는 방법론이 아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것이다. 그것이 목회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와 함께 죄에 대하여서 죽고 그와 함께 하나님을 향하여서 의에 대하여서 사는 자가 아니라면 모두 삯꾼이다. 삯꾼은 자기가 먼저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살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삯꾼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시대에 목회는 하나의 방법론이 되었기 때문이다. 목회를 방법론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목사들이 팽배한 시대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 역사 가운데 목회를 방법론으로 시작한 부류들이 있었다. 그것은 18세기에 라리탄 계곡의 후릴링겐이며 그의 제자들로서 조나단 에드워드와 길버트 테넌트이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알려진 자로서 최초로 방법론으로 목회를 한 인물이다. 길버트 테넌트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장로교 역사에서는 신파(New Side)의 주도적인 세력가로서 행세한 조금 알려진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최초로 방법론으로 목회를 하신 자들이다. 그들의 방법론적인 목회는 효과를 거두어서 많은 자들을 교회로 끌어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교회 역사에 매우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인물들로 기억해야할 듯하다. 조나단 에드워드와 길버트 테넨트의 목회 방법론을 계승한 19세기 대표적인 북 아메리카 신대륙의 복음주의 목사가 있다. 그는 찰스 피니이다.

 

 

제 2차 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찰스 피니는 그의 선배 조나단 에드워드와 길버트 테넌트의 목회 방법론을 더욱 발전 시켜서 “새로운 척도”라는 방법론을 세워서 교회 대형화의 시작점을 알린 인물이다. 찰스 피니에 오면 개혁주의 신학도 산산이 흩어져 버리고 오로지 목회 방법론만 남는다. 그는 회중을 회심시키기 위해서 좀 더 어두운 조명을 가지고 죄에 대하여서 더욱 심각하게 감정적으로 느끼도록 하는 공간 배치를 하였던 최초의 인물이다. 이렇게 “새로운 방법론”으로 제 2차 대각성 운동 때에 많은 미국인들을 감동시켰다. 찰스 피니의 효과적인 방법론이 목회에 큰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후에 미국 개신교에 방법론적인 목회는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정통 신학을 대충 어설프게 학습한 목회자들이 방법론으로 목회를 시작하면서 오히려 신학이 없어야 목회가 더 잘된다는 신화를 낳았다. 제 3차 대각성 운동의 주역이라고 할 D.L. 무디 에게 오면 사역자에게 신학은 다만 선택 사항이다. 신학적 배경이 전혀 없어도 당장 문자에 대한 독해 정도만 되면 사역자가 되는 외적 조건에 별로 필요한 것이 없다. 이제 오히려 어떻게 효과적인 목회 방법론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을 감성적으로 자극하여서 감동과 감화의 물결로 초대하느냐에 달렸다. 이렇게 천박한 감성 종교적 움직임은 효과적으로 미국 장로교 내에 개혁주의 교리를 훼파키셨다. 더 이상 교회에 정통 신학은 불필요하다. 오로지 몰려올 교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다양한 방법론의 개발만이 목회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효과적인 방법론을 개발하면 그것은 목회가 대박이 나는 길이다. 다양한 성향과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다만 효과적인 방법론으로 목회하는 그 목회자의 쇼맨쉽에 전적으로 의존하여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장 무능하고 게으른 신자들이 양산되었다. 더 이상 어디에도 거룩한 보편 교회의 신자라고 불리기에 합당한 신자들이 사라져가는 교회가 되었다.

 

 

점차로 성경의 무오성이라든가 예정론과 칭의론과 같은 매우 중요하고 무거운 주제들은 언제나 뒤편으로 내몰리고 오로지 어떻게 감동을 받아서 지금 내가 사회적 성공을 이루느냐에 온통 관심이 집중되어 버렸다. 비록 외형적으로 개체 교회를 형성하는데 효과가 있었으나 그것은 무한 경쟁 체제 아래에서의 자기 살 깍아 먹기 경쟁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선조들이 이룩해놓은 기독교에 대한 모든 유산들은 교인 불리기에 모두 써버려서 남은 것이 없는 천박한 자본주의 노예가 되어버린 교회가 되었다. 매우 중요한 주제들을 간과 하면서 어느새 교회 안에는 동성연애라든가 여성 목사 안수라든가하는 매우 민감한 주제들이 하나씩 허물어져버렸다.

 

 

무엇이 문제인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목회를 방법론으로 주도한 교회사의 곁길이 문제였다. 목회는 방법론이 아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능통해야할 자가 목사 자신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상태에서 목회란 나무 막대기 들고 전차부대로 무장한 적진에 뛰어드는 꼴이다. 아무리 의기양양하고 기력이 넘쳐도 전세는 불을 보는 듯하다.

 

 

목회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져가는 목회자 본인의 은총에 달려 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으로 더욱 다림질하는 것이 가장 최고의 목회자가 되는 유일한 방도이다. 그 외에 다른 별스러운 목회 방법론은 없다. 지금 우리시대 방법론으로 목회하는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대형 교회 목회자들로 인하여서 점차로 교회는 그 고귀한 유업을 모두 잃어버리고 세상으로부터 끝없이 밟히고 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는커녕 더욱 초라하게 짓밟히고 있다. 그것이 목회를 방법론으로 알고 주도하였던 초기 회중 교회 목사들과 장로교 신파(New Side) 목회자들의 어리석음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였던 제 2차 대각성 운동의 찰스 피니에게 있다. 그리고 제 3차 대각성 운동을 주도하였던 D.L. 무디에게는 책임조차 물을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무지하였다. 신학 교육조차도 정상적으로 받지 못한 자가 최고의 사역자가 되어 버린 그런 시대에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조차도 사치스럽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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