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영웅 귀도 드 브레
성약 출판사 소식지
많은 사람은 '위대한 이단자 귀도 드 브레'라고 역설하여 부르고 있으나 저는 그를 진정한 신앙의 영웅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16세기에 종교개혁이 파도처럼 유럽에 퍼져 나갈 때 두 편의 걸출한 신앙고백서가 나왔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과 『네덜란드 신앙고백서』(Belgic Confession, 1561)가 그것이다. 이 책은 그 고귀한 신앙의 유산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엮어낸 일종의 전기 소설로서, 매 주일 저녁 예배 때마다 요리문답 설교를 듣는 외국 개혁교회의 신자들이 집집마다 갖추어 두고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전 교인의 필독서이기도 하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독일의 제후인 프리드리히 3세가 자기 백성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는 일을 돕기 위해 집필을 의뢰한 것이고, 『네덜란드 신앙고백서』는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의 박해를 받고 있던 저지대(=네덜란드)에서 신교도를 변호하기 위해 왕에게 자비를 호소하려고 쓴 것이다. 이 독일어 요리문답『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작성한 설교자 올레비아누스와 교수 우르시누스는 제후의 초빙과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지만, 저지대에서 프랑스어로 신앙고백서『네덜란드 신앙고백서』를 쓴 목사 귀도 드 브레는 ‘이단’으로 몰려 감옥에 갇힌 뒤에 교수형을 당했다.
당시의 살벌했던 박해 상황을 이 책은 이렇게 묘사한다.
모두 그 칙령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1540년도의 끔찍했던 (신교도를 5만 명이나 살해한 카를 5세의) 마지막 칙령은 누구든지 자기 집에서 성경이나 종교개혁에 대해 말하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성경이나 종교개혁에 관한 글을 읽어도 죽음이었다. 모임에 참가하는 것도 죽음이었고, 신교도에게 음식이나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죽음이었다.……악독한 사람이면 누구나 이웃을 이단이라고 고발할 수 있었고 그 이단자가 사형당하고 나면 그 사람의 재산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었다. 이것들이 바로 (카를 5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펠리페가 되살려 낸 칙령이었다. 곧이어 도끼로 머리를 자르고, 밧줄로 교수형을 시키고, 불로 화형을 시키고, 물로 익사시키는 박해가 시작되었다.
귀도 드 브레 목사는 마흔다섯의 나이에 아내와 다섯 자식을 남긴 채 순교를 눈앞에 두고 감옥에서 이런 편지를 썼다.
'우리 주 예수님 안에서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아내에게.
당신이 큰 슬픔에 잠겨 괴로워하는 것 같아 이 편지를 쓰오. 부디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기를 간절히 부탁하오.……결혼할 때 우리는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잖소. 은혜로우시게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7년을 함께하게 해 주셨구려. 주님께서 우리가 더 오래 함께 살기를 바라셨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되도록 하셨을 것이오. 그러나 그것은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이 아니었구려. 그분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게 합시다. 그리고 그분의 뜻대로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그것으로 족하게 여깁시다. 더욱이 내가 대적의 수중에 우연히 떨어졌다고 생각지 말고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된 것이고 그 섭리는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지도하시고 다스리신다고 생각하구려.……
이런 모든 생각으로 내 마음은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해졌소. 그래서 나의 소중하고 충실한 반려인 당신에게 나와 함께 기뻐하자고 부탁하는 것이오. 또 그분이 행하고 계시는 일로 인해, 그리고 그분은 오직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과 의를 이루게 하심을 인해 선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자고 간절히 부탁하오.……그리하여 당신이 주님 안에서 위로를 받고, 당신 자신과 당신이 하는 일들을 주님께 맡기기를 간곡히 부탁하오. 이는 주님은 과부의 남편이 되시고 고아의 아버지가 되시며 결코 당신을 떠나시거나 저버리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오.……잘 있구려, 내 사랑하는 아내 카트린느!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로해 주시고 당신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참고 따르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오.
당신의 신실한 남편, 귀도 드 브레.'
1567년 5월 31일, 사형장으로 향하기 직전에 귀도 드 브레는 함께 감옥에 갇힌 교우들에게 이런 말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형제들이여, 오늘 아침에 저는 하나님의 아들의 교리를 위해 정죄를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저는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명예를 제게 주실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한편, 한 해 전인 1566년에 프리드리히 3세는 ‘루터파 신앙을 버리고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들에게 이상한 이단설을 가르친다’는 죄목으로 아우크스부르크 제국 의회에 소환되어 제후의 신분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위험에 처했는데, 그는 의회에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아우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의회에 나에게 닥쳐올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위로의 소망을 발견하며 그분을 신뢰한다. 그분께서는 나를 당신의 능력을 위한 도구로 삼으셔서 이 마지막 때에 ‘독일이라는……로마 제국’ 앞에서 단지 말로만이 아니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당신의 이름을 고백하게 하시리라 믿는다. 나는 나를 복음의 지식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통치하신다는 것을 믿으며, 설사 나의 피로써 값을 치러야 할지라도 나는 순교를 이 세상에서와 영원한 세상에서도 다 감사드리지 못할 명예로 여길 것이다.
이처럼 16세기의 신앙인들은 목숨을 걸고 신앙고백서를 작성했고, 자신의 피로 인(印)을 치기도 했으며, 교인들은 종종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면서 숨죽여 그 신앙고백서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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