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 유익한 글

[교회사 산책 1] 기독 교회사를 공부하는 이유

Sola. 2024. 11. 9. 06:00

 

* 본 내용은 주일 오후 교우들과 공부하는 교회사 내용이다. 필립 샤프의 교회사를 텍스트로 삼아 에피소드 중심으로 간략하게 요약한 내용이다. 현재도 진행 중이다(2016년5월)

 

교회사 산책 (1)

 

닉네임: 나그네 / 칼빈장로교회 (2016.5.22)

 

 

1. 기독교회사를 공부하는 이유

 

기독교인들에게 ‘역사’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에 의한, 그분을 위한, 그분을 향한 길이다. 지난 이천년까지의 하나님의 역사는 성경계시로 충분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그 어떤 기록도 성경이 주는 유익 그 이상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성경이 종결된 이후 하나님의 역사는 교회 역사를 통해서 드러나고 정리되고 있다. 따라서 교회 역사는 오늘 우리 교회 상태에 대한 열쇠이며, 미래 교회를 위한 씨앗이 된다.  그러므로 옛 교회사의 기록들은 죽음 문자가 아니라 오늘 우리 곁에 살아 꿈틀대고 있는 현실이다. 매주일 간략하게 보는 교회사 산책의 시간을 통해서 신앙의 도정을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란다.

 

 

 

2. 교회사의 시대 구분

 

일반역사에서도 시대 구분은 다양한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교회역사도 그와 같다. 그러나 시대를 구분하려 할 때 분명한 전환점 즉, 새로운 시작점과 종결지을 만한 구분점이 있어야 하고 또한 보편성을 띄어야 한다.

다른 견해들이 있지만 대체로 교회역사는 세 시대로 구분되어 왔다. 고대, 중세 그리고 근현대 교회사이다. 바라건대 이 강좌가 끝까지 지속될 수 있다면 중세와 근현대 사이에 종교개혁사와 병행하여 장로교회사 그리고 마지막에 한국교회사(장로교회사)를 다룰 수 있기를 소망한다.

 

 

2.1. 고대 기독교회사 (A.D. 1~590) - 성육신에서 그레고리우스 대제(大帝)

 

이 시대를 교부들의 시대(그리스-라틴교회)라 한다. 지역적으로 로마제국과 나머지 지중해 주변 국가들로 구별된다. 이 시대는 후대 기독교회의 중요한 교리와 교회 정치 등의 초석이 놓아진 기간이었다. 모든 논쟁과 이견들의 원천이 존재하던 시대였다. 물론 이 시기에는 아직 거칠고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았던 주장도 일부 있기도 했었다.

 

4세기 초 최초의 기독교인 황제 콘스탄타누스가 등극하면서 전환점을 이루게 된다. 이때부터 기독교는 박해받던 종교에서 그리스-로마 제국의 지배적인 지위를 얻게 되었다. 특히 그의 제위 기간 중 325년 최초의 공의회 니케아 회의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이 시대는 다시 세 시기로 구별된다. 사도시대, 순교자들의 시대, 기독교 황제들과 주교들의 시대 등이다.

 

 

2.2. 중세 기독교회사(A.D.590~1517) - 그레고리우스에서 종교개혁까지.

 

중세의 시작에 대해서 이견이 많지만 대체로 590년 그레고리우스 대제로 시작해서 1517년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종결하는데에는 다른 이견이 거의 없다. 그레고리우스를 중세의 시작점으로 보는 데에는 그로부터 절대 교황 제도가 시작되었으며 이방세계(앵글로 색슨족 등)에 대한 본격적인 선교가 진행되었다는데 있다.

 

중세의 특징은 이교도들에 향한 기독교 신앙의 확대가 있고, 고대 기독교 신앙의 발원지에서는 오히려 이슬람에 의한 위협에 직면한 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세는 교회내 계층 구조가 고착화 되는 교황제도의 정착과 절정과 쇠퇴가 그 중심 축이라 하겠다.

 

이 세 시기의 대표자들이 있다. 그레고리우스 1세(590)는 절대적 교황 제도의 시작이 되었고, 그레고리우스 7세 또는 힐데브란트(1049) 교황제도의 정점에 있던 인물이고, 보니파키우스 8세(1294)는 쇠퇴의 시기를 대변해 주고 있다.

 

 

2.3. 근현대 기독교회사(A.D.1517~1880) - 종교개혁에서 근대까지.

 

종교개혁 이후 서유럽 교회는 신.구교 양진영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반면에 동유럽(동방교회) 교회는 서방교회의 이런 싸움과 갈등에서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독립적인 길을 갔다.

 

이 시기는 사도 시대 만큼이나 대단히 활력이 넘쳤고 위협과 도전, 개혁과 사수의 대립이 곳곳에서 직면했다. 개신교 내의 다양한 교파들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근대 카톨릭 교회도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개혁 이후 17세기는 개혁의 정신을 더 확립하며 더욱 첨예한 신학 주제들을 위해서 논쟁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만큼 정통교리를 수호하려는 이들과 다른 세속정신과 혼합된 사변적 신학들이 혼돈을 일으키면서 점차 교회의 생기를 잃게 만들어갔다. 대륙에서는 개혁의 흐름이 시들해졌으나 영국에서는 청교도 신앙의 강력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흐름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확장되었다.

 

17세기 영국 교회는 교회 역사에 기념비적인 작업과 열매들을 산출했던 시기였다. 그러던 것이 18세기가 되면서 세속주의와 형식주의에 물든 부류들에 의해 순수했던 신앙인들이 박해받고 쫓겨나거나 순응해 버리는 역사가 있었다. 그리고 점차 형식적이며 생기를 잃어가던 중에 경건주의 감리교의 부흥운동이 나타나면서 일대 변화가 일었다. 이런 배경에는 전통적 이념과 제도에 대한 불만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반동이 발생하게 된다. 사회적으로는 혁명이, 신앙적으로는 불신앙이나 무신론, 철학적으로는 합리주의 등이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를 촉발했다. 하지만 신앙적으로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소중한 자산들을 잃어갔다.

 

19세기에는 이런 양상들이 더욱 확대되고 깊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은 영국 땅에서 일어난 그것 이상으로 폭발적이었으나 진리의 빛은 매우 희미하게 되었다.

한국은 다양한 배경과 상황 속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종교개혁의 정신이 대륙에서 영국 땅을 거치고 다시 아메리카 대륙을 지나는 동안 이 땅에 제대로 심겨져서 뿌리를 내리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상태로 들어왔다.

 

지금 우리 한국 땅에 심겨진 그리스도의 교회가 사도들의 교회와 얼마나 가까운지 아닌지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면 이 교회사를 공부함으로 큰 유익을 얻은 셈이다.

 

 

https://cafe.naver.com/calvinch/302

 

 

 

 

https://m.youtube.com/@osola24 Osola (유튜브)

 

Osola

정통신학을 전하는 유튜브입니다. 지금 이 글을 클릭하시면 유익한 글들이 있는 다른 링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독교 자료 (티스토리): https://hisola.tistory.com 기독교 자료 (네이버): https://cafe.n

www.youtube.com

 

 

https://cafe.naver.com/data24         기독교 자료 (네이버 카페)

 

기독교 자료 : 네이버 카페

신학 자료 개인 카페입니다. 추천 정통신학 유튜브 'Osola' https://m.youtube.com/@osola24

ca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