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의 심방이야말로 성도의 영적 성장에 본질적 도구중 하나임
(교회설립 과정 이야기)
최정복 강도사 (2017.12.14)
지난 주에 우리 교회 성도님 한분께서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강도사님, 나중에 구역모임(셀, 순, 목장 등 소그룹)을 조직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저 역시 고민했던 주제였습니다. 소그룹 목회는 현대 교회에서는 거의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직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질문하신 분은 교회에 정착하기 위해 소그룹을 바라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소그룹의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음을 알려드렸습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소그룹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질문한 성도님은 소그룹을 조직하는 것에 대해 제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자 그 이유를 궁금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설명을 주의 깊게 경청해 주셨습니다.
교회 안에 소그룹이 생기면 당연히 성도 상호간 친밀감이 높아지며, 교회에 처음 나온 분들도 교회에 적응하기가 좋습니다. 특히 서로 비슷한 연령, 지역을 감안하여 소그룹을 편성할 경우 서로 공감하기 쉽고 마음을 열고 대화하기 편합니다. 그러나 이런 큰 장점에도 불구하고 소그룹을 도입할 때는 숙고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 있습니다.
소그룹의 위험 : 직분적 봉사의 이양
소그룹의 가장 큰 문제는 영혼을 돌보는 직무가 목회자로부터 소그룹 자체 혹은 소그룹 리더에게로 이양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소그룹 자체, 혹은 소그룹 인도자로부터 긍정적인 영향력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그 반대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이 상존합니다.
목회란 한 사람의 전인격을 돌보는 일입니다. 목회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1,2년 리더 훈련을 통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신앙의 연수가 많다고 해서 가능한 일도 결코 아닙니다. 직분자의 섬김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4:12). 직분은 가정을 돌보는 방식을 통해 검증되어야 하며, 교회적인 선출이 필수적입니다. 선출된 후에도 끊임없는 십자가로의 돌이킴과 자기 성찰이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는 누구든지 '직분을 스스로 취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직분자가 세워지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온 교회의 지원 아래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점을 명심한다면, 마땅히 그 직분적 책임을 쉽게 이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소그룹이 교회의 대형화에 기여한 측면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한 직분적 섬김이 직분자가 아닌 '순장, 구역장'에게 쉽게 이양되어 나타나게 된 부작용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질문한 성도님께 소위 소그룹 모임을 도입하더라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성도들은 서로 친밀한 교제를 통해 서로를 돌아보며,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며, 서로 권면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의 본질인 것이므로 재론할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는 소그룹 운영의 방식인 것입니다.
올바른 방식 : 직분자의 심방이야말로 영혼을 돌보는 중심 활동임
물론 소그룹 자체가 문제의 온상인 것처럼 여기고 이를 전적으로 폐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운영하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그 방식은 당연히 직분자가 소그룹을 매주 돌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특히 직분자의 심방이 소그룹보다 더 돌봄을 받는 토양이어야 합니다. 직분자가 모든 성도들을 심방하며 각 사람의 영적, 육적 건강상태와 경제 생활, 사회적 관계 등 성도의 생활 전 영역을 살피는 일이야말로 신앙성장의 본질인 것입니다. 이 일을 감당해야 할 목사와 장로들이 그 책임을 소그룹 리더에게 이양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막중한 책임을 성도들에게 이양하고, 스스로 행적적 지도, 피상적 지도에 머무르며 뒷짐을 져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교회들을 돌아볼 때 교세를 늘리는 일이 능사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교회가 대형화 될 수록 직분자가 성도들 개개인을 돌보는 일을 온전히 감당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교구를 담당하는 목사가 있긴 하지만 세밀한 목회적 돌봄이 이뤄지기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끊임없이 돌아오는 설교 스케줄, 다양한 교회 대내외 행사와 행정적 업무들, 넓은 교구와 끊임없이 발생하는 장례식, 그리고 당직에 새벽기도 차량운행까지. 어느덧 심방은 연례 행사가 되었고, 그마저도 형식적으로 흘러가곤 합니다.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자라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랜 기간 직분자가 심방을 통해 직분적 돌봄과 다스림을 행해야 하겠습니까?! 교회가 참으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올바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직분자의 돌봄과 다스림이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목사와 장로가 심방을 통하여 직접 새신자를 양육하고 또 소그룹을 지도하며 스스로 제자를 양육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직분자의 심방이야말로 매우 크게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목회 현장에서 이 사실은 쉽게 무시되고는 합니다. 목회자 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심방을 의례적인 것으로 여기며 대단히 중요한 영적 성장의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도들 대부분 심방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마는 것입니다.
심방의 방식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오늘날 신학교에서 심방학이 가르쳐지지 않고 있고, 설교실습은 많되, 심방 실습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목회실습, 상담실습 시간에도 심방의 과정은 잘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방은 분명히 공적(official) 행위입니다. 심방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행위(Acts of God)를 대리하는 일입니다. 심방을 통해 개인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으며, 개별적으로 교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삶을 교정하는 권징의 중요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세가지 표지(설교, 성례, 권징)는 모두 심방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심방, 하나님의 방문
돌봄은 반드시 "방문"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그렇게 "방문"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의 심방하는 장로 직분의 모범은 특별히 느헤미야서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공중 앞에서와 각 집에 방문하여 가르치는 본을 보였습니다(행 20:20). 그러므로 오늘날 반드시 심방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장로가 심방을 통하여 영혼을 돌봐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소그룹을 나누어야 한다면, 소그룹의 운영과 모임은 반드시 장로가 주재해야 하며, 소그룹은 장로의 심방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 새로운 신자가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면, 두세주 후에 면담하고 심방일정을 잡습니다. 첫 심방은 가볍게 식사나 차를 마시며 대화합니다. 교회 등록을 앞두고 다시 심방합니다. 그 때는 신앙고백을 확인하고, 성도로서 권리, 책임과 의무 사항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공적 심방은 식사시간을 피하며, 헌금이나 사례를 받지 않으며, 다과도 보리차 정도만 준비하는 등 유의사항을 알려줍니다. 일반적인 공적 심방의 경우 싱글 여성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내나 다른 성도들을 동반하지 않고 직분자만 방문합니다. 출산이나 질병의 경우는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는 성도들과 함께 갑니다.
등록한 성도들의 경우 1년에 두번 공식적인 심방을 하고 있습니다(더 횟수를 늘릴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상반기에는 사도신경의 교리를 확인하고, 하반기에는 십계명으로 삶을 확인합니다만, 대화중에 이 주제는 매우 쉽게 통합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하심을 고백하며 일상에서 체험하는지 묻기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몸의 부활을 소망하는지 묻기도 합니다. 일상적 삶 속에서 이러한 교리가 어떤 위로를 주는지 질문하는 동안 이미 교리는 삶이 되고 삶은 교리를 통해 해석되기 시작합니다. 십계명 앞에서 누구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특별히 어떤 계명에 자주 넘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계명 모두를 지키려고 노력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우리 삶을 돌아보고 겸손해집니다. 별도로 심방 때 선포할 말씀을 준비하지만, 대화중에 더 긴요한 구절이 있다면 그 말씀을 전합니다.
어떤 분은 1년에 두 번 하는 심방으로는 돌보는 일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 역시 얼마전부터 교회에서 작은 소그룹 모임도 시작했습니다. 물론 목회자와 함께하는 소그룹입니다. 이 소그룹 모임을 통해 성경을 가르치기도 하고, 교리를 가지고 함께 토론도 하며, 서로의 기도 제목을 들으며 지체들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혹 시간이 흐르면 성도들 사이에서 직분자와 독립적인 형태의 소그룹이 자발적으로 생겨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목회자의 활동으로 채울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소그룹 모임 역시 필요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교와 성례, 심방을 중심으로 교회는 질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결국 소그룹은 목회의 본질을 담는 그릇이 되서는 안됩니다. 공예배의 설교와 개인적 심방이 목회의 본질을 담는 그릇이어야 합니다. 또한 한 지역교회 자체가 소그룹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규모상 소그룹이 필요한 경우에도 각각의 소그룹을 돌아보며 섬길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로운 직분자(특히 장로)가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척의 목표로서의 장로교회의 조직인 것이지요. 조직의 중심에는 그야말로 심방하는, 섬김과 다스림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장로가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척사역의 목표가 곧 심방으로 영혼을 돌보는 직분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저에게 질문을 하신 성도님께 이러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직 직분적 섬김을 저 혼자 감당하고 있기에 유기적이고 풍성한 돌봄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저 역시 누구보다 아쉽게 생각하며 안타깝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일을 채워줄 직분자가 세워지길 위해 기도하며 사역하고 있노라고 덧붙였습니다. (저의 설명을 들으신 성도님께서 많이 이해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결언 : 심방이 회복되어야 함
그렇습니다. 교회 개척은 그 초기부터 목회자가 한 영혼 한 영혼을 제자로 삼아 직분자로 세우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한 영혼을 세우는 일이 매우 비효율적이고 느리고 고되고 더딜지라도 심방을 통하여 그 일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찾아가고 또 찾아가고 다시 찾아가야 하겠습니다. 한 영혼이 사도적 가르침을 통해 변화되어 직분적 자질을 갖춰간다면 하나님께서 돌볼 영혼들을 더욱 보내주실 것입니다.
요즈음 교회를 떠나는 영혼이 많습니다. 교회가 견실한 반석위에 든든히 세워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기에는 외적 전도에 힘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적인 견실함을 다지는 일입니다. 먼저 단 두 세 사람이라도 주님을 닮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그 안에서 직분적 돌봄이 이루어진다면,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이 삶의 열매로 나타날 것이며, 이를 통해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의 숫자를 더하게 하실 것입니다(행 2:47). 선교적 교회는 반드시 심방을 통한 사도적 가르침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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