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대화

[벧전 3:19] 예수님께서 지옥에 다녀오신 게 아님에 관한 대화

Sola. 2024. 7. 15. 06:00

 

대화 출처: https://open.kakao.com/o/g7UYmxQe

(오픈채팅: 기독교인들의 교제와 성경대화)

(채팅 특성상 즉석에서 오고 간 대화라 더 부족함이 있는 점 참고하셔서 유익이 되길 바랍니다.)

[벧전 3:19] 예수님께서 지옥에 다녀오신 게 아님에 관한 대화

(2019.10쯤)

 

 

하이: 성경에는 옥에 다녀오셨다고 써있는데요. 베드로전서 3:19. 옥에 있는데 살아있을수 있나요?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벧전 3:19]

 

 

Sola:

노아시대 때의 사람들(베드로전서가 기록될 당시에 이미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 

영원 전부터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노아 당시에 복음을 전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하이님.

 

베드로전서 3:19 원어를 봐도 '그리고 그가 성령으로 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나아가사 선포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엔 호 카이 토이스 엔 필랔 프뉴-마신 포류 -데이스 에케-뤼센)

 

그 다음에 나오는 20절에서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즉, 시간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 이후와 전혀 다른 시점인 노아 당시의 시점을 말한 것입니다.

 

때문에 칼빈을 비롯한 정통신학자들과 정통교회들은 노아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도 예수님께서 그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복음을 전했다고 바르게 해석해 왔습니다. 정통 교리에서 잘 정리한 내용도 소개해 드립니다.

 

<하이델베륵 요리문답>

제 44문 : 왜 사도신경에는 “음부에 내려가셨다가”라는 귀절이 덧붙여져 있습니까?

답 : 내가 개인적인 유혹과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마다 주 그리스도께서 그 삶을 통하여 특히 십자가상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영혼의 슬픔과 고통을 겪으심으로써 지옥의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서 입니다.9 (즉 실제적으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의미가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9)이사야 53장; 마태복음 26:36-46; 27:45-46; 누가복음 22:44; 히브리서 5:7-10

 

 

<제네바 교회의 요리문답>

제65문 : '음부에 내려가셨다가'라는 말이 가르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 :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영과 육체의 분리를 뜻하는 자연적인 죽음의 고통만을 겪으신 것이 아니고 그분의 영혼이 베드로가 '죽음의 고통'이라고 말한 것처럼 상상하기 힘든 괴로움 속에 갇혀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아래 링크와 두 분의 글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A. 배현주 목사 / 정석희 편집 및 작성 (전남대 환경공학박사)

 

온전한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것의 열매인 인격과 주변 사람에 대한 선한 영향력으로 나타납니다. 인품이 좋고 사람에게 친절하나 성경 지식이 아예 없는 신앙 생활은 결국 환난이 닥쳤을 때 이탈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위험한 신앙은 지식은 있으나 자신도 모르게 인격이 파탄난 경우입니다.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꾸짖었던 위선자 바리새인 무리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아마도 가장 위험한 자들은 성경 지식도 왜곡되고 인격도 파탄났으나 이해 관계에 밝고 파당 만들기를 좋아하는 겉은 멀쩡한 위선자들이겠지요. 여러분들은 능히 잘 살피셔서 이러한 분들을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벧전 3:19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어거스틴의 정통해석에 따르면, 예수님이 성령으로서 현재에는 옥에 있는 노아의 시대의 인류에게 복음을 전파했던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벧전 3:19절에 예수께서 옥의 영들에게 가서 선포하신 사건과 사도신경의 예수님 사후 음부에 내려가신 사건을 별개의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살펴보면, 예수님이 직접 옥에 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점을 유의하시고 아래 글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풍성한 이해를 위해 아래 글을 참조하세요.

http://blog.naver.com/sokki77/220789320065

 

벧전 3:19에 대해서 배현주 목사님은 어거스틴의 해석을 지지하고 있씁니다. 풍성한 이해를 위하여 원문이 손상되지 않게 필자가 편집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

[원문 직역-배현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거나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는 것이 더욱 좋다. 18. 그리스도께서 한번 죄를 위하여서 죽으셨다. 이는 의로우신 분이 죄인들을 대신하신 것이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고자 하심이다. 육신으로는 죽으심을 당하셨으나, 성령으로 살리심을 받으셨다. 19. 그리고 그가 성령으로 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나아가사 선포하셨다. 20.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여러 날 계속되었을 그때에 그들이 불순종하였다. 노아가 적은 수를 위해서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이었다. 그들은 여덟 명의 영혼들뿐이다. 그들은 물을 통과하여서 안전하게 살았다. 21. 물은 지금 너희를 구원하는 표징으로서 세례이다. 육신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선한 양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다.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 천사들과 권세와 능력들이 저에게 종속되었다.

 

[벧전 3:17-18 본문 해설]

사도 베드로는 3장 17절에 이렇게 증거한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직역하면 이러하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거나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는 것이 더욱 좋다.” 사도 베드로가 증거한 17절을 헬라어로 살펴보면 그 문법적 구조가 직역한 그대로 이다.

 

그러니까 신자가 이 세상에 살면서 고난을 받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면서 고난을 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신자가 있다면, 그는 거짓 신자가 확실하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거나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증거한다. 고로, 신자들이 고난을 피할 수 없다면,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낫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악을 행함으로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것보다, 애매한 고난을 받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더욱 좋다 (벧전 2:19).

 

사도 바울도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증거하였다.

 

히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사도 바울도 역시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권징이 없다면 그는 거짓 신자라고 말한다. 신자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적이 없는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버리신 자들이다.

 

사도 베드로는 앞 장에서 동일하게 증거하였다.

 

벧전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사도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어차피 고난을 피할 수 없다면 죄가 있어서 매를 맞는 그러한 징계를 받지 말라고 한다. 애매히 고난이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권면한다.

 

이제 사도 베드로는 벧전 3장 18절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직역하면 이러하다. “그리스도께서 한번 죄를 위하여서 죽으셨다. 이는 의로우신 분이 죄인들을 대신하신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 애매한 고난이라는 사실을 가르친다. 그는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셔서 죽으셨다. 이는 실로 선을 행함으로서 당한 고난의 가장 최고의 형태이다. 사도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모범을 보여서, 신자로서 선한 일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얼마나 복되는 가를 가르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이 우리를 위해서 행해진 사실이 구절 후반부에 있다.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사도 베드로는 증거한다.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서 고난을 받으면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가는 복된 일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고자 그러한 고난을 당하셨다고 증거한다.

 

그리고 이어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고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다. 그때에 신자들의 육신 안에 가득 펴져 있는 그 죄악된 본성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성을 따라서 죽으셨다. 사도 바울은 육신을 따라서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다고 증거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제물이 되시고자 오셨다. 그가 반드시 인성을 취하셔야 하는 것은 그 백성의 허물로 인함이었다.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서 그의 백성의 모든 죄를 속량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다시 살아나셨다. 이는 그리스도의 신성적 능력을 증거하면서 동시에 구속의 사역에 성령께서 항상 개입하셔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의 방식이다. 성부께서 성자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서 모든 역사를 이루신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하나의 하나님으로서 행하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자께서 성부로부터 성령을 통하여서 이루신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성적 권능의 사역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서 신자들의 구속이 완성되었다.

 

[벧전 3:19-22 본문 해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래 전에 노아 시대에 대홍수 직전에 지금은 멸망이 되어서 옥에 갇혀 있는 그 영들에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하셨다고 증거한다. 그것이 바로 19절에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는 본문이다.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성령으로 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나아가사 선포하셨다.” 헬라어 동사는 모두 과거형을 쓰고 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사건이라는 의미이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영원성을 증거한다. 역사의 한 순간에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은 이미 그 역사가 있기 전부터 구약 시대 사람들에게 선포되었다고 증거하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선포하셨다. 이미 성령께서 구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선포하셨다.

 

노아 시대에서는 의인 노아가 선지자였다.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어서, 그 세대에게 하나님에게 돌아오라고 복음을 선포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윗 구절을 통해, 성령께서 지금은 옥에 있는 그 영들에게 노아를 통하여서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사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의 사역을 항상 행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역사의 한 시점에 발생한 사건일지라도, 언약의 중보자로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전파는 단지 신약 시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구약 시대에 다양한 계시 방식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었다. 심지어 노아 시대에도 선지자 노아를 통하여서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즉, 사도 베드로는 19절을 통해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약 시대 사역을 증거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노아를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셨던 역사를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에 노아를 통하여서 복음을 들었던 자들에 대해 베드로 전서 3장 20절가 증거한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벧전 3:20)

 

성령께서 노아 시대에 이미 선지자 노아를 통하여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으나 대홍수 시대에 인류는 모두 불순종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대홍수 기간에 수장되었다. 사도 베드로는 증거한다.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직역하면 이러하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여러 날 계속되었을 그때에 그들이 불순종하였다.” 그들은 복음을 노아로부터 들었으나 불순종하였다. 그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모두 대홍수로 심판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 불신앙의 시대에 겨우 여덟만을 구원하셨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 되어질 예표였다. 의원 누가의 서신에서 예수께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고 하셨을 때 이는 주님의 재림의 날을 의미한 것이다. 주의 재림이 더욱 가까워지면 고난 가운데 많은 무리들이 배교를 하게 되고 불신앙에 빠지며 결국 그들이 건짐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 증거하신 것이다. 신자들은 지금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주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한다.

 

주의 재림의 때가 어떠할지에 대하여서 예수께서 노아의 홍수때를 비교하시며 말씀하셨다.

 

마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이제 사도 베드로는 본문 3장 21절에서 이렇게 증거한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직역하면 이러하다. “물은 지금 너희를 구원하는 표징으로서 세례이다. 육신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선한 양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세례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세례의 목적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려는 것에 있지 않고,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다.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가려고 한다. 그것은 세례의 표징이 그러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선한 양심”을 달리 표현하면 “중생한 이성”이라고 부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된 중생한 이성은 하나님을 찾는다.

 

사도 베드로는 22절에 증거한다.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직역하면 이러하다.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 천사들과 권세와 능력들이 저에게 종속되었다.” 이 본문은 사도 신조를 연상케 한다. 사도 신조에서는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고 고백되었다. 사도 신조가 사도 베드로의 서신을 그대로 신앙고백으로 가져온 듯 하다.

 

https://blog.naver.com/sokki77/22079321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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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석희 (전남대 환경공학박사)

 

Updated on 2016. 11. 06

 

글을 쓰게 된 배경

 

1) 사도신경 中 '장사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2) 사도신경 中 '장사되시어, 음부에 내려가사,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3) 베드로전서 3장 19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1)은 한국 개신교에서 쓰는 사도신경이고, 2)는 원문을 모두 살린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음부에 내려가사'가 삭제되어 있습니다. 해석상 논란으로 인하여 매우 다양한 교리가 발전하였기에, '음부에 내려가사'는 어떤 사도신경에서는 삭제되기도 합니다.

 

'음부에 내려가사'는 그리스도가 지옥(음부)에 직접 내려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신학 이론과 '연옥설'로도 발전합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삼은 성경 구절이 3)의 베드로전서 3장 19절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정말 음부에 내려가신 것일까요? 가셔서 복음을 전해서 지옥의 영들에게 두번째 기회(second chance)를 준 것인가요? 우리는 사도신경과 베드로전서 3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요 약 문

 

 

1.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에서는 사도신경의 '그가 음부에 내려가셨다'의 의미를, 예수님의 장사되심과, 사흗날까지 죽은 자의 상태와 사망의 권세 아래 머무르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벧전 3:19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의 어거스틴의 정통해석에 따르면, 예수님이 성령으로서 현재에는 옥에 있는 노아의 시대의 인류에게 복음을 전파했던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3. 하지만 벧전 3:19절을 문자 그대로 살펴보면 예수님이 직접 옥에 간 것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4. 개혁주의 견해에 따르면, 벧전 3:19절에 예수께서 옥의 영들에게 가서 선포하신 사건과 사도신경의 예수님 사후 음부에 내려가신 사건을 별개의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5. 벧전 3:19에 대한 또 다른 견해는 옥에 있는 영을 향해 예수님께서 그가 구세주요 심판자임을 드러내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구절 자체를 놓고 보면 이 해석이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6. 하지만, 문맥상 그리스도의 음부강하가 벧전 3장이 말하는 핵심적인 부분은 아니기에 내용의 흐름상 그리스도의 음부강하의 출현은 다소 어색한 면도 있습니다.

 

7. 눅 23: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에 따르면 예수님의 사후에 육신은 장사되었지만 그 기간 동안에 그의 영은 낙원에 계셨다는 것이 개혁 신학의 견해입니다.

 

8. 만약 예수님의 영이 사망에서 부활까지 낙원과 음부에 걸쳐 모두 계셨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지 않은 바에 대해서 과도하게 해석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처신일 줄 믿습니다.

 

.....

 

전 문

 

사도신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1) 장사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2) 장사되시어, 음부에 내려가사,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3)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ades. The third day he rose from the dead

 

영어 사도신경에는 있지만 한국에 사도신경에는 삭제되어 있는 '음부에 내려가사'는 그 해석의 논란으로 인하여 연옥설(Purgatory)이나 음부강하설 등 다양한 교리가 발전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교파나 지역에 따라 삭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 구원의 총체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만일 이 구절을 삭제하면,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주는 은택의 많은 부분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음부에 내려가사'는 그리스도가 음부에 직접 내려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음부강하설'로도 발전하는데, 이에 대한 근거로 삼은 벧전 3장 19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또한 해석상 논란이 많습니다.

 

사도신경 '음부에 내려가사'의 해석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에서는 사도신경의 '그가 음부에 내려가셨다'의 의미를, 예수님의 장사되심과, 사흗날까지 죽은 자의 상태와 사망의 권세 아래 머무르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50.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그의 낮아지심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답.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그의 낮아지심은 그가 장사되심과 (고전15:3-4), 사흗날까지 죽은 자의 상태와, 사망의 권세 아래 머무르심에 존재한다 (시16:10; 행2:24-27,31; 롬6:9; 마12:40); 이를 다른 말로 '그가 음부(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베드로전서 3장 19절의 해석

예수님께서 실제 음부(지옥)로 내려가셨다는 음부강하설은, 벧전 3:19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19절 주변 구절인 벧전 3:17-22을 모두 살펴봄으로서, 해당 성경구절이 주는 핵심 메세지가 무엇인지 살펴 보려고 합니다. 본 성경구절의 해석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본문은 Augustine의 전통적인 견해를 기반으로 씌여졌습니다.

 

[개역한글] 베드로전서 3장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22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KJV] 1 Peter 3:17 For it is better, if the will of God be so, that ye suffer for well doing, than for evil doing. 18 For Christ also hath once suffered for sins, the just for the unjust, that he might bring us to God, being put to death in the flesh, but quickened by the Spirit: 19 By which also he went and preached unto the spirits in prison; 20 Which sometime were disobedient, when once the longsuffering of God waited in the days of Noah, while the ark was a preparing, wherein few, that is, eight souls were saved by water. 21 The like figure whereunto even baptism doth also now save us (not the putting away of the filth of the flesh, but the answer of a good conscience toward God,) by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22 Who is gone into heaven, and is on the right hand of God; angels and authorities and powers being made subject unto him.

 

벧전 3:17-18절을 먼저 살펴봅시다. 17절와 18절에서는 그리스도가 불의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셔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신 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상식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한 고난'을 받습니다: 불의한 자의 구원을 위하여 죄없는 의인이 대신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지만,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십니다.

 

18...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개역한글)

18... being put to death in the flesh, but quickened by the Spirit: 19 By which also he went and preached unto the spirits in prison; 20 Which sometime were disobedient, when once the longsuffering of God waited in the days of Noah, while the ark was a preparing, wherein few, that is, eight souls were saved by water. (KJV)

원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18...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으로 살리심을 받으셨다. 19 그리고 그가 성령으로 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나아가사 선포하셨다. 20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여러 날 계속되었을 그때에 그들이 불순종하였다. 노아가 적은 수를 위해서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이었다. 그들은 여덟 명의 영혼들뿐이다. 그들은 물을 통과하여서 안전하게 살았다.

 

원문해석을 보면 좀 더 명확해 집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죽임을 당하셨지만, 성령에 의해서 살리심을 받으신 것입니다. 19절에서 주제가 전환됩니다. 죽임 당하신 예수님을 살리셨던 그 성령에 의하여, 예수님이 갑자기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신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18절과 19절은 각각 다른 두 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20절에는 그 영들에 관한 설명으로 노아 시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간에 위치한 19절은 구조상 18절 십자가 사건과 20절 노아의 방주 사건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의미적인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절을 전후 문맥을 통해 그 의미를 파악해 보겠습니다. 가장 논란이 되는 19절의 '옥에 있는 영'의 정체는 바로 다음 구절인 20절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노아 시대의 물의 심판에서 구원에 이르지 못한 이들입니다. 베드로가 보는 시점에서 물의 심판으로 수장된 고대 인류의 영은 모두 지옥에 있기에, 그들을 '옥에 있는 영 the spirits in prison'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성령으로서 노아에게 계시하여, 노아를 통해 옥의 영이 될 당시의 고대 인류에게 심판과 구원의 말씀을 전하신 것입니다. 성경 전체적으로도 선지자 노아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에 힘입어, 심판과 구원의 말씀을 그 당시에 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어거스틴의 전통적인 견해에서는, 성부 하나님의 경륜 아래,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 함께 일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문장의 해석상 그리스도가 옥의 영들에게 직접 가셔서 무언가를 선포한 것으로 보여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음부 강하가 본 성경구절이 말하는 핵심적인 부분은 아니고, 본문의 흐름상 그리스도의 음부강하가 출현하는 것이 어색한 면도 있습니다.

 

앞선 벧전 3:19절의 견해들이, 이 본문이 주는 핵심적인 진리의 말씀에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그럼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의 말씀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120 년의 시간 동안, 노아의 가족은 말씀에 따라 다가올 심판을 준비하였지만, 나머지 인류는 하나님의 경고를 노아를 통해 듣고도 방주의 거대한 역사를 보고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물의 심판으로 당대의 의인인 노아의 가족 여덟 명만이 구원을 얻고, 그 나머지는 물의 심연으로 수장됩니다. 하나님은 그 물을 통하여, 당시 순종하지 않던 모든 자를 멸하셨지만, 의인 여덟 명을 통해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 의인의 족보를 이으시고, 그로 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합니다. 그 의인들과 같이, 현재의 우리도 물 세례를 통과하여 '선한 양심', 즉 '중생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라는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사도 베드로는 성령충만하여 노아의 시대에 행해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언급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본문에서 세례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세례의 목적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려는 것에 있지 않고,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곧, 그것이 구원의 증거가 됩니다.

 

22절에서는 예수님의 영광받으심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게 됩니다.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리스도에게 순복을 합니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고난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영광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그의 백성들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거룩한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고난을 이기어,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선한 양심', 즉 성령으로 거듭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가는 그 길은 고난의 길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길은 그리스도가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과 같이 고난받는 길입니다. 하지만 종국에는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Soli Deo gloria (Glory to God alone; 오직 주께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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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은 벧전 3:19의 논란에 대한 필자의 의문으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주교 개혁 장로 교회 배현주 목사님이 이에 대한 답변을 주셨고, 그 이후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50번을 참고하고, 성경의 여러 역본을 살펴보며, 배현주 목사님과 필자 간의 추가적인 대화를 바탕으로 위의 글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참고자료 링크에 배현주 목사님의 초기 답변을 올려 드립니다. 배현주 목사님은 어거스틴의 전통적인 해석을 지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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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3:19에 대한 그리스도 보혈의 교회 스데반 황 목사님의 견해.

이 구절은 구약 시대 및 노아 홍수 이전 시대의 불신자들을 향한 심판의 확정 메세지입니다. 계시록에서도 천사가 비슷한 역할을 해요. 즉,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심판에 대해 확증해 주는 것이에요. 불신자들은 예수님이 참으로 영원하고 공의로운 심판자이며 참으로 이생에서의 구원자임을 확인하게 되지요. 구약에서의 노아 및 선지자들의 메시아에 대한 선포가 참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입니다. 공간적으로 주께서 지옥에 가셨는지 안 가셨는지가 촛점이 아니라, 온 우주적인 구속사건의 성취가 촛점입니다. 이 사건은 옥에 있는 영들도 알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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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와의 관계는?

 

합동신학대학 이승구 교수님의 의견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예수님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늘"(Heaven)에 계셨다고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영혼이 모두 다 하늘에 계시게 되는 승천과는 다른 것입니다..."

눅 23: 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44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5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참고자료)

벧전 3:19의 배현주 목사님의 정통신학적 해석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창 6:3)'의 성경적 해석

“음부에 내려가사” 개혁주의 신조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이성호

죽으신 후 예수님의 영혼은 낙원에 가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승구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50.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그의 낮아지심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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