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출처: https://open.kakao.com/o/g7UYmxQe
(오픈채팅: 기독교인들의 교제와 성경대화)
(채팅 특성상 즉석에서 오고 간 대화라 더 부족함이 있는 점 참고하셔서 유익이 되길 바랍니다.)
지옥 갈 것을 예정하신 분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냐는 것에 대한 대화
(2019.10.2)
무명: (어떤 사람은) 지옥 갈 것을 예정하신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들을 지옥 보내기로 결심하셨는데 지옥갈 자들에게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일 수 있는지...
기독교(Sola): 하나님은 사랑의 속성뿐 아니라, 공의의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행위언약을 통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먹은 인류는 모두 영적, 육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사랑의 하나님께서 택자들을 위해 그 죄의 대가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우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신 겁니다. 지난 번 소개해 드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장에 그 부분이 잘 나와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유기하기로 예정하심과 인간의 죄를 50:50 형태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대로 유기자를 정하신 작정을 1차적으로 전제해야 합니다. 또한 인간의 죄는 유기에 있어서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한 원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행위언약 즉,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대한 언약을 깨뜨림으로서 사형 판결을 이미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이라는 과거형을 써서 이미 죽은 자라고 선포합니다.
위 2가지중 반성경적 사상으로 역사적으로 이단으로 정죄당한 알미니안파처럼 인간의 죄만을 능동적이고 근원적인 원인으로 표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유기하기로 예정하심을 반드시 기본적 전제로 깔아야 합니다.
유기의 원인을 말할 때를 정리하면
1)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을 근원적 원인으로 고백하면서도
2)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은 인간에게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로마서 9:18]
앞선 대화에서 말씀드린 성경의 토기장이 비유와는 좀 달라서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왕정시대에 공의롭고 사랑이 충만한 왕에게 반역을 저지른 100명의 죄인들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법적으로 그들은 이미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 중에 3명을 사형을 면제시켜 줍니다. 이에 대해 반역으로 나머지 사형받을 자들이 왕에게 "나는 왜 사형면제가 안되냐?"고 정당하게 왕에게 따질 수는 없습니다. 왕의 일방적인 사랑과 공의로 3명을 면제시켜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역을 꾀해서 법적인 판결을 받은 그 사형수들 조차도 그럴 진데, 3명의 건짐 받은 자들이 왕에게 가서 '당신 사랑의 왕 맞습니까? 왜 다 사형 면제시켜주지 않습니까?' 라고 힐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행위언약 즉,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대한 언약을 깨뜨림으로서 사형 판결을 이미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이라는 과거형을 써서 이미 죽은 자라고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유기자를 미리 예정하셨느냐?'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 비밀에 대해서 성경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이뤄진 비밀한 일이고, 지음 받은 우리가 뭐라고 하나님께 힐문할 수 없다고 로마서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통해 말씀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이유에 대해서 모르고 이렇게 불분명하게 명확히 계시해주시지 않은 것들이 많지만, 천국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듯이 명확하게 알게 될 것이라고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유기에 대해 잘 정리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장 7항을 소개해 드립니다.
[3장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7항 (유기의 원인과 목적 -역주)]
‘인류의 나머지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자신이 기뻐하시는 대로 자비를 베풀기도 하고 베풀지 않기도 하시는 측량할 수 없는 자기 뜻의 계획을 따라 모든 피조물에 대한 자신의 주권적 능력의 영과을 위하여, 그리고 그의 영광스러운 공의가 찬양받도록 그냥 내어버려두기를 기뻐하셨고, 또한 그들이 자기들의 죄로 인해 수치와 진노를 당하도록 작정하기를 기뻐하셨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12]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로마서 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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