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대화

[출 20:5~6] 죄로 인한 저주를 3~4대까지 받는지에 관한 대화

Sola. 2024. 4. 8. 06:00

 

대화 출처: https://open.kakao.com/o/g7UYmxQe

(오픈채팅: 기독교인들의 교제와 성경대화)

(채팅 특성상 즉석에서 오고 간 대화라 더 부족함이 있는 점 참고하셔서 유익이 되길 바랍니다.)

[출 20:5~6] 죄로 인한 저주를 3~4대까지 받는지에 관한 대화

(2018.10쯤)

 

 

무명: 죄로 인한 저주를 3~4대까지 받나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5~6]

 

 

 

기독교(Sola):

위 말씀은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한 가족의 모형'으로서의 모형론으로 해석해야하는 구절로 봐야 할 것입니다. 죄의 영향이 후손에게 미칠 수 있지만 저주가 후손에게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잘못 적용한 것이 '가계 저주론'입니다. 구원은 철저히 개인적 구원입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에스겔 18:20]

 

아래 김향주 목사님의 관련된 구절 설명을 인용해 드립니다.

 

 

<조직신학적 입장에서 본 가계저주론 비판' 중 - 김향주 목사>

 

2) Typology는 모형론으로서 구약에서 나타난 땅의 개념은 천국을 의미하고, 제사의 개념은 예수님의 희생을 의미하고 왕권은 천국의 다스림을 의한다. 그렇다면 가계의 저주의 개념은 그대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모형론으로 보느냐?의 문제에 당면하게 된다. 이는 아무리 보아도 모형론으로 해석해야 옳다고 본다. 가족을 대표하는 경우는 아브라함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렘31:1을 보면 여호와는 가족의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가족중에 구원받은 가족은 혈육으로만 아니고 집안에 있었던 이방인도 할례를 받았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여김을 받았다. 이는 가족의 축복론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적인 면이 모형론으로 결론이 난다.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는 가족은 아브라함처럼 믿음을 가진자는 누구나 그 백성으로서 취급받는다는 말이다.

 

구약의 율례 문제에 있어서도 제사장직은 히7:18과 벧전2:4-5에 의해 폐기된 율례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예수님이 오셔서 제사장직으로서 구약의 그림자를 실체로 완성했기 때문에 필요없는 율례이다. 오직 우리는 참 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간다. 또한 풍속적 교훈을 보면 창세기에 나오는 한 여자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목하고 장남이 죽은 경우 차남에게 다시 결혼을 하는 문제는 지금은 실행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오셔서 구약의 가계로 이어지는 족보의 개념이 그림자로부터 실체로 완성돼 버렸기 때문이다(막12:19-25). 그러면 출20:5의 수천대까지의 축복과 3-4대까지의 저주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백성이라는 개념을 바로 알아야 할 것 같다.

 

구약은 율법이요, 신약은 복음이라는 한정적인 해석의 방법을 도입하는 경우 성경의 통일성을 보는데 문제가 생긴다. 성경은 구약부터 복음의 우월성을 말하고 있다. 출20장의 10계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실 때 먼저 서론에서 애굽땅에서 구하여 낸 여호와를 강조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능력으로 구출받은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출받은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과의 계약은 은혜로 맺어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은혜를 받은 후에 하나님을 섬기는 법이 10계명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수천대의 축복과 3-4대의 저주에 관한 문제는 은혜의 우월성이 그의 백성에게 주어지 것이다.

 

저주론자들의 주장대로 말한다면 한번 악한 부모를 만난 자손들은 3-4대를 거치는 동안 또다시 3-4대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저주의 흐름은 사실상 계속된다는 말이다. 즉 당대의 저주가 2대를 거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2대로부터 3-4대까지는 또다른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3-4대뿐만 아니라 수천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부모와 상관없이 축복 속에 들어온 경우 저주론자들의 공식대로라면 해결할 길이 없다. 구약의 백성의 계약은 가족적인 의미가 있는데 이는 예수믿는 한 가족의 모형이며 그러면서 개인구원을 강조하고 있다. 에스겔 18:20을 보면 철저한 개인 구원을 말하고 있다. '이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신학적 입장에서 본 가계저주론 비판>

https://hisola.tistory.com/entry/114-%EC%9C%84%ED%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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